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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란(愛蘭) 이야기란의 잎맥처럼만 알맞게 곧으면 그만큼 휘어지는 여유가 있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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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1월 14일 (월) 00:00:00 [조회수 : 2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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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당사무실 이필완목사
愛蘭 |
| 내
취미 중에 고상한 것이 하나 있다면 애란(愛蘭)이다.
란(蘭)사랑!
예부터 선비들이 매란국죽(梅蘭菊竹)을
사랑하여 기르고 읊어 왔지만
나같이 이름 없는 도회지 사람이 손쉽게 매만져 볼 수 있는 것은
란과 국화
뿐이다.
그 중에서도 국화는 손수 길러 그 지순한 아름다움에 빠져 보기도 했으나
란만큼은 솔직히 마음이 덜
간다.
사람들은 수억을 웃도는 란도 구하고 사랑한다지만
나는 빈한하여 한국 토종의 춘란을
좋아한다.
그것도 꽃대가 오르다 말라 비틀어가는 한 단에 2000원 남짓한,
아줌마들이 길가에서 파는 춘란을
말이다.
그것을 사다가 조심스럽게 실끈을 풀어주고
란분에 옮겨 심어 이따금씩 물을 주는 게 어설픈 내
사랑이라면 사랑이다.
올해는 차병희라는 초등학교 동창의 아들 결혼식이 끝나고
부평시장에서 그런 조잡한 춘란 몇 단을 사서
길렀다.
란 애호가들은 그런 민춘란(?)은 산에서 만나도 거들떠도 안 본다지만
나라는 애송이 반골은 그런 춘란을 더
값있게 본다.
길에서 사들인 것은 대개 영양이 부실하여 시름시름 말라 죽고 말지만
고맙게도 올해 란분마다
풍성해졌다.
내가 태어난 장흥 천관산 자락도 춘란 자생지인 걸 나중에야 알았다.
작은고모를 모실 때 그 분묘 인근에 이조
도요지도 있고
솔수펑이에 춘란들이 여기저기 하느적거리고 있었다.
길에서 아줌마들이 캐 와서 팔던 그런 품종이라 반갑고 서럽기도
했다.
내 나이 여덟에 버리고 온 출생지가 춘난 자생지라니
내 인생도 태어난 곳을 벗어나 먼 타관을 떠도는 몸 아니던가?
그래서
더 헐값의 춘란을 좋아하게 되었을 게다.
그 전에는 란이 귀하거나 예쁜 줄도 몰랐다.
교대에
입학하여 점심시간마다 듣던 방송실의
감미로운 목소리의 여주인공을 선교 단체에서 만났다.
명문가의 그 아가씨는
목소리가 은쟁반에 옥구슬처럼 굴러갔다.
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한채 성경 공부에 전념하던 그녀를 우연히 알게
되고
마음은 갔으나 감히 가까이는 못했다.
첫째는 그녀가 1년 선배라는 부담감, 실제 나이는
내가 더 많았을 텐데도...
고개가 수그러졌다.
둘째는 내가 집사람과 데이트를 먼저 시작할 때였기 때문.
아내는 내 1년 후배로 소녀처럼 발랄했다.
셋째는 귀족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
난 기우는 결혼은
싫었다.
그녀는 내가 결혼 후에 OMF를 통해 인도 선교사로 떠나고
소식을 이따금 듣고 있었는데, 하루는 인도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
평소에 지원해 주지 못한 것이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름다운 그녀의 시신이 재가 되어 운구된다는
김포공항으로
황급히 조퇴하고 맞으러 갔으나 조문 온 사람들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를 그렇게 보낸 게 너무 서운해서 철골소심이라는
대만산 춘란을 단골 화원에서 샀다.
'정로란'이라고 하여 란에게 이름도 지어 준
것은 첨이다.
손도 한 번 못 잡아 본 마음속의 여인이지만
언제나 미소로 형제님이라고 불러
주던 그 목소리는 잊을 수 없다.
란을 키워 본 경험 없이 덜컥 사들여 마음으로만 애닯게 가꾼 그 란도
결국은
그녀처럼 허망하게 사라지고 말아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란 애호가들은 란의 꽃과 그윽한 향에
매료된다는데
꽃을 피워 볼 실력이 없는 나는 그 잎만을 즐기게 되었다.
국화잎처럼 넓지도 않고, 댓잎처럼 단단하고
짧지도 않고
늘씬하되 윤기가 넘치고 적당히 늘어진 란잎의 형용이 마음에 든다.
게다가 그게 말귀를 알아듣는 생물처럼
내 여린 숨결에도 살짝 흔들리는 여인처럼 은근하다.
나라는 사람은 곧되 너무 곧은 것은
싫어한다.
란의 잎맥처럼 알맞게 곧으면 그만큼 휘어지는 여유가 좋다.
란의 잎을 매만져 주면 감사라도
하는 듯
암띤 소녀처럼 눈인사도 해 줄 줄 안다.
내가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여인들의 자태처럼
지적이되 날카롭지
않고, 긴 있되 윤택한 여인을 닮았다.
싹싹하되 다소곳이 네하고 순응하는 사람의 미덕을
란잎은 나로 하여금 사색하게
해 준다.
그 잎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좋은데 난의 모든 것을 안다면
아마 그 중독성에서 헤어나지 못 할 것 같아
두렵다.
선비들이 왜 난을 기르고 그 란을 쳤을까?
아마도 그 란에 자기를 투영시키기 보다는
나처럼 자신의
여인상을 투영시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란의 꽃이나 더우기 화려한 서양란은 내 영역을 벗어난
선계의 사람일 것만 같아 더
이상은 내게 과분하다.
최근에 교장실에서 얻은 란도 순노랑색 꽃이 피는 고급이라 그런지
물 일에 거칠어진 여인의
손등 같은 춘란 잎과는 사뭇 다르다.
귀부인의 섬섬옥수처럼 윤기 넘치고 고와
매만져 보기는 좋겠지만 내 취향에는
별로다.
그래서 애란, 알량한 취미조차도 짜잔한 내 성격을
평생 못 벗어나는지 모르겠다.
2005-11-14
오후 5시
화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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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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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의 란 이름은 모르지만 |
| 그 란분이 집에 있는 것과 똑같아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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