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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적인' 예수 이해에서 벗어나자
R형, 어떤 분들은 <예수 믿는다>는 것을
좀더 신학적, 교리적인 면에서 이해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예수님에 대한 전통 교리를 믿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인성, 신성, 성육신, 하나님의 아들 되심,
삼위일체, 동정녀 탄생, 고난, 십자가, 부활, 승천,
중보, 재림 등에 관한 복잡한 교리를
금과옥조처럼 외우고 따지고 해설하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며 표준이라고 역설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고백하면 그리스도인이요,
그렇지 않으면 비그리스도인이고,
또 그렇게 하더라도
자기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가르친 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단이라고 판정합니다.
세례를 위한 문답 시간에
목사님이 어느 할머니에게
"예수님이 누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셨나요?"
하고 물어 보았는데
할머니가 얼른 대답하지 못하니까,
옆에 있던 며느리가 할머니 옆구리를 찌르면서 작은 소리로
"저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그러세요" 하고 일러주자
그 할머니는 얼른 알아차렸다는 듯이
"내 며느리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대답했다는
우스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할머니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설령 자기 말을 고쳐서
"내 며느리 죄가 아니라 내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고백하게 됐다손 치더라도
그런 고백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내 죄를 위해 피 흘리심으로
내 죄가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을,
지금 내게 진정 의미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은 실로 큰 믿음의 은사입니다.
이런 믿음을 통해 나의 삶이 바뀌고
삶의 의미와 기쁨과 보람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그보다 다행스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R형,
불행히도 형은 이런 교리들이
그렇게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렇다고 고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는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도 지적했듯이
로마 시대의 형법 사상에 기초해서 성립된
이런 특수한 해석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기독교의 핵심 문제도 아니고,
성경의 기본 메시지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셨다는 교리,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셨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양성론(兩性論)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4세기 이후 8세기까지의 교회 공의회에서 제정, 공표된
이와 같은 고전적 기독론은
그 당시 서양 세계의 가장 보편적 세계관이었던
희랍 철학의 도움으로 형성된 하나의 역사적 산물임은
교리사를 바르게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교리들은 말하자면
신약에 나타난 예수님에 관한 본래적 메시지를
희랍적으로 번역한 것인데,
한스 큉 같은 신학자들은 그것이
"빈약한 번역"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교리가 그 당시 제약된 철학적 바탕에서 형성된 것 중에
그래도 가장 많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형식이었겠지만,
이제 희랍 세계에 살지도 않고,
희랍적 사고 양식이나 범주에 의존해 사고하지도 않는 현대인들이,
이것을 그대로 이해하고 믿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기대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렇게 역사적 조건에 의해 고정된
예수님에 관한 특수 교리를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
하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이런 교리들을 역사적 문맥과 상관없이 <덮어놓고> 받아들이면
이것들이 오히려 방해가 되어
진정으로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합니다.
R형,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그레이엄(Don Aelred Graham)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과 그의 메시지에 관한 전통적 해석,
그리고 그 해석에 대한 교회의 성찰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시각에서
재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강남·종교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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