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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見 - 욕망(慾望)의 관성(慣性)을 거스르기 바라며…<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에 대한 ‘감리교선교정책연구공간 아레오바고’의 입장
이광열  |  hopehope21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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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6월 06일 (토) 14:33:35
최종편집 : 2009년 06월 06일 (토) 21:17:39 [조회수 : 3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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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見 - 욕망(慾望) 관성(慣性)을 거스르기 바라며…

<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에 대한 ‘감리교선교정책연구공간 아레오바고’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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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선교정책연구공간 아레오바고’는 <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라 일컫는 맘몬의 시대에 ‘목회를 한다는 것’은 그 맘몬의 체질에 가장 강력한 항체(抗體)를 배양하지 않고서는 하늘과 소통(疏通)을 이루는 ‘영성’을 유지하기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의 제자들처럼 한시도 깨어있지 못하여 영혼의 파수(把守)에 실패하였고, 그 결과 탐욕스러운 맘모니즘(mammonism)에 속절없이 우리의 심장부까지 관통 당했다. 작금의 통탄할만한 감리교 사태는 맘몬에게 영혼은 물론 심장까지 내어준 자들의 무자각(無自覺)적 행태요, 집적거림이다.

  또한 ‘제 버릇 남 못 주듯’ 이러한 사태는 어떠한 형태로든 반복될 것이 자명하기에, 이제 우리는 은둔거사(隱遁居士)의 비겁함을 버리고 떨쳐 일어나려고 한다. 욕망의 관성을 거스르고 ‘코나투스(conatus: 자신의 익숙한 존재 속에 머무르려는 노력)’의 소심함을 깨뜨리는 영적인 질주를 통해서 ‘우리’라는 반경을 새롭게 조율해보고자 한다. 이제 구태의 연(聯)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함께 맡은 자들(同志)’의 피 끓는 숨소리가 토하여지는 <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를 통해서 ‘아골의 골짜기가 소망의 문’(호 2:15)이 되기를 조심스럽게 희망한다. 이에 이 대회를 맞이하는 우리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혀, 우슬초로 그 영혼을 씻어내는 죄책고백의 연대(連帶)를 촉구해본다.   

   


회개.  “주여! 우리가 ‘탕자(蕩子)’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사사 삼손이 여인을 희롱하기 위하여 나실인의 비밀을 누설한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한갓 여인을 희롱하는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킨 삼손의 실패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하늘의 일(牧會)을 맡게 되었다는 전율스러웠던 자긍심은 뒷켠에 감춰두고, 오직 생존을 위한 처신만 부단히 탐색하는 한심스러운 작태가 바로 우리의 자화상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예수께서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과는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연공서열을 매기면서 다투었던 제자들의 철없음은 이미 우리의 뼛속까지 침투한 영혼의 바이러스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강력한 백신(vaccine)인‘회개’를 통하여 우리의 욕망에 각(角)을 세우고자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가 무지한 말로 하늘의 이치를 어둡게 한 자이며, 아버지의 것을 팔아 자신의 향락을 산 패역무도한 탕자이다. 모름지기 주의 일을 맡은 자는 ‘자기의 것을 드려 아버지의 기쁨을 사는 것’이 마땅하나, 우리는 하늘조차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오만함에 젖어 있었다. 우리는 탕자(눅 15:11-24)처럼 아버지와의 소통이 끊어져도 자신의 분깃만 있으면 무한 생존이 가능하리라는 어리석음(無智)의 화신이 되어 은총으로 점철된 광야생활을 속된 더듬이질(browsing)로 오염시켰다. 우리의 잘못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고 거기에서 생명을 유지시키려는 것이었다(렘 2:13). 우리는 미간과 손목에 주의 말씀을 새기는 거룩한 신앙의 전례(테필린 ןיליפת)를 버리고, 권세와 탐욕으로 점철된 짐승의 피를 바른 거짓 선지자의 뒤를 쫓는 ‘발람의 교훈’(계 2:14)을 따르다가 이런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자리까지 밀려왔다. 이 모든 것이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우리의 죄와 허물이며, 우리는 이를 슬퍼하고 통회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가 우리의 끝이 아님을 믿는다. 이 모든 죄상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철저하게 자복하는 바로 그 자리가 바로 우리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이렇게 <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를 통하여 진정한 회개를 이룰 때,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치 아니하시는(렘 31:34)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이자 전략이다.

  또한 우리는 티끌과 재 가운데 엎드린 욥을 일으키시어 이전보다 더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 가운데 소망이 있음(애 3:19-21)을 믿는다. 이에 우리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대고 회개함으로 여호와께서 풍부한 인자하심을 따라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것을 간절히 청원하는 것이다.



자정.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렘 58:12)


  회개가 개인의 욕망에 각(角)을 세우는 일이라 한다면, ‘자정은 공동체의 욕망의 구조를 훼파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패역한 이스라엘이 돌이켜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를 회복한 후, 그들은 반드시 거짓된 우상을 제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런 면에서 자정은 회개의 열매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부르짖는 백성을 외면하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멍에를 벗기시고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시는 그 때에 우리는 보수(補修)의 임무(任務)를 명(命) 받는다(렘 58:9-14). 이에 회개를 이루는 우리는 스스로의 행위를 조사(調査)하고 여호와께 돌아가려는(애 3:40) 자정(自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어느 집단을 막론하고 그 관계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잣대가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의해서 추동되기에 공동체를 자정하는 노력은 그 집단이 발현하는 약탈적인 이기심을 제어할만한 장치를 마련하는 데에 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영적 공동체라 할지라도 그 야수적인 행동을 훼파하지 않은 채 개인들의 선한 의지만으로도 새로움을 획득할 수 있으리라는 도덕적인 낙관주의를 경계하고자 한다. 따라서 감리교회를 자정하는 이 지난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우리는 집단적 욕망을 제어할만한 몇 가지 투명한 장치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우리의 자정 요구를 다음의 몇 가지 바램으로 담아본다.



바램. “주여, 공의와 정의, 은총과 긍휼히 여김, 그리고 진실함을 허락하소서!”


하나. 먼저 우리는 성공신화로 점철된 교회의 폐해를 지적하고 그 방향을 과감하게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여호와의 집에서 바알을 분향하고, 거룩한 곳을 알지 못하는 신을 좇는 도적의 굴혈로 전락시킨 패역함(렘 7:9-11)이 오늘 우리 교회의 자행되는 성장 지향적 목회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다. 교회 공동체가 자본주의적 이념에 맞게 성장과 발전의 목표를 떠받드는 신기루를 쫓는 한 목회자들은 그 세속적 목표를 온몸으로 수행해야만 하는 능력의 ‘테크니션'으로 전락한다. 우리의 목회가 하늘의 뜻을 땅에서 이루기 위한 영적인 몸부림이 아니라, 사람을 모으고 대중을 다루는 각종 기교와 재주에 능숙한 실용적 조합주의로서의 자맥질이라면 이를 과감히 거절할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감리교 공동체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함께 떠받드는 공존(共存)의 장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相生), 하늘의 뜻을 겸허히 수행하는 순종의 도(道)를 이루어, 생존이 아닌 의(義)의 수행자로 변모되기를 소망한다. 따라서 이러한 의지를 담은 신학백서와 목회실천강령들을 구상할 것을 촉구한다.


. 우리는 비민주적인 의회제도의 자정을 요구한다. 현재 감리교회에는 의무(부담금 납부)는 있으나 권리(참정권 등)는 제한되는 반시대적인 장치들이 남아있다. 우리는 누가 우리에게서 이런 당연한 권리조차 박탈하도록 허용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은연 중 영적 위계질서(hierarchy)를 조장하는 것으로 종교개혁의 영적 자산을 말살시키려는 음흉스러운 시도이다. 이에 우리는 모든 세대와 계층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건강한 의사결정 구조, 즉 민주적 의회제도를 요구한다.


. 우리는 감독(회장)의 역할수행에 대해서 원칙적인 재고(再考)를 요구한다. 모름지기 교회의 지도자는 희생과 봉사의 자세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금권으로 일관된 과열된 감독(회장)선거는 그 배경에 감독(회장)의 지위와 역할이 이런 청빈한 봉사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감독(회장)의 직무 수행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은 ‘섬김의 리더십’에서 출발하여야 하며, 감리교회를 위한 희생과 봉사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 또한 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받아왔던 공식적인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속칭 ‘거마비, 행사 사례비’등의 관습적인 수입원 또한 차단하고 근절(根絶)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본부의 경량화(輕量化)와 더불어서 개체교회의 엄청난 부담(負擔)으로 작동하는 부담금의 짐을 덜어줄 것이다.


. 우리는 선거제도의 공영화를 요구한다. 우리는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할 책임이 있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휘둘려 그 중립성을 잃은 경우를 허다하게 보았다. 또한 불법적인 선거 행태에 대한 엄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미흡하여 사회 법정에 그 판단을 물어야하는 안타까운 현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에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영적인 지도력(Leadership)이 세워질 수 있도록 다각적인 모색을 요구한다.


다섯. 우리는 은급제도의 개선을 요구한다. 현재 개정된 은급제도의 ‘낸 만큼 받는다’는 수혜자 부담의 원칙은 자본주의의 사적 연금제도를 모방한 것으로 공적 시스템이 갖추어야 할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기 어렵다. 이는 어렵고 힘든 지역에서 목회하며 하나님의 소명을 묵묵히 수행하는 수많은 목회자들에게 허망한 박탈감을 불러일으키고 더불어 공존하는 상생의 자리를 말살시킬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바램이 <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를 통하여 공식적으로 논의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우리가 미처 담보하지 못한 수많은 자정의 노력들을 통하여, 우리의 감리교회가 그 이름만으로도 자랑스러운 영적 공동체로 거듭날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선지자 이사야가 꿈꾸었던 평화의 나라를 다시 그리는 것으로 우리의 입장을 갈음하고자 한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6-9) 

   

2009. 6. 5.

                           <감리교선교정책연구공간 아레오바고 연구위원 일동>

                            권승길 김진국 김진혁 박정인 서영호 이광열 이동순 이명수

                            이병일 이종찬 장경현 천권환 최승화 허준영 홍성국 (이상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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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독 (211.108.10.110)
2009-06-06 19:27:09
글씨 크기 좀 키워주시면...
관리자님 글씨 크기 좀 키워주세요. 내용은 좋은데 보기가 힘드네요.
리플달기
6 5
운영자 (121.160.11.226)
2009-06-06 21:18:25
제목글씨 키웠습니다. 한글 속성이 따라와서 작아진 것 같네요.
제목글씨 키웠습니다. 한글 속성이 따라와서 작아진 것 같네요.
필자는 글을 편집하실 때 <한글> 등에서 복사 해서 붙일때에는 위의 편집창에서 7번째 칸의 [T]글자가 들어있는 칸을 클릭하면 속성이 사라진채 복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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