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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월)

1. 쉼터 주치의 윤영식 선생님, 할머니들과 붓글씨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서당 이름도 정했습니다. “덕수원 서당 ” : 할머니들의 주치의이신 윤영식 선생님께서 매주 월요일 할머니들과 함께 붓글씨 공부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첫날이라 이론공부를 먼저 한 후 할머니들과 함께 서예교실의 이름을 짓기로 하였습니다. 이순덕 할머니의 덕(德)자와 이용수 할머니의 수(洙)자, 길원옥 할머니의 원(元)자를 한자씩 하여 德洙元書室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낙관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할머니들의 이름자를 따서 그랬는지 할머니들께서는 너무 너무 마음에 든다고 박수까지 치면서 좋아했습니다. 할머니들의 작품을 기대해봅니다.

▲ 서예교실

4월 28일(화)

1. 박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 호소 편지 발송 : 박물관에 이미 성금을 내신 분들, 아직 내지 못하신 분들 1천여 명에게 박물관 건립을 위해 후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만들어 인쇄하고, 후원이 편리할 수 있도록 지로용지를 박물관 모금으로 지정하여 동봉하여 발송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일본 자원활동가 고노 씨와 함께 앉아서 지로용지를 발송하기 위한 작업을 하면서 서로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대화들을 많이 나누어서 기뻤습니다.

4월 29일(수)

1. 863차 수요시위, 한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주관으로 개최되었습니다. : 벚꽃은 벌써 한바탕 지었다 시들고 이제 봄의 끝자락을 수놓는 꽃들이 곳곳에 만개한 것 같습니다. 정대협 사무실 안은 여전히 겨울의 기운을 떨쳐내지 못한지라 난로를 켜고 전기방석의 스위치를 올리는 웃지못할 풍경이 가끔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바깥 날씨를 제대로 체감하곤 합니다.

▲ 863차 수요시위     863차 수요시위는 봄과 여름의 갈림길에서서 또 한번 희망의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이번 주의 주관단체는 천주교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와 그리스도의교육수녀회에서 맡았습니다. 삼삼오오 수녀님들이 일본대사관 앞으로 모여오고 학생들, 외국인들도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12시 정각, 바위처럼 합창으로 힘차게 문을 연 수요시위는 기도와 묵념이 첫순서였습니다. 수녀회의 주관이다보니 작은 기도회처럼 그렇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색깔로 진행되는 수요시위만의 매력이겠지요.

성경구절을 통해 가난한 자, 핍박받는 자 그리고 우리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고 한주간의 정대협 활동에 대해 강주혜 사무처장이 열띤 보고를 이어갔습니다. 다음으로 오늘은 어떤 분들이 오셨는지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먼저 오랜만에 나눔의 집 봉고버스를 타고 이용녀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이렇게나 오래된 시위가 있다니 한번쯤 들러서 귀기울여 보고 싶은 마음들을 가지고 왔겠지요. 비록 '관광객'이지만 어느 순간 '참가자'로 변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고 또 희망담은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요즘 수요시위의 최연소 참가자는 바로 건비입니다. 이경희 문화홍보위원장의 아들인 건비는 엄마가 회의 있을 때마다 업혀서 따라오곤 했는데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서 이제 말도 곧잘 하고 할머니들 앞을 마구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참가했으니까 인권, 평화 감수성이 남다른 멋진 소년으로 커갈거라 믿어봅니다. 그밖에 일본에서 온 자원봉사자 후미, 대학생들도 함께했습니다.　성균관대에서 온 여학생은 비록 과제를 통해 참! 가하게 되었지만 더 열심히 관심가지고 활동하겠다는 약속도 전했습니다.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이 끝나고 청원기도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과 평화를 염원하는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명서 낭독, 그리고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합창을 잇는 것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 863차 수요시위

4월 30일(목) ~ 5월 2일(토)  5월 1일 노동절 연휴를 이용해 오늘부터 충청도와 전라·경상 지역에 계신 할머니들을 방문하고 왔습니다.

1. 강주혜 사무처장과 김동희 센터 사무국장, 안선미 팀장이 함께 4월 30일 오후부터 충남당진을 시작으로 3일간의 할머니 방문활동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 이기정 할머니     ©윤미향

이기정 할머니 : 다행히 땅거미가 내리기 전에 첫 방문지인 당진의 이기정 할머니 댁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 집 앞에는 할머니가 손수 가꾸신 꽃들이 활짝 피어서 정대협 실무자들을 반깁니다. 문을 들어서며 할머니를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으시고 방문을 열어보니 깜빡 잠이 들어계셨습니다. ‘할머니 강부장이예요.’ 할머니들께는 만년 강부장으로 불리는 강주혜 사무처장이 할머니를 부르자 너무 반갑다고 일어나 앉으며 손을 덥석 잡으십니다. 할머니가 타주신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워나갔습니다. 새로 산 옷 자랑도 하시고 주일마다 열심히 교회 나가고 있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휴대폰에 저장된 손녀딸 사진도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시는 모습이 비교적 건강해 보이셔서 안심이 됩니다.

▲   하수임 할머니

하수임 할머니 : 서산으로 차를 돌려 달렸습니다. 하수임 할머니 댁에 도착한 것은 저녁 땅거미가 내리고 나서였습니다. 미리 전화를 드리고 갔는데도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눌러보아도 아무 대답이 없으십니다. 다시 전화를 드리고 나서야 문이 열립니다.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도 힘겨운 상황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셨다고 합니다. 갈비뼈에 금이 가서 압박붕대를 하시곤, 힘들게 거동하십니다. 교통사고라고 하는데 그나마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아프신 할머니가 혼자 생활하시는 것이 안타까워 따님 집으로 옮기시라고 해도 혼자 있는 게 편하다며 영 내켜 하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시라고 몇 번이나 부탁을 하고 돌아서는 마음이 조금 무거웠습니다.

2. 5월 1일에는 충청도 땅을 넘어 전북에 계신 할머니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 이점례 할머니

o 이점례 할머니 : 익산에 계신 이점례 할머니는 옆에서 친구처럼 가족처럼 돌봐주시는 할머니가 계셔서 그래도 마음이 놓이는 분입니다. 먼 길 왔다며 안타까움 반, 반가움 반으로 맞으시는 할머니는 속도 좋지 않고 여러 가지로 몸이 불편하다고 하셨지만 옆집 할머니와 함께 정기적으로 병원도 가시면서 비교적 잘 지내시는 것 같습니다. 관절 때문에 계속 고생하고 계셔서 안 그래도 파스를 부탁하셨던 터라 파스와 함께 준비해온 것들을 드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정대협 실무자들이 탄 차가 안보일 때까지 두 할머니가 나란히 서서 배웅하시는 모습에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o 이양근 할머니 : 역시 익산에 살고 계시는 이양근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할머니 댁에는 간병인이 와 있었고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켜놓고 내내 누워계셨던 모양입

▲    이양근 할머니

니다. 할머니의 다리는 온통 파스가 붙여져 있었고 움직이는 것이 여의치 않아 종일 누워 지내신다고 하네요. 강주혜 처장을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곤소곤 하시는데 뭔가 마음이 편치 않으신 것 같기도 합니다. 가벼운 운동이라도 조금씩 하시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 2여년 전에 한번 기력을 잃으신 할머니가 여전히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계시네요. 할머니는 좋은 할아버지 어디 없냐고 하시고 그것만은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는 일이라고 말씀을 드리면서 그래도 농담으로 웃으면서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 나왔습니다.

o 김요지 할머니 : 전주의 요양병원에 계시는 김요지 할머니를 찾아 갔습니다. 누워계시던 할머니는 정대협 실무자들이 들어서는 것을 보시자마자 눈물부터 흘리십니다.

▲   김요지 할머니

한동안 못 찾아뵈었던 마음이 더 미안하게 마음을 울립니다. 할머니는 지난 해 말경에 척추수술을 받은 후 아직까지 퇴원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요양 중이십니다. 다행히 걱정했던 것보다 할머니의 얼굴은 나쁘지 않았지만, 얼마전 화장실에 가시다가 넘어졌다며 힘들어 하셨습니다. 전주는 할머니의 고향이지만, 현재는 아무런 일가친적없이 혼자는 지내고 계시는 할머니에게 이번에 퇴원하면 동생분이 계시는 서울로 이사할 것을 권하니, 할머니도 그러고 싶다고 하십니다. 오랜 병원 생활에 많이 외로워하시는 할머니.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o 진화순 할머니 : 정읍에 계신 진화순 할머니를 뵙고 나니 정대협 실무자들은 기운이 쏙 빠져버렸습니다.

▲ 진화순 할머니

진화순 할머니는 정대협 사무실로 가끔 전화를 걸어서 그 걸걸한 음성으로 소리치듯이 한참을 얘기하다 말미에는 ‘놀러와’를 몇 번이나 연발하시고 끊으시곤 하시는데 역시나 할머니만이 가진 그 음성과 행동으로 방문한 실무자들의 혼을 쏙 빼놓으셨습니다. 대뜸 통닭집에 전화를 걸어 통닭 네 마리를 시키시겠다고 넘치는 반가움을 표현하시고, 여기 앉아라 저기 앉아라 하시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십니다. 걷지를 못하셔서 집안을 무릎으로 기어서 오가는 할머니는 무릎 쪽 옷은 다 닳아 있을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에너지를 발산하시니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고 한편으론 걱정이 됩니다. 최근에 술 드시는 양이 좀 줄어든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술을 담아놓은 병들이 방 안쪽에 줄지어 서있습니다.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도 정이 많고 또 정이 그리울 할머니가 그 걸걸한 음성 그대로 오래 건강하시기만을 바라봅니다.

o 최선순 할머니 : 고창으로 넘어가 최선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마침 놀러와 계시던 옆집 할머니와 함께 담배 한 모금을 나누고 있던 할머니께서 실무자들이 들어서자

▲ 최선순 할머니

그 작은 체구를 일으켜 활짝 웃음을 지으며 반기십니다. 마당의 화단부터 깔끔하게 정리된 할머니 댁은 방안도 파리가 미끄러질 듯 깔끔한 모양새입니다. 할머니는 거의 실명수준으로 눈이 보이지 않으시며, 역시 다리와 허리가 불편하시다고 호소하시는데 깨끗한 집안을 보면 그런 말씀이 무색할 정도로 보입니다. 옆방에 새로 든 사람 이야기, 건강상태 등 요즘 지내시는 이야기들을 듣고 집을 나섰습니다.

3. 5월 2일(토) 에는 전남 목포까지 달려와서 여객터미널 근처에서 굳이 숙소를 잡은 것은 다음날 새벽 첫배를 타고 들어가 안좌에 계신 신쌍심 할머니를 뵈려고 했던 것인데 새벽같이 배를 타러 나갔더니 연휴기간의 관광객이 너무 많아 배를 탈 수가 없었습니다. 몇 시간 후에 있을 다음 배편을 기다리자니 다른 할머니들을 뵈러 가야할 곳이 또 많기에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드리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 해남으로, 화순으로 향했습니다.

o. 공점엽 할머니 : 해남에 계신 공점엽 할머니는 밭일이다 집안일이다 손에서 놓지를 않으시는 통에 뵈러 갈 대마다 얼굴이 까맣게 익어 있습니다.  

▲    공점엽 할머니

이른 시간에 도착했지만 아들 내외도 밭일을 하고 있고 할머니도 툇마루에 앉아 전날 캐신 쑥을 다듬고 계십니다. 잠깐 누군가하고 살피시더니 이내 알아보시고는 반갑다고 어쩔 줄을 몰라 하십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시는 중에도 손에서 다듬던 쑥을 내려놓지 못하시네요. 다행히 기르던 돼지들이 잘 자라주었는지 키우는 숫자도 늘었다고 반가운 소식도 말씀해 주시고, 근래에 어떻게 지내셨는지도 들려주십니다. 그저 고맙다는 말씀을 반복하시고 빨리 결혼해서 아들 낳으라는 덕담(?)도 잊지 않으십니다. 한동안 얘기를 나누다보니 할머니 댁 쪽으로 난 길을 지나 산으로 일을 가려는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집안으로 들어섭니다. 가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아드님이랑 할머니는 뭐라도 챙겨주고 싶다면서 계속 손을 잡으시고 그렇게 행복한 실랑이를 뒤로 하고 해남을 떠나왔습니다.

o 황선순 할머니 : 화순으로 가서 황선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대문을 들어섰는데 할머니가 키우던 강아지

▲ 황선순 할머니

▲ 이복순 할머니

직원들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잠깐 기다렸더니 할머니가 단정한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반가운 상봉이건만 할머니들이 손을 부여잡고 눈물부터 훔치시는 건 어쩔 수가 없나봅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요양원에 계시는 다른 할머니들보다 훨씬 정정한 모습이시라 가장 마음이 놓이는 편입니다. 특별히 불편한 곳은 없는지 여쭙고 한참을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자니 오래 지내셔서 요양원 터줏대감이 다 되신 듯 옆에 계신 다른 할머니들 일에 이것저것 관심도 보이시고 헤어질 때는 다른 할머니도 손수 챙기시면서 함께 올라가십니다. 비교적 몸도 마음도 건강한 할머니가 쭉 건강하시기를 바라면서 또 한번의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돌아섰습니다.

o 김양주 할머니 : 마산에 계신 할머니들을 다 뵙고 가자니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바삐 핸들을 움 

▲ 김양주 할머니

직여 봅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김양주 할머니 댁이었습니다. 할머니를 부르며 집안으로 들어서자 반가이 맞아주십니다. 할머니 방안 바닥에는 아직 전기요가 펄펄 끓고 있었습니다. 더워도 방바닥은 따뜻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씀입니다~ 할머니가 다치셨던 발가락은 괜찮으신지 살펴보고 예전에 수술하셨던 부위는 또 괜찮은지 여쭤보는 것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역시나 할머니도 아들 걱정이 제일 앞서시나 봅니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는 할머니의 서랍장 위에는 故김수환 추기경의 사진도 놓여있습니다. 이것저것 드시는 약도 한번 보여주시고 불편한 몸과 마음의 이야기도 한참을 나눴지만 못 다한 얘기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o 이효순 할머니 : 창원에 계시는 이효순 할머니가 2월경에 천식으로 마산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여 병원으로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 이효순 할머니

몇 달간의 병원 생활에 많이 수척하신 모습이었고, 거동을 힘들어 하셨습니다. 요즘 더욱 천식이 심하여 병실에서 화장실 가는 것조차도 숨이 차서 힘들다고 하십니다. 낯가림이 심한 할머니는 처음 만나는 사무실 실무자들을 조금 부담스러워 하는 듯하여, 얼른 자리를 피해 드렸습니다. 마산에는 이질이 있어서 마산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창원에 사시는 집이 이층이라 오르내리기 힘들다고 퇴원해도 마산에 새로 집을 얻으려고 생각중이라 하십니다. 서울에서 사시던 할머니가 동생이 있는 창원으로 이사오신지가 3년전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입원한 병실이라 할머니가 말씀하시며 다른 분들의 눈치를 보는 듯하여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생활하실 수 있기를 바라며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병실을 나섰습니다.

o 임정자 할머니 : 찾아뵙겠다는 통화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후인데도 할머니를 부르며 들어갔더니 어느새

▲ 임정자 할머니

곤히 잠이 드셨던 모양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신 할머니는 보자마자 반갑다고 그저 좋아하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가끔 강부장이 보고 싶어서 이불 뒤집어쓰고 우신다는 것이니 이를 행복해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마음 한편이 다시 저려오고 맙니다. 요즘 들어 귀가 더 안 들려서 아들과 대화하는 것도 힘에 겨우신 것 같은데 사다놓은 보청기를 제대로 착용하지 못해 무용지물이 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참을 보청기와 할머니 귀 사이에서 씨름을 하다가 겨우 맞춰서 들리게 해드렸더니 금세 표정이 밝아지십니다. 할머니가 드시는 약들도 다시 살펴서 복용법을 알려드리고 할머니의 아들 걱정도 듣고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눕니다. 할머니 모습이 오늘따라 더 마음을 울리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겁고 그러면서도 또 다음 할머니를 향해 자동차는 달립니다.

o 김복선 할머니 : 김복선 할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이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댁에 도착해보니 할머니는 감기에 걸려서 열이 나고 기침을 거푸 하고 계신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엔 감기약이라도 사다 드리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병원으로 급히 모셨습니다. 주말 저녁시간이라 응급실에 가서 진료를 받아봤습니다. 일단 수액을 맞고 기침약을 드시게 한 후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네 시간 가까이 수액을 맞으면서 한숨 주무시고 나니 다행히 열도 가라앉고 상태가 호전되어 집으로 다시 모실 수 있었습니다. 콩나물국이 드시고 싶다는 말에 가게에 들러 콩나물도 사고 다시 할머니 댁에 도착하고 나니 시간은 훌쩍 열한시를 넘어 서울로 돌아갈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건강하고 젊게 사시는 편인 김복선 할머니의 쾌유를 바라면서 2박 3일의 빠듯한 일정을 뒤로 한 채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o 김경애 할머니 : 김복선할머니가 병원에서 수액을 맞는 중에 잠시 김경애 할머니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귀가 많이 어두워 전화통화가 힘듭니다. 그래도 자주 집을 비우는 할머니가 집에 계시는지 확인하고자 전화를 드렸는데, 마침 연결이 되네요. 역시 오늘도 서울 말씨라서 더욱 알아듣지 못하십니다. 간신히 오늘 중에 찾아뵙겠다는 의사전달만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산에서 외국에 있는 딸에게 가신다고 사시던 집을 처분하였는데, 얼마 계시지 못하고 할머니는 다시 마산으로 돌아와서 다시 집을 마련하여 혼자 지내고 계십니다. 여러번 할머니를 방문하였지만 만나뵙지 못하고 허탕을 쳤는데, 이번에는 간신히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새로 이사한 집이 좁다고 푸념하십니다. 그리고 여러 병원을 다녀야 되는데 힘들다고 하십니다. 예전보다 훨씬 늙으신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저러옵니다. 좀더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기를 바라며, 다음을 약속드리고 헤어졌습니다.

3. 수원에 살고 계시는 안점순 할머니를 윤미향 대표가 뵙고 왔습니다. : "때르르릉.... 때르르릉...." 전화벨 신호가 갑니다. 그러나 전화를 한동안 받지 않으십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전자음소리가 나더니 전화가 끊깁니다. '이상하다. 할머니가 어디 가셨을리는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전화를 겁니다. 딸깍 소리와 함께 "여보세요?" 할머니의 숨찬 목소리가 들립니다.
"할머니 뭐 하시다가 전화받으셨어요?"
"응? 허허 화장실에 있다가..."
"아이쿠, 볼일도 제대로 못보게 했네요. 죄송해요 할머니...."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누고, 할머니께 지금 가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당뇨이시기 때문에 뭐 특별한 것을 사도 할머니가 맘편히 드실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는듯 합니다. 그래도 조카내외랑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롤케익과 이것저것을 사고, 할머니집에 도착했습니다. 반지하 전셋집... 1층에서 아래쪽으로 내려다보니 할머니가 속옷 바람으로 현관문밖에서 담배를 피시고 계시다가 황급히 끄며 일어서십니다.

▲ 안점순 할머니

"나는 요즈음 더워서 이렇게 벗고 살아."
"할머니, 담배는 여전하시구만요."
"응, 담배는 못끊어." 하십니다.

계단을 내려가 할머니 방문을 열고 장판 밑부터 살핍니다. 여전히 장판 밑은 습기가 져서 신문지를 밑에 깔고 습기를 빼고 있었고, 여기 저기 곰팡이도 서려 있습니다.
"걱정이네. 할머니..."
"그래도, 우리 세 식구가 살기에는 이만한 집이 없어. 이렇게 싼 값에." 늘 그렇듯이 할머니의 걱정부터 듣습니다. 할머니의 걱정은 오로지 조카의 건강인듯 합니다. "밤 새도록 잠한숨 못자고 기침을 하고, 아침이 되면 눈이 벌개서 나가. 얼마나 안됐는지... 안됐어. 마누라는 저렇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식당에 나가서 식당일 해주고 남편뒷바라지 하느라 고생만 하고...요즘에 저런 여자가 없지."
그렇게 할머니는 조카와 조카며느님에 대한 염려와 애정을 표현해 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해서 꼭 갖다 준다는 오목천교회에 대한 감사인사도 잊지 않으시고, 이것 저것 보고를 해주십니다.

▲ 안점순 할머니와 어머니

"그래, 다른 할마시들이랑 다 잘 있어?" 하시며, 몇년 전 제주도에 함께 갔던 사진을 꺼내십니다. 그 사진을 보니 이미 참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 이 분도 돌아가셨고, 이 분도, 이 분도.... 돌아가셨어요."
"대구 이용수 할머니는 여전하지? 아마 그 할마시는 끄떡없을거야."
그러시더니 해방후 대구에서 식당하실때 알고 지냈던 배춘희 할머니 안부도 여쭙니다. 할머니가 젊었을때 어머니랑 함께 찍은 사진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카메라에 담아 크게 뽑아 드리겠다고 하니 좋아하십니다.
1년전, 자궁암이 발견되어 방사선치료를 받으셨는데, 얼마전 조금 이상이 있는듯 하여 다시 재발되지는 않았는지 걱정되어서 병원을 갔는데, 검진결과 다행히 이상은 없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마음은 더 가벼워진듯 합니다.

"요즘은 어디 놀러 안가? 나도 이제는 갈테니까 가게 되면 불러줘. 어디 가서 맛잇는 것도 좀 먹고 싶고 그러네."  그렇게 할머니는 놀러가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다음에는 꼭 맛있는것도 먹으러 가고, 할머니들과 함께 목욕도 가고, 놀러가자고 하니, 꼭 그러겠다며, 꼭 부르라고 하십니다. 따뜻한 봄이 되니 할머니가 달라지셨습니다. 어디 가자고 해도 늘, 몸이 안좋아서 움직이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 할머니가 적극적으로 나오시니 기쁩니다.

4. 정대협 쉼터 우리집 손영미 실장은 5월 1일, 노동자의 날에 등촌동 황금자 할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 아침 일찍 할머니댁으로 전화를 드리니 받지를 않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서둘러 할머니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여 아파트로 올라가니 아무런 기척이 없습니

▲ 철쭉과 황금주 할머니

다. 할머니를 찾으러 복지관에 있는 경로당으로 갔습니다. 다른 할머니들과 쇼파에 함께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계시던 황금자 할머니께서 금방 알아보시고선 "아이구 오랫만에 왔네, 왜 이렇게 오랫동안 안 왔냐"하시면서 손을 덥썩 잡아주셨습니다.

다른 할머니들께도 인사를 드린 후 할머니와 함께 아파트로 왔습니다. 할머니께 드리려고 갖고 간 청심환과 파스, 양말을 드리니 기뻐하시며 고마워하고 활짝 웃으셨습니다. 할머니 생신잔치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았다고 말씀드렸더니 "내 생일 잔치한 것 보았어?" 하고 다시 물어보시고는 "거기에서 내가 죽으면 장례도 치러준대, 그때는 꼭 와야 해." 합니다.
"오래오래 사셔야지요." 하는 말에 할머니께서는 온몸이 아파서 오래 못 살 것 같다 하시고, 조카가 찾아 와서 돈달라고 하면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는 말씀도 하였습니다.
발에 무좀이 심해서 아프다고 하셔서 다음에 올 때는 꼭 무좀연고를 사다 드리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하였습니다. 눈에 눈물샘이 말랐다고 하시면서 복지관 직원과 안과에 가기로 한 이야기도 해주시고, 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습니다. 다시 경로당에 점심식사를 하러 가신다고 하여 아파트 앞까지 모셔 드리는데, 아파트 화단에 꽃이 활짝 핀 것을 보시고는 꽃 앞에서 사진을 찍고싶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카메라를 꺼내고, "할머니, 활짝 웃으세요." 요구를 해도 그냥 서 계신 할머니, 그래도 꽃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는 우리 할머니이십니다. 다음에 올 때는 사진과 무좀연고 꼭 부탁한다는 할머니의 당부 말씀이 있으시고, 경로당 앞에서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시던 할머니가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 157호 주간소식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