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라파스쿠아 섬 전경

필리핀 중부지역인 세부 최북단에 "말라파스쿠아"라는 섬이 있다.
이 말은 스페인어로 "최악의 크리스마스", "슬픈 크리스마스"로 해석된다.
슬픈 말라와 크리스마스 파스쿠아의 합성어이다.
이 섬은 제2의 보라카이로 불릴만큼 아름다운 해변을 갖고 있고,
유럽인을 비롯해 여행객과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스페인이 필리핀을 정복하러 세부에 와서 이 섬에 도착했을때가 크리스마스였는데
태풍이 불어서 "슬픈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크리스마스에 스페인이 이곳을 침공해 원주민을 학살해 붙여졌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어떤 설이 맞는지는 알수 없으나 "말라파스쿠아" 스페인이 필리핀을 침공해 4백년간 지배한 역사는 사실이고,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필리핀에게는 매우 슬픈 역사가 아닐수 없다.
"엘리뇨"라는 말 역시 스페인어로 “아기예수”라는 의미로 크리스마스 때에 오는 현상을 지칭하는데
그당시에도 엘리뇨 현상으로 태풍이 불었는지는 모르겠다.

기독교국가인 스페인의 영향으로 현재 필리핀은 인구 90% 이상이 카톨릭으로 아시아 최대의 카톨릭 국가이다.
이들의 가장 큰 명절은 단연 크리스마스로 대부분의 직장이 근 한달을 쉰다.
두번째 큰 명절은 부활절로 약 1주일 이상을 쉰다.
한국의 설과 추석과 비슷하다. 이 기간에는 필리핀 전역에서 귀향 전쟁이 벌어진다.
또한 12월에는 여러가지가 불편하다. 직장도 쉬고, 쇼핑몰도 쉬고, 대부분 가게가 쉬기 때문이다.
이들의 크리스마스는 매우 길다.
9월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돼 12월까지 약 4개월이고 새해까지 이어지면 5-6개월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크리스마스를 지내는 유일한 국가로 9월부터 몰과 라디오에서는 캐롤송이 울려퍼지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설치한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산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매우 길고 중요하다.
일명 "미리 크리스마스"라고 부르고 싶다.
그안에 아기예수의 탄생정신보다는 온 가족과 마을이 놀고 먹고 춤추고 노래하고 즐기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
또한 이때에 이루어지는 소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해 번 돈을 이때에 다 사용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긴 기쁨과 평화를 주러오신 아기예수의 정신이 이것이라고 말하면 할말이 없겠지만...

금식하며 아기예수를 기다렸던 안나와 시몬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의 신앙은 토속신앙과 기복신앙이 합쳐져 미신처럼 보일때가 많다.
이것이 신앙인지? 미신인지? 분간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성당에 촛불을 켜며 복을 빌고, 아기예수 상에 절을 하고, 키스를 하고, 막 뒤엉켜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여간 필리핀 전역에는 가장 긴 미리 크리스마스가 벌써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