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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북정책 실패와 우리의 대응은?

북한은 2017년 스스로 핵무장 완성을 천명했다. 30년간 이어진 북핵 협상과 제재는 모두 물거품이 됐다. 지난 3월 미 하원에 HR1369(한반도 평화 법안)1)를 발의한 브레드 셔먼 전 하원 외교위원장도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주장은 실패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독립된 행위자로서 기능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의 정권교체로 인해 정책 수행이 일관되지 못할 때 그에 따른 책임을 강제할 장치가 딱히 없다는 한계가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 실패 사례가 그렇다.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을 시작했다.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1994년 10월 미국과의 제네바 기본합의가 체결되어 1997년 8월 경수로 공사가 시작될 때만 해도 북핵 문제 해결에 관한 낙관적 전망이 가능했다. 원자력발전소를 통한 에너지 공급이 가능해지면 북한 경제가 기사회생할 수 있고, 북미 수교가 이루어지면 체제 안전에 대한 우려가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제와 안보 문제가 해결된다면 북한의 핵 개발 동기는 원천적으로 사라졌을 터였다. 클린턴 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서 페리 프로세스를 기초로 단계적 핵 문제 해결을 추진했다.

그러나 2000년 말 미국 대선에서 엘 고어가 아닌 조지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북의 정상국가로의 복원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부시 정부가 펼친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은 이전 정부가 체결한 ‘북미코뮤니케’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었고 북한은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 반열에 올랐다.2) 이후 2002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북미고위급 회담에서 제임스 켈리 동아태차관보의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의혹 관련,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이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있다고 발언하여 갈등이 빚어졌다. 제2차 북핵 위기 국면의 시작이었다.

위기 수습을 위해 소환된 6자 회담(남북미중일러)에서 2005년 9.19합의가 성사됐다. 그렇지만 미 국무부 합의와는 다르게 9월 20일 재무부는 BDA(Banco Delta Asia)의 대북송금을 금지하는 조처를 취했다. 북한은 합의 서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적대적 행위를 했다며 분노했고 이듬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은 오바마 정부가 미처 대북정책 기조를 세우기 전에 추진됐다.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이 건강 악화로 쓰러지자 다급해진 북한의 성급한 행동이었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북한의 연이은 핵 개발을 속수무책으로 내버려 둔 것에 지나지 않았다.

2017년 6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이 이어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주고받은 언사들은 우리가 다 아는 바이다. 2018년 6월 12일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판문점 선언 재확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에 합의했다. 특기할만한 점은 남북관계에서 도출한 합의를 북미관계에서 그대로 인정한 점이다. 이는 북미관계의 한 축을 남북관계가 견인함을 뜻하는 것으로, 핵 문제 협상에서도 우리 정부의 역할이 일정 정도 담보됐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지난 30년간 북한 핵 문제를 다루었던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대북정책을 복귀해보면 딱 맞는 말이다. 어렵사리 해법을 만들고도 정권에 따라서 혹은 같은 정부 안에서도 행정부 부서별 이해가 달라 합의를 무산시킨 결과 북한의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 북한의 요구는 처음부터 체제보장과 경제개발을 위한 원전사용이었다. 초강대국 미국은 최약국 북한과의 협상에서 아쉽게도 대국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통제권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클린턴 대통령조차 북한을 ‘곧 붕괴할 정권’이라고 보고 시간 끌기용으로 협상에 임했다고 밝혔다.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졌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정권 붕괴 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합을 상정했던 대북정책이었다. 이는 북한 정권이 가장 경계하며 우려하는 체제 붕괴 시나리오이다. 이를 염두에 둔 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타협의 여지가 있을 수 없었다.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제3차 북핵 위기 국면에서도 미국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카드가 경제보다 안보였음을 간과했다.

국내에서 자체 핵무장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이 없었다고 문재인 정부를 탓하기도 한다. 올바른 비판이 아니다. 북한의 핵 문제는 처음부터 미국과의 수교를 목표로 기획했던 체제안보 전략이었다. ‘평화적 핵 이용권’이라며 에너지원 확보를 위한 원전개발 계획이라고도 주장했다. 미국의 대북 협상과 제재는 모두 실패했고 북한은 6차 핵실험 이후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비롯, 투발 수단의 다양화에 이어 잠수함 발사 실험도 추진했다. 남은 단계는 대기권 진입 기술의 안정화 정도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핵 문제 해결보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통한 대중국과 대러시아 방위선 구축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에 찬성할 예후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지난 4월 워싱턴 선언을 통해 독자 핵무장론의 불씨를 차단하는 효과를 내다보는 듯하다. 우리의 대응책은 독자 핵무장론이 아닌 전쟁 방지와 평화 구축방안 모색이어야 한다. 이미 미국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국전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이전과 달리 미군 철수를 전제로 하지 않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미국에 제안해왔다. 이는 위장 평화 전술이 아니고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강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 러시아와 협력하려는 북한을 한미일 쪽으로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담대한 구상이라고 이름 붙인 대북정책은 과거를 교훈 삼아 미국을 설득하고 남북관계를 회복하여 북한 사회를 보다 폭넓게 열어가는 대승적(大乘的)인 것이어야 한다. 북한 인민들이 더 큰 세상을 경험하도록 돕는 정책을 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보인 한계를 넘어서고 싶다면 미국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고 변증법적 통합의 길을 추구함이 마땅하다.

윤은주/ 뉴코리아 대표, 외교광장 부이사장, 북한학 박사

1) 2021년 미 하원 117기 회기 발의된 HR3446을 2023년 118기에 재발의 HR1369법안으로 상정됐다. 

2) 2001년 9.11테러 발생 이후 11월 9일 존 볼턴 차관보가 북이 이라크에 무기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이후이다. 2002년 1월 29일 부시는 북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이 칼럼은 <남북물류 칼럼>으로도 게재됩니다.

 

윤은주  ejwarr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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