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텐트보다 숙박시설이 갖추어진 이뿐 단층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모래사장 중간쯤에서 잘 단장된 이층집의 큰 마당에 자동차가 들어서자, 안방에서 밝은 색의 반바지에 시원하게 보이는 티셔츠를 입은 50세 정도의 아주머니가 뛰어 나오시자 신 보좌관은 급히 내려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아주머니는 신 보좌관의 손을 잡으며 반가워 했고 역시 춘원과 강원을 손주같이 반가워 하는 것이다.

잠시 후 50대 중반의 건강하게 보이는 아저씨가 모래사장 쪽에서 나타나자 두 아이는 매어 달리면서 반가워 하고 아저씨도 아이들을 번쩍 들어 줌은 오랜만의 만남으로 자신이 아이들의 성장을 달아주는 사랑의 저울이 되어 주는 모습이었다. 일행은 아주머니의 친척인 듯한 젊은이 둘이 짐을 들고 나룻배가 서 있는 강물쪽으로 내려 갔는데, 집에서 강물까지는 50m정도의 거리였으며 공을 놓으면 서서히 굴러갈 정도로 약간 가파른 형태의 모래사장이었다.

▲ 구포대교 전경(자료사진)

부산의 구포에만 가도 낙동강의 모래를 밟아볼 수 있으나 구포의 딸기밭에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영이이기에 강가의 모래사장을 처음 밟아보는 것이다. 강가의 모래는 상당히 부드럽고 알이 적으나 광택이 없고 밟으면 단단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 물 속에 염분이 적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인천에서 고교 야구팀이 부산에 원정을 오면 인천 바닷물이 짠지, 부산 바닷물이 짠지, 붙어 보자고 외치던 구덕운동장의 선머슴아들의 함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밑바닥이 유난히 둥글고 넓은 나룻배가 뱃머리를 모래사장에 걸치고 있었고 그 앞에는 젊은이들이 낚시가방을 메고 서 있었다. 또 다시 벌벌 떠는 키퍼를 겨우 나룻배에 태우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젊은 낚시꾼들이 태워 달라고 통사정을 한다.
“저 섬은 낚시금지 구역이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요 앞 파출소에서 증명서를 떼 와야 해요.”
뱃머리를 돌리던 아저씨는 상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상냥한 말로 낚시꾼들의 부탁을 거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강가의 사람들은 거친 바다의 사람들과는 달리 부드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강의 폭은 300m정도이고 물살은 거의 없는 편이며 30m정도까지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수심이 얇아 긴 작대기로 강바닥을 밀면서 나룻배를 움직였다. 섬이 가까워 오자 특이한 점을 확인을 할 수가 있었는데, 장발단속에 걸리면 바리캉으로 머리 뒷부분을 밀어 각을 세우듯이 섬의 둘레는 2m정도의 높이로 암석을 보이고 있었다. 모래사장의 가파름과 섬의 암석으로 보아 홍수에 의해서 생긴 현상일 것이라고 영이는 생각을 했다.
나룻배는 섬의 유일한 통로인 듯한 폭10m정도의 개천으로 진입을 하자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고 다시 긴 막대기로 배를 움직였으며 입구에서 20m정도에서 오른쪽으로 나룻배를 틀자 나룻배의 뒷꽁무니가 들어서기에 바쁘게 앞 부분이 밑바닥에 대이는 곳은 마치 요트장의 선착장 같았다. 이 공간은 물살이 거의 없는 일인용 독(dock) 같아 밧줄을 묶지 않아도 될 것 같았으나 아저씨는 밧줄을 던지고 재빠르게 내리더니 큰 나무에 밧줄을 묶어 버린다.

강원은 이 길에 익숙한 듯 짐을 들고 키퍼와 먼저 앞장을 섰으며 15m정도 약간 가파른 언덕을 춘원과 올라 온 영이는 평지에서 한가하게 풀을 먹고 있는 황소를 보고 깜짝 놀랬다. 강원은 벌써 황소 뒤의 달구지에 앉아있었고 키퍼는 자기보다 엄청나게 큰 친구의 체격에 눌린 듯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황소만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에 자신이 크다고 자부하며 살던 인간도 자신보다 큰 자를 만나면 키퍼처럼 쭈그리고 앉아 살피며 공격을 대비하여 약한 곳을 찾아두는 것이다.

짐들이 달구지에 실려지고 짐을 등받이로 아저씨와 강원은 앞에 앉아 고삐를 잡고 있었고 영이와 춘원은 짐을 등지고 앉았는데, 뒷좌석의 손님들은 춘원이 솜씨를 보여 준 꽃밭에 앉아 있었는데 영이의 머리에는 머리핀을 이용하여 분홍꽃이 왼쪽 귀 위에 꽂혀 있었으며, 밍키는 선글라스 사이에 작은 노랑꽃이 두 송이 장식되었고, 키퍼는 하와이를 방문한 관광객처럼 꽃 목걸이를 매고 있었으며, 춘원 자신은 둥근 머리띠에 여러 꽃들로 장식하고 작은 꽃다발까지 안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꽃을 사랑하면서도 꽃을 선물로 주고 받는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것은 빨리 시드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일까? 너무나 어려운 현실 속에 먹을 수가 있는 나물을 대신하며 살아온 탓일까? 아무튼 자연 속에 들어오면 누구나 꽃을 꺾어 상대에게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 같았다.

같은 달구지를 타고 가지만 앞의 남자들은 미래를 보며 한 걸음씩 확인하며 나가고 뒤의 여자들은 새로 펼쳐지는 주위를 보면서도 출발점인 과거들이 자꾸 멀어지는 아쉬움을 느낀다. 시골길의 달구지는 뒤에서 신경질적으로 재촉하거나 앞서가는 상대를 미워할 필요가 없는 나 홀로 호적한 길이었다.
“웅~”
꽃 목걸이를 매고 점잖게 앉아 코만 벌렁거리던 키퍼가 갑자기 달구지에서 뛰어 내리더니 다람쥐를 쫓기 시작하였는데, 처음부터 길에는 다람쥐들이 왕래가 많아 영이도 신기하게 바라본 것이다. 뒷좌석의 요란한 소리에 달구지는 천천히 멈추었다.
“키퍼, 꼭 잡아라.”
“키퍼, 놓치면 걸어 와야 해.”
강원과 영이의 응원에 키퍼는 온 힘을 다해 뛰어가나 다람쥐는 키퍼를 놀리는 듯이 아주 가볍게 요리조리 움직인다.
“아저씨, 키퍼가 다람쥐를 잡겠죠?”
“다람쥐가 개를 잡는 것이 낫겠다. 산 속에서 도시 개가 어찌 산 다람쥐를 잡을 수 있나.”

뒤를 돌아보던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차면서 기다려 보자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성냥불을 붙이고 바로 앉았으나, 황소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큰 눈을 껌벅거리며 유심히 쳐다본다. 잠시 후에 다람쥐는 나무 위에서 키퍼를 놀리듯 내려보고 키퍼는 나무 아래서 위를 보며 애처롭게 짖어대기만 한다. 조금 후에 관전을 포기한 달구지가 움직이자 양쪽을 번갈라 보던 키퍼가 달려 왔는데 춘원의 말대로 키퍼는 머리를 푹 숙이고 달구지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다. 키퍼에게 오늘은 큰 놈에게 눌리고 작은 녀석에게는 희롱 당하는 날이었다.

시골길인데도 길바닥에는 자갈과 소라형의 자갈이 깔려 있어 먼지가 전연 나지를 않을 정도로 상당히 잘 다듬어져 있었고 언덕아래 작은 평지에는 감자와 옥수수가 가지런히 심어져 있었다. 작은 언덕들이 계속 이어지는 신비한 작은 섬의 길을 따라 30분 정도 가자, 언덕 사이에 큰 평지가 나타났는데 오른쪽에는 개천이 흐르고 있었고 길은 이 개천을 따라 있는 것 같았다.

멋진 기와집으로 달구지는 진돗개들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간다. 대문이 없는 기와집, 대문이 없으므로 담도 없는 것이다. 단지 담의 구실을 하는 것은 감나무들이었는데 제법 알이 굵은 초록색의 감이 달려 있으며 감나무들 틈새에는 시골 닭들이 한가로이 노닥거리고 있었다. 아저씨의 부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달구지의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는데 어디 가나 두 아이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여보, 애들 많이 컸지.”
“춘원은 더 예뻐지고 강원은 키가 많이 컸네요. 조그만 놈은 알겠는데 이 큰 놈은 누구지?”
아주머니는 웃으시며 집으로 안내를 한 진돗개들의 엉덩이 냄새를 열심히 맡고 있는 키퍼를 가리키며 질문을 하였다.
“오빠 개인데 우리집을 지키는 키퍼예요.”
“키빠! 아~ 축구 할 때 문지기, 우리 조카하고 똑 같은 직책을 맡았어. 미국개인 모양인데 크기는 한데 순진하게 생겼네.”
“스위스가 고향인데 도둑놈 외에는 절대로 물지 않아요.”
춘원은 오빠가 주인인데도 아주머니의 걱정도 모르고, 자기가 상세하게 아주머니에게 설명을 한다.

마당 왼편에는 큰 부엌이 마루와 붙어 있었고 마루는 투명유리를 단 미닫이 문이 양쪽으로 열려 있었으며 마루 끝에 방이 아저씨 부부의 방 같았는데 옛날식으로 안채인 셈이다. 안채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대청마루가 붙어 있었고 대청마루 끝에도 방이 있었는데 아마 옛날에는 사랑채였던 것 같았다. 마당 오른편에는 일자형으로 독립된 기와집이 있는데 방 입구에 길다란 마루들이 붙어있는 8개의 작은 방들이 있었다.

뒷마당에는 역시 기와를 덮은 큰 우물이 있는데 여기서 세수하고 빨래하고 그릇을 씻는 다용도의 장소 같았으며 바닥의 사면을 높이고 밑바닥까지 자갈로 잘 포장되어 있다.
영이 일행은 사랑채에 짐을 풀었다. 이중 문인데 마루쪽의 문은 투명유리로 장식된 미닫이 문이었고 방안의 문은 창호지 미닫이 문이었다. 방안에 또 하나의 방이 있었는데 창호지 문으로 되어 있고 벽에는 옛 그림들과 액자, 고서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사랑방에서 짐을 대충 정리한 일행은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넓은 대청마루에서 간식을 대접 받았다.

“야~, 이 수박 엄청나게 맛있네요. 시내에서 사 온 거예요?”
“아니야. 5년 전부터 목감 서원 출신인 젊은 부부가 시내에서 와서 놀고있는 땅에 수박을 심기 시작했어. 봄부터 와서 수박과 참외를 심는데 이 강과 춘천에 놀러 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재미를 많이 보고 있어. 특히 산에서 재배하는 수박은 맛이 다른가 봐. 다른 지방에서 오는 수박보다 갑절이나 비싼데도 물건이 없어 못 팔아. 오늘 서울에서 전 의원 가족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이 따서 가지고 왔더군. 우물 속에 넣어 두었더니 더 시원하네.”
수박은 여름과일의 여왕이다. 태양의 풍성함을 나타내듯 제일 큰 과일이며 속의 빨간색은 이글거리는 태양과 같은데 뜨거운 태양이 사람에게 시원한 수분을 공급하는 것은 신의 조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