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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둘째 주일(20090614)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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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6월 08일 (월) 22:08:54
최종편집 : 2009년 06월 09일 (화) 12:52:34 [조회수 : 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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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두 번째 주일(20090614)
성서일과/ 시 20; 삼상 15:34-16:13; 고후 5:6-10; 막 4:26-34
본문/ 마가복음 4:26-34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막 4:26-34) 『[26]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30]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 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 하시더라』


   
예수님은 즐겨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 특히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에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하는 것은 이를 말함입니다.
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셨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사람들의 생각, 고정관념을 깨뜨리시기 위함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이 전파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고 말씀하신 뜻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각하는 것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당신이 곧 겪게 되실 일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주님의 제자들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참혹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에게 장차 닥칠 일을 비유 속에 녹여서 말씀하심으로 지혜로운 자만이 알게 하셨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끝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신 것이 그런 뜻입니다.

끝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말하시는 길이 비유밖에 없었습니다.
하늘에 속한 것을 땅의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비유는 땅에 속한 말 가운데 하늘의 실상을 담아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유는 듣는 사람으로 거듭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다름을 알고 당황하기도 하고, 무언가 다른 뜻이 숨어 있는 것 같아 궁금해 하기도 하고, 이리 저리 생각해 보다가 마침내 도무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비유를 처음 들은 사람들이 대개 그랬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비유를 말씀하신 후 다시 그 뜻을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셔야만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 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 하시더라.’ 한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처음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낯설지 않습니다.
비유 속에 있는 비밀도 거의 드러났고, 주님이 제자들에게 해석해 주신 내용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비유의 능력이 아주 사라져 버렸겠습니까?
주님의 비유는 우리로 항상 새롭게 생각하고, 다르게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살펴 알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껏 생각의 나래를 펼치게 하고,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살피는 가운데 성령께서 도우셔서, 주님 말씀의 이런 능력이 성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씨앗의 신비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비유는 마태 13 장, 마가 4 장, 누가 8 장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들의 시작은 한결같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렸는데 길가에 뿌려진 씨는 새들이 먹고,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나 곧 말라버렸고,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는 가시에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였으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결실하여 30 배, 60 배, 100 배로 거두었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이어지는 비유들도 씨와 관련된 것이 주종입니다.
자라는 씨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 가라지 비유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비유에서 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특별한 것입니다.
씨가 무엇입니까?
아주 쉽고, 간단한 것 같아도 씨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참으로 오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씨는 시작이면서 완성입니다.
씨를 뿌린다는 말은 무슨 일이든지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열매를 거둔다는 것은 완성했다, 이루었다, 끝났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씨와 열매는 같은 것입니다.
씨는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인 것입니다.

씨는 또 눈물이면서 동시에 기쁨입니다.
(시 126: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

씨는 뿌리는 것이고, 단은 거두는 것인데 씨와 열매와 같은 관계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시작하기만 하면 기쁨으로 마치게 됩니다.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그 끝은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씨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예수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예수와 함께 시작하면 예수와 함께 마치게 되어 있습니다.

눈물이 곧 기쁨입니다.
고통이 곧 즐거움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증거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습니다.
씨가 곧 열매이듯이 고난과 함께 영광도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롬 8:17-18)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지금 가난하고 빈궁하여 괴로우십니까?
그 한숨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지금 슬퍼하고 있습니까?
그 눈물 속에 하나님 나라의 위로가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안에 거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금 괴로워도 예수 안에서 기뻐하고, 당장은 부족하여도 예수 안에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괴로움 속에 주님이 거하시고, 그 아픔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이미 예수로 시작하였으니 예수로 마치는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씨는 또 작은 것 안에 큰 것을 감추고 있습니다.
겨자씨는 씨 중에서도 작은 것인데 그 안에 어떤 나물보다 큰 나무가 들어 있습니다.
그 가지에 새들이 깃들 정도로 큰 나무와 같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욥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또 씨는 하나 안에 30, 60, 100 배를 지니고 있습니다.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배와 육십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

주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지금 당장은 보잘 것 없어도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크게 되고, 한 알이 죽어 100 배가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입니다.
질로 보나, 양으로 보나 씨는 엄청난 것을 그 작은 것 속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변방에 속한 식민지 이스라엘, 그 중에서도 예루살렘도 아닌 시골 갈릴리 나사렛 사람으로 목수 요셉의 아들이었습니다.
예수의 소문을 들은 나다나엘이 말했습니다.
         (요 1:46) 『....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나다나엘 뿐 아니라 대부분 유대인들의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왕 중의 왕, 하나님 나라의 임금이셨던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당신의 나라를 온 세상 만민들에게 약속으로 주셨습니다.

그가 먼저 택한 제자들도 보잘 것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도 모두 갈릴리 사람이었습니다.
갈릴리 사람이라는 말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낮추어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었고, 그 가운데는 세리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신분으로 보면 천했고, 물질로 따지면 가난했고, 도덕적으로는 죄인이었습니다.
참으로 보잘 것이 없는 무리였습니다.

주님이 그런 제자들에게 어리석은 부자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추수한 것을 쌓을 곳이 없어, 창고를 새로 짓고 만족해하는 부자에 대한 비유였습니다.
그 비유의 끝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12:29-31)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31]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조금 투박하게 말한다면, 하나님 나라는 부자가 새로 지은 창고보다 넓다는 뜻입니다.
얼마든지 퍼내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창고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이 나라가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이렇게 볼 때 작은 씨는 곧 우리 자신이기도 합니다.
지금 보잘 것이 없다고 부끄러워할 일이 없습니다.
그 안에 큰 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쌓아놓을 만큼 가진 것이 없어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 안에 30 배, 60 배, 100 배가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가 이미 주어졌음을 굳게 믿고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염려도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마르지 않는 창고와 같은 하나님 나라를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셨음을 믿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자람과 기다림

씨 안에 있는 기쁨, 씨 안에 있는 넉넉함이 우리 손에 쥐어지기 위해서는 자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27]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땅에 뿌려진 씨의 비유라고 할 수 있는 이 비유의 가장 중심되는 뜻은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고, 깨고 하는 일 밖에 없습니다.
그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셔서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밤새 맺혔다가 아침이 되면 사라지는 이슬로도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오직 기다리는 일이 문제일 뿐입니다.
열매가 되기까지 곧 씨가 다시 씨가 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열매되어 맺히리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농부는 이 믿음으로 농사를 짓습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태풍이 불어 온 적도 있습니다.
가물어 애를 태운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거두지 못하리라 생각하여 다시 씨를 뿌리지 않는 농부는 없습니다.
배를 뒤집는 폭풍의 한 가운데서 바울이 말했습니다.
         (행 27:25) 『...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이것이 믿음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말씀대로 되리라고 믿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처음에는 싹이라고 하십니다.
심어서 바로 열매가 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해 탈입니다.
싹이 돋을 때는 무엇이 무엇인지 구별조차 되지를 않습니다.
가리지를 뽑겠다고 나서면 안 될 일입니다.
구별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보리를 심었으면 당연히 보리의 싹이라고 믿어야 기다릴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이삭이요, 곡식이라고 합니다.
무엇인지 분명히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팬다고 추수할 수는 없습니다.
영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별이 된다고 가라지를 뽑아서도 안 됩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지금까지 기다려온 온 세월을 헛되게 만드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주를 믿고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가라지가 있어도 반드시 거두게 하시리라고 믿어야 온전히 추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 기다림은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자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소망하는 자에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참고 기다리는 자가 차지하게 됩니다.

그 때는 멀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닥쳐올 것입니다.
         (요 4: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장 거두어들일 것이 없어 안타까우십니까?
훼방하는 세력 때문에 힘이 드십니까?
너무 더딘 것 같아 고생스러우십니까?
그래도 참음으로 기다리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우리 가운데서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짓는 농사는 실패하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농사는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머지않아 추수할 때가 올 것이니 그 날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인내하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씨를 뿌림

씨와 열매를 살펴보는 가운데 이미 나타난 사실입니다만 한 가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씨는 반드시 땅에 뿌려져야 하는 것이 법입니다.
주님조차 그 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주님이 당신의 죽음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오늘 말씀도 그렇습니다.
단순히 씨와 같으니...가 아닙니다.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26]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겨자씨도 마찬가집니다.
         [32] (땅에)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씨가 곧 하나님의 나라요, 씨가 곧 예수님이요, 씨가 곧 우리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씨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씨는 그저 씨일 뿐입니다.
모든 가능성을 그 안에 지니고 있지만 결코 자라서 큰 나무가 되지도 못하고, 30 배, 60 배, 100 배가 되지도 못합니다.
씨이신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땅에 심겼습니다.
그가 맺은 결실이 하나님의 나라요, 교회요, 우리들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과 부활의 열매된 우리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4)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또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내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골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제자들 대부분은 주님이 그리하신 것처럼 순교를 당했습니다.
주가 거두신 열매인데 씨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그들처럼 순교할 것을 요구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열매된 우리들이 땅에 심겨져야 하리라는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세상은 열매를 탐하는 무리로 가득합니다.
보기 좋고,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것만을 쫓아 달려가고 있습니다.
누구도 씨를 뿌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손에 쥔 것은 무엇이든 놓지 않고 부여잡습니다.
많이 가진 자는 창고를 늘리는 일에 골몰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거두기 전에 먼저 뿌리는 자들입니다.
아니 스스로 씨가 되어 땅에 뿌려지는 자들입니다.
뿌린 것이 있어야 거둘 것도 있다는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땅에 심으면 하나님이 키워주시리라고 믿고 삽니다.

저는 여기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씨가 되어 어디에 뿌려져야 하는지는 각자에게 다 다를 것입니다.
주님의 비유는 듣는 자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지금 이 시간 생각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언제, 어디에 뿌려져야 할지를 스스로 결단하고 실천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큰 나무가 되고, 100배로 결실하리라는 소망과 믿음으로 스스로를 땅에 뿌려, 복된 약속 이루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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