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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정치와 제도정치의 융합한국의 진로를 탐색하다 : 차기 정부를 위한 정책논쟁(정치)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71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 판결로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역사에 남을 민주주의의 승리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대통령 탄핵을 마냥 민주주의의 승리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공고화(democratic consolidation) 측면에서 보자면 헌법에서 명시한 책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분명 민주주의의 승리이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심화(democratic deepening) 혹은 성숙(maturation)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 민주주의가 심화되기 위해서는 선거, 의회, 정당 등과 같은 민주적 절차뿐 아니라 정치신뢰, 시민참여, 시민문화(civic culture), 기회의 균등, 공정한 분배 등과 같은 내용적 요소들이 일상화되고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비민주적인 권력이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은 입증했지만, 민주주의 심화를 향한 여정은 여전히 험난해 보인다.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낼 만큼 한국의 광장정치는 매우 강하다. 한편 제도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매우 높다. 차기정부에서 광장정치와 제도정치를 융합하는 길을 찾지 못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지속될 것이다. 차기 정부의 또 다른 과제는 청와대 문고리 삼인방이나 최순실과 같은 비선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 SWOT 분석: 강점과 약점 그리고 기회와 위협

한국 민주주의의 강점은 깨어 있는 시민의식과 성숙한 광장정치에 있다. 2016년 10월 29일 이후 매 주말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고, 이는 대통령 탄핵이 결정난 다음날인 2017년 3월 11일까지 20차례 지속되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매 주말 수십만 명이 넘는 분노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지만 폭력사태는 없었다.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가 결국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다. 부도덕한 대통령 권력에 대한 촛불 민주주의의 승리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약점은 허약한 제도정치에 있다. 부도덕한 권력을 심판하는 것이 광장정치의 역할이었다면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것은 제도정치의 몫이다. 이승만 정권은 4·19 혁명에 의해 붕괴되었다. 1987년 6월 항쟁은 전두환 정권을 굴복시키며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그렇지만 두 차례 모두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심판, 거기까지였다. 제도정치가 운동정치의 가치와 요구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기에 성숙한 민주주의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현재 상황도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촛불집회가 비민주적인 대통령을 탄핵시켰지만 새로 들어서는 정부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기 쉽지 않다. 문제의 원인이 행위자의 잘못뿐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정치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촛불이 만들어 낸 광장정치는 과거 4·19 혁명이나 6월 항쟁의 운동정치보다 훨씬 더 광범하고 강력하다. 차기정부가 광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한국 민주주의에 있어 기회요인은 디지털 민주주의의 확산에 있다. 소셜 미디어를 비롯한 정보통신기술로 무장한 시민은 더 이상 수동적이고 소외된 개인이 아니다. 엘리트 이론에 따르면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대중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소수의 내부집단이 정보를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네트워크 확산으로 인해 엘리트의 정보 독점구조는 깨졌다.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민들은 더 이상 고립된 개인이 아니다. 네트워크 개인들(networked individuals)이 우리 사회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현재 상황도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촛불집회가 비민주적인 대통령을 탄핵시켰지만 새로 들어서는 정부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기 쉽지 않다. 문제의 원인이 행위자의 잘못뿐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정치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촛불이 만들어 낸 광장정치는 과거 4·19 혁명이나 6월 항쟁의 운동정치보다 훨씬 더 광범하고 강력하다. 차기정부가 광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한국 민주주의에 있어 기회요인은 디지털 민주주의의 확산에 있다. 소셜 미디어를 비롯한 정보통신기술로 무장한 시민은 더 이상 수동적이고 소외된 개인이 아니다. 엘리트 이론에 따르면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대중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소수의 내부집단이 정보를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네트워크 확산으로 인해 엘리트의 정보 독점구조는 깨졌다.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민들은 더 이상 고립된 개인이 아니다. 네트워크 개인들(networked individuals)이 우리 사회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한편 현재처럼 광장정치와 제도정치가 충돌하는 양상이 지속된다면 이는 한국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요인이 될 것이다. 하버마스(Habermas)의 지적처럼 여론이 통치의 기제가 될 수는 없다(the communicative power of public opinion cannot rule by itself). 정치제도가 네트워크 개인들의 여론과 정치참여 욕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차기 정부 앞에 놓인 첫 번째 과제는 광장정치와 제도정치를 융합하는 정치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며, 그래야만 민주주의 심화를 향한 첫 걸음을 뗄 수 있다.

비선정치가 가져온 제도정치의 위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의 핵심은 비선정치와 권력의 사유화(privatization) 현상에 있다. 헌법재판소 판결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사적 친분이 있는 최순실에게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고 국가정책과 고위 공직 인사에 관여하게 하였다. 또한 국정을 비선 조직에 따른 인치주의로 운영하여 헌법과 법치국가원칙을 파괴하였다.

대통령 탄핵사태는 몇몇의 일탈적 행위뿐 아니라 비선정치라는 잘못된 정치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는 비선정치의 뿌리가 매우 깊다는 데 있다. 해방 후 한국정치는 인물정치, 파벌정치, 그리고 비선정치로 일관되었다. 최장집은 조숙한 민주주의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해방 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국내 정치세력에 의해 주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냉전체제 속에서 외부로부터 일시적으로 도입되었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는 뜻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제도라 할 수 있는 정당부터 사회적 기반 없이 지도자와 파벌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계급이나 이념적 기반이 없는 인물 중심의 정당은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거듭하였다.

인물 중심의 정치는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파벌과 측근정치는 더 심해졌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상도동계가 그리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동교동계가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대통령 아들과 친인척을 중심으로 형성된 비선조직이 각종 인사와 이권에 개입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친노 그룹이 이명박 정부에서는 친MB 파벌이 비선정치의 전통을 이어갔다.

차기 정부가 비선정치의 구습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지속될 것이다.

차기 정부를 위한 과제: 권력의 책임성 강화

현재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개헌 논의는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 심화를 위해 시급한 과제는 광장정치와 제도정치의 융합 그리고 비선정치의 제거에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의한 권력남용과 권력사유화가 대통령 탄핵사태의 발단이 되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칫 제왕적 대통령 대신에 제왕적 수상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력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해결책은 권력구조가 아니라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견고한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다. 즉, 권력에 대한 수직적 책임성(vertical accountability)과 수평적 책임성(horizontal accountability)을 확보할 때 비로소 권력남용을 방지할 수 있다. 이제까지 권력의 수직적 책임성은 국민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며 이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확보되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국민은 선거뿐 아니라 광장정치를 통해서 권력의 책임성을 묻고 있다. 따라서 일상의 정치 속에서 권력의 책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한편 권력의 수평적 책임성은 권력기구들간의 상호 감시와 견제를 통해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왕적 대통령이 출현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권력을 약화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대통령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권력을 강화시켜야 한다. 국회, 감사원, 검찰, 법원, 정보기구, 국세청 등과 같은 권력기구가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가질 때 제왕적 대통령이 들어설 자리는 없어진다.

따라서 개헌 논의의 핵심 현안은 권력구조가 아니라 권력의 책임성 확보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정치와 광장정치를 융합하고 비선정치를 제거할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필자 소개

윤성이(尹聖理 Seongyi Yun)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2000. 3 - 2005. 8), 국민대통합위원회 갈등관리포럼 위원(2013. 11 - 2015. 12) 등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전공분야는 한국정치 및 인터넷 정치이며, 주요 저서 및 논문으로는 『한국정치: 민주주의, 시민사회, 뉴미디어』, “Another View on the Relationship between democratization and intra-military division in South Korea” (2013), “Democracy in South Korea: Consolidated but in Deficit” (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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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이  yun31@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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