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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계간 [통일코리아] 2014년 겨울호
남북관계의 확실한 돌파구,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한반도 분단의 장기화 원인
한반도에서 70여년 동안 통일을 이루지 못하는 데는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남과 북의 대립갈등, 북한의 수령(지도자) 중심의 유일체제 구축과 3대 세습, 대북정책을 둘러싼 우리 사회 내부의 남남갈등,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 주변 국가들의 2개의 한국(The Two Koreas)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70년 동안 분단체제를 지속하는 데는 남북한의 두 개의 권력과 체제가 ‘적대적 의존관계’를 형성하면서 서로 상대방 권력과 체제를 자기 권력과 체제로 흡수 또는 적화하려는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을 지속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역대 보수 정부들이 권력투쟁론적으로 남북관계를 다루다보니 중앙정부가 대북정보를 독점하고 교류협력과 관련해서도 중앙집권적 통제권을 행사해왔다. 그렇게 한 데는 교류협력과정에서 북한의 통일전선선술이 작용하는 것과 함께 북한이 얻어가는 경제적 이익이 핵개발 등 군사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군사 중심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 내부의 물적 토대도 크게 변화시키지 못했다.

남북화해협력 노력의 좌절
진보정부인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잠시 남북 화해협력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보수정부인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진 두 차례의 정상회담 합의인 2000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이행의지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관계는 거의 모두 단절됐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에 공조하면서 ‘기다리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경제난에 봉착한 북한이 식량과 비료지원을 중단하고 압박하면 굴복하고 나올 것이란 낙관적 기대와는 달리, 북한은 북-중 경협을 확대하면서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발사,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맞서며 대남 강경 수위를 높였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한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통일·대북정책의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년 동안 이명박 정부 시기부터 단절됐던 남북관계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로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드레스덴 선언, 작은 통로론 등을 내놓고 북한이 호응해 오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체제통일’(흡수통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고 우선 한미합동군사연습과 비방중상 중지, 특히 대북 전단 살포 중지부터 진정성을 보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장기간 단절됨으로써 개성공단을 제외한 대북투자기업과 남북경협사업에 뛰어들었던 영세업자들의 경제적 손실과 고통은 매우 크다. 대북사업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국민들도 남북관계 경색과 소모적인 대립갈등으로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한국경제가 장기침체기로 빠져든 것도 소모적인 남북갈등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한 원인일 수 있다.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대륙의 북방경제로 경제영토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최근의 움직임
남북한 모두 지난해(2014년)를 관계복원의 적기로 생각하고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광복 70주년을 맞아야 민족 앞에 면목이 선다는 부담감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난해 연초부터 남한은 ‘통일대박론’을, 북한은 ‘중대제안’(상호비방중상 중지, 상대방에 대한 모든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중지, 핵 재난 방지를 위한 상호조치)을 내놓고 관계복원을 모색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3월 28일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인 드레스덴선언을 통해서 대북 인도적 지원과 민생인프라 구축 및 남북한 동질성 회복 등 3대 제안을 했다. 8·15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환경, 민생, 문화 분야에서부터 ‘작은 통로’를 열 것을 제안했다. 박근혜 정부의 드레스덴 선언과 작은 통로 열기는 서독의 ‘작은 발걸음’ 정책과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을 벤치마킹하여 통일을 앞당기려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급변사태론에서 탈피하여 평화통일 구상을 밝히고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도 2014년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중요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국방위원회 중대제안과 특별성명, 공화국 성명 등을 연이어 발표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강하게 희망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남과 북은 고위급 접촉에 상호 비방중상 중지에 합의했지만 이를 실천하지 못했다. 지난 연말에 2차 고위급 접촉을 시도했지만 대북전단 살포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렬되고 말았다.

올해는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을 맞는 역사적 의미가 큰 해다. 신년 벽두부터 남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이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화의 분위기 마련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2015년 신년사를 통해서 최고위급회담(정상회담)의 문을 열어두고 남북관계 개선의지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북한은 올해가 분단 70년을 맞는 해란 점을 반영해서 대화와 협상,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하여 남북관계의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원론적 수준에서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남한이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분위기와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하면서 공을 남측에 넘겼다.

박근혜 대통령은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대화에 응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산가족문제의 근본적 해결, 북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민족동질성 회복 작업에 남북한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여 함께 통일의 문을 열어나가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분단고통 해소와 평화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 필요하다면 전제조건 없이 남북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 김정은 제1비서의 정상회담 제안에 박근혜 대통령이 화답함으로써 올해 남북정상회담 추진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올해 신년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핵문제 해결 노력과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을 연계시키지 않고 병행 추진하겠다는 것과, 북미현안과 남북현안을 분리해서 남북대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가 남북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이게 해결 안 되는 데 평화통일을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남북간, 또는 다자협의를 통해 대화로 이 문제(비핵화)도 풀어가야 한다”고 밝혀 핵문제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하지 않고 의제로 하거나 6자회담 등 다자대화 틀에서 이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는 우리대로 원칙을 갖고 북한에 대해 대화에 응해 현안을 풀어 보자”고 밝힘으로써 북미관계와 관계없이 남북현안은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남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
분단 70년을 맞는 올해를 계기로 시대착오적이고 소모적인 분단체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분단국가 정치권력의 속성을 고려할 때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정상회담이다. 하지만 약효가 빠를수록 부작용도 많듯이 정상회담 추진에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김정은 제1비서가 주장한 ‘분위기와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미합동 군사연습 중지, 제도통일(흡수통일) 배제, 대북전단 살포중단 등의 문제와 관련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과 리더십을 발휘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도 있다.

남북정상회담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북핵문제다. 북한은 핵개발의 동기를 북미 적대관계에서 찾는다.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하려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 결국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관련한 해법을 찾지 못하면 남북정상회담 성사는 어려울 것이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때에도 북미 적대관계 해소 및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전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구상에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호응하여 1999년 가을 ‘페리 프로세스’를 가동하면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에서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도 6자회담에서 북핵 ‘불능화’ 합의가 이뤄지고 부시 대통령이 평화협정 체결에 앞서 ‘종전선언’을 먼저 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에 북한이 정상회담에 나온 것은 6·15공동선언의 사문화를 막고, 종전선언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두 번의 정상회담의 경험에 비춰볼 때 박근혜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핵해법과 관련한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국가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북한의 연이은 장거리 미사일발사와 핵실험으로 취해진 유엔 차원의 제재와 압력을 가하는 시기다. 미국 등 관련 국가들 중에는 남북대화가 이뤄져 5·24조치가 해제되고, 금강산관광이 재개될 경우 대북 압박공조가 깨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신년휴가 중에 급히 북한의 해킹사건에 대한 추가 제재를 가한 데는 연초부터 본격화하고 있는 남북대화 움직임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가 내포돼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이 제재를 받고 있는 ‘불량국가’임을 환기시켜 한반도에서의 섣부른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을 경계하는지도 모른다.

정상회담은 해묵은 현안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대화방식이다. 남북정상이 바로 만나 남북관계를 단번에 복원하고 핵문제 등 여러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대화의 문을 열 수도 있다. 그렇게 하려면 반대여론을 설득할 수 있는 리더십이 있어야 하고, 회담 이후 성과를 내야 한다. 정상회담 이후 핵문제 해결 등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교류협력의 증대 등 성과가 나타난다면 남북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강화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리더십이 약화되고 국정수행에도 부담이 될 것이다. 결국 성과가 기대되지 않은 정상회담은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닥 희망을 거는 것은 2015년 광복과 분단 70년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란 점을 고려하면, 올해가 남북정상회담 추진의 적기다. 집권 이후 지금까지 어떤 나라와도 정상회담을 하지 않은 김정은 제1비서가 첫 정상회담을 남북정상회담으로 시작할지도 관심사다.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는 김정은 정권이 박근혜 정부와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대외관계를 확장한다면 인민생활향상 공약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제언
이명박 정부 때 단절됐던 남북관계를 박근혜 정부 2년이 지나도록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7여년 동안 남북관계가 단절됨에 따라 남북불신은 더 커지고 있다. 남북관계가 장기간 단절되면서 남북 사이에 있었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제재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향상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에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대남위협을 지속함으로써 남북관계 복원의 동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마련한 대화의 기회는 회담 대표의 ‘격’의 문제와 대북전단 살포문제로 판이 깨졌다. 남북관계 복원을 가로막는 요인으로는 북핵문제, 기존합의 이행문제, 대북정책의 일관성 문제 등을 꼽을 수 있다.

첫째, 남북관계 복원의 최대의 걸림돌인 북핵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아야 한다. 역대 정부 모두 북핵해결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북한이 생존전략차원에서 핵개발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개발의 동기를 북-미 적대관계에서 찾고 있다.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평화체제 구축 등 체제유지에 대한 자신감이 전제되지 않으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등 서방세계가 북핵폐기 모델로 제시했던 ‘리비아모델’과 ‘우크라이나모델’의 유효성이 사라지고, 북한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고수함으로써 북핵해결은 더욱 어려워졌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서는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막는 등 북핵 고도화를 막는 노력이 시급하다. 북핵 고도화 차단을 위해서는 선핵폐기론에서 ‘선 북핵고도화 차단 후 폐기’로 북핵해법의 수순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북미협상 또는 한미중협상을 통해서 ‘2·29합의’와 유사한 형태의 북핵해법의 큰 흐름을 잡고 6자회담 재개 또는 다양한 형태의 양자 및 다자협상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둘째, 기존 합의를 이행해야 새로운 합의를 만들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강조하면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이행의지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남북관계 재설정의 첫 단추를 꿰지 못했다. 북한은 상대를 부정하는 남측 정부와 새로운 관계를 설정할 수 없다고 버팀으로써 관계복원에 실패했다. 박근혜 정부는 기존 합의에 대한 이행의지를 밝히기보다 ‘드레스덴선언’, ‘작은 통로 열기’ 등 새로운 대북구상을 연이어 밝혔다. 이에 대해 북한은 “북남합의들을 전면이행하고 6·15 통일시대에 활성화되어온 각 분야별, 분과별 협력교류기구들을 되살리면 북남관계는 저절로 개선되게 된다”(2014년 4월 12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고 주장했다. 남북간 신뢰구축의 첫 단계는 기존 합의의 이행이다. 기존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새로운 합의를 만든다고 해도 이행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5년 단위로 정권이 바뀌지만 북한의 경우 3대 세습으로 정권의 연속성을 가진다. 선대 정권의 합의를 부정할 경우 현재의 김정은 정권을 부정하는 의미를 가진다. 대화상대를 부정하면서 대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먼저 기존 합의를 인정하고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관계복원의 지름길일 것이다.

셋째, 대북·통일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독일의 통일경험에 비춰보면 우리의 통일노력은 일관성이 없었고 전략도 구체적이지 않았다. 또한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세계사적 흐름을 통일의 촉진요인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독일통일은 거창한 통일방안에 의한 것이 아니다. ‘작은 발걸음’이 모여 통일의 대업을 이룬 것이다. 동서독의 경우 수많은 간첩사건과 서독으로 탈출하는 동독주민에 대한 총격사건이 발생했음에도 교류협력을 지속하고 통일을 달성했다. 우리의 경우 2008년 7월 11일 금강산관광객 피격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은 6년 동안 중단되고 있으며,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태 이후 5·24조치가 취해져 남북교류협력은 4년 동안 거의 중단됐다.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장거리로켓발사에 따른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와 남북관계 차원의 제재강화로 통일을 위한 작은 통로가 거의 다 막혀버렸다. ‘통일대박론’을 실현하려면 통일준비위원회 등이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여 투명성 있게 통일논의를 펼쳐가고, 좀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대북·통일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다시 작은 통로부터 열고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8·15 경축사에서 ‘환경협력의 통로’, ‘민생의 통로’, ‘문화의 통로’를 시급히 열자고 북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남측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정치군사적 대결을 해소하는 ‘근본문제’부터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북한이 상호 적대적 군사행동 중지와 남북대결의 악순환의 고리 끊기,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 근본문제를 제기하는 데 비해서, 박근혜 정부는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행동, 관광객 피격사건, 천안함-연평도사태 등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 등을 요구하면서, 인도적 대북지원과 동북아국가들 사이의 비정치적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조하는 등 기능주의적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한 황병서 북한 군총정치국장은 김정은 제1비서의 뜻이라며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로 열어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작은 통로는 민생통로인데 비해, 북한이 생각하는 오솔길은 정치군사적 작은 길인 것 같다. 남측의 작은 통로론과 북측의 오솔길론이 이익의 조화점을 찾기 위해서는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호혜적인 접촉통로를 많이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대북전단 문제가 핵, 미사일, 남북교류협력 등 남북 현안을 압도하고 다양한 접촉 통로를 막는 ‘비정상’은 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년을 맞는 해다. 올해가 갖는 민족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남북한 지도자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분단이 지속되도록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민초들로부터의 물음에 답해야 하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력을 잡은 남과 북의 지도자들은 자기체제에 속한 국민과 인민을 틀어쥐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흡수통일과 적화통일을 추진하거나 꿈꾸며 대다수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주지 못하고 분단 70년, 두 세대를 흘러 보냈다. 부부, 부자, 형제자매간에 만날 수 없고 생사확인도 할 수 없는 모순은 하루빨리 극복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이념과 체제가 천륜을 가로 막아서는 안 된다.

   
 

올해가 가지는 역사적 의의를 고려할 때 남북관계와 통일문제 등과 관련한 담론은 무성하게 나올 것이다. 담론을 성과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민초들의 실망감은 더욱 커지고 남북 불신도 높아질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고유환  yhkoh@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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