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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한 땅끝’ 문산에 간 이유이태형의 만남 ‘세계사랑교회 백경삼 목사’

조금 과장을 하면 ‘손을 뻗치면 휴전선이 닿을 듯한’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임당로에 세계사랑교회가 있다. 이름 그대로 ‘세계를 사랑하는 교회’다. 예장 통합 교단의 이 교회 담임 백경삼(55) 목사는 2006년 10월 15일에 20평 남짓한 문산의 한 아파트 상가에서 가족을 비롯해 두 신학생 청년과 함께 교회를 개척했다. 2007년 4월 16일에 창립예배를 드렸고 4번 교회를 이전했다. 당시 한국교회는 교회 성장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교회성장 이후기’에 돌입한 상태였다. 한 교회가 개척되어 자립 단계를 거쳐 성장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문산은 한국 전체로 보면 땅 끝과도 같은 지역.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세계사랑교회는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억울하고 원통한 자들이 모인 아둘람굴과 같이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며, 사랑으로 품어주는 공동체로서 역할을 감당했다. 1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의미 있는 부흥을 경험했다. 지금 세계사랑교회는 641평의 교회 부지 내 아름다운 예배당에 250여명의 성도들이 함께 믿음의 길을 걷고 있는 든든한 교회로 성장했다.

문산 세계사랑교회 백경삼 목사 ⓒ계간 통일코리아

경삼 목사는 맑고 어진 얼굴에 선비의 기상이 엿보이는 목회자다. 선교사 지인으로부터 백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어느 주일에 불현듯 예배를 드리러 세계사랑교회를 찾음으로써 그와의 교제가 시작됐다. 백 목사는 인천가족치료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김경숙(52) 사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뒀다. 아들 이름이 의미심장했다. 백두산과 백록담. 마치 만화의 주인공으로 어울릴 듯한 이름이었다. 이미 장성한 두 아들의 이름을 통해 백 목사의 평생소원이 무엇인지를, 서울대 철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한 그가 왜 ‘땅 끝’과 같은 문산에 둥지를 틀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백 목사와 가족들은 북한을 품고 북한 선교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었다. 그가 휴전선 가까운 문산에 교회를 개척한 것은 직접 북한을 바라보면서 통일과 통일 이후 한반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겠다는 염원 때문이었다. 백 목사와 통일과 북한 선교, 교회, 목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먼저 저희 독자 분들에게 목사님의 지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시지요.

저의 할아버지는 지금의 북한 의주에서 사셨습니다. 일제하에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위해 단신으로 만주로 떠나셨습니다. 거기서 많은 역경을 겪다 할머니를 부르셨고 하얼빈에서 저의 아버지가 태어나셨습니다. 해방 후 우리 가족들은 충북 음성에 내려와 정착했어요. 아버지는 하얼빈에 계실 때부터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하셨습니다. 그러던 차에 청주에서 미국 출신의 해리 힐 선교사를 만나 장학금을 받으면서 신학을 공부해 오창, 음성, 도안 등에서 교회를 개척하셨습니다. 저는 음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시골 교회를 돌며 너무 고생한 나머지 심장병을 앓으셨습니다. 3개월밖에 못산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지만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로 히스기야처럼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아 사모로 사역하시다 제가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들어갔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님은 3남 1녀를 두셨는데, 세 아들을 모두 목회자로 키우셨습니다. 아버지는 청주 은광교회에서 원로목사로 은퇴하시고, 돌아가시기까지 사례비를 받지 않고 시골교회들을 다니시면서 설교하시고 섬기셨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신학 공부 전에 철학 배우기를 권하셨습니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한 뒤 장로회신학대학교(통합)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M.Div(목회학 석사)와 Th.M(신학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스위스의 제네바 대학에 박사과정으로 들어가려다 목회로 방향전환을 했지요.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1년 머물다 한국에 돌아와 장신대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요즘 교회 개척 때문에 미뤘던 박사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억울하고 속상하셨겠지만 자신을 내려놓으시고,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눈물을 흘리시면서까지 상대방을 받아주시는 모습에 한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저에게는 아버지의 그 모습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보였습니다."

-목회자가 되기로 작정한 것은 언제였으며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문산 세계사랑교회 백경삼 목사 ⓒ계간 통일코리아

목회자가 되기로 작정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청주에서 참으로 선하게 목회하시던 아버지를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목회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목회를 내조하셔야 할 어머니가 심하게 아프셨기 때문에 항상 새벽기도로 하루하루를 성결하게 사셨습니다. 교회가 어려워지거나 부흥될 때마다 거의 1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목회가가 되기로 작정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안방에서 전화를 받으시던 아버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천사’라고 불릴 정도로 선하고 인자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누군가와 통화하다 눈물을 흘리시며, “제가 잘못했지요…. 용서하세요…. 마음이 많이 아프셨겠네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문틈으로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화목한 목회를 추구하셨고 하나됨과 일치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날도 아버지는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며 일체 변명하지 않으시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진심으로 사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눈물을 본 저는 감동했습니다. 억울하고 속상하셨겠지만 자신을 내려놓으시고,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눈물을 흘리시면서까지 상대방을 받아주시는 모습에 한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저에게는 아버지의 그 모습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목회자로서의 삶이 세상에서 제일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사랑교회에 오기까지의 목회 여정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대학 졸업 후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서울 답십리의 영평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청년부와 중고등부, 아동부를 맡아 섬기다 서울 신촌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교육목사직을 담당했습니다. 그후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1년을 머문 뒤 인천 주안장로교회의 부목사로 들어가 10년 동안 사역했습니다. 주안장로교회에서는 주로 외국인 근로자들을 섬기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외국인 선교부를 창설, 공단에 있는 외국인들을 찾아가 전도하고, 양육하고, 세례 주고, 제자로 키웠습니다.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그 나라를 직접 방문해 한국 선교사를 연결시켜 교회를 섬기게 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기 원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신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고, 교회 건축도 도왔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23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이 세계선교의 거룩한 비전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요. 주안장로교회에서의 10년 사역 후, 1년 동안 온 가족이 50개국의 선교지를 방문했습니다. 이때 ‘세계사랑교회’라는 교회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곧 바로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문산에 세계사랑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사랑교회는 말 그대로 ‘세계를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요절이랄 수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매일 완전군장을 한 군인들과, 탱크와 대포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사격 훈련하는 총성들이 들리는 곳에서 자연스레 무릎 꿇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임진각과 민통선 안을 수시로 왕래하며 북한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마 다른 지역에서 사역을 했다면 목회에 바빠 북한을 위한 기도를 충분히 하지 못했을 겁니다."

-문산에는 어떤 비전을 갖고 오셨는지요? 수많은 도시 가운데 왜 문산에서 개척하셨나요?

가족들과 지인 목사님들은 제가 서울의 큰 교회에서 목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주안장로교회에서 부목사로 있은 지 5년 후 어느 날에 꿈을 꾸었는데 ‘문산’이라는 글씨가 저에게 갑자기 확 비추어졌습니다. 깜짝 놀라 깨서 ‘문산’이 어디에 있는지를 지도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희 온 가족은 북한 선교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그 비전이 구체화되지는 않았기에 그저 “어디에서 교회를 섬기든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겠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꿈을 꾼 이후로 시간이 될 때마다 문산에 올라가 북한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산 땅을 계속 밟다보니 하나님께서 문산에 교회가 개척되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개척자의 사명감에 불타오르게 됐지요. 1년간 세계를 돌면서, 세계선교와 북한선교에 깊이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이 열리고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면, 한반도가 더욱 더 세계선교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아픈 지역입니다. 세계 모든 나라 중에서 가장 증오감과 적대감이 심한 땅입니다. 처참한 동족상잔으로 영토는 물론 마음도 분단되어 온, 어느 곳보다도 하나님의 평화가 가장 필요한 지역입니다.

문산 세계사랑교회 백경삼 목사 ⓒ계간 통일코리아

당시 중학교 2학년인 두산이와 초등학교 6학년인 록담이, 서울신대에서 미술치료 강의를 하던 아내를 데리고 문산행을 결행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너무도 확실했기에 믿음으로 문산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저 가까운 곳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통일과 통일 이후의 한반도를 그리며 끊임없이 기도하는 가족으로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문산에서 개척했습니다. 하루하루 살면서 ‘문산에 참 잘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완전군장을 한 군인들과, 탱크와 대포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사격 훈련하는 총성들이 들리는 곳에서 자연스레 무릎 꿇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임진각과 민통선 안을 수시로 왕래하며 북한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마 다른 지역에서 사역을 했다면 목회에 바빠 북한을 위한 기도를 충분히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럼 원론적인 질문을 드리자면 목사님은 어떻게 북한 선교에 헌신하게 되셨습니까? 그리고 북한 선교에 대한 성경적 기초를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북한선교에 헌신하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저희 가족의 배경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희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제·자매들은 항상 북한에 대한 마음을 품고 살았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늘 애국을 강조하셨고 북한 의주 땅과 동북삼성지역, 특히 하얼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저희 형제들은 자주 백두산을 방문하며 북한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세계의 선교지를 돌면서 지구촌 어디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만 가까운 북한에 들어갈 수 없다는 비감한 사실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남북한 사람들은 동족임에도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을 치렀기에 서로의 내면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인한 증오와 적대감이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의 관계를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결국 통합되지 못하고,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당했습니다. 북이스라엘 민족은 앗시리아인들과 피가 많이 섞이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면서 사마리아인들을 혼혈민족이라며 부정하게 보았습니다. 양측의 갈등과 다툼이 계속 이어지면서 서로의 땅을 밟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 적대감은 날로 커져서 상종도 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사마리아인들도 하나님의 귀한 잃어버린 양들이었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을 부정하다고 생각하며 순수한 경건성을 주장하던 유대인들도 사실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 긴 전쟁과 광기의 역사 속에서 순수한 혈통이나 경건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민족을 하나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분열시키는 내적 요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자를 제사장이나 레위인으로 대표되는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인이 보살펴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친히 사마리아 수가성으로 들어가 죄 많은 여인과 자연스레 대화하시면서, 그 여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마을로 달려가 다른 사마리아인들도 예수님을 만나 믿게 하였습니다. 결국 북한선교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질 때라야 가능합니다. 남북의 분단과 갈등, 증오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에 반드시 회복되고 치유되어야 할 주제입니다.

-세계사랑교회와 백 목사님이 북한 선교를 위해 실제적으로 하고 있는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북한선교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제가 문산에서 개척할 때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휴전선과 가장 가까이 있는 교회들에 북한을 위한 전략적인 기도회가 없었습니다. 물론 각 교회마다 기도는 하고 있었지만 연합적인 기도 운동은 보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함께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일으키시는 것을 보아왔기에 고민하면서 문산의 교회들이 연합해 모이는 ‘평화통일기도회’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문산의 개척교회들이 서로 친교하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임이 3년여 지속되면서 매달 모이게 되자, 자연스럽게 모임에 참여하는 목사님들을 중심으로 세계사랑교회에서 ‘평화통일기도회’ 발기인 모임을 가졌습니다. 지금까지 6년 동안 15개 교회들이 매달 교회를 돌면서 목사님들과 교인들이 함께 모여 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0여 교회가 참여하는 문산기독교연합회에서는 일 년에 한번씩 6월에 함께 모여 북한선교 전문가들을 강사로 모시고 ‘평화통일 연합기도회’를 열고 있습니다.

한 교회가 북한선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적습니다. 그러나 연합하면 더 큰 일들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탈북자들이 휴전선과 가까운 문산에는 오지 않으려 했지만 이제는 문산의 아파트단지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사랑교회는 여러 문산의 교회들과 연합해 문산에 들어오는 탈북자들을 잘 정착하도록 지원하고 구체적으로 그들의 힘든 삶을 돕고 있습니다.

세계사랑교회는 여러 신학교들과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들, 그리고 선교단체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임진각과 민통선에 들어가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가까운 세계사랑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2015년에는 독일 통일의 도화선이 되었던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의 ‘평화기도회’를 이끌었던 본네 베르거 목사님이 오셨었습니다. 이 목사님과 함께 오신 7명의 독일 분들은 200여명의 한국 자전거 동호인들과 함께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해 휴전선의 통일전망대들을 방문하면서 기도하다 문산 세계사랑교회에서 문산기독교연합회와 연합해 ‘DMZ 평화통일기도회’를 열었습니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을 주도했던 기도회의 영성이 흐르는 귀한 기도회였습니다. 이 기도운동은 현재 쥬빌리구국기도회, 한생명 살리기 기도운동본부, 철원의 평화통일 목요기도회 등과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역을 비롯해 압록강과 두만강 근처에 가서 북한을 위해 기도하기도 했으며 현지에서 북한을 위한 실질적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 연변과기대와 평양과기대과 등과도 연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저 북한의 죽어가는 영혼들을 버리시지 않고 지금도 뜨겁고 무한한 사랑으로 품고 계십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품고 북한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북한 선교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북한 선교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북한선교는 주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 여러 영역에서 함께 이뤄가야만 합니다. 혼자서는 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각자가 부르신 영역에서 맡겨진 일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수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낙담하지 않고 계속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사역을 하실 때, 혼자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과 함께 동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셔야 할 마을에 제자들을 보내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역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 열매들을 보시며 함께 기뻐하셨습니다.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시계제로 상태입니다. 남북한은 너무나 극한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있으며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과 발사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북한사역을 하는 많은 선교사들이 추방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시각과 마음으로 이 땅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저 북한의 죽어가는 영혼들을 버리시지 않고 지금도 뜨겁고 무한한 사랑으로 품고 계십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햇빛을 함께 비춰주시며,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 다함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면 북한선교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그 마음을 모르면 외적인 어려운 현상만 보고 지치고 낙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쪽 문이 닫히게 되면 다른 쪽 문을 새롭게 여십니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갖고 각자가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교회의 북한 선교 사역을 평가한다면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합니까?

제가 한국교회의 북한선교를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선교를 하시는 모든 분들이 모두 존귀하고 감동적인 사역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북한에 직접 들어가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님들, NGO를 통해 들어간 분들, 대학 교수로 사역하시거나 미용이나 빵 공장, 유기농 농업을 하시는 분 등 지금 수많은 북한 사역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사역들을 위해 적지 않은 해외 시민권자들이 헌신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한인 선교사님들을 통해 훈련 받은 북한사람들이 북한에 들어가 전도하기도 합니다. 문서사역을 통해 복음이 그 땅으로 흘러들어가기도 합니다. 또한 방송사역을 통해 북한사람들이 복음을 접하거나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탈북자들을 위한 학교들과 교회들이 많으며 북한선교를 위한 신학교의 사역도 활발합니다. 결국은 각자 맡은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그간의 한국 교회의 북한 사역에서는 서로를 사역을 인정하고 이해해 주는 것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북한 선교에서 연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 사역 현장에서 참된 연합은 쉽지 않습니다. 북한 선교에서도 연합이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함께 북한선교 사역을 하는 목회자들과의 연합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북한 선교하는 분들을 만나보면, 하시는 모든 일들이 다 소중합니다. 그래서 북한선교에서 연합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북한 선교에 매진하는 분들은 언제나 평화적인 통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통일(統一)을 바라보는 사역들이 연합되지 못하면 통일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남한 내에서 서로간의 연합이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북의 통일을 바라보겠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연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똑같이 북한 선교를 한다 하더라도 각자마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6·25 전쟁을 경험하면서 동족끼리 피를 흘렸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를 피부로 체험한 분들이 많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공산주의에 의해 박해와 고난을 받았으며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의 잔학성을 강조하는 분들에게는 반공주의가 애국심과 신앙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분들이 생각하는 북한선교는 북한체제가 무너지고 그 땅이 기독교로 복음화는 것, 궁극적으로 북한주민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화가 최우선적인 가치이기에 그 과정에서 북한경제 제재나, 사드배치, ‘정당한 전쟁’을 용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이 땅 가운데 도래할 평화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하며, 예수님의 원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에게는 평화와 인권 보장, 상호 인정과 평화협약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동독과 서독의 통일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과정은 우리와 다른 면이 많습니다. 동독과 서독은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로 나눠져 있었지만, 동독의 정권은 교회를 말살하지는 않았습니다. 동족끼리 피를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동독과 서독의 교회는 통일 이전에도 서로 교통하면서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경제지원과 서로간의 만남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독 내에서는 비록 감시를 받았지만 교회 내에서 ‘평화기도회’가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은 독일과는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북한 내에서 늘어나고 있다는 지하교회 교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북한의 극심한 감시체제 하에서 지하교회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도 제기합니다. 한쪽에서는 핵무장과 무리한 군비확장으로 조만간 무너질 것 같은 북한정권이 남한의 인도적인 지원에 의해 되살아날 것 같은 우려에 인도적인 지원까지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북한체제 붕괴까지 바라보는 경제제재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가뭄과 홍수, 결핵과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한쪽에서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을 바라보며 우리도 미국과의 동맹 강화와 군비확장, 사드배치 등을 주장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한반도의 궁극적인 평화정착을 위해 평화협정체결과 군비축소, 다자간 협상과 경제적 지원을 통한 북한의 생존 가능한 환경조성 등을 통한 평화정착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북한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서로간의 연합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는 주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의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우신 몸 된 교회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원수 같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으로 다시 살리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극한의 대치상황을 넘어 북한 선교라는 대의를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문산 세계사랑교회 백경삼 목사 ⓒ계간 통일코리아

-자, 그럼 통일은 언제쯤 이뤄질 것 같습니까? 통일이 임박했다고 보는 분들도 적지 않은데 우리는(교회는) 통일을 앞두고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통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서독이 통일될 때에도 독일 주변의 나라들이나 독일의 어느 정치가도 통일이 곧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남북한이 더 빨리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러나 독일 통일은 갑자기 왔습니다. 동독의 라이프치히 니콜라이교회의 ‘평화 월요기도회’는 통일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 기도회도 당초 통일을 위해 기도했던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기도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평화를 위해 기도하던 사람들에게 통일을 주셨습니다.

남북한의 통일의 시기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여러 변수들이 상존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갑자기 올 수 있습니다. 독일처럼 말이죠. 더욱이 북한 정권이 더욱 고립되어 가고, 유엔과 미국 주도의 고강도 경제제재로 인해 벼랑 끝으로 몰리면 정권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 등 군비확장에 드는 비용들이 북한 주민들의 삶을 위해 쓰이지 않을 때, 김정은 정권의 신뢰도는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 내 시장경제의 확대와 점진적이지만 엄청난 외부정보들의 유입으로 북한 내부의 불만이 폭발하게 되면 공포정치로 일관하는 김정은 체제는 조만간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런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선 난민촌을 만들어야 합니다. 중국은 이미 그런 대비를 하고 있다 합니다. 또한 점진적인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선 장기적 차원의 통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통일세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안입니다. 과거 서독에서는 통일을 위한 장기적인 플랜을 짠 이후엔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통일정책만은 변함없이 지속, 발전시켰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정권 교체와는 상관없이 추진될 변함없는 장기적 통일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교단을 초월한 연합적인 통일선교 방안을 수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연합해 한 마음으로 무너진 북한 교회들을 수축하는 일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각 교회마다 꾸준히 평화통일기도회를 진행해 기도로 통일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도회가 하나의 이벤트가 되어선 안 됩니다. 또한 3만 명을 넘어선 북향민들과 함께 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북향민들을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의 통일 과업을 이미 시작하신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미 통일의 과정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연합과 일치, 사랑으로 이 통일의 과정을 수행해 나가야 하는 소명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남한의 발전된 경제의 눈으로 북한을 무시한다면 통일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상호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져 서로간에 신뢰가 쌓여져 가야 합니다. 정치적인 것은 점진적으로 이뤄진다 해도, 경제와 문화 쪽에서는 보다 빨리 많은 교류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박근혜 정권의 통일 정책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다음 정권에서는 어떻게 통일 정책을 펼쳐야 합니까?

박근혜 정권의 통일정책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였습니다. 박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도 외쳤습니다. 그러나 이 통일정책은 실제로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권 동안 남과 북의 신뢰는 철저히 깨졌습니다. 서로에 대한 불신은 모든 교류의 단절이라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 통일을 경제적 이익의 측면으로만 본 것은 큰 잘못이었습니다. 북한에서 볼 때는 모든 것이 남한 위주의 흡수통일로 비쳐지기 때문입니다. 남한의 발전된 경제의 눈으로 북한을 무시한다면 통일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상호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져 서로간에 신뢰가 쌓여져 가야 합니다. 정치적인 것은 점진적으로 이뤄진다 해도, 경제와 문화 쪽에서는 보다 빨리 많은 교류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통일은 남과 북의 주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실제로 한반도의 주변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고 있기에, 한반도 통일을 쉽게 지원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정말 외교력이 절실한 시대이기에 통일에 대한 열정과 냉철한 전략이 어우러진 지속 가능한 통일정책이 추진되어야 합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통일에 대한 자문을 구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통일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북한을 사랑하라”고 했답니다. 다음에 어떤 정파가 정권을 잡든 진정한 사랑이 담긴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아들 이름을 두산과 록담으로 지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이들의 반응도 흥미롭고요. 두 아들은 지금 어떻게 자라고 있나요?

평소 아버지께서 손자가 생기면 백두산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큰 형님은 딸을 먼저 낳으셨고, 둘째 형님은 아들을 낳았지만 여러 상황 때문에 백두산이라고 이름을 못 지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큰 아이가 작게 태어났는데 머리는 산처럼 컸습니다. 고민 없이 ‘머리 두(頭), 뫼 산(山)’자로 해서 백두산(白頭山)이 된 거죠. 둘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는 정말 고민되었습니다. 주변의 많은 목사님들과 존경하는 분들이 아이 이름을 백록담으로 지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록담이가 태어난 날, 한 일간지 1면에 백록담 사진이 전면으로 나왔습니다. 제주도 한라산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분화구인 백록담에 물이 가득 찼기 때문이었습니다. 백록담에 물이 가득 채워지기는 좀처럼 쉽지 않아 진기한 현상에 그 신문이 사진을 대서특필한 것이었습니다.

신문을 보면서 우리 가족에겐 물로 가득 채워진 백록담이 통일의 징조요, 둘째 아이 이름을 백록담으로 지으라는 하나님의 지시로 느껴졌습니다. 거기에다 당시 제가 전도사로 있었던 서울 신촌교회 오창학 담임목사님께서 농반진반으로 “아이 이름을 백록담이라고 짓지 않으면 유아세례를 안 준다”고 하셨어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알고 백록담으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침 조회시간 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라는 애국가 제창을 하게 되면, 모든 학생들이 두산이를 쳐다봐 두산이가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내는 큰 아이에게 “네 이름 때문에 마음이 힘들면 이름을 고쳐도 된다”고 했습니다. 두산이는 1주간의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결국 이름을 고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두산이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특전사 사령부에 특전병으로 있습니다.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를 다니는 록담이는 이번에 미국에서 경비행기 비행실습을 마치면 한국에 들어와 울진 비행교육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두산이는 목회의 길을 가기로 했고, 록담이는 비행선교를 꿈꾸고 있습니다.

"제가 꿈꾸는 교회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갖고 세상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북한을 끌어안고, 그곳의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가며, 평화적 통일을 이루면서 세계선교에 헌신하는 한반도를 꿈꾸며 실현하는 교회입니다."

-이 땅에 수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목사님이 꿈꾸는 교회의 모습은요?

교회는 이 세상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혼란과 갈등, 전쟁이 혼재해 있는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질서와 정의, 평화를 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제도와 법은 강제적인 힘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절제시켜 사회의 질서를 만들어갑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영성을 갖고 자발적으로 폭력이 난무한 곳에 평화를 심고, 교만 대신 겸손으로 섬기며, 더러움과 음란이 가득한 곳을 성결로 채우고, 미움과 무관심이 있는 곳에 사랑을 흘려보내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만이 어둠 가운데 참 빛을 비추며, 썩고 오염된 곳에 소금의 역할을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말입니다.

제가 꿈꾸는 교회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갖고 세상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무너지는 가정을 주님의 말씀으로 바로 세우는 교회이며, 사랑과 희생을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교회이며, 사람들에게 민족의 사명을 일깨우고 세계선교의 거룩한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교회입니다. 북한을 끌어안고, 그곳의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가며, 평화적 통일을 이루면서 세계선교에 헌신하는 한반도를 꿈꾸며 실현하는 교회입니다. 또한 온 세계에 수많은 선교사들을 파송, 선교지마다 영적인 부흥을 일으키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가는 교회입니다. 저는 이런 교회를 꿈꿉니다. 이 꿈은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이 꿈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교회의 비전은 세계사랑교회만의 것이 아니기에 이 세계의 모든 주님의 몸 된 교회와 한마음으로 함께 이뤄나가길 소망합니다.

-목회란 무엇입니까? 목사님은 어떤 목회자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저에게 목회는 양을 키우는 것입니다. 양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함께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가는 것입니다. 저 또한 주님의 양입니다. 저의 목자 되신 주님을 따라 신실한 양이 되고, 나에게 맡겨주신 양들에게도 좋은 목자가 되기 원합니다. ‘선한 목자’같은 목회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올 해에는 교회개척과 목양으로 미루었던 박사논문을 쓰는 것이 우선적인 계획입니다. 논문 주제는 ‘한반도의 통일신학을 위한 평화개념 연구’입니다. 이 주제로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는 행복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논문을 쓰고 난 뒤에도 더욱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바라보면서 교회들과 선교단체, 신학교간 연합과 협력을 위해 봉사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선물로 주실 통일을 맞이해 가는 과정에서 제게 맡겨주신 작은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마지막 질문 드립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유언이 “너희도 믿음으로 살아라!”는 말이셨습니다. 이 땅에서 신실하게 믿음으로 살다간 구름같이 허다한 하나님의 증인들처럼 ‘오직 믿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특별히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긴 말씀 감사합니다.

이태형/ 기록문화연구소 소장, 전 국민일보기독교연구소 소장, 『더 있다』, 『두려운 영광』 등 저자

*이 글은 지난 3월에 발간된 계간 <통일코리아> 2017 봄호에 게재됐던 것이다. 

이태형  justin105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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