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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와 능력, 열린 협동을 위한 지속적인 성찰

페이스북에서 누군가의 진지한 고민을 보고, 생각을 가다듬고 쓴다. 협동조합을 하는 많은 분들도 마찬가지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다. ‘** Park’ 님의 고민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386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이**씨는 100억대의 매출을 올리는 벤처기업의 사장이 되었으나 결국 벤처붐이 꺼지면서 직원들을 정리해고 했고, 결국 기업문을 닫았다. 왜 그는 ‘악덕 기업주’가 되었는가?

둘째, 정**씨, 이**씨가 만든 마인드***이라는 회사는 사회적 공헌을 위한 좋은 기업을 만들었고, 직원주주회사가 되었다. 하지만 매출 부진으로 인해 직원을 해고하게 되었고, 이를 막기 위해 노조가 결성되었을 때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선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장경제 안으로 들어간 후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셋째, 박영선 의원은 과거 누구보다 비타협적인 정치인이었는데 새정치연합의 원내대표가 된 후 세월호 관련 타협을 하게 되었다. 왜?

넷째, 변호사 노무현과 문재인은 한진중공업 노조운동을 적극 변론하였으나, 대통령과 수석이 된 후 당시 변론했던 노동운동 지도자가 정리해고와 노동탄압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을 때까지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의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왜?

네 가지 사례를 정리한 다음 “이것은 본질적으로는 무엇이 '선한 사람들로 하여금' '나쁜 선택'을 하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다.

내가 보기에 앞의 두 사례는 시장논리가 주도적인 사회에서 조직을 경영할 때 발생하는 문제이며, 뒤의 두 사례는 사회정치적인 역할 변화에 대해 적응하는 개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세밀하게 논의하려면 지면이 많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질문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다.

먼저 제시한 사례에 대해 짚고 가자. 둘째 사례와 셋째 사례가 “나쁜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 나는 다른 생각이다. 둘째 사례를 든 질문자는 사회적 목적을 가진 기업을 만든 선택과, 매출 부진이라는 나쁜 상황에 대응한 해고라는 선택과,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나쁜 결정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함께 정한 노동자주주회사라는 구조를 채택했다는 선택 중 무엇이 나쁜 선택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좋은 뜻으로 회사를 만들었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 최소한의 희생을 결정했고, 그것도 구성원들의 반발이 있어 책임자들이 조정했다. 어디에서나 나타날 조직운영상의 일상이지 나쁜 선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셋째 사례에 대해서 박영선 원내대표가 새정치연합의 내외부적 상황을 판단하고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가장 그럴 듯한 선택이라고 생각한 새누리당과의 합의, 질문자는 배신적 타협이라고 표현한 합의가 아닌 더 나은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자신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저런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혁명을 하자”는 선택을 뺀 나머지 모든 선택은 나쁜 선택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첫째와 넷째 선택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오히려 질문자의 질문 그 자체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질문의 숨어 있는 전제는 선의를 가지고 있으면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착한 마음을 가지기만 하면 전지전능해 지는 것이 아니라는 상식적인 사실만 알아도 이런 질문은 올바르지 않다.

그리고 셋째 사례를 뺀 나머지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는 질문자의 숨어 있는 전제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를 해고하는 일체의 행위는 ‘나쁜 선택’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각자 최선을 다한 선택의 결과 외부적 환경 변화나 역량의 부족으로 나타나는 결정과 경영책임자 혹은 오너의 사리사욕을 위한 이기적 선택을 동일시하는 과도한 단순화가 숨어 있다. 또한 일단 근로계약이 체결된 노동자는 경영상의 결과에 대한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숨어 있다.

하지만 모든 협동조합 지도자들이 이미 몸으로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겠지만 시장의 구조나 고객들의 선호구조는 개별 조직에게는 일반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이 상황에서 가능한 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통해 자신의 포지션을 향상, 강화시켜 나가려는 활동은 어떤 때는 성공하지만, 어떤 때는 실패하게 된다. 의사결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자의 참여 수준에 비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권리와 의무가 동등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외부적 환경이 좋아서 조직에 참여하는 개인의 역량보다 더 높은 보답을 받을 수 있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외부적 환경의 악화와 혹은 제어할 수 없는 ‘운’으로 인해 개개인의 역량보다 낮은 보답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조직 지도자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결국 이 문제는 조직의 해체나 인원의 감축 등 돌고 돌아서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약 외부적 환경이 열악한 것을 알지 못하고 참여한 구성원은 그 모름과 알려고 하지 않음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가질 수밖에 없다. 둘째 사례는 이런 사례를 잘 보여준다.

둘째 사례는 네 가지 사례 중 협동조합의 운영과 가장 밀접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을 줄이려면 선의에는 반드시 그 선의가 실현되도록 하는 ‘능력’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시장 상황 속에서 존재하는 조직이 유지되도록 하는 거래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기술들과 조직 내외부의 갈등과 관리비용을 줄이는 사회적 기술이 필요하다. 이때의 기술들은 시장의 변화를 독립변수로 생각하고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첫째 사례는 외부적 환경에 대한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 조직 전체를 해체한 경우이다. 무엇보다 시장 혹은 외부적 환경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독배일 수도 있지만, 잘만 올라타면 다른 기업들도 누리는 혜택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거대한 금융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금융자본이 움직이는 상황을 활용하지 못할 경우, 경쟁업체에게 뒤떨어지지는 않을까? 몰려드는 자본으로 빠르게 방파제를 쌓는다면 외적 환경이 악화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역량의 한계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스피드경영을 생각하고 리스크를 감수할 것인가? 아마 이런 고민들 속에서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본다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렇지 않았다면 지속가능하게 경영될 것이라는 확신은 누가 해 줄 수 있는가?

협동조합을 운영하다 보면 외부적 환경이 변화하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어제까지 올바른 선택이 외부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잘못된 선택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우리 조직의 좋은 성과 때문에 외부적 환경이 변화되어 거기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데, 적응을 못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성공의 딜레마다.

외부적 환경의 변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협동조합간의 협동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조합원들간의 상호성을 제도화한 것이 협동조합이라면, 협동조합들간의 협동을 강화하기 위해 협동조합들간의 상호적 유대와 공동의 사업모델을 구성하고 강화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면 외부적 환경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움직임에 힘을 실어 주거나 참여해야 한다. 우리가 사회,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동을 하기로 작정했다면 논리적 귀결은 지속적으로 협동의 범위와 장을 넓혀 나가는 것이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이를 “열린 협동”이라고 하자. 업종별 연합회라는 가장 대표적인 형태부터 협동조합복합체, 지역별 협의회, 사업연합 등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기업도 모든 외부적 환경의 변화를 내적인 역량으로 해결할 수 없다. 개인이든 영리기업이든 언제나 네트워크와 연대를 할 수 밖에 없다. 선의가 좋은 선택과 결과를 만들어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열린 협동을 통해 외부적 환경의 변화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주어진 정보 하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여야 한다.

   
 

셋째와 넷째 사례는 성공의 결과가 자신의 존재를 바꾸게 하고, 바뀐 존재는 의식을 바꾸게 된다는 점이다. 이때 그 개인 혹은 조직은 이전의 존재와 비교해 볼 때 같으면서, 같지 않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모습에 대해 동의했던 사람들은 성공을 통해 변화된 의식과 활동에 대해 왠지 생경함을 느끼게 되고 나와 다른 선택을 하면 나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판단하는 사람도 그리고 바뀐 상황에서 기존과 다른 선택을 한 사람도 결국은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찰은 스스로의 판단에 대해 미세조정을 하게 만들고, 자신의 욕망이 조직이나 사회에 부하를 주지 않는지 점검하게 한다.

선의가 곧 높은 성과를 곧바로 만들지는 않는다. 따라서 선의가 선의에 값하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능력의 함양, 열린 협동, 지속적 성찰을 추구하면서 생각하며 체화해 나가야 한다.

김기태/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이 글은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김기태  ccicoop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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