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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신 것미리보는 교회력 설교/ 오순절 후 셋째 주일(20090621)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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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6월 15일 (월) 21:50:13
최종편집 : 2009년 06월 16일 (화) 10:40:10 [조회수 :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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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세 번째 주일(20090614)
성서일과/ 시 9:9-20; 삼상 17:1,4-49; 고후 6:1-12; 막 4:35-41
본문/ 사무엘 상 17:41-49

하나님이 보신 것


   
          (삼상 17:41-49) 『[41] 블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 든 자가 앞섰더라 [42]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3]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 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하나님은 신실한 분입니다.
          (민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이렇듯 신실하신 하나님이 후회하신 일이 두 번 있습니다.
처음은 노아시대에 세상에 죄악이 관영했을 때입니다.
          (창 6:6)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다음은 당신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에서 폐하실 때였습니다.
          (삼상 15:11)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하신 일을 후회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다시 시작하시기 위하여 먼저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약속을 주시는데 이는 이전에 주신 약속보다 크고, 견고한 것입니다.

노아시대에 하나님은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를 통해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다시 시작하실 때에 처음 사람 아담에게 하신 것처럼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하셨고,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무지개 위에 얹어 주셨습니다.

사울의 때에 하나님은 사울을 폐하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새 임금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에게 사울이 당했던 일을 다시는 당하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위가 영원히 보전되라는 놀라운 약속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삼하 7:15-16) 『[15]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바울은 예수님에게서 이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실 때에 이미 다윗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실 영원한 임금, 그리스도 예수를 염두에 두고 계셨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행 13: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바울은 다윗이 이토록 존귀한 복을 받아 누리는 자가 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행 13:22)...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는 은총을 거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설혹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신다 할지라도,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그 마음을 돌이키실 분은 아닌 것입니다.
거지 나사로를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사람, 세상에서 존귀와 영광을 누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남 다른 무엇이 있어야만 합니다.
노아처럼 또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다윗의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는지를 알고, 그와 같은 자가 되기를 소원하며, 기도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오늘 봉독한 본문 앞에 다윗이 이스라엘의 새 임금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이새는 여덟 아들을 두었는데 하나같이 준수한 자들이었습니다.
큰 아들 엘리압을 보는 순간 사무엘은 이 사람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일곱 아들이 차례로 사무엘의 앞을 지나는 동안 하나님은 그 중에 아무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상히 여긴 사무엘이 다른 아들이 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새는 부랴부랴 들에서 양을 치고 있던 다윗을 불러 오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가 그니 일어나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아버지조차 인정하지 않는 아들이었으나 하나님은 다윗을 택하여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이렇게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은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는 처음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통쾌하게 거꾸러뜨리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먼저 골리앗의 장대함과 다윗의 왜소함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얼마나 큰 사람입니까?
          (삼상 17:4)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규빗이라는 것은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에 이르는 길이입니다.
대략 45-50cm 정도 되는 길이입니다.
여섯 규빗하고도 한 뼘이라고 했으니 작게 잡아도 3미터에 가까운 거인입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아직 얼굴이 붉은 어린아이입니다.
사울의 군복을 입고, 칼을 차고서는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왜소한 체구였습니다.
세상은 크고 무거운 것에 주목하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그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또 골리앗의 무장한 모습과 다윗의 초라한 모습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골리앗의 무장에 대해 상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삼상 17:5-7) 『[5]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장대한 몸도 몸이지만, 차려 입은 것 하나 하나가 범상한 것들이 아닙니다.
투구가 놋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린갑, 고기비늘 모양으로 된 놋쇠 판을 잇대어 만든 갑옷을 입었는데 그 무게가 오천 세겔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오백 원짜리 동전 오천 개를 달고 있는 형국입니다.
창 자루도 나무가 아닌 놋쇠로 되어 있고, 창날은 무쇠로 된 것입니다.
게다가 방패를 든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다윗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사울이 입혀준 갑옷을 벗은 다윗은 집에서 올 때의 차림 그대로입니다.
          (삼상 17: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군인의 모습이 아니라 목자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창 대신 손에 쥔 막대기와 물매 그리고 목자들이 허리에 차고 다니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매끄러운 돌 다섯 개가 전부입니다.
전쟁에 나간 자들이 지녀야 할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골리앗이 보기에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업신여기며 말했습니다.
          (삼상 17:43-44)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사람의 눈은 장대하고 화려한 골리앗에게 머물고 왜소하고 초라한 다윗은 보이지 않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골리앗의 말속에 이미 하나님이 보시는 골리앗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어떤 모습입니까?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그렇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사자나 곰 보다 못한 개 정도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염려하는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삼상 17:34-36) [34] ...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그렇습니다.
사자나 곰도 쳐 죽였는데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야 두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다윗이 골리앗을 보는 모습입니다.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인생을 보시는 방법이기도 한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 누가 봐도 골리앗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습니까?
사람이 보는 눈으로 다윗을 본 골리앗은 패하고,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골리앗을 본 다윗이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눈 곧 다윗이 보는 눈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 하나님이 보시는 눈이요, 다윗의 눈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을 보는 것입니다.
다윗의 말을 다시 들어 보십시오.
          (삼상 17:37) ...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이미 사자와 곰의 위험에서 건져 주셨으니 여기서도 건져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중심에서 보시기를 원하시는 마음입니다.
이미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죽을 죄에서 구원하셨는데, 세상이 주는 환난과 시련 가운데서도 건져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미 구원하셨으니 그 나머지 모든 은택으로 채우시리라는 마음으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 원하시는 마음입니다.

다윗의 중심에서 나오는 소리

가득히 차게 되면 반드시 넘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의 마음도 그랬습니다.
다윗이 쓴 시편들은 모두 다윗의 마음이 넘쳐흐른 결과였습니다.
기쁘면 찬송이 되고, 괴로우면 간구가 되어 넘쳐흘렀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목자의 차림으로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넘쳐흐르는 다윗의 마음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예쁘다고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이 넘쳐서 다윗은 외쳤습니다.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네가 어찌 모욕하느냐는 것입니다.
비록 칼과 창 앞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무엇이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원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가 모욕당하는 것도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기 원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거듭하여 물으신 것도 그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믿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당신을 대신할 목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넘쳐흘렀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그를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빼신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요, 왕으로 삼으심입니다.
          (삼하 5:2)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삼하 7: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신실하신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다윗에게 행하셨습니다.
          (대상 29:28)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넘치는 자가 되어, 존귀하게 하시는 주의 은혜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는.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가 섬기는 신은 다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은 사람의 모양이고, 반은 물고기의 모양을 한 우상이었습니다.
여호와는 다곤과 달리 형상이 없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골리앗에게 여호와가 신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였습니다.
여호와를 모욕하며, 우상의 이름으로 저주하는 골리앗을 향해 다윗은 외쳤습니다.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하는 무지함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어리석은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은 있지도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반은 사람이요, 반은 물고기인 괴물을 신으로 섬기는 무지한 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참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계심을 증거하기 위해 싸우노라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듯이 여겨 행하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물을 보고 물이라 하는 것은 지식입니다.
물은 흐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지식입니다.
그러나 그 물을 있게 하시고, 흐르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은 지혜입니다.

지혜는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구별하는 능력입니다.
솔로몬이 세상에 자기의 지혜를 드러낸 것이 참 어미와 거짓 어미를 구별해 내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분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피조물과 창조주를 구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세상에 속한 것과 하나님께 속한 것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하신 말씀의 뜻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에서 지혜로운 마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지혜로운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금은보화보다 나은 것을 주십니다.
          (잠 8:11)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용사보다 강하게 하십니다.
          (잠 21:22) 『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의 견고히 의뢰하는 것을 파하느니라』
열명의 유능한 사람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십니다.
          (전 7:19)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보이지 않으나 영원히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자가 되어서, 이 모든 은택을 넘치게 받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마음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조건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돌 하나로 골리앗을 거꾸러뜨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차음부터 돌을 의지하고 골리앗 앞에 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다윗의 외침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칼과 창 심지어 돌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전쟁이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는 말은 이기고 지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리라는 것은 그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실 것이요, 나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오로지 하나님을 의뢰하고 골리앗 앞에 선 것입니다.
다윗이 훗날 그 때를 기억하며 노래했습니다.
          (시 20:6-7)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7]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이스라엘이 왜 망했습니까?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사 31:1-2)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 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여호와를 의뢰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병거와 마병의 힘을 의뢰하는 마음 곧 골리앗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힘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잠시 두렵게 할 수 있겠거니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를 결코 넘어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병거와 마병 같은 눈에 보이는 힘에 기대지 말고, 전쟁을 주관하시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가 되어 최후 승리의 영광 누리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중심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흘러서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사랑의 고백이 되어 나와야 하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넘쳐서 ‘내가 주를 높이고 찬양하나이다’라는 찬송이 되어 흘러야 하겠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의지하나이다’라는 믿음의 외침이 토해져야 하겠습니다.
존귀케 하시고, 부요케 하시며, 영화롭게 하시는 주의 은총을 누리는 길입니다.
아무쪼록 다윗과 같이 외치는 자가 되어, 다윗에게 주셨던 이 모든 은총을 충만히 누리시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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