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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귀 虛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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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닉네임 : 허태수 |
2005-11-03 02:35:02 조회: 65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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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귀 虛耳
기도하다가 쓰러져서 끝내 회생하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로 간 故 전생수 목사의 별호(別號)는 허이(虛耳)입니다. 한문 글자의 뜻 그대로 ‘빈 귀’란 말이죠. 생전에 그가 자신의 별호를 풀어 설명한 적은 없지만, “귀 있는 자 들어라”했던 예수의 말에 비추어 지은 이름 같습니다.
‘빈 귀’란 ‘귀 없다’ 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설로 ‘귀 있다’입니다. 귀 있다는 말은 ‘다 듣겠다’ 입니다. 그러니 허이(虛耳)는 ‘귀 있는 자’로 살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는 이름처럼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품으로 가기 1년 전에 썼다는 고인(故人)의 유서를 읽으면 눈 뿌리가 축축해지고 뼈에서는 한기가 일어납니다. 소유의 유무(having)에 상관없이 이 땅에 내신 이(maker)를 자각하고 자신을 객관화시킴으로 ‘존재의 복됨’(blessedness of being)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이렇게 실체를 완성하는 힘이 있는 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꽤 여러 개의 별호를 갖고 살아왔습니다. 일찍이 인사동을 드나들며 얼치기 ‘문인’이 된 덕입니다. 처음 내게 별호를 지어 주신 분은 전각장인 현노(玄老) 선생입니다. 종민(從民)이라고 짓고 전각(篆刻)한 벌을 새겨주셨습니다. 그래선지 그 즈음엔 착실(?)한 목사로 살았습니다. 성경도 밤새워 읽고 기도하기도 밤을 세워서하곤 했습니다. 성경 속에서 울려오는 영혼의 감동을 쓰고 책도 냈습니다. ‘교우들을 잘 돌보고 하나님만 따르라’는 이름(從民)대로 살았던 시절입니다.
산호자(散壺子)는 소설 쓰는 내 친구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내 책(자기포기)을 읽다가 이성을 붕괴(?)시키는 힘이 느껴진다면서 지어준 이름입니다. 이름값을 하느라고 그랬는지 그 시절은 그야말로 폭풍처럼 살았습니다. 마구 부수면서, 스스로 부서지면서 말입니다.
마가복음(4:21-25)에 보면 “가진 자는 더 받을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 마저 빼앗길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가 정당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가르치는 말(복음)을 잘 들어 품고 키우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듣지 않고 품지 않고 키우지 않는다면 무슨 열매가 있겠는가고 묻는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지려면, 복음의 열매를 많이 거두려면 ‘잘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귀, 잘 듣는 귀가 바로 ‘빈 귀’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따르고 사람을 사랑하는 목사에게 이만한 ‘이름’이 있을까 싶습니다. 고인(故人)이 허락한다면 나도 이제 허이(虛耳)로 살고 싶습니다.
허, 虛耳! |
2005-11-03 02: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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