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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조심은 아무리 강조(强調)해도 지나치지 않다.
 닉네임 : 쓴소리  2024-03-14 19:52:08   조회: 2017   
말조심은 아무리 강조(强調)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언어(言語)가 없으면 대화가 될 수 없다. 만약에 대화가 없다면 이는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할 수가 없고 일의 목표를 이룰 수도 없다.

노아의 가족이 홍수심판 이후에 그들이 바벨탑을 쌓는데 탑의 꼭대기가 하늘까지 닫도록 쌓자고 가족회의에서 결정이 나서 실천하는데 창조주가 말려도 이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생각과 목적은 지구상에 홍수가 다시 온다고 해도 이제는 배를 지을 일이 아니고 그 탑으로 올라가면 홍수를 피하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창조주(創造主)는 앞으로 물로 인간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늘에 무지개를 띄워서 약속했지만, 그들은 고집을 꺾지 않고 계속해서 바벨탑을 쌓겠다는 고집을 계속 피우는 상태에 있게 되니 창조가 아무리 말로 중단시키려고 해도 아니 되니 언어를 흩어놓아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들의 가족 하나하나의 언어를 흩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언어가 소통이. 불가능하게 되어 도저히 서로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으니 즉 의사소통(意思疏通)이 불통(不通)되니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노아의 가족이 시작한 바벨탑은 쌓을 수가 없게 되었다. 현재는 문명이 발달하여 농아(聾啞)와 언어가 통하지 아니하면 수화(手話)로 의사전달(意思傳達)을 하지만 노아가 살던 당시에는 그와 같은 문명이 발달하지 못하여 전혀 통하지 못하여 가족의 원대한 뜻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세계 각국의 언어가 달라서 소통하기에 불편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제 이 문제는 마지막 심판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즉 신천신지(新天新地)가 탄생하는 날에야 세계인의 언어도 동일(同一)하게 될 것이다.

언어 소통(言語 疏通)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말은 상대와 대화(對話)의 매개체(媒介體)인데 속담에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지”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속언에 “말은 남이 웃을 수 있는 말을 하고 행동은 남이 입을 다물만한 행동을 해라”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말하는 자는 듣는 자가 웃을 수 있는 유머 감각이 풍부한 말을 하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라고 했을까? 심지어 “말만 잘하면 거저 준다”라는 엿장수의 농담(弄談) 어린 말도 있게 되었을까? 깊이 생각하고 자기 말을 듣고 즐거우면 즐거웠지, 화내는 일이 없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德)을 세우는데 소용(所用)되는 대로 선(善)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恩惠)를 끼치게 하라”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는 것을 상대가 들으면 기분이 좋고 희망이 생기며 용기가 나서 낙망하는 자가 소망을 가지고 자살(自殺)하려고 하는 자가 자살을 멈추고 다시 살 수 있는 말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의 표독(慓毒)한 말 한마디를 들은 자식이 생을 포기하고 자살하는 불행한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이 사는 사회는 언어 전달 매체가 말과 글이 있다. 우리는 어려서 배운 말을 한평생 쓰며 산다. 입으로 여러 소리를 내어 자기가 원하는 바, 뜻하는 바를 남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글은 말을 배운 뒤에는 글은 종이나 돌과 같은 반반한 바닥에 적는 기호로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 역사도 말로 전하여 내려오는 것은 구전(口傳)이라고 하고 글로 전하여 내려오는 것을 기록의 문서라고 한다.

그런데 구전은 역사가 흐름에 따라서 본래의 내용과는 다를 수 있지만, 기록으로 문서화(文書化)되어 전해 내려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창조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해방해 광야까지 나오게 하여 당시 창조주의 계명인 십계명(十誡命)을 구전으로 전하지 않고 돌판에 모두 새겨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었다.

그 이유는 구전(口傳)은 세월이 오래가면 본래의 내용이 변질(變質)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기록으로 남겼다.

그 이유는 변질(變質)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래서 말과 글은 성질상 분명히 다른 것이다. 예를 든다면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창제(創製)한 것이 아니고 세종대왕은 우리 글 즉 한글을 만든 분이지 우리말을 만든 분이 아니다.

다만 우리 말을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글을 만드신 분이라는 것이다. 말은 입으로 소리를 내고 귀로 듣는 것이지만 글은 손으로 쓰고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말은 모든 사람이 할 줄 알지만,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이 세계에는 아직 말을 한 번도 글로 적혀본 일이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매개체인데 무슨 말과 무슨 뜻을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에게 유익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생활(社會生活)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매사에 말을 조심하며 살자는 말이다. 그 이유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모여서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조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차 조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말조심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말조심은 더욱더 그렇다. 성경에 말은 씨라고 하였다. 그 씨를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이다. 창조주가 하시는 말씀이 “네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라고 하였다.

그래서 말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적절하게 잘해야 한다. 요즘 총선을 앞두고 과거에 말한 것과 글을 쓴 것이 문제가 되어 국회의원 공천받았다가도 취소가 되고 스스로 사퇴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말과 글은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려면 “소금을 골고루 치듯 하라”라고 하였다. 싱싱한 채소에 소금을 뿌리면 숨이 죽듯이 자기의 말을 들으면 화가 난 사람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잔잔해지는 결과가 나타나야 할 것이다.

다윗왕은 말하기를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달라”라고 기도하였다. 이는 필요하고 덕스러운 말은 할 수 있게 하고 필요 없는 말은 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말이다.

즉 입술이 위병소(衛兵所)라면 헌병(憲兵)을 세워 달라는 것이다. 출입할 때 합법적인 자는 내보내고 불법적인 사병을, 외출을 금지해달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이 되려면 자기 입 하나는 단속할 수 있어야지 자기 입 하나도 단속하지 못하는 자가 국민을 위하여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이런 막말을 하는 자들을 국회로 보낸다면 보낸 사람들은 벌레라는 말만 들을 것이 아닌가? 생각만 해도 불쾌하다.
2024-03-14 19: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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