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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탈북민의 주검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의사 출신 탈북민 노동자 김 모(48)씨의 장례식은 사망 9일째인 21일에도 여전히 치러지지 못했다. 유족 측의 요구와 사측인 ‘포스코 사회적 기업’ 송도에스이의 답변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21일에도 양측의 논의는 계속됐지만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

장례식장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인천의 한 목회자는 이렇게 심경을 토로했다. “이게 무슨 남북 고위급 회담도 아니고 이렇게 눈치 보며 어렵습니까? 그냥 와서 잘못했다 영정 앞에 엎드려 조문하고 인사하면 다 되는 건데... 탈북민을 위해 만든 ‘사회적 기업’이었고, 좋은 뜻으로 사람 위해 했던 일입니다. 사고가 났습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끝까지 사람을 위해 그 마음으로 대하면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결정권한이 없는 송도에스이 임원이다 보니 유족 측과의 논의 과정에서 포스코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이것이 장례 연기의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서로 힘겨루기 하는 남북 정상회담처럼 말이다. 김 모 씨의 사망과 사망 이후 장례식이 연기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속성과 이렇게 장례식이 연기되도록 놔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민낯이 보이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릴 뿐이다.

   
▲ 지난 13일 빌딩 유리창 청소도중 추락사한 탈북민 김모 씨의 장례가 연기되고 있는 가운데, 20일 상조업체 직원들이 장례식장에 진열된 꽃을 갈아주고 있다. ⓒ이진오

토요일 아침 김성구 씨(48)는 팀원들과 함께 인천 송도에 있는 포스코글로벌R&D센터 외벽 유리창 청소를 했다. 주차관리가 주업무인 김 씨에게 주임은 그날따라 유리창 청소를 시켰다. 소속 회사인 송도에스이(가장 잘 나가는 탈북민 고용 사회적 기업이다)가 지난 4월부터 주차 및 청소용역 하청업체를 다른 곳으로 바꾸면서 김 씨의 업무도 주차관리가 아닌 환경미화로 바뀌었다.

거기다 외벽 유리창 청소는 1년에 한두 번 할까 말까 한, 회사로서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걸 하필 업무에 익숙하지도 않은 김 씨와 동료들에게 맡긴 것이다. 더군다나 안전 교육이나 안전 장비도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채 말이다. 긴 장대 끝에 달린 걸레로 외벽 유리를 열심히 닦았지만 닿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김 씨는 어쩔 수 없이 에스컬레이터와 유리벽 사이 공간에 발을 딛고 유리벽 청소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와 유리벽 사이에는 유리바닥이 아닌 빈 공간이었다. 누가 봐도 유리바닥이 있을 것 같은 공간이었지만 누구 하나 그 위험성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 김 씨는 14m 아래의 지하 1층으로 떨어졌고, 구급차가 달려왔을 때는 이미 목숨이 끊긴 뒤였다. 지난 13일 토요일 아침 8시 36분, 탈북민 김 씨는 그렇게 ‘한많은’ 인생을 접어야 했다.

김 씨는 북한에서 청진의대를 졸업하고 청진 시립병원 산부인과 의사에다가 시당(市堂) 비서를 했다. 그 지역에서는 최고 엘리트였다. 그런 그가 2006년 탈북을 결행한 데는 선천성 질병을 앓고 있던 부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남한에 와야 한다는, 먼저 탈북했던 처남의 간곡한 요청 때문이었다.

여느 의사 출신 탈북자들이 그렇듯 김 씨도 남한에서 의사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대기업 포스코가 탈북민과 다문화 가정을 위해 사회적 기업을 만들던 2010년 김 씨도 입사했다. 김 씨가 맡은 일은 주차관리. 평소 조용하면서도 꼼꼼하고 책임감 강했던 그는 열심히 일한 덕분에 3년 후 주임으로 승진했다. 북한에서의 과거 엘리트 모습과 남한에서 주차관리하는 모습이 비교될 법도 했지만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미지 좋은 대기업 포스코 소속이라는 프라이드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1년 전부터 포스코가 인원감축 등 구조조정을 하기 시작하자 그 여파가 포스코가 세운 사회적 기업 송도에스이한테도 미쳤다. 월급이라야 최저임금과 비슷한 월 130여 만원에 직책수당 4~50만원이 더 붙는 게 고작이었지만, 포스코는 비용절감을 이유로 주차용역을 다른 하청업체에 넘겼다. 김 씨는 송도에스이에 남았고, 대신 업무는 주차관리가 아닌 환경미화로 바뀌었다. 직책수당 승계를 회사에 거듭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김 씨는 주말엔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일을 하며 가장의 역할을 다했다.

내성적인 성격에 책임감 강한 김 씨는 주윗사람들에게 본인의 고충을 잘 털어놓지 않았지만, 유독 한 사람, 입사동기인 또 다른 이에겐 줄곧 자신의 심경을 털어놨다. “억울하다” “노조를 만들고 싶다” 이런 말들을 자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씨의 뜻하지 않은 추락사로 그의 억울함은 이제 남은 유족들, 동료들의 몫이 됐다.

더군다나 회사에서는 아무런 책임있는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회사 임원이라는 사람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혼자 하다가 사고가 났다” “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 “유족들이 사과를 받을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망발로 유족들의 거센 분노를 사기도 했다. 추락사를 당한 날은 지난 13일이지만 지금까지도 장례식은 치러지지 않고 있다.

김 씨가 다니던 회사의 탈북민 동료들이 집단 조문을 다녀간 19일 밤, 김 씨의 부인과 딸, 처제는 영정 앞에서 그만 참았던 눈물과 하소연을 쏟아놨다. “왜 이 많은 동료들 중에 당신만 여기 있는 거냐?” “계속 참아왔는데 지금까지 장례도 못치르고 이게 뭐냐?”

충청도에서 올라왔다는 고인의 장인어른(역시 탈북민이다)은 장례식장에서 봉사를 하는 업체 직원들을 붙잡고 “대한민국 사회가 이런 사회였냐? 새터민이라고 이렇게 버림받아야 하느냐?”라며 울부짖었다. 거기 있던 장례업체 직원들, 지인들 누구 하나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훔칠 뿐이었다. 대한민국은 지금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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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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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6-08-22 10:06:45

    이게 다 닭그네년때문이야~!!!!! 탈북자들을 강제로 대한민국에 오게한뒤 헬조선의 길로 걷게 만들었잖어~!!!!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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