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희생자를 위한 몇 개의 꽃송이

시 / 서 덕 석(목사, 시인)

이 더럽고 추악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지 않아도 될
그대들의 미래를 위해 첫 번째 꽃을 바칩니다.
이 땅은 더 이상 그대들처럼
목숨을 걸고 지켜 낼 아름다운 것이라곤
남아 있지 않은 살벌한 곳이니
뒤돌아 보지마시고 가시기를,
기적 소리와 함께 멀어져 가는
용산에서 살던 아련한 추억들이
눈앞을 가리더라도
발걸음 멈추지 마세요.
이곳은 더 이상 사람이 사는 동네가 아니라
탐욕에 눈먼 투기자본과 그들이 흘리는
떡고물에 목을 매단 추악한 무리들이
똥 돈더미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용늪’이니 침이나 뱉으셔요.
살아있는 우리들은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구역질을 할께요.

한때 대한민국의 신화로 불려진
그대들의 지난 삶을 위해 두 번째 꽃을 바칩니다.
피난열차 혹은 상경 열차를 타고
처음 발을 내디딘 이곳 용산,
이를 악물고 몸뚱이 하나로 버텨서
어엿한 서울특별시 용산구민이 되어
집 한 칸, 가게라도 장만해
마누라, 자식새끼들 먹여 살렸지요.
어디 나라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시켜 주었나요?
그대들 몸뚱이로 나라를 지키고
세금 한 푼 떼먹지 않고
꼬박 꼬박 바쳐서 용산을 일구어 내었는데
졸지에 도시 테러리스트로 몰려
두 번 세 번 확인사살 당한 끝에
차디 찬 영안실 냉동고속에 누워 있는 그대들,
더 이상 대한민국의 신화 따위로
모독당하지 말기를!
주인마저 몰아내는 이 추악한 도시 매커니즘을
폭파시키는 진정한 테러리스트가 되시기를!

소박한 삶이 깨어지고 좇겨나고
불타버린 참혹한 우리들의 현실을 아파하면서
우리 자신을 위해 세 번째 꽃을 바칩니다.
정든 골목길을 따라 늘어섰던 수퍼,
미장원, 태권도장, 목욕탕, 떡집을 깔아뭉갠 자리에
들어선 쇼핑몰과 스포츠센터, 스파 따위의
요상한 이름들을 가진 거대한 복합 건물사이로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소리 대신
삐끼들의 호객소리와
아기씨들의 비굴한 웃음만이 떠돌
남일당 골목길의 무한변신에 놀라
이 한 송이 초라한 꽃을 떨어뜨립니다.

▲ 앞에 놓여진 성경과 국화 ⓒ 당당뉴스 송양현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 제4지구 남일당 건물 옥상 가건물에서
농성중이던 철거민들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경찰, 재개발조합, 행정당국의 합동작전을
치하하며 네 번째 꽃을 꺾습니다.
민간인들끼리의 이익다툼이라면서
한쪽 편은 감싸주고, 한쪽 편은 때려 죽여도
유능한 공권력으로 칭찬받고 우러러보는
살벌한 논리에 온 몸 떨면서
나도 언젠가는 감싸주는 편에 속하게 될 거라는
환상에서 하루 빨리 깨어나기를,
민중의 지팡이 따위 헛소리 말고
영원한 권력의 오른팔이며,
자본의 충실한 똥개 노릇이나 잘 하기를.
(그리하여 망할 때도 같이 망하기를!)

돈독 오른 눈에는 보일 리야 없겠지만
남일당 골목길에는 시대의 양심이 꽃을 피웠습니다.
유족들의 손과 발이 되어 준 이들의 정성,
영혼과 살아남은 자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수많은 성직자들의 기도,
글과 그림, 노래 혹은 눈물겨운 몸짓으로
용산을 이야기하는 예술가들,
행진의 대열에 동참하며 때로는 분향으로
빈소를 쓸쓸하지 않게 해 준
이름없는 시민들의 시들지 않는 꽃이여!
살벌한 가운데서 피어 난 순수하고 처절한 이 꽃을
삼가 두 손 모아 떨며 바칩니다.

아아, 엄동설한 살인적인 폭력철거로부터
살아남으려고 망루에 올라 간
애꿎은 시민 다섯명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일년이 되도록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돈 몇 푼으로 얼버무리려 하는데
이 따위 꽃 나부랭이를 바친들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일년 전 그대들이 불에 타 죽을 때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마당에
또 다시 망루에 올라가야 할 사람들이
어디 용산에만 있을까.
그대들 장례식을 어찌 어찌 치른다 한들
또 다른 장례식을 어디서 치러야 할지......

“......국민상주를 모집합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혼절한 유족을 대신하여 빈소를 지키며
곡을 하며 조의금을 걷고 꽃을 바칩니다.
죽음의 무게만큼 무거울 장례의 짐을
함께 나누어 질 국민상조회 주주로
당신을 모십니다.

국민상조회의 첫 번째 손님으로
용산 남일당 강제철거 희생자 다섯분을
특별히 모셨습니다.
2010년 1월 9일 정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용산 희생자 다섯분과
강제철거, 폭력진압 없는 세상을 위해
다함께 묵념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