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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필요하다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나의 간절한 소망은, 배고픈 설움을 잘 아는 우리 세대가 가기 전에 우리 조국이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어 8천만이 하나 되는 것,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국을 내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학창시절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고, 공수특전단에서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에는 아침마다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으로 시작되는 반공구호를 병사들과 외치면서 살았던 내가, 10여 년 전 남북나눔운동본부의 대북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지원물품 배급 상황을 살피기 위해 북녘땅을 방문하여 북측 동포들을 만나면서 처음 체감했던 충격은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다. ‘북한 괴뢰 도당’은 모두 다 이마에 빨간 뿔 하나쯤 달고 있으리라는 막연한 추측이 얼마나 가당찮게 서글픈 것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70년 넘게 갈라져 있었어도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했고, 일대일로 만나 대화하며 세상살이의 이모저모를 서로 나눌 때마다 동포인 그들의 순박한 인정이 내 가슴에 한없이 밀물져 왔기 때문이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녘 동포를 돕기 위해 식량, 의약품, 생활용품, 아동용 물품, 못자리용 비닐 제공, 북한 농촌 주택 건설 사업 등등에 교우들과 함께 열심히 참여하면서 평양, 개성, 황해도를 나름대로 부지런히 기웃거렸다.

공산 빨치산에게 부모님(나의 조부모님)이 죽창에 찔려 같은 날 학살당하여 5남매의 맏이로 전쟁고아가 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하느라 인생이 통째로 망가졌던 나의 아버지 장로님(작년 성탄절 날 하늘로 돌아가셔서 지금은 대전 현충원에 어머님과 함께 누워 계심)은, 북녘 땅을 드나드는 큰아들을 늘 몹시 조심스러워 하셨다. 큰아들인 나의 생각을 존중하시기에 별다른 말씀은 안 하셔도 조심스러워하는 아버님의 마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정히나 답답하실 때면 “이제 좀 그만 가면 안 되나?” 한 마디를 슬쩍 흘리곤 하셨다. 동족상잔의 참혹한 시절, 태극기와 인공기를 모두 다 챙겨 두고 하루에도 두 번씩 주인(?)이 바뀔 때마다 눈치껏 태극기나 인공기를 들고 나가 휘둘러야 근근이 가련한 목숨을 부지했던 전쟁 세대의 처절한 조바심을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낮에는 국군이, 밤에는 인민군이 와서 사람들을 무참히 죽이던 시절, 생존이 촌각에 달린 장대 끝 세월을 사신 분들의 그 참혹한 아픔을 나도 어느 정도는 안다. 그러기에 아버님의 그 염려 또한 굳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짐작한다. 좌익과 우익의 갈등, 분단 후 70년 세월이 지난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에서도, 진보적인 사람들은 보수적인 사람들을 일컬어 ‘수꼴’(수구 꼴통의 준말)이라 하여 멸시하고, 보수적인 분들은 진보 성향을 걸핏하면 ‘빨갱이’로 몰아 욕하고 있지 않은가. 남-남의 골이 이렇게 깊은 마당에 어떻게 남-북의 평화 통일을 감히 꿈이라도 꿀 수 있겠는가.

내가 북녘을 드나들던 어느 날, 그날도 북녘에 다녀온 인사차 들렀을 때 아버님의 염려하시는 눈빛을 또 읽을 수 있었다. 자식 된 도리로 아버님의 염려를 좀 덜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날 질펀하게 거실에 주저앉아 아버님과 우리 조국의 처지와 관련한 ‘시국 대화’를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하룻밤을 꼴딱 새며 이야기한 끝에 다음날 새벽 네 시경에야 아버님을 간신히 안심시킬 수 있었다. “모쪼록 몸조심하면서 하라”는 한 마디를 끝으로 아버님은 나의 방북을 기도로 후원하실 뿐 더는 염려하지 않으셨다. 워낙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날 아버님께 대략 이런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아버님, 남북분단 후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남과 북이 군비로 지출한 액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자입니다. 그 ‘분단 유지비용’ 액수만큼 민족 경제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고 할 수 있고, 또한 남북 양측에서 분단상황으로 그동안 애꿎게 희생된 사람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사람 하나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는 한 가정이 무너지는 것이고 한 가문에 씻을 수 없는 한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분단 상황이 계속되는 한 앞으로 또 그런 비극이 얼마나 더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지난 70년 동안 북측은 공산주의의 허점을 충분히 학습했고, 남쪽도 자본주의의 폐해를 충분히 공부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통일 과정에 ‘통일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겠지만, 한반도 남과 북에서 이미 투입한 ‘분단유지 비용’ 만으로도 통일 비용을 훨씬 웃돌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민족이 진정으로 잘 살고 우리 자식들이 정말 사람답게 살려면 어떻게든 이 분단의 장벽을 속히 허물어야 합니다(빠르면 빠를수록 그만큼 더 국익에 보탬이 됩니다). 형제라면, 좀 잘 사는 쪽이 못사는 쪽을 무조건 도와야 한 가문이 우애할 수 있듯이, 지금은 남쪽에서 북쪽 형제들을 어떻게든 도와야 할 때입니다. 저는, 저희 세대가 이 땅을 떠나기 전에 우리 조국의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힘이지만 이 일에 힘을 보태기 위해 기회 닿는 대로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나의 이런 이야기에 아버님의 마지막 대답은 “미안하다. 우리 큰아들 말이 맞다”였다. 빨갱이(?) 성향의 큰아들과 수꼴(?) 성향의 아버지와의 대화가 이렇게 가능했던 것으로 미루어, 우리 사회, 빨갱이와 수꼴의 뿌리 깊은 ‘남-남’ 갈등도 진지하게 ‘대화만 잘하면’ 순순히 잘 풀릴 수 있지 않을까 감히 기대한다. 그 일이 풀려야 비로소 남북 평화 통일의 발걸음이 빨라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러기에 남-남이든, 남-북이든 주변 눈치 보지 말고 가슴을 연 진지한 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마음으로,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새벽마다 밤마다 우리 조국의 평화 통일을 위해 교우들과 함께 기도할 뿐이다.

이광우/ 전주열린문교회 담임목사, 평화통일연대 전문위원

이광우  danb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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