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찬 기운에 지친 몸을 찜질방에서 위로하고 아침에 일어나 변영권 목사가 준 건빵 한 봉지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친 후 강릉 경포대를 지나 영진교회로 향했다. 영진교회는 이승현 목사 내외가 최근에 부임했다. 아파트 단지 옆에 아담한 예배당 건물이 인상적이다. 좌석은 거의 꽉 차있었다. 교인들의 구성비가 다양한 편이다. 들어가 자리를 잡자마자 예배가 시작되었다.

사전에 연락 없이 참석한 예배인지라 이승현 목사가 나를 보고 좀 놀란 눈치이지만 애써 침착하려 한다. 나도 부담스러워 할까봐 고개를 숙이고 눈길을 피했다. 아직은 여러 모로 어색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설교하는 모습도 좀 부자연스럽다.

결국 아버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후 부목사로 가고자 하였지만 부부목회자라는 이유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국 감리교회에서 부부목회자라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인 것 같다. 갑자기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하자 절망도 커졌었다고 하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다가 목회를 접을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이곳 영진교회로 이임하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산골에서 바닷가로 풍광부터 낯설었다. 텅 빈 예배당이 꽉 찬 예배당으로 바뀌었다. 간밤에도 새로운 주보용지가 늦게 와서 겨우 한 시간 간신히 잤다고 한다. 절망도 희망이 되었다. 할 일이 없어 힘들었던 생활도 이제는 너무 바빠 잠 잘 시간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승현 목사는 그저 ‘임지가 바뀐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100여명 가까운 교인이 출석하는 교회 담임자가 되었다는 것이 무슨 큰 횡재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겠지만 자신은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교인이 적은 것보다는 많은게 더 목회에 힘이 나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목회 성공의 의미를 인원수와 결산금액수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이승현 목사는 깊이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이 지역 성도들을 섬길 것을 다짐하고 있다.

교회에서 식사를 함께 하고 바닷가에 나와 모래사장에 서서 한 30여분을 대화했다. 이승현 목사도 주일을 두 번 지냈지만 이제사 겨우 바닷가에 나와 보는 것이라고 한다. 상처 받은 지역과 교인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목회를 하고 싶다고 이 목사는 말한다. 나는 상처 받은 사람이야말로 상처 입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오히려 교회에 상처 받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 지역의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해 큰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결국 똑같은 교회의 똑같은 목사가 하나 더 탄생하게 되는 순간이 된다. 그런 모습이 내게는 항상 아쉽다. 이승현 목사 조선희 목사 부부가 어쩌면 동기들, 비슷한 또래의 동역자들보다 먼저 시험대에 선 것이다. 어쩌면 힘들었던 순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이 시험대에서 모두가 칭찬하고 모두가 승리하며 모두가 본받을만한 좋은 점수를 받게 되기를 바란다.

새로 옮긴지 얼마 안 되는 목회지에 면도도 제대로 안 하고 머리도 덥수룩한 선배 목사가 어슬렁거리는 것이 그 교회에 은혜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또 이 목사의 일정이 있는 것 같아서, 또 내가 시건방진 충고로 후배(조선희 목사는 한 학번 선배이다) 앞에서 목에 힘주게 될까봐 잠시 사택에 앉았다가 곧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목사 부부가 잘 해내리라는 믿음을 품고 다시 왔던 길을 거슬러 대관령 고개를 넘는다.


날이 많이 쌀쌀해졌다. 추위를 잘 참지 못하는 나는 점점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강원도는 고지대라 기본적으로 춥다. 오늘도 또 떨면서 오토바이를 달린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충주로 가기로 한다. 충주 사랑방교회 유명선 목사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신학대학 다닐 때부터 워낙 허물 없이 지냈던 후배라 기꺼이 나의 일박을 환영해줄 것 같아서이다. 역시나 그 부부는 친척 혹은 가족 같다. 근처에서 목회하는 송전교회 이상민 전도사도 왔다. 우리는 또 정감어린 대화로 밤을 지샌다.

유명선 목사는 올해에 안수를 받았다. 안수를 받으면 당연히 목회자가 떠나고 새로운 전도사가 오는 교회였지만 그는 1년 더 있기로 하였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조차 이제 어디 안 가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지방 목회자들도 묻는다. 그 질문이 이제는 스트레스가 된 것 같다. 그러니 마음으로는 답답하다. 내년에도 자기를 불러갈 교회가 있을는지, 떠나야할지 말아야 할지, 도무지 미래가 암담하고 답답하다. 부부가 함께 답답해하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시골에서 목회하는 젊은 목회자들이 전형적으로 겪는 고민과 질문이다. 거기에 해줄만한 적절한 대답은 물론 나에게도 없다. 그저 함께 답답해할 뿐이다.

이상민 전도사는 컴퓨터의 하드디스크가 고장났다고 하드디스크에 집착한다. 장가도 가야 할텐데... 아침에 동네 할아버지를 병원에 모셔다 드리기로 약속해서 가야한다는 것을 억지로 자리에 앉히고 함께 한 이불에 누웠다.

항상 즐겁고 성실한 후배들이지만 미래가 넉넉하지 못한 모습을 본다. 이승현 목사의 경우도 어찌 보면 그리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국교회의 교인수가 감소하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마도 젊은 목회자들이 비전을 상실하게 되는 상황일 것이다. 점점 더 할 일이 많아지는 한국사회에서 젊은 목회자들이 힘을 얻기를 바란다. 아무래도 생각이 비슷한 이들이 함께 한 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외로움도 달래고 정보도 나누고 고민도 나누는 자리가 빨리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