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이모 배홍자는 거의 20년 만에 처음 기차를 타고 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다는 20년 세월은 힘찬 기적소리를 내며 출발을 하던 기차도 점잖게 출발을 하듯 창 가의 모습은 자신처럼 너무나 변해있었던 것이다.
25년 전, 병들어 누워 계신 홀어머니를 큰 오빠와 올케에게 맡기고 작은 오빠의 손을 잡고 피난을 급히 떠난 것은 집안이 부농이었다거나 사상적인 문제 보다 전쟁 통에 막내가 18세의 처녀라는 사실이 더 큰 문제였던 것이다.
작은 오빠의 헌신적인 보호아래 남쪽의 끝인 부산까지 피난 온 남매는 미군의 개입으로 북진을 하게 되자 작은 오빠는 부산에서 만난 잘 사는 집에 금자를 맡기고 개성에 계시는 형과 어머니를 만나고 오겠다며 군대에 입대를 한 것이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밀리는 혼전 속에 휴전이 되었으나 오빠는 무소식이며 휴전 후에는 개성이 이북의 땅이 되는 현실 뿐이었다.

전쟁은 홍자에게 작은 오빠와 고향을 빼앗아 갔으며 믿었던 주인 아저씨의 강탈로 순결을 잃고 주인 아주머니의 분노에 길거리로 쫓겨나 밤꽃이 되는 현실에 순종해야 하는 현실은 번개에 당한 한 그루의 나무 같은 신세와 같았다. 그러나 타 버린 나무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어 다시 물기가 오르는 나무로 만들어 준 언니를 만나기 위해 가는 길이라 상처에 대한 분노대신 기쁨이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알지 못하는 미래의 길은 지나간 무수한 시간이나 아픔, 기쁨에 상관이 없이 누군가 자신을 기다려 준다는 믿음이 이루어지면 제일 큰 행복이기에 예수쟁이들이 옳다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홍자는 예수 근처에는 가 보지 않았으나 종착역에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낄 뿐이었다.

20년 만의 외출을 안 사무실 직원들의 성화에 며칠 동안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 단장을 한 홍자에게 한 가지 어울리지 않는 것은 오른손에 든 빛 바랜 보자기 뿐이었다. 주위의 사람들이 곁눈질 할 정도로 멋진 차림과 외국제 신혼여행 가방을 든 홍자는 출구로 나가기 위해 구름다리로 올라 섰다. 구름다리. 참 멋진 이름이다. 새로운 장소를 가기 위해선 구름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미련한 인간은 안전한 땅 속 다리를 만들고 있는데 꿈보다 안전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인 셈이다.

어제 언니에게 시외전화를 하였더니 마중을 나오겠다는 것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움직이지 않은 달맞이 동네와 언니의 족발집이 옛날에 할머니가 오뎅을 팔던 집이라는 말에는 눈을 감고서 찾을 수가 있다고 큰 소리를 친 것이었다. 허나 너무나 많이 변한 모습에 후회가 되는 것이다.
“홍자야! 내다.”
출입구 앞에서 마중을 나온 많은 사람들 틈에서 전화 속의 음성이 들리는 것이다.
“내 언니!”
홍자는 사람들 틈에서 수줍어 얼굴만 내민 언니에게 달려가 트렁크를 놓고 보따리만 든 채 힘차게 껴 안고 6년 만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나는 니가 너무나 멋지게 변해서 혹시나 하고 이름을 불러 보았데이.”
“언니 만난다고 광도 내고 때도 벗겼죠. 제가 살이 좀 쪘죠? 언니는 늙지도 않고 살도 찌지 않았네.”
자신만 변한 것이 섭섭한 듯 언니에게 애교어린 투정을 해 보았으나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을 언니이기에 더 좋은 것이다.

“개선! 월남에서 돌아온 홍도 장군님!”
38족발 집에는 족자가 만든 프랑카드가 홍자를 반겼으며 평소와 다름없이 족발봉투를 든 족자가 뛰어 나왔다.
“홍도 장군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방법 위원장님! 억수로 만나보고 싶었데이.”
매달 집에 들리는 영이에게서 족자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 신기한 여고생 조카를 만나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다.
“족자 니는 서울에서도 유명해 진 모양이데.”
양동이모의 멋진 인사에 멋적은 듯 머리를 만지는 족자에게 영이 엄마는 한 마디 거들어 준 것은 영이보다 동생에게 더 자랑을 하고 싶은 새로운 딸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홍자와의 만남과 비슷한 인연인 것이다.

족자에게 트렁크를 맡기고 언니 가계에 들어 서기 전, 홍자는 양 옆으로 짝 늘어선 판잣집이 새로운 3층 벽돌 건물로 단장을 한 사창가의 큰 길을 한참이나 바라 본다. 외모는 변했으나 속에서 풍기는 냄새는 같았기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홍자는 언니의 삶의 터에 첫 발을 디딘다.

“시어머니는 건강하시나?”
영이 어머니가 홍자에게 6년 전에 동생 남편의 장례식에 처음 본 시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것은 자신의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생사를 알지 못하는 영이 친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혈육끼리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무슨 기구한 팔자인지…
“매일 순대를 장만하는 것은 저 세상에 가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다만 환갑 후로 동대문 길바닥 좌판은 월급쟁이에게 맡기고 그 길의 건물을 인수하여 1층에 순대전문집을 3개나 만들어 임대를 주고 2층에는 골목 좌판 사무실을 만들어 위원장이 되었어요.”
길바닥에서 음식상을 편 장사가 남들이 보기에는 처량해 보이지만 장사가 잘 되기에 엄청난 권리금이 붙어 있다는 사실은 영이 엄마가 잘 알고 있었다. 속칭 권리금인데 보이지 않는 세력인 것이다. 이는 공동의 길에 잘 자라는 씨앗을 뿌리고 죽은 깡패 아들의 업적인지도 모른다.

“언니, 이거 선물인데 풀어 봐.”
홍자는 20년 동안 간직하였으며 서울역부터 자신의 무릎 위에 소중히 간직을 하였던 빛 바랜 보자기를 내 밀었다.
“이 보자기 아직도 갖고 있었나?”
홍자가 서울로 가기 전에 일부러 국제시장에 나가서 몇 시간을 헤매며 제일 예뿐 것으로 고르던 일이 생각이 났다.
영이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꼼꼼하게 묶은 보자기의 매듭을 풀어 보니 맨 위에 너무나 이뿐 꽃신과 버선 두 짝이 놓여 있었고 맨 밑에는 속치마와 팬츠까지 있었는데 많은 혼수감을 구경을 했지만 이 보자기 속의 물건보다 고급스러운 것은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멋진 트렁크에서 두 벌의 한복을 꺼내는데 너무나 고와 입만 벌리고 있었다.

“영이가 시집가려면 아직 멀었는데… 니 혹시 나에게 중매 서려고 하나?”
“아이구 언니야, 언니에게 중신 할 멋진 남자가 있으면 내가 데리고 살지 와 언니에게 주노. 그런데 재혼할 생각은 있는 모양이네.”
두 과부는 우스개 소리를 하며 남자가 없는 과부만의 특권인지도 모르는 웃음을 신나게 표현해 보는 것이다. 돈이면 다 해결되는 세상에도 너무나 많은 고유의 특권이 있기에 숨을 쉬고 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버선들이 와 이리 두툼하노?”
“요새 서울에는 버선의 솜은 금실을 섞는 것이 유행입니다.”
홍자는 미소를 지으며 이상한 대답을 하는 것이다. 사실 해방이 되자 모든 것이 공동재산이다는 공산주의라는 이상한 사상이 들어 왔기에 눈치가 빠른 자들은 북쪽의 땅을 팔고 솜옷 속에 현찰을 숨겨 동족전쟁 전에 남쪽으로 이사를 간 사실도 있었기 때문이다.

“와~ 이거 한국은행에서 금방 나온 돈 아이갉.”
버선을 신어 보려고 버선코를 집자 금방 찍어낸 듯한 새 돈이 한 묶음 튀어 나왔는데 허리묶음도 한번도 풀지 않은 처녀의 저고리 고름 같았으며 4개의 버선에 하나씩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이 돈이면 집도 사겠네… 무슨 돈이고?”
“언니가 20년 전에 준 돈을 제가 새끼를 쳐 왔지예. 언니 돈이니 언니 마음대로 사용 하세요.”
홍자는 언니의 성격을 아는지라 조심스럽게 말을 한 것은 돈처럼 이상한 요물단지는 없기에 친한 사람일수록 더 조심을 해서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거친 삶에서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짜 이 돈 내 마음대로 써도 되나?”
“언니 돈인걸요.”

“10장은 영이, 10장은 족자, 10장은 설자, 10장은 홍자. 여보 선물이 들어 왔으니 당신이 보관을 하이소.”
영이 엄마는 족자의 설합에서 봉투를 꺼내 돈을 담고선 안 방의 중앙에 모셔진 남편의 한복이 담긴 나무상자에 정성껏 담는다. 이 함상자는 영이 아버지를 송도에 보낸 후에 홀로스님이 절의 나무를 베어 말려 정성껏 만들어 주신 것인데 38족발집을 개업하면서 새 돈이 들어오면 정성껏 모아두는 공간이 된 것이다.

“홍도 언니요. 내요!”
노크도 없이 안방 문이 힘차게 열리면서 큰 소리로 외치며 한 여인이 안방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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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이모 홍자에 대한 이야기는 창녀 구원론에 없었던 내용입니다. 어제 아들이 새 노트북은 엄마 몰래 12월에 보내 주겠다며 구하기 힘들었던 아답타를 비행기에 실어 보냈습니다.
2개월의 공백이 양동이모 홍자의 이야기를 낳게 되었고 포장마차도 열준비도 하게 되었나 봅니다. “사랑이 저만치 가네”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떠나간 후에야 진실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공책에 적어 둔 깨알 같은 사연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
김홍도 목사님이 오징어 입장이시던데 저에게는 당당뉴스와 주님이 오빠인 셈입니다. 새로운 오빠를 맞는 시절인 것 같습니다. <창녀 구원론 >은 정들었고 부활한 낡은 노트북에서 완성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이팅!

낮에 접촉이 되지 않기에 걱정을 했는데 초하루 40분을 남기고 접촉이 되는군요. 이제 주일을 제외하곤 매일 기사를 보낼 수가 있어 다시 한번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안수집사 사무실의 큰 키보드를 2달 동안 만지다 나의 노트북의 키보드를 쳐 본 감촉은 러시아 여자에게 바람이 난 것이 들켜 혼나고 마누라의 곁에 살며시 누운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