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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십니다미리보는 교회력 설교/ 오순절 후 열일곱째 주일(20090927)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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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9월 23일 (수) 12:10:16
최종편집 : 2009년 09월 23일 (수) 12:27:19 [조회수 : 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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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열일곱 번째 주일(20090927)
성서일과/ 시 19:7-14; 민 11:4-6, 10-16, 24-29; 약 5:13-20; 막 9:38-50
본문/ 약 5:13-20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약 5:13-20)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18] 디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오늘 주신 말씀들은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의 신비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민수기는 광야에서 위기를 만난 이스라엘이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 일을 기록하고 있고, 마가복음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사람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봉독한 야고보서는 병이 들면 교회의 장로 곧 목사에게 기도를 청하라는 권면입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세 본문 모두 무언가 공동체 안의 갈등상황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민수기는 장로 칠십인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데 따로 기도하던 두 사람, 엘닷과 메닷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던 여호수아를 모세가 만류하고 있습니다.
          [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무리에 속하지 않은 자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일을 금하였다는 제자들의 말에 주님은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십니다.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명확하진 않지만 야고보사에도 그런 정황이 읽혀집니다.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위로부터 임하는 신비한 능력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오로지 그것 때문에 믿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라 하여 부정하는 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자연히 서로 간에 믿음이 없다, 인본주의다 하며 갈등합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추석명절이 멀지 않아서인지 오늘 말씀들을 보면서 불현듯 이스라엘이 지키는 부림절이 생각납니다.
부림절은 이스라엘의 명절 중에서 가장 즐겁고 유쾌한 날입니다.
이날은 이스라엘의 다른 명절들과 달리 세속적인 절기로서, 취하도록 포도주를 마시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등 문자 그대로 축제일입니다.
에스더서는 부림절의 기원에 대해 증거하는 책입니다.
저는 오늘 흔히 들을 수 있는 간증들과 부림절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오묘하신 역사가 지닌 참뜻을 깨달아 알고, 오늘도 그 사랑하는 자들에게 임하고 있음을 믿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부림절의 유래

부림이라는 말은 본래 주사위라는 뜻입니다.
바빌론의 뒤를 이은 바사 제국 대신들의 우두머리였던 하만은 유대인인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을 전멸시키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리고 주사위를 던져 그 날을 정했는데, 아달월 13일이었습니다.
하만은 철저히 준비를 해서 이제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사 왕 아하스에로스가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역사책을 읽다가, 이전에 모르드개가 자신을 역적들로부터 구해 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왕은 모르드개에게 왕의 옷을 입히고, 가장 높은 신하인 하만이 그의 말을 붙잡고 광장을 돌도록 함으로 모르드개를 높였습니다.
왕과 같이 대우한 것입니다.

한편 유대인으로서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였던 에스더는 하만이 유대인들을 전부 죽이기로 작정한 그 날, 왕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왕에게 하만의 음모를 고발하였습니다.
에스더의 말을 들은 왕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준비한 나무에 하만을 매달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 살게 되었고, 그 날을 기억하여 명절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에스더서 9:22은 그 날의 역사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을 얻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며,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된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인생이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서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셨을까요?

첫째, 하나님은 뜻밖의 일로, 엉뚱하게 역사하십니다.

바다를 항해하던 배 한 척이 뒤집혔습니다.
배에 탔던 선원들 중 한 사람이 간신히 살아남아, 사람이 살지 않는 섬에 당도했습니다.
지나가던 배가 그를 발견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그 섬에 갇혀, 죽을 날만을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기에, 우선 여기저기서 나무를 모아 오두막을 한 채 지었습니다.
오두막이긴 했지만 아무도 없는 섬에서 그의 유일한 피난처요, 안식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오두막이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마른 나뭇가지로 된 오두막은 걷잡을 수 없이 불길에 휩싸이고 있었습니다.
선원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그나마 안식이자 위로가 되었던 집이었는데, 마침내 전부 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원은 넋을 잃고 잿더미 앞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살아날 소망마저 오두막과 함께 불에 타 사라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불타 버린 집 앞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그런데 꿈인지, 생시인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 일어난 그의 눈에 바닷가에 배 한 척이 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를 구하러 온 배였습니다.
섬에서 불이 난 것을 보고 왔다고 했습니다.
멀리 섬 곁을 지나는데,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서 불이 타오르는 것을 보고, 누군가 구조를 요청하고 있구나 생각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애써 지은 오두막이 불에 타버린 것은 불행한 일이었지만, 그 불 때문에 선원은 살 수가 있었습니다.
오두막이 불에 타지 않고 있었다면, 그 선원이 언제 구조를 받을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 오두막에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부림절의 역사도 그랬습니다.
하만이 주사위를 굴려 정한 날자는 본시 멸망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날을 구원의 날로 바꾸신 것입니다.
          (에 9:20-22) 『[20] 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아하수에로왕의 각 도에 있는 모든 유다인에게 무론 원근하고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21]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 사일과 십 오일을 지키라 , [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로버트 브라운이라는 미국의 신학자가 쓴 ‘뜻밖의 소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성서는 우리에게 항상 뜻밖의 소식을 전하는 책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이 대표적입니다.
아마 진짜 가난한 자를 보고 '너는 참 복도 많다'라고 말한다면, 뺨 맞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왜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을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가난 그 자체가 복이 있다고 증명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가난한 것이 결코 복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가난함 가운데 역사하셔서, 뜻밖의 일을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오두막이 불에 탄 것은 분명히 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으로 복되고 복된 것이었습니다.

가난 그 자체가 복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난함 가운데 주님이 역사하셔서 만들어내는 결과는 우리가 지금 어떠리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반드시 복되리라는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들이 보기에 엉뚱하다 할 만큼 뜻밖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어떤 장로님께서 다리에 장애를 지닌 아들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더 참담한 것은 며느리도 불과 1년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 하나가 남았습니다.
이제 장로님 내와가 그 손자를 키워야 합니다.
무슨 말로 위로해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때 제가 이 예화를 들어 말했드랬습니다.
아드님과 며느리가 불이 되어 하나님께서 그 손자를 통해 역사하실 것이라고....
그 날이 언제일지 알 수 없고, 그날을 장로님께서 보실 지도 확신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반드시 그렇게 역사하실 것이라고....

배 고프고, 목 마른 백성들의 아우성을 마주한 모세는 막막했습니다.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고 간청하니, 하나님은 장로들과 함께 기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기도는 난파한 자가 자기 거처를 태워 올리는 불길과 같습니다.
기도는 뜻밖의 길로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를 여는 일인 것입니다.
기도하여 사람의 계산과 도모를 벗어나 임하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 체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역사는 우연히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이는 수가 많습니다.

남편을 잃고 세 남매를 키운 최옥선이라는 여자 성도의 간증입니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고향 땅을 떠나 태국에 가서 살았습니다.
인삼가게를 하며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장사도 잘 되었고, 아이들도 별 탈 없이 잘 자라, 남편 없이 사는 서글픔을 달랠 수가 있었습니다.
막내가 군대에 갈 나이가 되어 막내를 데리고 고향인 춘천에 있는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한 가지 고질적인 병이 있었습니다.
막내아들을 임신하고 있을 때 아이가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방광이 눌려서 염증이 생겼는데 완쾌되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신장까지 상했습니다.
아이를 낳을 때까지 소변 줄을 끼고 살았을 정도로 고통을 주었던 병이었는데, 조금만 신경을 쓴다든지 피곤하면, 소변을 보지 못해, 병원에 가서 기계로 소변을 빼내야만 했답니다.

막내를 군대에 보내는 일로 걱정을 많이 해서 그런지, 집에 온 날부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어서 아픔을 참으며, 논산까지 아이를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공중전화 박스에 수화기가 늘어져 있는 것이 눈에 뜨였습니다.
누군가 전화를 걸다가 돈이 남으니, 걸어 놓지를 않고 그냥 간 것 같았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딱히 전화를 걸 곳이 없었는데도, 전화를 걸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중전화 박스로 다가 갔습니다.
수화기를 드는데, 문득 단식을 하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언제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 생각이 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114를 돌렸습니다.
단식하는 곳 아무 곳이나 전화번호를 좀 알려 달라고 해서, 그 곳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어떻게 가면 되느냐고 물으니 친절히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 길로 집을 싸서 그곳을 찾아 갔습니다.
알고 보니 그곳은 금식기도원이었습니다.
단식하는 곳을 물었는데 안내하는 사람이 금식으로 알아들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던 그 여자는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찬송하는 것이며, 기도하는 것이 이상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니 병든 사람이 많이 오고, 또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치고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기왕 어렵게 왔으니 속는 셈 치고 따라서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찬송을 몰라 따라 부르지는 못하고, 박수만 열심히 쳤습니다.
설교라는 것을 생전 처음 들었는데 꼭 자기를 보고 하는 것 같아서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금식 5일째가 되던 날부터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목 뒤가 아팠는데 점점 어깨, 등과 온몸으로 퍼졌고, 8일째 되는 날에는 누군가 머리를 들어줘야 일어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금식하면 아픈 곳이 나타난다고 하더니, 남편의 사고소식을 듣고 기절했을 때 다쳤던 곳이 아픈 것이었습니다.
9일째 되던 날은 신기하게도 목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거품 소변이 나오다가, 색깔이 뿌연 소변이 나오기 시작했고, 점차 소변의 색이 깨끗해졌습니다.
그토록 고쳐지길 원했던 신장과 방광이 치료가 된 것이었습니다.

뒷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이 간증에 몇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우연히 줄이 늘어져 있는 전화기를 보았습니다.
우연히 단식하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단식원 전화번호를 물어 보았는데 금식기도원 전화번호를 대 주었습니다.

우연의 연속입니다.
흔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노라면 소설 쓴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설도 이런 식으로 우연이 겹치면 그건 소설이 아닙니다.
황당한 이야기기가 되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우연이 없습니다.
어쩌다가 생기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스더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어느 날 밤 아하수에로 왕은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도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왕이니 후궁들을 부를 수도 있고, 어쨌든 잠 안 오는 밤을 지새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 왕은 책을 읽었습니다.
왕이 읽은 책이 마침 궁중일기였습니다.
궁중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일종의 역사책입니다.
그는 그 책을 읽다가 모르드개가 자기를 구해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우연스런 일들뿐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우연 속에 당신의 백성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역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악한 계교가 수포로 돌아가게 된 것을 알게 된 하만이 에스더에게 매달렸습니다.
살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순간에 화를 식히기 위해 자리를 떴던 왕이 돌아 왔습니다.
나가 있는 동안에 왕의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자 때문에 충성스러운 신하를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마침 하만이 왕후 에스더를 붙잡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왕은 하만이 왕후를 겁탈하려고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이르거나 아니면 조금 늦게 들어 왔더라면, 하만을 죽이려는 왕의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더 7:8)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의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가로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왕이 돌아오기까지 왕의 부하들이 왕의 심중을 알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하필이면 다시 들어서는 그 때에 하만이 에스더에게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감리교회의 템플 감독이 켐브리지 대학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계의 석학들이 모인 곳에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한창 설교를 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서 외쳤습니다.
"목사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기도가 응답된다고 말씀하십니까?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우연입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연의 일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는 응답되는 게 아니고 우연히 그저 그렇게 요행으로 된 것입니다."
템플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그래, 청년의 말도 일리가 있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하면 우연이 생기고, 기도를 안 하면 우연이 안 생긴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기도하는 거라네"
그날 거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충만한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연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에 기름을 바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민간 처방일 것입니다.
기도만 하라고 하지 않은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이라도 하면 더구나 주의 이름으로... 곧 주를 믿고서 노력하면 그만큼 우연한 일이 생길 기회가 많아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우연은 사람이 보기에만 우연일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필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쩌다가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을 통해 당신의 자녀들을 지키고, 인도하시며, 구원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으로 치유 받고, 복 받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반드시 선하게 역사하십니다.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의 신임을 받아 신하 중에 가장 높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궁중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모르드개만이 그에게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는 유대인이라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만은 그런 모르드개를 괘씸하게 여겨 죽이고자 했습니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절을 하지 않는다니 유대인 전부를 죽일 생각을 했습니다.
교만하고, 악한 마음이었습니다.

하만은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먼저 왕의 명이 없으면 되지 않을 일이기에 왕을 설득했습니다.
곳곳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나중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 다 죽여 없애야 한다는 구실을 내세웠습니다.
말로만 될 일이 아니기에 뇌물을 썼습니다.
왕께서 그리하라 명령만 하시면, 왕의 창고에 은 일만 달란트를 채워 넣겠다고 했습니다.
주시위를 던져 아빕월 곧 12월 13일로 학살의 날로 정했습니다.
마침내 왕의 도장이 찍힌 조서를 받아내고 그 조서를 전국에 보냈습니다.
          (더 3:14) 『이 명령을 각 도에 전하기 위하여 조서의 초본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 그 날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라 하였더라』

하만의 계교를 알게 된 모르드개도 준비를 했습니다.
아니 그 이전부터 준비를 해 왔습니다.
유대인으로 고아였던 에스더를 데려다 키워서,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되게 했습니다.
언젠가 민족을 위해서 크게 쓰임을 받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더 4:14)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모르드개는 하만의 악한 계교를 알게 되자, 이를 에스더에게 알렸습니다.
기별을 들은 에스더는 그 유명한 말 ‘죽으면 죽으리라’ 말로 각오를 다졌습니다.
          (더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 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죽으면 죽으리이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비장한 각오를 한 에스더가 잔치를 베풀고, 왕과 하만을 초청한 후, 왕에게 하만의 악한 계교를 폭로하고, 자기 민족을 구원해 달라고 간청하여, 소원을 이루는 장면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교만 때문에 강퍅해진 마음으로 악한 계교를 꾸민 하만은 자기가 준비한 나무에 매달려 죽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준비한 일은 결국 자기를 죽이는 일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준비한 모르드개와 죽으면 죽으리라 말하며, 모르드개의 계획에 순종한 에스더는 민족을 구원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고아였던 에스더를 키워 왕후가 되게 했습니다.
유다인으로 바사의 왕후가 된 에스더는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가 유대인인 것을 몰랐습니다.
에스더는 이미 전국의 유대인을 다 죽이라는 조서에 도장을 찍은 왕 앞에서 자기가 유대인인 것을 밝혔습니다.
참으로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선하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두막을 태운 불길이 조난신호가 될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어쩌다가 본 전화기가 병을 치료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녀가 되는 길이 될 줄을 꿈엔들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역사하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섭리하시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불을 보듯 분명한 것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의 씨를 뿌립니다.
인내의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목도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죄 가운데서 기도하면 사하시는 은총이 있습니다.
사함 받은 자가 기도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선하게 역사하시기에 선한 자의 기도, 선한 뜻으로 드리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것도 크게 역사합니다.
아무쪼록 선한 일에 열심을 내고, 선한 뜻으로 기도하여 응답받는 은혜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매 순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역사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두막을 태워서 구조선을 부르시고, 우연히 걸게 된 전화 한 통 가운데 필연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무엇보다 믿는 자에게 최후 승리를 얻게 하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담대함으로 악을 대적하여 승리하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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