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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예언’은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니다미래로 도피하는 신앙에는 구원이 없다
류상태  |  shalom77@cho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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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1월 10일 (목) 00:00:00 [조회수 : 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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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 중에는 성서의 예언적인 기록을 근거로 미래 세계에 대한 결정론적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성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내려주신 절대무오의 계시”이므로 성서의 예언은 미래의 어느 날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성서에 근거한 신앙으로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과 건실하고 책임감있는 현실의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아름답고 바람직한 일이다. 종교의 순기능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희망이 현실 도피로 나타나는 경우가 문제다. 심지어 미래를 점치고 그것으로 현실 세계에서 건실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을 호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총 66권을 하나로 묶은 성서에서, 미래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책으로 구약에서는 다니엘서,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을 꼽는다. 그러나 이 두 책은 모두 묵시문학에 속한다. '묵시(apokalupsis)'라는 말은, “미래의 사건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진리를 감추어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정확히 표현하면 ‘요한묵시록’)은 미래의 세계를 알려주려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언급하기로 하고, 오늘은 다니엘서의 예언적인 성격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보자.

다니엘서는 보수 기독교인이 알고 있는 것처럼 기원전 6세기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기원전 2세기에 쓰여졌다. 다니엘서가 기록될 당시는 알렉산더 대제의 부하 장군이었던 안티오커스 가문이 계승한 시리아 제국의 4번째 통치자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유다를 지배하고 있었다.

알렉산더의 철학을 이어받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인간 지상주의자였으며, 모든 종교를 말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유일신 사상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유다 종교를 쉽게 말살할 수는 없었다.

철의 통치자 안티오커스는 성경 읽기를 금지시켰다. 성경을 읽다가 발각이 되면 처형되었으며 할례를 행하면 그 아이와 아이의 아버지 뿐 아니라 집행한 제사장까지 사형을 당했다. 그는 성경이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한 돼지를 성전에서 잡아 그 피를 성소에 뿌리기도 했다.

이런 사회적 정황에서, 유다 백성들은 동요할 수밖에 없었고, 안티오커스의 정책에 타협하거나 항거하여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1) 타협한 사람들 : 항복하고 순응하여 신앙을 포기한 사람들로, 후에 ‘사두개파’를 형성한다.

2) 항거한 사람들 : 끝까지 버티거나 항거하여 싸웠으며, 게릴라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후에 ‘바리새파’를 형성한다.

3) 은둔한 사람들 : 악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살기를 단념하고 사해 지방으로 은둔한 사람들로, ‘쿰란 공동체’를 이루었다. 후에 ‘엣세네파’를 형성한다.

당시 인물 중에 교회를 지키기 위해 묵시록을 기록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독한 댓가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앞에 곧 거꾸러질 것이며 모든 악의 세력이 종식되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을 백성들에게 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사실대로 쓸 경우 저자는 체포되어 사형을 당할 것이고 책은 수거되어 폐기 처분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실을 ‘묵시’로, 즉 “중요한 진리를 감추어 표현”하기로 하였다.

그는 ‘다니엘’이라는 기원전 6세기의 위장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모든 것이 400년이나 흘러간 먼 과거에 기록된 것으로 위장시켜 글을 쓴 것이다. 그것이 곧 ‘다니엘서’라는 ‘묵시문학’이다.

마치 박정희 시대에, 군사 독재를 비판하고 민주주의의 도래를 희망의 메시지로 전하고 싶은 사람이, 사실대로 글을 쓰면 자신은 체포되고 책은 폐기처분될 것이므로, 조선시대에 살던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 여러 가지 상징과 비유를 동원하여 몇 백년 후의 한국 사회를 예언하는 형식으로 글을 썼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저자는, 여러 가지 상징과 비유를 동원하여 당시 유다를 짓밟던 강대국들의 싸움을 묘사한다.

다니엘서 2장에서, 역사상 유다를 괴롭혔던 4대 강대국, 즉 바벨론과 메디아, 페르시아, 그리고 그리스의 알렉산더와 그의 부하 장군이 계승한 시리아는 신상의 네 부분(금, 은, 놋, 쇠와 진흙)으로 묘사되었다. 7장에서는 독수리 날개를 가진 사자, 곰, 표범, 그리고 열 뿔을 가진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무서운 짐승으로 묘사된다. 그 뿔달린 무서운 짐승이 당시 유다를 괴롭히던 시리아 제국이다.

시리아 제국은 당시 역사에서 주목할만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통치를 직접 받아야했던 유다의 입장에서는 어느 나라보다도 무섭고 잔인한 짐승같은 나라였다.

다니엘서 후반을 장식하는 모든 예언적 내용은 시리아 제국의 멸망과 유다의 해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언젠가 시리아 제국은 망할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들은 희망을 잃지 말 것이며, 타협하지도 말라. 하나님은 반드시 유다를 구원하실 것이며, 환난을 참고 이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구원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서 신비로운 예언을 찾고 싶어하는 보수주의자들, 특히 성서에서 예언적인 성격의 구절이 나오기만 하면 어떻게든 예수님과 연결시키고 싶어하는 독실한(?) 신앙인들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말기의 극심한 혼돈 상태를 묘사한 다니엘서의 구절들을 언젠가 다시 오실 예수 재림때의 환난 상태를 묘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착각은 자유고 오산은 비행장”이라지만 참으로 황당무계하고 무식한 해석이다. 그들 중에는, 중요한 진리를 감추어 표현함으로써 당시 시리아 당국자들을 속이려 했던 저자의 묵시에 함께 속아넘어간 순진한 해석자도 있지만, 교인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엉뚱하고 황당한 농간을 부리는 영적 사기꾼도 적지 않다.

성서는 매우 현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적 성격의 기록도 먼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 앞에 바로 살지 않을 경우에 받게 될 재난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다.

예수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쳤다. 예수의 눈은 하늘로부터 땅으로, 현실 세계로 향하였다. 그러나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저 하늘만 쳐다보는 기독교인들이 너무 많다.

기독교인들이여! 미래로 도피하지 말라. 하늘을 꿈꾸기 전에 먼저 땅을 가꾸어라. 하나님을 찾기 전에, 당신의 가족부터 돌보라. 천국갈 소망을 품기 전에 당시의 가정을 먼저 천국으로 만들어라.

교인들을 ‘형제 자매’라고 부르면서,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마저도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옥갈 불쌍한 영혼”으로 보는 것은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다. 교리라는 허깨비에 함몰된 것이다. 그런 삶에는 구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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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칠 (195.72.251.229)
2005-11-11 13:03:44
골통 보수와 골빈 자유
류목사님은 지금 극단 자유주의 신학의 견해를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은 서로의 견해 차이임으로 각 자가 알아서 묵상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으나 한 가지 짚고 가고 싶은 것은 자유주의는 예수님의 재림을 부정한다는 사실입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홍길동 같은 신출기묘한 싸나이일 뿐 이라는 말이 됩니다.

부탁이 있사온데 골통 보수집단에서 오래 목사 생활을 하셨는데 무슨 책을 읽고 갑자기 골빈 자유주의자가 되었는지 제가 제일 궁금한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솔직한 기사를 보내주시면 류목사님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에게 양자택일을 하라면 골빈 자유보다 골통 보수를 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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