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한국교회에는 왜 '자기 신학화'가 없는가?

지난 5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주최하는 <분단 70년, 한국 기독교의 성찰과 반성>이라는 제목의 정기학술심포지움이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개최되었다. 다음은 거기에서 발표한 필자의 기조강연의 마지막 부분인 "자기 신학화의 반성"을 여기에 옮긴다.

한국 교회가 성장하는 만큼 한국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는 자기 신학을 갖지 않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한국에 자기 신학이 없다는 이런 전제는 좀 더 검증을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고 또 한국에 나름대로 신학이 있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기 신학은 한국 그리스도인이 자기 상황을 통해 고민하면서 스스로 체계화한 신학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토착화신학’이나 ‘민중신학’을 제외하고는 자기 신학에 대한 고민조차 가진 것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 개신교는 세계에 내놓을 신학은 물론이고, 신학자조차 아직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자기 현실을 신학화한 뚜렷한 결과도 잘 보이지 않지만, 이를 위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별로 노력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한국의 풍토를 기반으로 이론적 틀을 갖추어 신학화한 작업으로, ‘민중신학’이 한때 세계에 소개되었으나 그 후속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최근에는 제대로 거론되지 않는 실정이다.

한국의 여러 문제 해결에 한국 교회가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는 자기 신학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자기 상황을 두고 고민도 성찰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깊은 고민과 성찰은 어떤 형태로든 신학화의 작업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민중신학’의 역사적 위치를 인정한다.

한국의 신학을 두고 더러 ‘수입신학’ 혹은 ‘번역신학’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의 상황과 고민을 통해 성립된 신학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주교가 첫 세례자를 낸(1784) 지 230년이 넘었고 개신교도 첫 세례자가 나온 것이 130년이 넘었는데도 ‘한국의 신학’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은 신학화의 전제가 되는 상황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고, 그 상황을 문제의식으로 승화시켜 신학화의 고민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이 자기 신학으로 승화시킬 수많은 상황들을 경험했지만, 그걸 신학화의 작업으로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문제의식에 투철하지 못했거나, 신학화를 위한 영성이 부족했다는 것이라 생각된다.

기독교는 그 이전의 한국의 다른 종교의 상황과 비춰 보더라도, 학적 체계를 갖춘 학자들의 출현이 늦다는 점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신라에서 불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해(527)로부터 원효(元曉, 617-686)가 나타난 것은 100여년이 된 시기이며, 그의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이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등의 100여종의 저술로 동양 불교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불교가 공인된 지 140년이 되기 전이다. 소통의 능력이 지금보다 훨씬 뒤졌던 그 시기에 원효 같은 이가 그렇게 빨리 나왔다는 것은 한국 그리스도교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성리학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국 개신교에서 일찍부터 신학화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인의 풍토에 전래된 기독교가 이 땅에 뿌리내리는 문제를 두고 소위 토착화를 위한 신학적 시도가 일찍부터 있었다. 토착화신학이 1960년대에 이뤄졌다면 1970년대에는 민중신학이 대두했다. 민중신학은 군사정권과 유신의 엄혹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민중의 현실에 눈을 뜨고 민중과 연대하여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경험을 신학적으로 성찰하여 내놓은 것”이다. 민중을 신학의 주제로 삼자고 주장하면서 안병무는 ‘무리’ 혹은 ‘민중’으로 번역된 마가복음의 오클로스를 예수 사역의 중심부에 갖다 놓는 등 민중신학을 심화시켰다. 그는 서구신학자들로부터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오클로스를 예수사건 이해의 중심부에 갖다놓음으로써 성경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이해의 방식을 전환시켰다. 이것은 그 학자들이 민중과 함께 고난 받는 경험과 의식을 신학적으로 승화시킨 데서 가능했다.

토착화신학이나 민중신학이 한국에서 가능했던 것은 그런 연구자들이 속했던 기관이 비교적 학문의 자유가 보장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학문의 자유가 없는 곳에 이런 신학화의 가능성이 나타날 수 없다. 오늘날 소위 보수 복음주의 계통에서 자기 문제를 신학화하려는 고민이 보이지 않는 것은, 학자의 창의성 못지않게 용기의 문제이기도 한데, 이는 학자가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기관의 신학적 제약을 벗어나야 한다는 과제를 얼마나 수행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한국의 교계가 창의적이거나, 자기 색깔과 다른 신학을 용납할 만큼 관용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신학화를 창의적으로 해 나가려면 소속교단으로부터 퇴출당할 수도 있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교단 설립자에 대한 비판마저 용납되지 않는 풍토에서 신학화에 창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학문의 자유가 없는 곳에 비판의 가능성이 허용되지 않는다. 신학자들의 학문자유와 비판이 용납되지 않는 상황은 교회의 이상한 신앙행태만 자라게 한다. 신학적으로 제대로 비판을 받지 못하고 검증도 되지 않는, 어쩌면 신학적 고민이 없는 교회들의 ‘신학 없는’ 신앙이 역으로 신학교의 교육을 폐쇄적인 상태로 몰아가고 ‘신학화’의 가능성마저 잘라버리게 되었다.

과거 ‘토착화’를 고민할 때에는 타종교와의 유사성과 상이점을 천착하여 기독교적인 주체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런 노력이 없는 지금은 ‘복음의 샤마니즘화’가 광신적으로 진전되고 있어도 이를 분간할 영성과 지성을 다 잃어버렸다. 군사독재체제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산고를 겪은 민중신학은 연약한 ‘민중’을 자각시켜 하나님의 정의, 사랑, 생명, 평화를 확인하고 실천, 투쟁토록 했지만, 장로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 사회에 교회가 아편중독에 걸린 것처럼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어도 이제는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교계가 부패를 향해 속도를 내는데도 신학자는 말이 없다. 남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한계가 있듯이, ‘수입신학’ ‘번역신학’ 가지고는 한국 사회와 교회의 영성적 문제를 풀어가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교회와 신학교, 무수한 신자들이 있음에도 한국 교회가 세계에 내놓을 만한 자기 신학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요, 우리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풀어가는 데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번역신학’, ‘수입신학’에 머물면서 자기문제를 스스로의 고민과 영성으로 극복해가지 않는 한국 신학계, 특히 한국 교회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보수·복음주의 신학계는 여기에 답해야 한다.

   
 

‘한국에서 신학화의 작업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은 신학도 하나의 학문이라는 평범한 명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면 학문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문제의식에서다. 문제의식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상황에서다. 결국 신학이라는 학문도 주변의 상황을 문제의식으로 끌어올리고 그 문제의식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신학화’의 작업은 상황을 문제의식으로 끌어올리고 그 문제의식을 논리적으로 분석, 종합하여 풀어내는 작업이다. 신학이 상황의식과 무관하다고 우기는 이도 있겠지만, 칼 바르트나 라인홀드 니버에게서 보이듯이 상황과 신학은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다. 신학의 학문하는 방법이 다른 학문과 다를 바가 없지만, 문제의식으로 승화된 상황을 성경과 영성에 의해 풀어가는 데에 독특성이 있다. 신학화의 작업은 한국의 개성적이고 특수한 상황에서 도출된 것인 만큼 그것을 어떻게 보편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는가 하는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 시대 한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서 나타난 문제의식이 학문적으로 성숙하려면 반드시 보편화의 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만열  mahnyol@hanmail.net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박혜연 2015-12-08 10:42:55

    대한민국 개신교의 특징 오로지 성공만을 강조하고 개신교외의 다른종교를 무조건 사탄 마귀로 규정하기때문이다~!!!!   삭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