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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전 장관 대담, “통일은 정부 아닌 시민이 주역”[통일맘이 간다] -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인터뷰

세월호 참사 여파로 ‘국가안보’보다 ‘국민안보’ 이슈가 여느 때보다 뜨겁게 회자되는 가운데,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을 만났다. 통일논의는 그동안 일상화된 분단구조 속에서 정치적 당파성에서 벗어나지 못해왔던 것이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수와 진보 정부에서 두루 활약했던 임 이사장의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임 이사장은 노태우 정부에서 외교안보연구원 원장을 역임하면서 1990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를 맡았고, 1992년 통일원 차관과 남북교류협력분과위원장으로 남북고위급회담에 관여했다. 1995년 1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설립한 아태평화재단 사무총장이 된 이후, 임 이사장은 국민의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 통일부장관, 국정원장, 통일외교안보특보 등으로 활약했다. 임 이사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탈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1992년 남북이 최초로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의 실무 책임자 중 가장 대표적인 인사라고 할 수 있다.

남북고위급회담과 정상회담 등 현장 경험을 두루 쌓아 오신 임 이사장님과 인터뷰할 수 있게 되어 통일운동에 참여하고 또, 북한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큰 영광입니다. 임 이사장님께서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시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본격적인 질문을 드리기 전에, 먼저 간략하게 신앙적 배경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압록강 근처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님은 교회 장로님이셨고 어머님은 권사님이셔서 태어날 때부터 크리스천이었지요. 제 아버님은 성자로 추앙받으실 만큼 평생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예수를 닮은 삶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아버님의 독실한 신앙생활은 나의 일생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 집 가훈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였는데 이 가르침은 항상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인생관을 갖게 하는 원천이었습니다. 저는 전쟁 중 단신으로 월남하면서, 국민방위군에 입대하게 되어 대구 근처 사과창고에서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추위에 입을 것도 먹을 것도 변변치 않아 많은 사람이 병들어 고생하고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저는 어려운 고비를 이겨냈고, 전쟁 중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의 고비가 닥쳤을 때마다 잘 견디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집안의 기독교 신앙 덕분이었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왔습니다.

   
▲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통일정책으로 내세우면서 집권한 지 1년 반이 되어갑니다. 집권하기 직전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해서 다소 운신의 폭이 좁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5·24조치를 풀지 않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박근혜 대통령이 연초에 통일대박론을 주장했는데 그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사그라져가던 통일담론에 불을 지피고 통일에 부정적이거나 무관심하던 사람들에게 통일의 당위성을 일깨워주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봅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교류가 활성화되면서 국민의 80%가 평화통일을 바라면서 화해·협력의 남북관계 개선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북핵문제 해결을 우선으로 내걸고 압박과 제재의 대북정책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 통일에 대한 회의와 부정적인 분위기가 확산되었던 겁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대박이 될 통일을 어떻게 이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어요. 마치 통일이 임박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며 곧 다가올 통일에 대비한 준비를 강조했습니다.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은 대박과는 거리가 멀지요. 그것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엄청난 부담이자 재앙이 될 겁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교류와 협력을 통한 점진적 평화통일입니다. 평화통일이야말로 남북 모두에게 대박이요, 축복이 될 겁니다.

박근혜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평화통일을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급변사태와 붕괴를 기대하며 때가 오면 전쟁이 아닌 방법으로 흡수통일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 번이나 북한 붕괴임박론이 대두했으나 모두 허황된 희망사항에 불과했습니다. 그것은 통일을 과정으로 보고 교류·협력을 통해 점진적·단계적으로 이룩하려는 평화통일론과는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집권 1년 반이 되었습니다만, 말만 무성할 뿐 남북관계에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겁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6·15남북공동선언 제4항에서 합의한 대로 경제협력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교류·협력의 실천을 통해 신뢰를 다져나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이 먼저 신뢰할 수 있는 행동을 보이면, 신뢰를 조성해 나간다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진전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불신이 증폭되고 있는 것입니다.

   
▲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정부에 따라 통일문제에 있어 접근을 달리하는 까닭은 결국 ‘북한을 어떤 상대로 보는가’하는 본질적인 시각 차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북관이 통일방법론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국제냉전이 끝난 1990년 이후 지난 25년간 우리 정부의 대북시각과 이에 따르는 통일정책과 대북정책에는 서로 다른 두 조류가 형성되었습니다. 북한의 미래를 보는 시각에는 북한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점진적으로 개혁·개방하며 변화할 것이라는 ‘점진적 변화론’과 동유럽 국가들과 같이 급변사태로 조만간 붕괴할 것이라는 ‘붕괴임박론’으로 갈라졌습니다. 점진적 변화론을 선호하는 정부는 점진적·단계적 평화통일을 지향하며 화해·협력의 포용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와 달리 붕괴임박론을 신봉하는 정부는 흡수통일을 지향하며 굴복과 붕괴를 도모하는 대결정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남과 북이 지혜를 모아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 ·10.4남북정상선언 등은 연속선상에서 한 궤를 이루는 합의서들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 제1조에는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을 인정·존중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이명박 정부 이후 북을 붕괴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는데 이는 평화와 통일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밉거나 싫더라도,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변화를 추구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의 정상이 평화와 통일문제를 논의하고 6.15남북공동선언을 채택했습니다. 두 정상이 공통인식에 이른 통일방법은 어떤 것이었나요?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가장 긴 시간 논의한 문제가 바로 통일방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통일은 남이 가져다주거나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며, 일방적으로 이룩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이룩해 나가야 합니다. 두 정상이 공통인식에 이른 내용을 4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첫째, 통일은 민족의 지상과제이지만 평화적으로, 자주적으로 이룩해야 한다는 겁니다. 둘째, 평화통일은 갑자기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 단계적으로 이룩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북측은 통일을 과정으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두 체제 연방국가 수립으로 즉각적인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으나 비현실적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지요.

셋째, 통일의 과정에서 당면하게 되는 많은 어려운 과제들을 남과 북이 힘을 합쳐 공동으로 해결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협력기구인 ‘남북연합’을 설립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겁니다. 남북연합은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고 남북이 서로 오고 가고 돕고 나누는, 통일된 것과 비슷한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상황을 실현하는 단계가 될 겁니다.

넷째, 평화통일의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선 일단 상호불신을 해소해야 하며 이를 위해 경제협력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을 통해 상호신뢰를 다져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점진적 평화통일’ 모델이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와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의 지지와 협력을 얻을 만한, 이상적이고도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서로 확신한 겁니다.

지난 20년 넘게 남북이 채택한 통일 관련 합의서에는 통일에 대한 해법이 이미 드러나 있는 것 같습니다. 평화통일을 위한 중요한 당면과제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평화통일을 위한 당면과제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첫째, 남북이 화해하고 여러 분야의 교류·협력을 통해 상호신뢰를 다져나가면서 남과 북이 서로 오가고 돕고 나누는, 통일된 것과 비슷한 ‘사실상의 통일’ 상황부터 실현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2010년 12월 독일을 방문해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동방정책의 설계자인 에곤 바르(Egon Bahr) 전 경제협력부 장관과 공개토론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에곤 바르 박사는 “독일통일이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이 아니라 동독시민이 선택하고 동서독 ‘합의에 의한 통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동독시민들은 국제정세 변화를 호기로 포착했고, 교회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비폭력시민혁명을 통해 공산정권과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통일방안을 놓고, 자유총선거를 실시해 서독과의 병합에 의한 즉각적인 통일을 선택한 겁니다. 민주정부를 세워놓고, 서독과의 병합통일에 합의한 것이지요. 이어서 동서독이 합력하여 전승 4개국과 협상(2+4)으로 ‘합의에 의한 통일’을 성취한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권자인 동독시민들의 선택에 의해 통일방식이 결정된 것이지, 서독에 의해 강요된 흡수통일이 아니란 점입니다. 서독 콜 수상은 베를린장벽 붕괴 직후 4~5년간 국가연합 등을 걸친 단계적 통일방안을 제의했었습니다.

동독시민들이 그런 결심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바로, 20년 넘게 일관성 있게 추진된 서독의 동방정책이었습니다. 매년 32억 달러 상당의 대대적인 경제지원과 ‘접촉을 통한 변화’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인적 왕래와 접촉, 교류와 협력을 통해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실현해 나간 것이 동독시민의 의식변화와 민심을 얻은 겁니다. 우리의 나갈 길도 명백합니다. 주권자인 북한 동포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겁니다.

둘째, 경제협력을 활성화하여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통해 합의한 대로 경제협력을 활성화하여 상호의존도를 높여 나가면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 통일의 첩경인 겁니다. 중국과 대만은 경제공동체 형성을 통해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대만과 중국은 서로의 차이점을 제쳐두고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 정신에 따라 경제우선의 실용주의로 최근 5~6년간 눈부신 양안관계 발전을 이룩하고 있습니다. 교역과 투자 등 경제협력 활성화로 양안간 주당 30편으로 시작한 정기항공노선이 지금은 중국의 50개 도시와 대만의 8개 도시를 연결하며, 주당 800여 편 운항되고 있습니다. 작년의 왕래 인원이 8백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우편, 전화, 송금도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8만 개의 대만기업이 중국에 진출해 있고 중국에 상주하는 대만인도 2백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니 중국에는 대만인 자녀를 위한 초등학교도 운영하고, 양안간 결혼하는 커플도 2만 쌍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Chiwan(차이완)’이라는 용어가 양안 관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불확실하고 가능성이 희박한 급변사태와 흡수통일에 대비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교역과 경제협력을 활성화해 북한의 개방과 변화의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합니다. 한편, 북한의 싼 노임을 활용하여 인프라 개선과 산업구조 조정 등을 지원하는 것이 남북의 공동이익이며 통일비용을 절감하고 통일을 촉진하는 길이 될 겁니다.

셋째, 군사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과제입니다.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전쟁 상태인 군사정전체제 하에서 적대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 냉엄한 현실입니다. 그러니 미·북 적대관계와 남북간 군비경쟁이 계속되고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하게 된 겁니다. 6자회담은 9·19 공동성명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군사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하며, 이를 위해 관련당사국인 미국, 중국, 남북한이 평화회담 개최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4자 평화회담을 조속히 개최하도록 남북이 힘을 합쳐 선도해야 합니다. 4자 평화회담 틀 안에서 한반도평화를 보장할 조치들, 즉 남북관계와 미·북 관계 정상화, 북핵 폐기, 군비통제와 외국군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통일 지향적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한반도 평화통일은 남북문제를 잘 풀어가는 것 못지않게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 등 동북아 국제관계를 잘 이해해야 가능할 줄로 압니다. 통일정책을 추진하는 데에 주요 정부기관에서 다양하게 활약하셨던 장관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정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한반도문제는 민족내부 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민족공조와 국제공조가 상호보완적 성격을 발휘하도록 우리가 주도해야 합니다. 특히 미국이 북한과 적대관계를 지속하는 한 남북관계 발전이나 북한의 핵 폐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현상유지에 집착하는 미국에 맹종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나서도록 우리가 주장하고 설득하여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를 설득하고 지지와 협력을 얻어 대북 포용정책 공조를 통해 한반도평화프로세스(1998~2002)를 추진한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설득을 받아들인 클린턴 대통령은 한반도문제는 김 대통령이 주도해 주길 바란다며 “김 대통령이 핸들을 잡아 운전하고 나는 옆자리로 옮겨 보조적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고, 임기 내내 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추진되면서 남과 북은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6·15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했습니다. 미국과 북한도 특사 상호교환을 통해 관계개선을 위한 ‘미·북 공동코뮈니케’를 채택했고, 미·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올브라이트(M. Albright)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으며,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을 갖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도 방북하여 수교협상을 위한 ‘평양선언’을 채택했습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이룩한 성과들입니다.

지금 동아시아는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미국의 패권적 질서는 미국과 중국이 공동 경영하는 질서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양강 시대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중국은 이제 우리에게는 분리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무역 동반자입니다. 중국은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북한에 대한 증대되는 영향력, 그리고 또한 안보 측면에서도 중국의 위상과 영향력의 증대로 한·중 관계의 중요성은 날로 증대되고 있습니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한·미동맹이 중국을 위협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중국과의 협력관계가 미국을 배척하는 것이 되어서도 안 될 겁니다. 한반도 문제가 미·중 갈등과 분쟁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둘러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한반도평화가 동북아평화에 기여하도록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달라질 수 있었다는 점은 시사점이 크네요. 반면에 그러한 정부정책에 대해 시민사회의 지지와 협력 또한 필수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의 역할과 또한 기독인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평화와 통일 문제는 정부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평화와 통일의 주역은 국민이요, 시민입니다. 정권은 바뀌지만 평화와 통일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시민들의 몫입니다. 과거 정부는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말려들 우려 때문에 시민들이 북한 동포들과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결정하면 국민은 따르면 된다는 ‘선관후민(先官後民)’의 원칙을 바꾸어 놓은 것은 김대중 정부입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도 그런 취지에서 출범하게 된 겁니다. 6·15 남북공동선언 후 시민 참여의 공간이 넓어졌고, 남북 접촉과 교류, 대북 인도적 지원활동이 크게 활성화되었습니다. 금강산에서, 남녘과 북녘 땅에서 남과 북의 노동자, 농민, 대학생과 문화인들이 각각 집단적으로 만나 대화와 토론의 모임도 열렸습니다. 강자와 가진 자의 입장에서 우리 시민들이 남북관계에서 갖는 시민의식은 높은 수준이고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앞으로도 시민사회가 주인의식을 갖고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합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정부의 능동적이고 성실한 노력과 남북합의의 준수 이행 등을 촉구하고 4자 평화회담 개최, 미국의 대북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운동도 전개해야 합니다. 또한, 다양성 속의 일치로 남남갈등을 최소화하는 데도 앞장서야 합니다.

기독인들이야 말로 평화와 통일에 대한 소명의식과 하나님나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평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요. 로마서 12장 17-21절에 4가지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고’ 화해하고, ‘원수가 굶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도와주고 협력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김’으로써 원수를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롭게 지내라’는 말씀입니다. 햇볕정책은 이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화해, 협력, 변화를 통해 평화를 만들고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실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독인들은 우리 마음에 쌓인 분단의 장벽부터 허물고 용서와 화해, 사랑과 나눔의 실천을 통해 북한 동포들의 마음을 얻는 데 앞장서야 하겠지요. 서독의 교회를 본받아 물질적·정신적 나눔운동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심고, 물주고, 정성껏 가꿀 때에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고 평화의 꽃을 피워주며 통일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지면관계상 임동원 장관님과의 통일 관련 대담을 다 옮기지 못했습니다.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용은 임 장관의 회고록 『피스메이커-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0년』(2008, 서울:중앙북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_ 필자 주

윤은주/ 이화여대 북한학박사

<각주>

1)남북공동선언 5개 합의 내용 중 4항은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 신뢰를 도모한다.’라고 명시해놓고 있다.
2)구동존이(求同存異)는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1970년대 초 중국의 총리였던 주은래가 실리를 추구하며 사용해 널리 알려진 단어다. 어원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글귀라는 설과 모택동 강연에서 나온 문장이라는 설도 있다. 현재 중국 공산당의 대외정책의 핵심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알려졌다.
3)한반도평화프로세스 | 남과 북이 주도해 국제세력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이끌어내고, 북미관계 개선을 통해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던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다.
4)민족화해화협력범국민협의회 |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해 남쪽의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참가한 통일운동 상설협의체로, 1998년 출범해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을 위한 사업 등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윤은주  ejwarrio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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