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전쟁은 머리가 되고픈 자들의 욕심에서 시작된다[명화묵상] 렘브란트의 '다윗과 압살롬의 화해'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사무엘하 14:25-26)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사무엘하 18:9)


다윗 왕의 자식들 20여 명 중 우리가 기억하는 건 솔로몬입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기억해야 할 아들이 셋째 압살롬(Absalom)입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을 정도로 뛰어난 외모를 지닌 그가 한 일은, 배다른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반역한 것입니다. ‘압살롬’이라는 뜻이 “내 아버지는 화평이시다”라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아버지의 왕좌를 노리고 반역한 그는, 자랑으로 삼던 머리카락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공중에서 바둥대다가 칼에 찔려 돌무덤 속에 묻힌 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다윗과 압살롬의 화해>는 네덜란드가 낳은 최고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 van Rijn:1606-1669)의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다윗과 요나단>으로 자주 소개되기도 하는데, 화가가 직접 제목을 붙이지 않고 후대 사람들이 붙이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가 아닌가 합니다. 더구나 그림을 보면 다윗의 나이가 상당히 들어 보이는데다 왕의 옷차림을 하고 있기에, 이 그림을 다윗과 요나단을 우정을 그린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 다윗과 압살롬의 화해(렘브란트, 1642, 유화,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 렘브란트는 다윗의 터번 깃과 압살롬의 머리카락, 압살롬의 금빛 의복과 칼(환도)을 강조하고자 했다.

부자지간인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는 배신, 용서, 화해, 반역, 전쟁, 죽음으로 끝나는데, 이 작품은 ‘화해’의 장면입니다. 우선 다윗의 머리에 쓴 터번과 압살롬의 옆구리에 찬 환도(군대에서 차는 칼)를 통해 이 작품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유럽문화가 아니라 오리엔트 문화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은 오리엔트 문화가 강타하는데 그 중심이 네덜란드였고 화가는 암스텔담 항구에서 본 동양에서 온 사람들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윗이 쓴 터번의 꼿꼿한 깃은, 아들의 반역으로 자존심엔 손상을 입었지만 그가 아직도 죽지 않은 권력임을 상기해 줍니다. 금빛으로 수놓은 왕복 같은 의상을 입은 압살롬은 아버지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은 모습이어서 꺾인 권력임을 엿보게 해줍니다. 그래서인지 화가는 압살롬의 얼굴은 보여주지 않고 측은하게 내려보는 다윗의 애증이 담긴 표정만 담았습니다. 아들을 안아주는 다윗의 두 팔을 보면, 뭔가 어정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정말 반가우면 와락 껴안았어야 할 텐데, 두 팔과 손에는 그런 열정적인 힘이 담겨 있지 않아 보입니다.

초여름이 시작되는 6월을 앞두고, 우리 민족에게는 가슴 아픈 한국전쟁이 떠오릅니다. 전쟁은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할 단어입니다. 다윗과 압살롬에게서 보듯 전쟁의 시작은 작은 일에서, 가까운 사람에게서 시작되어 산불처럼 커지며 멀리 번져나갑니다. 또 전쟁은 언제나 머리가 되고 싶은 자들의 욕심에서 시작됩니다. 그런 점에서 압살롬의 머리숱은 단순히 몸의 일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 최고로 여기고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생명을 빼앗는 마음 상태를 표현한 듯합니다.

교회력으로 6월은 ‘성령의 달’입니다. 성령님은 전쟁을 무력화하고 평화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분을 믿는 우리 또한 전쟁이 없는 평화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을 접한 다윗이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에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사무엘하 18:33) 하고 울부짖은 것은 성경에서 가장 슬픈 아버지의 통곡입니다. 그것이 곧 전쟁의 결과입니다.

압살롬은 우리에게 반면교사입니다. 그의 최후에서 이솝우화의 사슴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사슴 한 마리가 목이 말라 호숫가에 갔다가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 갈래로 뻗은 자신의 뿔을 보며 대단히 만족해하다 다리를 바라 본 순간 가느다란 다리에 실망합니다. 그때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 쏜살같이 달려오자 놀란 사슴은 숲속으로 달아납니다. 자신이 실망한 가느다란 다리 덕에 숲속으로 도망가는 데 성공한 사슴은, 정작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던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 사자의 먹잇감이 되고 맙니다. 자신의 자랑거리이자 온 이스라엘이 부러워할 만한 머리카락이 상수리 나무에 걸리는 바람에 최후를 맞았던 압살롬의 모습이 이와 너무 흡사합니다.

자기 이름에 ‘평화’(샬롬)라는 뜻이 있는데 압살롬은 이름과는 정반대되는 삶을 살았음을 봅니다. 뛰어난 외모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지만, 그 외모가 그의 삶에 약(藥)이 되지 않고 도리어 독(毒)이 되었음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칭찬에 우쭐해져서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던 압살롬을 통해, 거꾸로 겸손과 자기 부인의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이산 가족의 아픔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곳, 전쟁의 아픔이 있는 곳에 자기 부인을 통한 화해와 평화가 깃들기를 기도합니다.


김종원(목사, 자유기고가)
 

김종원  ukoreanews@gmail.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