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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에게-란을 통해 생각해 본 가짐과 누림에 대해좋은 것마다 쌓아두고 싶은 내 욕심 좀 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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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1월 17일 (목) 00:00:00 [조회수 : 2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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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지워진 친구 상우를 만나러 올해 두 번이나 그의 고장 담양에 다녀왔다. 그의 기억속에서도 오래 전에 잊힌 나를 그는 정말 반가워하고 이물 없이 대했다. 게다가 내가 침대용으로 쓸 대나무를 잘라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는데도, 고맙게 택배로 보내주기까지 해서 나를 감동시켰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부드럽게 거절했을 것이다. 이 번에 상우를 더 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친구들에 대한 그의 바른 태도 때문이었다. 이야기 중에 어느 친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더 이상은 그 친구 비난을 삼가자고 제지하였던 것이다. 그가 한 나쁜 일은 밉지만 그 사람은 여전히 우리 친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처음에는 나는 그를 천재라 하던 성우로 착각했었는데, 선영이의 기억력 덕분에 상우에 대한 추억이 아슴아슴 돋아나는 거였다. 내가 4학년 때에는 종점 동굴 부근에 살던 이승주와 그 언덕길에 살던 정병선네 집에서 살다시피 했고, 5학년 때는 해방교회 오른편 가게집의 김인수네를 오가며 놀았다. 그래서 노는 곳이 군인아파트 인근이던 상우와는 접할 기회가 없었다.
첫 방문 때 초면인 우리에게 죽림원의 식사와 담양호텔의 응대가 과분하여 편치 않았다. 그리고 죽순주는 물론 그가 재배하는 고급란을 값없이 받은 것도 미안했다. 란을 취미로 기른다면 몰라도 양돈처럼 그의 직업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란을 골라서 난석이 흩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호일로 감싸고 철사로 동여 매 주었다. 그의 공들임에 나는 주목하였다. 내가 방법을 잘 몰라서 받은 란을 분갈이를 할 적에 포기를 나누다가 한 촉이 죽었다. 그것을 알렸을 때 얼마나 애석해 했는지 잘 안다. 그래서 더 미안한 마음에 아직 살아 남은 것은 잘 자란다고 여러 번 쪽지로 알렸다. 이번에 가서도 직접 한 촉은 잘 자란다고 애써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자식 이상의 애정으로 란을 대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란을 캐러 다니는 사람들을 따라 다닌다는 영자에게 요모조모 물어 본 것도 란을 더 잘 키우려는 마음에서였다.
나도 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번에도 기대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염치가 없었다. 머리속에서 한 촉만 달라는 생각이 맴돌았지만 용기가 안 나 잠자코 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자기 눈에는 란도 부추 같은 풀로 밖에 안 보인다며, 자기에게 줄 것 있으면 여자 친구들에게 주라고도 했다. 그런데 속 깊은 상우는 좋다거나 싫다는 내색을 않고 씩 웃기만 했다.
이 번에 내가 빈 손으로 온 것이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다. 앞으로는 어느 친구라도 내게 사랑으로 베푸는 친절을 무조건 덥석덥석 받지 않고 사양도 하고, 정당한 값을 치루고 싶다. 진작에 그랬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몇 포기의 란도 잘 돌보거나 감상하면서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며 산다. 있는 데도 더 가지려고 하는 마음이 바로 욕심 아니겠는가. 소유하되 누리지 못 하는 게 어디 그런 란뿐이겠는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땅이나 돈, 집이나 자동차, 수백 권의 책이나 영서들도 실은 거의 못 누리고 소장만 하고 산다. 심지어 그런 사물은 물론, 가족인 집사람이나 아들과 딸조차도 내 사랑과 관심의 손길이 못 미치는 것 같다. 욕심껏 쟁여만 놓았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제부터는 천천히 짧디 짧은 내 인생에서 사람들에 대한 관계, 시간이나 약속, 소명 등 삶의 중요한 가치들도 다시 살피거나 재음미해 보고 싶다. 가짐과 누림은 별개인 것 같다. 가지지 못해도 누릴 수 있고, 가지고 있어도 못 누리는 것도 있고.... 空手來 空手去, 이 땅에 모태에서 나올 때 나온 벌거숭이 몸, 그 외에는 다 후천적으로 얻은 것들이다. 가을나무처럼 하나씩 둘씩 다 흘려 버리고 홀가분해져야 할텐데, 좋은 것마다 쌓아두고 싶은 내 욕심 좀 봐라.
상우야~ 내게 정말 좋은 친구, 너를 다시 발견한 기쁨보다 승한 게 무엇이겠니? 나는 네가 가진 모든 좋은 것들보다 친구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을 얻고 싶구나. 너 외에도 허물은 많지만 모가 많은 나를 흔연히 받아 주는 그런 좋은 친구들이 있어 난 퍽 행복하구나. 게다가 thyme처럼 향 깊은 사람도 있어...
2005-11-17. 0시 19분
화율 이일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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