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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협상,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 지난 28일 한·일 양국은 위안부 협상의 최종적 해결을 선언했다. 일본은 물론 박근혜 정부 역시 더 이상 위안부 이야기가 한일관계에 나오지 않게 하려고 작정한 듯하다.

“부끄럽다.” 이 한 마디밖에 할 수밖에 없다.
협상 내용은 한 마디로 “일본은 책임을 통감하고 10억 엔을 낸다.” 이다. 법적 책임인지 도의적 책임인지도 모른다. 물론 기시다 일본 외무상이 ‘일본이 내는 100억 원은 배상이 아니다.’라며 법적 책임을 회피한 것을 보면 무슨 책임인지 알 수 있을 듯하다. 가장 큰 문제는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이 원천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의 그간 모습을 보면서 이번 사과가 진심어린 사과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아베 총리의 사과문을 대독하던 날,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소녀상 철거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협상을 ‘최종합의’라고 하며 타결하고 온 우리 정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산케이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보도할 때,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하던 박근혜 정부의 용기는 어디로 갔는가? 피해 당사자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법적 책임도 묻지 않은 채 단 돈 100억 원에 협상을 타결 지은 외교부는 웃으며 악수하자고 부끄러운 손이 내밀어 지던가.

위안부 협상 타결은 현 정권 무능력, 무책임의 단면
위안부 협상은 단순히 역사 문제 또는 피해자인 할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지금 어떤지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시대적 과제를 돈으로 치환하려는 그들의 저급한 천민자본주의와 당사자의 의견을 철저히 배재한 국가 중심적 사고방식, 그리고 역으로 피해자를 억압하는 힘센 가해자의 민낯이 고스란히 묻어난 결과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 때도 메르스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번에는 내가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위안부 협상 결과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고 우리의 문제인 이유이다.

정당을 해산하고, 선거에 개입하고, 역사교과서를 단일화하는 현 정부의 무책임과 세월호, 메르스, 위안부 협상에서 보인 무능력까지, 민주주의와 헌법을 유린하는 그들의 무책임과 무능력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수용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분단의 문제에서 기인한 시대적 과제, 그들은 의지도 능력도 없다.
이번 협상의 뒷배경에는 미국이 있다. 미국은 위안부 협상에 즉각 환영했다. 동북아 정세를 주도하려는 미국의 입장이 맞물려 한·미·일 군사동맹을 공고히 하려는 게 이번 위안부 협상의 이면이다. 남북관계가 악화된 현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외교적 선택폭은 좁다. 북한과 대립하는 현 상황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을 거부할 명분을 찾기 힘들다.

분단으로 인한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다. 이념적 편 가르기와 경직되고 수직적 사회구조,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한국 사회의 단면은 분단 문제에 기인한 바가 크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배재된다면 분단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문제는 지속될 것이다. 또 다시 국가라는 폭력성 앞에 상처가 커질 것이고, 돈 몇 푼에 개개인의 삶이 송두리 채 부정당하며 힘없는 피해자는 계속 피해자로 남을 것이다.

   
 

분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이 지긋지긋한 부끄러운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문제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다. 통일대박이니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니 통일준비니 단지 구호에 그치고 있다. 정권을 바꿔야 한다. 담벼락에 한 번이라고, SNS에 한 번이라도, 댓글이라도 달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시민의날개(http://me2.do/GTfxHHf7), 아바즈(http://me2.do/5rHbjjGJ) 등에서 위안부 협상 반대 서명이 진행 중이다. 뭐든지 해보자.

홍명근/ 시민의날개 팀장

홍명근  lolen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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