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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 노인’과 정치남북물류포럼 ‘칼럼’

방배동에 살고 있다. 방배동도 금배동, 은배동, 동배동으로 나뉜다. 경계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내가 사는 곳은 동배동이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밤 기온이 차다.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 가로등 불빛 아래로 등 굽은 파지 줍는 노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늦은 밤에 자주 보이는 익숙한 모습이다. 종이박스와 책을 버리러 나간 어느 날, 노인과 처음 얘기를 나눴다.

“왜 이리 늦은 시간에 다니세요?” 건네받은 종이박스를 해체하며 노인이 말한다.

“낮에는 경쟁자들이 많아 수레를 끌고 돌아다녀도 마음만 급하지 수확이 별로 없어.”

동네에서 파지 줍는 노인을 본 것만 4~5명이었으니 이 업종에도 경쟁이 있다는 말인가. 집안 정리를 하고 버릴 것들을 내다놓고 보니 분리수거 ‘딱지’를 붙여야 할 형편이다. 어쩌나 하고 있는데 그 노인이 나타났다. “낡은 의자 두 개, 작은 테이블 하나를 처리해 주실래요? 2만원 드릴게요.” 노인의 행동이 빨라졌다. 남루한 옷차림에 굵은 주름이 파인 얼굴. 웃어본 적이 없을 것 같았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하루벌이가 1~2만 원 정도라니 그럴 만도 하다.

“정부에서 지원 받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동사무소 같은 데는 가 보셨어요?”

“하늘에 별 따기야.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듣겠고 해달라는 서류만 해도 한 뭉치야”라며 손 사레를 친다.

“그래도 쥐꼬리만큼 받기는 해, 그것도 감지덕지지.”

그가 가진 정부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될까?

그로부터 얼마 뒤 새벽, 밖에서 빈병 고르는 소리가 들린다. 따뜻한 집 창문너머 노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언짢다. 관리 못한 노인의 흰 머리가 어깨까지 드리워져 있다.

“나라는 대체 뭐하는 거야?”

이 사람의 가난을 오직 그의 탓으로만 돌려도 되는 거야?

볼멘소리가 내 목을 넘어온다. 몰라서 국가에 요구할 수 없고, 요구해도 까다로운 조건. 나라가 이들 편에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광화문 촛불의 시민혁명과 3월 10일 헌재 판결이 생각났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짧지만 긴 문장이다. 촛불혁명의 숭고한 의미와 대한민국 정치의 어두움을 거둬낸 큰 뜻을 담고 있다. 판결 주문을 듣는 순간 전율이 느껴진다. 심장이 고동쳤다.

광화문광장의 촛불, 그것은 분명 추한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게 만든 힘이었다. 그 속엔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법치국가로 바로 서게 만들었던 저력이 숨어 있었다. 촛불행진을 하면서 눈을 마주쳤던 낯모를 이들과 함께 만들어낸 시간들이 아직 내 가슴에 남아 있다. 그때 들었던 촛불은 새로운 역사에 대한 희망이다.

하지만 탐욕스런 위정자를 징치하고 법의 가치를 높인 역사가 정작 파지 줍는 노인에게는 무엇일까? 파지노인에게도 새로운 역사의 희망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까? 우리들만의 시민혁명이 아닌 그들의 삶도 녹여낼 수 있는 혁명 같은 것 말이다.

정치(政治)란 ‘바로잡음’이라고 한다. 정약용은 “백성에게 균등하게 나누어줘 바로잡으니 이를 일러 정치”라고 했다. 정치는 신뢰다. 국민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면 정부는 존재하지 못함을 광화문의 촛불이 일깨워주었다. 몇 십억 짜리 말을 타고 호사부리는 정유라와 추운 날 고물 리어카를 끄는 파지 줍는 노인 사이에 놓인 이 극단의 간격이 좁혀져야 정치다.

대통령의 탄핵은 광화문광장에서 “이게, 나라입니까?”라고 던졌던 질문에 “그래! 이게 나라다”로 답하는 데 주저하지 않게 했다. 이제 그 탄핵은 파지 노인을 거리에서 사라지게 할 때 완성될 것이다. 5월 9일은 대통령 선거다.

정경화/ 남북물류포럼 사무국장

정경화  kolofo.or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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