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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P와 동아시아 국가들의 셈법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현안 진단'

2015년 10월 4일,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타결되었다. 2005년 칠레, 뉴질랜드, 싱가포르, 브루나이 4개국이 높은 수준의 개방을 목적으로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의 적극적 주도로 총 12개 국가들이 참여하는 경제통합체로 완성된 것이다. 이번 TPP 타결은 세계경제 및 통상체제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간 교역과 경제통합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글에서는 TPP가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전망한다.

미국은 이번 TPP 타결로 동아시아에 대한 경제적 연계성과 영향력을 높이고, 회원국과 함께 세계경제의 표준을 이끌어갈 기본틀을 마련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12개의 TPP 회원국 중에는 일본과 싱가포르,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호주, 뉴질랜드 등이 포함되어 있어 미국이 동아시아 내에서도 생산네트워크를 보다 강화할 수 있는 입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미국이 배제된 채 추진되었던 동아시아의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이 TPP 가입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필리핀을 비롯해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이 추가로 TPP에 가입한다면 현재 개방수준이 매운 낮은 형태로 추진되고 있는 RCEP는 형식상의 경제통합체로 될 개연성도 커진다.

미국은 TPP 협상에서 ‘Platinum Standard’ 도입을 주장해왔다. 이는 기존 FTA에서는 포함되지 못했던 농산품의 무차별적 관세철폐,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 노동, 환경, 원산지규정(Rules of Origin), 투자자 분쟁해결 체계(Settlement for Investment-State Dispute), 경쟁 관련 조항(SOEs 관련)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것으로, 여타 FTA 보다 높은 수준의 FTA를 체결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TPP 초기 멤버 국가들의 플랫폼을 이용하여 높은 수준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들어 세계 경제질서를 이끌어 간다는 기본 구상과도 부합되는 부분이다.

   
▲ 지난 15일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워싱턴D.C.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27차 한미 재계회의에서 “한국이 TPP에 가입하게 되면 (한미) 양국 기업에 보다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사진은 제27차 한미 재계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박 대통령. ⓒ청와대

따라서 미국은 ‘Platinum Standard’의 관철을 통해 새로운 아시아-태평양 경제공동체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고, 향후 APEC이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Free Trade Area of the Asia-Pacific)로 이행하는 것을 주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의 TPP 가입도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Platinum Standard’로 중국이 현 상황에서 높은 수준의 개방을 수용하면서까지 TPP에 가입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은 TPP를 활용하여 상당 기간 중국을 배제한 채로 동아시아에서의 경제적·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동아시아에서의 경제적 입지를 더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일본은 그동안 한국의 동시다발적 FTA 체결 정책으로 한국과의 경쟁에서 불리했던 자국 산업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과의 동아시아 경제통합 경쟁에 있어서 TPP로 동아시아 국가 일부와의 연계를 우선적으로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동아시아 경제통합 논의에서도 기존에 일본이 강조해왔던 동아시아 포괄적 경제파트너십(CEPEA)을 관철시킬 수 있는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였다. 국내적으로 일본은 이번 TPP 타결로 오랜 기간 보조금에 의해서 연명해왔던 농업부문의 개혁을 추진하고, 개방을 통해 산업구조를 개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중국은 이번 TPP 타결로 자국 주도의 동아시아 경제통합과 역내 헤게모니 확대에 다소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동아시아 경제통합은 중국 주도의 ASEAN+3(EAFTA)와 일본이 주도했던 ASEAN+6(CEPEA)가 경쟁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일본이 TPP에 참여하게 되면서 중국은 일본이 주장해왔던 ASEAN+6 중심의 경제통합을 수용하고, ASEAN+6와 함께 RCEP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RCEP는 회원국들간 경제 및 제도적 격차가 커 매우 낮은 수준의 경제통합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효과적 측면에서는 TPP에 비해 크게 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일대일로와 AIIB를 통해 ASEAN 국가들과의 연계성 강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TPP는 시장개방 수준이 상당히 높아 중국이 TPP 가입에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TPP 가입을 공식화했다. 그동안 TPP 12개국과 양자 FTA를 체결했거나 체결예정이어서 TPP 가입으로 기대되는 추가 혜택이 없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 한국이 TPP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원산지 규정에 따른 불이익 등으로 손실이 크기 때문에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가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TPP 참여는 이미 참여하고 있는 일본과 FTA를 체결하는 효과를 가지게 되며, 이는 현재 한일간 관세 부과 수준으로 볼 때 한국이 훨씬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TPP 가입 시 일본기업에 대한 한국기업들의 상대적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크다.

TPP 가입에 따른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공존하지만 한국이 TPP에 가입하게 된다면 기존에 구축한 FTA 플랫폼을 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의 확대로 다양한 국적의 중간재가 투입되는 현 상황에서 원산지 규정을 충족시키기가 훨씬 수월한 장점이 있다. 또한 TPP처럼 자원, 노동, 기술, 시장 등 다양한 특장점을 보유한 국가들끼리의 다자간 경제통합체는 한국이 지금까지 체결해온 양자간 FTA에 비해 원산지 규정을 충족시키기가 훨씬 유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TPP 참여를 보다 적극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으며, 개성공단을 역외 가공지역으로 인정받는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TPP는 단순한 무역협정이 아니다. 미국은 세계 경제질서를 선도하고 게임의 룰을 바꾸어가는 주체로서 동아시아에서의 경제적·외교적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다자체제에서의 원산지 규정의 장점과 국제표준을 공유하는 차원에서도 TPP에 가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과 교역량이 더 많고 생산 네트워크가 더 긴밀히 연계된 중국을 비롯한 RCEP 회원국(ASEAN+6)과의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TPP 가입으로 현재 한국이 FTA로 확보한 거대경제권과의 FTA 플랫폼을 더욱 고도화 시키고, 이를 활용하여 한국 경제가 미국, 일본과 중국을 연계하는 경제허브로서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 글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정형곤  ifes@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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