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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자가 되라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 오순절 후 열세번째 주일(20090830)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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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8월 27일 (목) 03:17:04
최종편집 : 2009년 08월 27일 (목) 10:23:58 [조회수 : 2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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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열세 번째 주일(20090830)
성서일과/ 시 15; 신 4:1-2, 6-9; 약 1:17-27; 막 7:1-8, 14-15, 21-23
본문/ 야고보서 1:17-27
경건한 자가 되라

          (약 1:17-27) 『[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 니라 [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도를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것을 곧 잊어 버리거니와 [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 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지난 몇 주에 걸쳐 에베소서를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이어 새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셨고 또 이기는 자가 되라고도 하셨습니다.
오늘 주신 성서일과의 전체적인 주제는 경건입니다.
성경의 책이 바뀌긴 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 가운데 아가서가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읽으면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아가가 그런 책입니다.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의 아가는 솔로몬과 이방인 술람미 여자 사이의 사랑이야깁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으니, 그 내용이 경건치 못하다 해서 이 노래를 성경에 포함시키느냐 여부를 놓고 오랫동안 문제가 되었던 책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하나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사랑을 신랑, 신부의 사랑에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 62:5) 『...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그뿐 아니라 예수님도 당신을 신랑으로 비유하신 것이 있습니다.
          (막 2:19-20) 『[1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아가도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의 사랑을 통해 주님과 그의 신부된 성도들 간의 사랑을 예표 하는 것으로 읽을 때, 맑고, 그윽한 영적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뿐 아니라 경건도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성서일과 중 야고보서는 경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것이 경건이라는 뜻입니다.
더러움이 없는 정결함 이것은 신랑을 맞는 신부가 반드시 지녀야 할 몸가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시고, 그가 부르실 때에 들어 주십니다.
          (시 4: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건지시고, 더러운 자를 징벌하십니다.
          (벧후 2:9)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아가서는 신랑이 신부를 찾음과 만남 그리고 하나 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아가서 가운데 2장의 일부와 야고보서를 연결시켜 주님이 찾는 사람, 만나시는 사람 그리고 하나 되어 동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사모하는 마음과 열린 귀로 말씀을 받고, 준행하여, 하나님이 아름답게 여기시는 신부와 같은 경건한 성도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아가서 2:8-13을 보겠습니다.
          (아 2:8-13) 『[8]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9]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 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 2:8)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신랑이 신부의 이름을 부르며 급하게 달려옵니다.
먼 산 너머에서부터 그의 숨소리와 목소리가 들립니다.
높은 산도 사랑하는 자를 향해 달려가는 신랑의 길에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향해 오실 때에 그랬습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오시기를 원하셨기에 오시는 그 걸음도 빠르셨을 겁니다.
          (시 147:15)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다시 오실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계 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 사랑하심이 너무 커서 천천히 오시지 못하고 급히 달려오시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하도 넓어 세상 만민을 그의 신부로 삼으려 하시지만 누구나 그의 신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광을 본 모든 사람이 주님의 신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찾는 신부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을 찾으십니까?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약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조급히 말하기보다 듣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아가서의 술람미 여자는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일로 인해 말하는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들은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예수라 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한 물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말은 거기까지였습니다.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자, 마리아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눅 1: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의 남편 요셉도 그랬습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고, 조용히 파혼하려고 했습니다.
          (마 1: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말없이 끝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세상 이치로야 크게 떠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지만, 요셉은 의로운 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렵에 천사가 그를 찾아와, 이 일은 성령으로 그리 된 것이고,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신 일이니, 마리아 데려오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이 어떻게 했습니까?
          (마 1:24-25)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하늘의 음성을 들은 두 사람, 말없이 그 음성에 순종한 두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세상의 구주로 이 땅에 오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그는 경건하고 의로운 자였으나 환난을 당하자 말을 많이 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욥 13:6)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 보라』

마침내 친구들에 대하여 노하고, 저주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욥 17:5) 『친구를 지적하여 해를 받게 한 자의 자식들은 눈이 멀지니라』

경건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뵙고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욥 40:4)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그때부터 욥의 삶은 변했습니다.
환난은 사라지고, 복은 두 배가 되어 그에게 임했습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자기가 앞서는 사람입니다.
경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당신의 말을 듣는 경건한 자를 찾아오십니다.
사람 앞에서라고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말이 앞서고, 많이 하는 자가 쉽게 노하고, 저주하는 말을 입에 담는 법입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자가 아닙니다.

듣는 자는 사모하는 자입니다.
노하거나, 실망하는 법 없이 간절히 사모하는 자입니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오심을 사모하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멀리서도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시끄러운 세상에 말로서 소리를 보태는 자가 되지 말고, 들음으로 주의 소리를 분별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이 경건한 자, 말하기보다 듣기를 즐겨하는 자가 되셔서, 주님 오실 때를 헤아려 아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 2:9]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노루와 같이 뛰어와서, 사슴과 같은 맑은 눈으로 신부를 살핍니다.
문을 두드리기 전에 벽 뒤에 서서 창을 통해 들여다봅니다.
창살을 통해 몰래 엿봅니다.
자세히 살피는 것입니다.

주님도 우리를 살피십니다.
어디에 있어도 주님이 살피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주님은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거룩한 신랑 앞에 부끄러움 없이 자기를 보일 수 있는 자가 누구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시 14:3)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멀리서 달려온 신랑이 선뜻 문을 열지 못하고 창살을 통해 보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신부의 흐트러진 모습을 본다면 산을 넘어 힘들게 달려온 발걸음이 헛된 것이 될 판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야고보서는 말합니다.
          (약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다윗의 할머니 룻이 보아스와 결혼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룻은 어제까지 밭에서 이삭을 줍는 이방 여인이었으나, 오늘은 밭의 주인인 히브리 사람 보아스의 신부가 되려는 준비를 합니다.
          (룻 3:3) ...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이방 여인 룻이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이라 할 수 있는 보아스의 신부가 되기 위해 먼저 한 일은 이방에 속했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가 되기 위해 해야 할입니다.
무엇을 했습니까?

1) 목욕을 했습니다.
더러움을 씻는 일이요, 아름다워지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일입니다.
어디까지 씻어야 합니까?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몸 뿐 아니라 영혼까지,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모든 곳을 다 씻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중심까지 보시기 때문입니다.

2) 기름을 발랐습니다.
기름을 바름은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전에 속한 것은 사람이든지 기물이든지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했습니다.
          (출 30:30)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
          (출 40:10) 『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내 뜻과는 상관없이 죄 가운데 나서, 죄 가운데 살면서 몸에 밴 악취를 없애고, 아름다운 향기를 뿜기 위해 기름을 바릅니다.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죄, 모태로부터 가지고 나온 모든 죄까지 거룩하게 하는 성령의 기름으로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3) 옷을 입었습니다.
추위와 더위에서 우리 몸을 지키는 것이 옷이지만, 옷이 날개라 하는 말에서 보듯 아름다워지기 위해 옷을 입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이 옷을 입은 처음에는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입었습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계 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아담과 하와는 처음에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옷을 벗기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려 주셨습니다.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라고 한 바울처럼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한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밭에서 일하던 그 모습 그대로 신랑을 맞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옷을 입어 모든 더러운 것과 악한 것과 부끄러운 것을 없애야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구원의 도 곧 십자가의 도를 온유한 마음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말합니다.
          (계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주님이 우리를 찾으시는 것도 은혜요, 주께서 내 죄를 사해 주시는 것도 은혭니다.
우리에게 길은 하나 회개함으로 죄를 씻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겸손히 주의 발치에 엎드려, 그의 말씀을 기다려야 합니다.
          (약 1:21)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주님이 우리를 살피십니다.
우리를 탓하고, 나무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신부가 될 만큼 경건한 자가 있나 살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정결하고 거룩한 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회개하는 자를 보고 기뻐하십니다.
회개하는 자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갖 죄로 더러워진 몸을 물로 씻어야 하겠습니다.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에 성령의 기름을 발라 온유하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다시는 죄를 범치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의의 옷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온유한 음성을 듣는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 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준비된 자에게 들리는 온유한 음성입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이고, 꿈에도 사모하여야 할 말씀입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말했습니다.
          (룻 3: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일을 네게 고하리라

보아스의 발치에 누운 룻이 사모하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준비하고 기다리는 신부에게 할 말은 일어나 함께 가자는 말 외에 달리 없습니다.
단장한 신부가 기다리는 말도 그 한 마디밖에 없습니다.
하나가 되어 살자는 말입니다.
한 가지로 기쁨을 누리자는 말입니다.

왜 일어나라고 하십니까?
          [아 2: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기 때문입니다.
땅의 겨울은 지구가 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를 일컫습니다.
성도의 겨울은 빛이신 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닥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게 오시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 것입니다.
어둡고 추운 시절은 사라졌습니다.
새 생명의 태동을 재촉하는 봄비도 그치고, 땅에는 새 순이 돋고 자라서 꽃이 피고, 나뭇가지에는 새들이 깃들어 노래할 때가 온 것입니다.
비둘기의 노래하는 소리는 이미 봄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불러 ‘일어나라’ 하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아직 멀었다 말하고, 내 생각에도 더딘 듯하지만, 주의 때는 이미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요 4: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사모하는 자를 주님이 찾으십니다.
단장하여 준비하고 있는 자에게 일어나라는 주의 은혜로우신 음성이 들릴 줄 믿습니다.
아무쪼록 사모하고, 준비하여 ‘일어나서 함께 가자’ 부르시는 주의 음성 듣는 자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어디로 가자고 하십니까?
          [아 2: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주의 동산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무화과나무에는 이미 익은 열매가 풍성하고, 포도나무에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고 있습니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시 72:16) 『산꼭대기의 땅에도 화곡이 풍성하고 그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같이 왕성하리로다』
          (말 3:12)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거기에 핍절한 자가 없습니다.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거기 곤고한 자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는 말합니다.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참된 경건, 아름다운 신부가 가는 곳은 외로운 자, 궁핍한 자가 없는 곳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불러 함께 가자고 하심은 우리에게 외롭고, 궁핍한 자를 외면하지 말고 함께 가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주의 동산에는 풍성함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 곳에는 고아와 과부가 환난을 당하는 법이 없습니다.
주님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당신의 신부가 되어 그곳에 거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의 사랑은 온 세상을 덮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풍성하고, 아름다운 당신의 동산으로 인도하시려는 분입니다.
참으로 경건한 자는 주의 뜻을 따라 외롭고, 가난한 자들을 향해 일어나 함께 가자고 말하는 자입니다.
함께 풍성한 기쁨을 누리자고 말하는 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풍성함과 아름다움입니다.
이것은 경건한 자에게 약속된 복입니다.
조급함 없이, 인내로서 주의 때를 기다리는 자가 경건한 자입니다.
더러움과 악을 버리고, 정결하게 단장하여 준비하는 자가 경건한 자입니다.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경건의 완성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습니다.
아무쪼록 귀를 세우고 주의 음성을 듣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들으며, 물과 성령으로 스스로 씻어 깨끗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서로를 돌보아 외롭고, 괴로운 자를 일으켜 함께 가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다시 오실 주님 맞는 날, 풍성한 기쁨이 넘치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계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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