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인신 비하용어를 사용하거나 욕설, 사이비 선전, 광고, 도배글은 즉시 삭제합니다.
금칙어가 적용이되어 있어 금칙어 사용시 글쓰기가 제한됩니다.
 창녀 구원론[1]: 태초
 닉네임 : 외눈  2005-06-11 10:59:38   조회: 4936   
땅을 딛고 달리던 열차가 물을 딛고 세워진 한강 다리에 들어서자, 조용하던 열차 안의 분위기는 잠에서 깨어난 애기처럼 어수선해지기 시작을 한다. 자고 있던 애기가 엄마를 찾으면 엄마는 젖먹이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옷섶을 풀듯이, 졸고 있던 승객들도 서울의 중심부가 가까워지자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시작하는 것은, 젖먹이에게는 엄마의 젖가슴은 안식을 주지만 승객들에게는 한국의 수도인 서울은 동경의 대상이면서도 안식은커녕 힘센 놈과 빠른 자만 살아갈 수가 있는 비정한 사각의 정글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안식은 제일 쉽게 얻을 수가 있기에 사람들은 개미떼처럼 몰리는 것이다.

한달 전만 하여도 영이는 여고 졸업반의 대학 수험생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을 때, 전쟁터에 거의 다 왔다는 긴장과 도착하기 전 마지막 한 글자라도 더 보려는 대학입시 병사들 틈 속에서 살며시 일어나 객차 사이의 난간에서 두 번째 예식을 거행하기 위하여 화장실 쪽으로 조심스럽게 향하였다. 이는 모녀의 카운슬링인 봉사할멈 점쟁이가 영이의 합격을 기원하면서 입시 3일 전에 3가지 처방을 해 주었는데, 작은 3개의 흰 무명봉지가 든 붉은 색의 명주봉지를 항상 생리대처럼 붙이고 있어야 하며, 시험이 끝나 마당에서 합격을 기원하며 태울 때까지 영이 몸의 중요한 부분을 떠나서는 안 되는 묘한 처방이었다.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에 3개의 무명봉지에는 각각 생쌀, 소금, 밥을 조심스럽게 담아 붉은 명주봉지에 넣고는 팬티의 중요 부분에 바느질로 붙여 고향에서 하루 밤을 보낸 후, 이미 출발지인 부산역에서 생쌀의 예식은 끝냈으며 한강 다리 위에서는 자갈치의 근성처럼 변하지 말 것을 신고하는 두 번째의 소금 예식을 치룰 차례였기 때문이다. 잠시 후에는 열차에서 내려 서울역의 땅에 세 번째 예식인 밥을 뿌리면 되는 것이다.

영이는 실내의 분주함을 피해 한달 전처럼 화장실이 있는 통로에 나가 난간에서 창문으로 한강을 내려 보았다. 겨울이 떠나며 봄이 오는 교차로의 한강은 폐수로 오염되었으나, 얼음은 녹아 새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태양을 한껏 껴 안고 있는 듯한 강물을 쳐다보니 어제 송도 바닷물에 아버지의 육신을 뿌리던 모녀의 모습이 비치는 듯 했다.

전 여인은 한 손은 예물이 든 보따리, 한 손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굳세게 자라나 모든 부모가 부러워하는 한국대학에 합격한 장한 딸의 손을 꼭 잡고 20년 세월을 변함없이 다닌 초량의 산꼭대기에 있는 절간을 향하여 언덕 길을 오르고 있었다. 전 여인의 이 절과의 인연은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안 남편이 서로가 피난민이며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외로움 속에서도 신(神)에게만은 부부가 됨을 신고하자는 배려에서 찾은 절이었다.
깨끗한 냉수 한 잔 부처님께 바치며 올린 둘만의 간소한 혼인식이었지만 부처 옆의 많은 꼬마 부처들이 축하객이었고, 홀로스님의 ‘인연이란 부처가 인간에게 준 큰 복 중의 하나임으로 소중하게 간직을 하여 열매를 맺으라’는 축사는 엄숙하였고, 손수 밥상을 차려 잔칫상을 마련해 주셨으며, 축하 한다며 공양미까지 가득 신부의 머리에 이어 주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임신 8개월의 몸으로 화장한 남편의 유골을 안고 다시 이 절을 찾아 온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 된 것이다. 이는 남편이 절망의 시간을 술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찾아 절간의 마당이라도 쓸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과 태어날 자식이 아버지의 유골이라도 본 후에 떠나보내자는 혼자의 결정을 한 것이다.
영이는 어머니의 배 속에서 처음 절을 찾아간 이후로 등에 업혀 가고 길이 가팔라 다리가 아프다고 징얼거리며 간 언덕길이었지만, 자신의 키가 커 갈수록 절 주위의 울창한 나무는 사라지고 속세의 모습이 절로 다가와 속세 속의 절이 되었으나 절 속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으며 홀로스님의 잔주름만 늘었을 뿐이었다.
어릴 때는 불공을 드리는 어머니를 흉내내어 절을 몇 번 해보다 그냥 엎드린 채 잠이 들기가 일쑤였는데, 낮잠을 자다 눈을 뜨면 천정의 요란한 색깔이 무서웠고 부처님 주위의 괴상한 부하들의 모습은 지금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불공을 마친 후에 절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어찌나 맛이 있는지 부처님 조미료가 들어 있는 것 같았으며 특히 명절에는 친척이 없다는 외로움이 더욱 덮쳤지만, 절에 오면 홀로스님이 친할아버지처럼 재롱을 받아주기에 명절 옷을 입고는 눈이 뜨기 무섭게 절에 가자고 조르던 영이였다.
못난 자신은 땅에 묻힐 체면이 없으니 재로 만들어 바다에 뿌려 달라는 남편의 유언을 지키지 못하고 임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 온 전 여인은 영이가 대학에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전날에 남편의 소원을 풀어주기로 한 것은, 영이가 대학시험을 치루는 전날 밤에 꿈에 남편이 나타나 ‘자식을 잘 키워주어 고맙소.’라는 말로 딸의 합격을 알렸고 ‘나 같은 부끄러운 인생도 당신이 자식을 통해 열매를 맺어 주었기에 이제 편히 쉴 수가 있어 고맙소.’라는 말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전 여인은 거의 20년 세월을 이 길을 다니는 시간이 삶에서 제일 행복했던 것은 남편과의 삶의 시간이 너무나 짧아 이별을 실감하지 못했기에 마치 살아있는 임을 만나려 가는 환상에 젖는 기분이었고, 자신이 무릎을 꿇고 엎드린 절간의 마루바닥은 남편과 함께 누운 요처럼 포근하게 느껴졌고 절을 하면서 앞을 바라보면 부처가 남편으로 보이기에 절을 하는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남편과 사랑을 나누는 육체의 기쁨이었으며 스님의 염불소리는 남편과 나누는 다정한 대화였다. 남편과의 육체적 사랑이 격렬할수록 옆에 있는 딸은 신체가 커지고 남편과의 사랑의 대화가 짙어질수록 딸의 머리는 명석해지는 묘한 현상을 경험했기에 젊은 과부 20년 세월을 주위의 유혹과 자신의 정열을 극복하며 무사히 지내온 것이다.
새벽 4시. 중생들에게 ‘깨달아라’는 타종의 소리는 방황하는 중생들은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신호로 들렸지만, 이 날의 타종은 모녀에게는 아버지께서 ‘나는 이제 내 죄를 씻고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기쁨의 함성으로 들리는 것 같았으며, 오랜 세월 남편을 지켜 준 홀로스님의 염불소리는 오늘따라 남편이 회심가를 부르는 것 같았고, 자신의 마지막 절은 남편과의 마지막 사랑 같았다. 사계절이 반복하는 자연법칙처럼 인간도 태어나서 머물렀으면 떠날 줄도 알아야 하기에 어둠이 짙은 새벽 길을 홀로스님을 모시고 모녀는 언덕길을 내려 왔었다.

운전기사 옆에는 스님이 앉고 그 뒤에는 모녀가 앉은 택시는 초량역전을 지나 부산역전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이 중간지역은 영이 가족의 삶의 현장이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한국의 기차 종착역인 이별의 부산 정거장의 주위는 빠른 속도로 발전을 했으나 밤의 꽃들은 독버섯처럼 여전히 길 건너 언덕 위로 숨어 들어 있었기에 영이 식구도 묻혀 살게 된 것이다.
동족전쟁이 끝난 직후 미국에서 온 시찰단이 밤중에 부산역에 도착하여 길 건너편에 불야성을 이룬 전기등불을 보고 빠른 회복에 감탄의 ‘원더플’을 외쳤지만, 정작 아침에는 고층빌딩의 불빛이 아니라 피난민들이 산을 메운 판자촌의 전등불임을 알고 긴 한숨을 쉬었다는 슬픈 일화와 지금 꾸겨진 아픈 귀를 만지며 체육관으로 운동을 하러 가는 이 동네 방앗간 집 아들이 2년 후에는 팬츠만 입고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조국에 바치는 자랑스러운 동네이기도 하였다.

차가 부산시청을 지나려 하자 전 여인이 창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영도 다리와 자갈치 시장에 대한 추억을 더듬으려는 것이다. 부산에 피난을 온 피란민들의 대부분이 영도 다리 위에서 아래의 시퍼런 소용돌이 물결을 보면서 심청처럼 몸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안 가져본 사람은 없을 정도였으나, 유달리 피란 길에 같은 동족으로부터 부모와 형제의 죽음을 숨어서 지켜 본 전 여인에게는 검푸른 바닷물이 이북 고향집의 솜이불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솜이불로 들어가려는 자신을 새벽에 자전거로 영도섬에 물건배달을 하고 돌아오던 젊은 청년이 발견을 하고는, 허리끈을 붙든 것을 시작으로 속의 끈까지 붙드는 꼴이 되어 죽으려던 자신은 살고 열심히 살려던 남편이 대신 죽은 일은 이해가 되지를 않았으나, 부산의 명물인 자갈치 시장바닥에서 생선 좌판을 할 때에는 마음껏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첫 만남을 회상했으며 부평초 신세인 모녀는 항상 영도다리가 보이는 곳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기사님, 미안하지만 송도 윗길로 가 주이소.”
택시에 탄 후로 침묵을 지키던 전 여인의 첫 말은 송도 윗길이었는데 영이 일행이 가는 송도 해수욕장은 예전부터 있던 윗길과 자갈치 시장을 확장하여 바다를 따라 널찍하게 잘 닦은 새로운 아랫길이 있었는데 전 여인이 먼 윗길을 부탁을 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택시가 윗길의 언덕에 올라 서자 남편의 유골함을 안고 있는 양손에 힘이 들어가며 눈시울을 적시는 전 여인과 자신과 꼭 닮은 아버지의 사진을 품고 있는 영이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 아니라 ‘밤꽃 피는 달동네’라고 철모르고 따라 불렀지만 부끄러움보다 정이 넘치는 것은 이 가족의 뿌리와 줄기 즉 남편과의 첫 보금자리를 꾸민 곳, 남편이 죽은 곳, 영이를 낳아 기른 곳, 모녀의 본토는 바다의 사나이들의 휴식처로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완월동이란 창녀촌이였기 때문이다.
남편과 살던 완월동의 성냥갑들이 모인듯한 3층의 목조건물은 일제시대부터 지어졌기에 나무들이 검은 때로 윤기가 날 정도였는데 부산의 잦은 화재에도 용케 피한 것은 창녀 귀신들이 지켜준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으며, 국제항의 사창가답게 신축건물이 들어서 제법 규모를 이루었으나 때가 낀 목조건물은 여전히 가난한 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영이의 아버지 조재경은 국제시장의 과자 도매상에서 자전거 배달을 시작으로 장사판에 끼어 들었는데 성실하고 영리하였기에 얼마 후에는 부산 근교에 자신의 거래처를 개척할 정도의 수완가였으나 단점이라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믿었으며 실패를 할 경우의 대비보다 성공을 확신하며 총력을 쏟는 꿈이 많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아내가 임신을 하자 자식은 완월촌을 벗어난 곳에서 키우겠다는 의지로 일본 보따리 밀수에 끼어 들어 제법 재미를 보고 있었는데, 가장 친한 친구의 쌀값이 폭등을 할 것이라는 정보에 솔깃하여 자신이 모은 돈과 주위의 돈을 빌려 친구에게서 엄청난 쌀을 사들인 것이다. 두 달 후에 친구의 정보대로 쌀값이 폭등을 하였기에 창고에서 쌀을 꺼내어 팔려고 하니 거의가 쌀이 아니라 모래가 담겨져 있었고, 작은 쌀 삽으로 쌀가마니를 찔러 자랑스럽게 보여 주던 친구는 벌써 줄행랑을 쳤고 남은 것은 허탈과 빚 뿐이었다.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자신의 꿈이 무너지는 마음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일주일 동안 방에 갇혀 소주를 마시던 남편이 선택을 한 길은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한 것인데, 죽던 날 아침에는 목욕과 이발을 하고는 ‘오늘 이 술이 나에게 마지막 술이요’ 하고는 아내에게 술 한잔을 붓게 하고는 아내의 긴 머리를 손수 빗겨 주고 여덟 달 된 아내의 배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짓기에 기운을 차린 줄 알았는데 웃던 남편이 밤 사이에 자신의 손을 잡은 채 시체로 변한 것이다.
남편은 빚쟁이들에게 곤혹을 당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아내와 배 속의 자식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도망을 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남의 것을 훔친 자가 잘 사는 세상에 빌린 것을 갚지 못해 제일 귀중한 자신의 삶을 포기를 한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생각이나, 꿈이 많고 자존심이 강한 남편에게는 견딜 수가 없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인가 남편이 들려주던 말이 기억이 난다. 어릴 때 아버지가 황소를 팔러 장에 가셨는데 야바위꾼들에게 넘어가 온 가족의 꿈이 담겨있는 돈을 몽땅 잃어 버렸다고 한다. 해가 저물어도 아버지가 오지를 않아 식구들이 온 마을을 찾아 다녔는데 정작 아버지는 집의 울타리 뒤에서 술에 취해 울고 있는 것을 어린 아들이 본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지금은 평소처럼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지켜보다 엄마를 찾으러 갔다고 한다. 후에 생각을 해 보니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이나 비웃음보다 자신을 하늘처럼 의지하는 가족의 꿈을 빼앗아 버린 것이 더 부끄러웠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남자는 굳세나 꺾어지고 여자는 연약하나 흔들린 뿐이기에 자신이 엄마를 찾아 나선 것은 현명한 처사였다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용서를 비는 자살은 채무를 해결하는 힘이 있는지 몰려 온 빚쟁이들은 혀를 차며 돌아갔으며 넋을 잃고 앉아있는 산모에게 돈과 미역을 놓고 가는 빚쟁이도 있었다. 영이를 낳고 일주일 만에 이웃의 창녀집에 청소와 빨래를 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은, 월급이 세끼 밥만 먹여 주던 시절이었지만 어린 영이를 창녀들이 잘 보아주었고 험한 빨래가 많았기에 돈과 정이 헤픈 창녀들은 수고비를 곧잘 주었기에 모녀는 이 동네에 그냥 주저 앉게 된 것이다.

송도 해수욕장은 시내와 가까이 있어 부산시민들이 제일 많이 이용한 장소였지만 죄로 오염된 인간의 발자국은 자연도 오염을 시켰기에 거의 해수욕장으로는 기능을 잃고 유흥가로 변해가는 모습이 늙어서도 기생방에 앉아있는 주책 맞은 젊은 할멈의 모습과 같았으나 이른 아침이라 여전히 청순함은 지니고 있었다.
백사장을 가진 해수욕장들의 특징은 한쪽 끝에 작은 동산을 지니고 있는데 송도 역시 작은 동산이 있었으며 아래에는 방파제가 있었는데 전에는 자갈치 시장에서 이곳까지 아가리배가 손님들을 잔뜩 품고 와서 토하는 정거장 역할을 한 곳이나 지금은 작은 통통배나 놀이배들의 대기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한낮의 손님을 맞기 위해 청소를 하는 놀이배 중에서 깨끗한 배를 2시간 전세를 내어 홀로스님의 목탁소리를 신호로 영이 가족은 지평선으로 향했는데, 지평선이 닿는 곳은 한때 아버지가 밀수배를 타고 다니던 일본인 것이다.
노를 젖는 사공도 평소에는 놀이배라 음주운전에 한가락을 뽑아야 하고 실내 분위기 조성의 특별서비스로 천막으로 놀이배를 가리어 주어 물침대로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마지막 길을 떠나는 손님의 안내인지라 스님의 염불소리처럼 조심스럽게 노를 젖는 것은 자신의 마지막 길도 이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20년이라는 세월을 함에 갇힌 아버지의 유골은 티끌이 되어 약간 누른 색을 띄었으며 묵은 밀가루처럼 부서지는 느낌을 주었다. 하나님의 징계대로 한 줌의 흙으로 되 돌아가는 인생…, 그러나 남아 있는 모녀는 아버지의 자살의 이유가 모녀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굳게 믿으며 바다에 아버지의 육신과 자신들의 눈물을 뿌리면서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푸른 물에 감사를 하였다. 영이는 태어나는 자식의 모습도 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실패자의 신세라도 살아있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죽음은 되돌릴 수가 없는 현실인 것이다.
전 여인은 마지막 유골을 남김없이 바닷물에 붓고는 영이와 마늘을 까기 시작을 한 것은, 남편이 생전에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한 음식에 대한 한을 풀어주기 위함이었다. 남편은 고기배를 타고 나가서는 일본과 한국의 바다 국경에서 기다리는 일본 고기배에 옮겨 타는데, 종종 일본 해양경비대에 걸려 조사를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한번도 걸리지 않은 것은 일본경비대는 선원에게 위조된 증명서보다 입을 벌리게 하여 냄새를 맡는 것은 한국인은 일본 사람들이 먹지를 않는 마늘냄새를 풍기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족의 손으로 육신을 바다 속에 파 묻어 마지막 소원을 이룬 아버지의 장막인- 아내가 깐 큰 마늘과 딸이 깐 작은 바늘이 가득 담긴- 함도 역할이 끝났으므로 종이배를 띄우듯 물결 위에 살며시 놓았더니 썰물인지라 일본이 있는 지평선 쪽으로 밀수하러 가는 아버지처럼 기운차게 가는데 일본으로 가려던 마늘함이 현해탄에서 어찌 될지, 용궁으로 가려던 아버지의 영혼이 어찌 될지는 신(神)만이 아는 일이다.

“네 고향을 잊어라. 너는 서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엄마와 고향을 잊어라.”
7시간 전에 부산역에서 딸을 꼭 껴 안은 어머니가 영이의 귀에다 살며시 속삭인 말이었다. 조국의 과거를 공부하기 위해 많은 역경을 헤치고 출발을 하는 딸에게 새 삶에의 도전은 과거를 잊는 일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냉정한 충고는 자신처럼 과거에 묶여 사는 인생을 딸은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인지도 모른다.
이제 영이는 출애굽을 한 모세가 아니라 약속의 땅을 정복하러 가는 여호수아가 되어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다. 선택된 자에게는 낡은 예식은 필요가 없으나 새로운 땅에서도 새 언약을 지키기 위한 자신과의 다짐이 필요하였던 이유는, 고향의 많은 젊은이 중에서 선택되었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모여 사는 수도 서울에서 보라는 듯이 자리를 잡아야 하는 사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파도에 밀리는 모래처럼 수 많은 인파 속에 파묻혀 출구를 빠져 나오자 아직도 낮설은 서울역 광장에는 양동 이모가 미리 약속을 한대로 1t 트럭의 짐칸 위에서 분홍색 스카프를 힘차게 흔들고 있었기에 쉽게 발견할 수가 있었다. 이모는 달려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영이를 -외국영화의 깽들의 환영하는 모습처럼- 두 팔을 벌려 크게 안고는 등을 힘차게 두드려 주었다.
“장하다. 나의 조카야!”
“이모! 고마워요.”
영이는 양동이모의 품에서 만물의 짐승 중에 사람이 제일 무섭고 악하다 하여 정글로 들어간 사람도 있지만,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즉 인간 속에서 살아야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다는 말이 옳다는 생각을 확인하였다.
이모의 서투른 솜씨로 시동을 건 1t트럭 뒤에는 자신이 미리 보낸 3개의 작은 박스상자 외에도 중고지만 책상, 의자, 옷장, 간이 화장대까지 실려 있었는데 아마 배달을 할 물건인 것 같았다. 처녀가 사는 곳은 남자에게 비밀이어야 한다며 수행원을 물리치고 자신이 직접 운전하고 나왔다는 소리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큰 소리로 한껏 웃어 본다.

한달 전 영이는 대학입시를 치루기 위해 서울로 올라 왔을 때 어린 자식들과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과부인 양동이모의 집에서 이틀을 묵었는데, 시험 날에는 골목수행원들이 몰고 온 1t트럭으로 시험장으로 직행하였고 점심시간에는 한국대학 앞에서 수험생을 기다리는 많은 차와 사람 중에서 이모는 트럭 위에서 분홍 스카프를 흔들었고 짐칸에 실려온 전기밥통 채로 가져온 밥, 보온병에 담긴 된장국, 맛나는 여러 가지의 반찬까지 대접을 받고 휴식을 취한 후에, 조카가 합격을 하여 서울로 올라오면 자신의 터전인 서울역 광장에서 승리의 분홍색 스카프를 한번 더 흔들고 싶다는 소원을 후반전을 향해 시험장으로 떠나는 영이에게 간곡히 부탁 한 것이다.
자칭 양동 골목수행원은 공주 대하듯이 영이를 반기고 대해 주는 것은 이들에게 영이는 개천에서 난 용이요, 자랑이며 우상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민초(民草) 특히 사창가의 민초들도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인 생각과 꿈과 어두움을 가지고 있었으나 단지 판매하는 것이 여자의 육체라는 사실 때문에 어두움의 자식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이의 대학입시 발표 날에는 부산의 영이집보다 서울의 양동 식구들의 잔칫날이었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사창가에서 태어 났으며 창녀들이 키우고 대학생이 되기까지 사창가의 주위를 떠나 본적이 없다는 이모의 열띤 연설에 나이 든 고참 창녀는 ‘평생 처음으로 자신의 아랫도리가 부끄러움을 면하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실토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모의 1톤 트럭은 빌딩의 숲과 무수한 차들을 헤치며 달린다. 영이가 서울에 처음 와 본 것은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였고 마지막은 한달 전의 입시 때였는데 교복에 보호가 된 상태라 스치듯이 보았으나 이제는 자신이 굳세게 살아가야 하는 곳이라 생각을 하니 빌딩들이 더 높아보이는 것 같았다.
영이의 두려운 마음을 아는지 트럭은 점차로 빌딩들이 낮아지면서 중앙선의 종착역인 청량리 역에서 좌회전하여 들어선 곳은 홍능의 담을 따라 가다가 맞은 편에 2층짜리 연립주택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주택가였는데, 혼자의 살림에 훈련된 영이는 하숙이나 입주가정교사보다 자취 생활을 구상하여 어렵게 어머니에게 부탁한 것이 양동이모의 주선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양동이모는 트럭을 운전하면서 전세를 든 주인집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 주었는데, 바깥 주인은 건설 현장에서 2대의 8톤 트럭으로 사별한 첫 아내의 아들과 직접 운전을 하며 지방의 현장을 쫓아 다니고 안주인은 두 번째 부인으로 간호사 출신이며 10살, 12살의 두 아들과 8살의 딸과 사는데 이모와는 학부형의 인연이 계모임으로 연장되어 친분이 상당히 두터운 편이라고 하였다.
대문을 활짝 연 작은 마당의 왼쪽구석에 출입구 역할을 겸하는 부엌 하나와 조그만 방이 영이의 서울 생활의 첫 보금자리로 지정되어 있었고 부엌 앞의 상수도 옆에는 ‘죵’이란 이름을 가진 작은 개가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식구인 영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방은 이모가 이미 도배를 깨끗이 해 놓고 이뿐 커튼까지 달아 놓았으며 방의 크기는 영이 혼자 살기에는 충분하였다.
“방이 따뜻하네요.”
“어제 내가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연탄을 피워달라고 부탁을 했어. 며칠 전에 마당의 연탄광에 100장을 들여 놓았으니 쓰도록 하고 아직 추위가 남았으니 연탄가스를 주의해야 되.”
사람의 마음에도 따뜻한 사랑이 담겨있어야 하듯 늦겨울의 살림집에는 잘 마른 연탄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영이는 짐을 옮기면서 몸이 날아갈 듯 한 것은, 남의 것이라 생각을 한 트럭 위의 중고품 가구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이모의 말 때문이다. 수 많은 밤의 꽃들이 사용하던 것이라는 덧붙이는 말에도 기분이 상하기보다 정다움을 느꼈다. 특히 큰 거울이 달린 화장대는 어릴 때, 친구들과의 소꿉놀이에서 화장대 거울에는 사진기처럼 필름이 들어 있어 그 동안 거울의 주인들을 다 새기어 놓아 새 주인이 닮아가게 한다는 거짓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짐을 대강 정리한 후에 이모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한대 피우려다 멈칫거리기에 영이는 이모가 불편하지 않게 얼른 작은 접시를 내어 놓았다.
“처녀 방에는 꽃 냄새가 나야 하는데… 못된 것만 배운 이모를 이해하여 주니 고맙다.”
영이에게는 이 분이 유일한 친척이나 한달 전에 처음으로 얼굴을 보았으며 말수가 별로 없는 엄마에게서 이모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첫번째의 만남은 시험기간이고 가족들이 있기에 형식적인 말만 하였으나 오늘은 둘만의 조용한 시간이라 이모는 영이에게 엄마와의 인연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이가 돌이 지나 아가씨 방을 기어 다닐 때 이모는 창녀였고 영이 엄마는 파출부였는데 두분 다 피난민이고 외톨이 신세라 엄마보다 나이가 두 살 어린 이모는 친언니처럼 영이 엄마를 따랐고, 엄마 역시 친동생처럼 대해 주어 서로를 의지함으로 이모는 창녀생활 일년 만에 빚을 다 갚고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도시 특히 서울은 잘난 자들은 자신의 얼굴을 알리려고 하고 못난 자들은 자신의 얼굴을 숨기려고 하는 인간의 속성을 다 받아들여 소화를 하는 괴물이기에, 이모는 자신과 소매를 스친 적도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서울의 동대문 시장에서 김밥 좌판이라도 하여 새 삶을 살겠다고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고 하였다. 떠나는 이모를 영이 엄마는 부산 역까지 전송 나와 보따리 하나를 손에 쥐어 주었는데, 보자기 속에는 김밥과 상세한 김밥 요리법이 적힌 편지와 약간의 돈이 들어 있었으며 이 분홍색 보자기와 편지는 자신의 기념품으로 잘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나의 유일한 동생 영순아! 영이 아빠의 추억이 담긴 이 고장을 너와 함께 떠나지 못하는 언니의 미련함을 용서해 다오. 너의 성격에 돈을 받지 않을 것 같기에 편지 속에 약간 넣어 보낸다. 노하지 말고 언니의 피라 생각을 하고 밑천에 보태어라. 그리고 너는 꼭 부산의 완월동을 잊어야 하지만 이 언니는 잊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나의 부탁이다.>
“영이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지. 난 너희 엄마와의 만남으로 이 세상에 피보다 더 진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어. 어두움 속에서 만난 자들이 나누는 사랑은 밝은 세상의 혈연보다 훨씬 뜨겁고 오래 간직할 수가 있었어. 너의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정다움은 내가 평생토록 잊지를 못 할거야. 이제 너가 나의 가까이 있으니 언니가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구나.
우리집에 세 놓는 방들이 있어 권했더니 너의 엄마가 독립심을 키워야 한다며 반대를 하여서 이 방을 구했어. 항상 언니의 생각이 옳았거든. 그러나 너가 원하면 언제든지 들어올 수가 있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해. 이 선물은 우리 양동 식구들이 진심으로 하는 것이니 부담을 갖지 말고 받아 주기 바란다. 내가 간 후에 풀어보도록 하고 한 달에 한번은 꼭 우리집에 들려야 하며 항상 전화를 한다고 약속을 해.”
떠나는 이모는 마치 감독이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에게 믿는다며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한 손으론 힘내라는 표시로 주먹을 쥐어 보인다. 영이는 목에 분홍색 스카프를 두르고 손을 힘차게 흔들며 밤의 사업을 위해 떠나는 양동 이모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본 후 방에 들어와 선물박스를 풀어 보았다.
박스를 열자 맨 위에 ‘우리의 꿈! 영이에게’ 라고 적힌 큰 종이가 영이에게 작은 미소를 띄우게 하였으며 예쁜 사진틀, 화장품, 많은 필기도구와 고급 공책, 일기장, 원앙 인형, 7장의 손수건과 팬츠 그리고 항상 갖고 싶었던 일제 FM라디오는 영이를 놀라게 하였으며 맨 밑에는 양동 장학재단이라 적혀진 봉투가 깔려있었다.
<동생에게 그리고 친구에게, 공부를 잘하는 친구를 항상 싫어 했는데 우리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온 여자로서 큰 대학에 합격한 것을 우리들의 자랑으로 여깁니다. 더럽게 번 돈이라 하나님도 싫어 하지만 우리는 땀 흘려 번 돈임을 영이는 잘 알리라 생각해요. 우리의 진정한 마음의 선물이니 공부에 보태 쓰기를 바라며 그늘 속의 벌레 먹은 장미들이 응원을 보낸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고 우리들의 자랑과 희망이 되어 주세요.>
서울역의 밤꽃들이 자신들의 꿈을 영이에게 실어보내 준 것이다. 약속의 땅, 서울의 첫날밤은 사람들의 축복과 밤하늘의 별과 달의 축복까지 받는 황홀한 밤이었기에 이런 축복의 밤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영이는 낮은 천장의 전등을 끈다.

“올해의 봄은 12년 교복생활의 마지막 봄이며 내년의 봄은 성인생활의 첫 봄이다. 계절은 반복하나 맞이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우리의 현실은 올해 일년이 여러분의 인생을 좌우하므로 소망을 갖고 인내하여 승리하기 바란다.”
일년 전부터 시작은 되었으나 봄소식으로부터 새 희망을 가지고 시작된 본격적인 대학입시전쟁은 더운 여름을 맞으면서 옆의 전우들이 한명씩 쓰러지기 시작을 하였다. 강렬한 태양빛은 수험생들을 모든 격식과 굴레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찬 물속으로 유혹을 하지만 교복을 벗고 물속으로 가는 것은 고 3에게는 세례가 아니라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위를 넘긴 전우들은 열매가 익어가는 가을에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변해있는 낙엽의 색깔에 낙심하여 전우들이 또 다시 탈락을 하며 남은 자는 마지막 코스인 빙판을 찬바람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기어가야 하는 죽음의 길이었다.
창조론을 믿고 자라던 인간이 적자생존의 법칙인 진화론을 인정하고 따르는 첫 관문이 한국의 입시경쟁이다. 대학교는 학벌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의 마지막 시험장인데 올해를 참으면 내년의 봄은 복이 될 것이라는 선생님들의 충고대로 영이에게는 서울의 봄이 축복이었다.
2005-06-11 10:59:38


닉네임 :  비밀번호 :  자동등록방지 :    

이필완 2005-06-11 13:03:20
이 글은 월요일날 나누어 정리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웬만하면 기자대기실로 올려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만 편하실대로 하십시요. 자유게시판으로 올린 글은 기사화되고 나면 지우겠습니다.
고은경 2005-06-11 14:23:59
파격적인 제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잊혀진 그 시절의 풍경이 어떻게 펼져질지 기대됩니다. 소설로 풀어내는 외눈님의 역량이 대단해 보입니다. 외눈님만의 문체가 어떻게 흥미있고 탄탄한 이야기구조로 엮어지는지 눈여겨 보겠습니다. 애독하지요.

번호
제 목
작성자
첨부
날짜
조회
5
  건강보험보장성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박경선   -   2005-06-21   4028
4
  씨앗 속임 논쟁   외눈   -   2005-06-21   4132
3
  고출산을 위한 교회의 긴급 대책!?!?   외눈   -   2005-06-20   4152
2
  호주와 뉴질랜드에 이민 을 가서.....   호주뉴질랜드이주공사   -   2005-06-17   4745
1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외눈   -   2005-06-16   4808
0
  충청도 바울님에게, (4)   외눈   -   2005-06-16   4301
-1
  최근 인터넷 최다조회 기사"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말"시리즈1   비운이   -   2005-06-15   4472
-2
  당당뉴스를 위해 한겨레신문처럼 소액주주운동을 주창한다 (1)   김동학   -   2005-06-15   4470
-3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지적(조언)1 (1)   김동학   -   2005-06-15   4168
-4
  김치와 나물의 뒷 이야기   외눈   -   2005-06-15   4676
-5
  당당뉴스가 가야할 길 네가지   김동학   -   2005-06-14   4269
-6
  첫 인사 (2)   이일배   -   2005-06-14   4464
-7
  당당뉴스를 검색창에 검색하면... (2)   이성이잠들면요괴가눈   -   2005-06-14   5188
-8
  앞으로 의료시장이 개방되면...   박경선   -   2005-06-14   4481
-9
  축하드립니다.   이 도홍   -   2005-06-14   4819
-10
  구역식구들에게 호소함   외눈   -   2005-06-14   4636
-11
  속이 울렁거리고 후련해지는 이 노래 (1)   고은경   -   2005-06-13   6982
-12
  당당뉴스 6월13일 현재 수입 지출 현황   운영자 이필완   -   2005-06-14   4693
-13
  당당하고 올곧은 기사를 기대하며...   임정덕   -   2005-06-12   5005
-14
  토요일에... (1)   고은경   -   2005-06-11   4877
제목 내용 제목+내용 이름
 381 | 382 | 383 | 384 | 385 | 386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