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미국의 최종수 목사(asburychoe@hanmail.net)가 보내준 글입니다.

잊을 수 없는 스승, 인생복덕방 김찬국 목사님

▲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신 다음 날, 2009. 8.19(수),우리의 스승, 김찬국 연세대 명예 교수님께서 별세하셨다.김대중 대통령의 국장이 있는 23일 하루 전, 22(토)연대 앞 창천교회에서 장례 예배가 있었다.[출처/네이버 검색] 우리의 스승, 김찬국교수 영결식 ⓒ작성자 백양(baekth1009)

구약시간에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출석을 부르시는데 출석 부르기를 마치면 하루 한 학생씩 일어나 시편 23편을 영어로 외워야 했다. 그 때 외운 영어 시편 23편은 지금도 외우고 있다. 평생에 걸쳐 시편 23편의 아름다운 신앙 고백이 삶의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구약시간의 또 다른 기이한 사실은 학기 중간시험이나 기말 시험 때 구약시험은 언제나 시험이 끝나는 맨 끝 시간에 치르게 되어있다. 강단 탁자 위에는 시험지가 수북하게 쌓여있고 시험지 몇 장을 가져다 쓰든지 마음대로 사용하여 2시간 동안 답안을 충분하게 쓰라는 명이시다. 그만큼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라는 뜻일 터인데 사실은 그 만큼 구약 공부를 철저하게 하라는 말씀이기도 한 것이다.

기말 페이퍼는 반드시 원고지에 써서 제출하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너희들이 이제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교회를 섬기든지 교사로 일하든지 반드시 글을 쓰게 되어 있는데, 그 때 원고지 한 장 제대로 쓸 수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곤욕을 치르곤 했는데 페이퍼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원고지 쓰는 법과 철자법, 띄어쓰기가 틀리면 몇 번이고 되돌려 다시 써 오게 함으로써 원고지 쓰는 법을 철저하게 가르치셨던 것이다. 그 밖에도 김 목사님 자신이 경상도분이라서 그랬는지, 경상도에서 온 학생들은 방과 후 따로 불러 영어로 말하자면 public speech training을 혹독하게 시행하셨다. 왜냐하면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말씨나 발음이 대중 앞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서 그 교정을 위하여 따로 훈련하신 것이다.

그 때 김목사님은 한국어학당 학감직도 맡고 계셨는데, 지동식 목사님이 어느 날 조직신학 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마도 한국어학당에 어려움이 있는가 봅니다. 김찬국 목사를 학감으로 데려 간 것을 보면.....”. 김목사님은 4,19 직후에도 연세대 학생처장을 지내셨던 적이 있었던 것을 미루어 보아 지동식 목사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언제나 무엇을 잠간 생각하노라면 얼굴부터 뻘게지시던 분이었지만 말씀 없는 가운데서도 일처리 하시는 능력은 지 목사님도 익히 알고 계셨던 것이다. 아마 김목사님처럼 제자들을 바로 또 많이 키워내신 분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제자들 가운데 구약학도로서 감리교 목회자가 된 분들이 여러 분이다. 제가 아는 분들만 민영진, 배상길, 장춘식 목사 외에도 후배들 가운데서도 감리교 목회자가 여러분 난 것으로 알고 있다.

김목사님에게 별명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인생복덕방”이라는 것이다. 선생님이 한 때 신과대학 동창회장을 지내신 적이 있었지만 선생님만큼 동창들의 소식을 소상하게 알고 계신 분이 또 없었다. 졸업생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선생님은 일일이 다 알고 계셨다. 그래서 동창들의 소식을 알고 싶으면 선생님께 가면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을 구하려 해도 선생님께 가고, 또 취직을 부탁하려 해도 선생님께 가면 적재적소에 모두 알선 하셨다. 그래서 “인생복덕방”이라는 별호가 붙은 것이다. 이 사람이 대학원을 갓 졸업하고 백낙준 명예총장님을 모시고 있을 때, 하루는 출근하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기독교사상사에서 급히 신약분야의 글 쓸 사람을 구한다고 하면서 네가 해 보라는 말씀이다. 필자가 내정되어 있었지만 그 분에게 사정이 생겨서 약 5회분 공간이 있으니 네가 글을 써 오되 첫 원고는 먼저 자기에게 보여준 다음 기독교사상사에 보내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첫 원고를 써서 보여드렸더니, 원고지 쓰는 법이야 이미 훈련을 받았던 터라 별 말씀이 없으시고 다만 내용에 일반 교인들도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한두 가지 다시 생각해 보라는 말씀을 해주시고 오케이를 놓으셨다. 그리고 또 하나, 첫째 원고료는 편집 기자에게 주어 저녁이라도 사 먹도록 지시하셨다. 이처럼 사회 초년병의 사회 처신하는 방법까지 소상하게 일러주신 것이다.

▲ [출처/네이버 검색] 우리의 스승, 김찬국교수 영결식 ⓒ작성자 백양(baekth1009)

사실 이 사람이 대학원 졸업 한 학기 전에 백낙준 명예총장님 사무실에 들어 갈 수 있었던 것도 김찬국 목사님을 비롯하여 서남동, 지동식 목사님이 주선하여 명예총장님 교회사 연구 자료를 넘겨받아 그 후계자를 삼을 요량이었다. 사회 초년병으로 명예총장님 모시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김 목사님은 일일이 자상하게 참 잘도 일러 주셔서 하나도 어려움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하루는 출근 직전에 방송 뉴스를 들으니 최현배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학교에 출근하자마자 김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백낙준선생님이 충격을 받으셔서 지금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계시니, 종일 사무실 잘 지키면서 전화 오는 것 잘 받고 우편물들을 챙겨 두었다가 퇴근길에 백 선생님 입원실에 들러 알려드리라는 분부였다. 참 어떻게 처신해야할 지 당황하던 터에 이렇게 자상하게 일러 주시니 나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 뒤에 미국 와서 공부할 때 김찬국 선생님이 해직되신 소식을 듣게 되었다. 뉴욕지역에 있던 신과대학 동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박성모 목사님과 노정선 교수 등이 발의한 것으로 아는데 매월 모금하여 생활비라도 보태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신과대학 동문들은 물론 타 대학 동문들까지 참여하여 매월 모금한 것을 한국으로 보내드렸다.

그 뒤 2차 연세대 해직 기간 중 1982년 7월 초 미국 필라델피아에 방문 오셨을 때 필라 지역의 모든 연세대 동문들이 김 목사님을 모셨다. 그동안 고생하신 것을 기억하여 참으로 최대의 성의를 다하여 대접해 드리려고 애들을 썼다. 그 때 동문들과 만나 간담회가 열리자, 미국에서 돈을 보내오는 날이면 해직된 교수님들이 모두 김목사님 댁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신학을 전공한 목사 교수들은 그래도 이 교회 저 교회에서 모셔다가 설교나 청년회 특강을 부탁하고 성의를 다해 대접해 드리기 때문에 굶을 염려는 없었으나, 상과대학 교수는 불러주는 사람 하나 없이 정말 라면으로 끼니를 잇기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부쳐 온 돈을 모두 나누어 썼다는 것이다.

필라지역에 계시는 동안 저희 집에서 모셨고 마침 미국 독립기념일이자 주일이었던 7월 4일에 이 사람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마태 20:20-28을 본문으로 “경건의 재발견”이라는 설교를 해 주셨다. 마침 그 날 설교를 녹음해 놓은 것이 있어서 다시 김 목사님의 음성을 듣자니 눈물이 솟는다. 이 때에도 김 목사님은 그 예의 검은 가방을 둘러메고 오셨고 그 가방 속에는 널리 읽혀야 하는 책들이 들어 있었으며 때때로 금서들도 들어 있다는 것을 뒤에 전해 들었다. 마침 바로 전 주일 6.25 민족화해주일을 기하여 민족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하루 금식하고 헌금한 것을 전액 전해드렸더니, 교도소에 성서보내기 운동에 쓰시겠다 하였다. 함께 모시고 이곳저곳 다니는 동안 다시 느꼈지만 김 목사님은 스승-제자의 관계를 넘어서서 조금도 거리감이 없었다.

1987년 6월 항쟁 직후 조국을 16년 만에 방문하여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목요기도회에 갔을 때였다. 모임이 끝나자 저 만치 역시 그 검은 가방을 둘러메고 계신 김 목사님이 눈에 띄었다. 곧바로 달려가 인사를 올리니 내 손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가신다. 엉겁결에 따라 나가니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거신다. “여보, 미국에서 최목사가 왔으니 오늘 저녁을 함께해야 하오.” 그 길로 목사님 댁이 있는 연희동으로 함께 동행하였다. 집에 들어서자 사모님을 불러 우리 내외를 어느 한식당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 날 저녁 우리는 송구스럽게도 뜻밖의 대접을 받게 되었다. 제자가 스승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제자를 대접해주시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 연세대 신과대학으로 김 목사님을 찾아 뵈었다. 그 날은 마침 노천강당에서 서대협 학생들이 모여 6월 항쟁 직후 정세를 분석하며 실천과제를 논의하는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이 사람을 보자마자 목사님은 “야 우리도 가서 참석해야지” 하셔서 함께 노천강당으로 향하였다. 학생들과 함께 손을 휘저으며 운동가요를 불렀고 구호도 외쳤다. 모임을 끝내고 신과대학 사무실로 다시 돌아오자, 김 목사님은 대뜸, “야, 나 돈 좀 주고 가야지” 하신다. 이 처럼 우리 사이에는 격의가 없다. 물론 목사님 자신이 쓰실 돈은 아니다. 언제나 좋은 일을 위하여, 또 남을 돕기 위하여 모금하는 일을 계속하시던 분이다. 그 당시 해직기간을 끝내고 다시 복직된 것에 대하여 그렇게도 기뻐하실 수가 없을 정도였다.

김목사님이 반독재, 민주화, 노동 인권 문제에 진력하신 것은 어쩌면 구약학자로서 당연한 일이었던 것으로 믿는다. 문익환 목사님을 뵈었을 때에도 같은 것을 느꼈지만, 구약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사회 정의문제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마치 구약 예언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시대의 현재 징조를 바로 읽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며, 그 일을 위하여 몸소 실천 수행하시던 모습을 김 목사님의 생애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생전에 남기신 설교를 다시 들으면서 삼가 조의를 표하며 추모해 마지않는다. @

▲ [출처/네이버 검색] 우리의 스승, 김찬국교수 영결식 ⓒ작성자 백양(baekth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