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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전생수목사 장례식장 포토스케치그리고 허태수목사의 "故 전생수목사를 떠나 보내며"와 전생수목사의 "새벽"
이필완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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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0월 21일 (금) 00:00:00 [조회수 : 7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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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21일 이른 6시, 가을비가 처연히 내리는 충주 장례식장에서 많은 지인들과 교인들이 모인 가운데, 故 虛耳(만득이) 전생수목사의 장례예배가 경건하게 드려졌다.

고진하목사의 사회로 안병길목사가 기도하며 박철목사가 조시를 읊었다.

추평교회 청년들과 학생들, 그리고 친구들이 조가를 불렀다.

 

임락경목사가 설교하고 이현주목사가 조사하고 딸 전한나가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쓰는 편지를 낭독했으며 아들 전보람군이 아빠의 유서를 공개했다.

 

찬송 '하늘가는 밝은 길이'를 부르고 정상복목사가 축도했다.

 

장례식은 이렇게 끝나고 장기가 기증된 그의 시신은 충주화장장으로 옮겨져 한줌의 재로 변했으며, 고향 인제의 어느 나무그루 아래 뿌려졌다.

 

 

 

故 전생수 목사를 보내며


                                                                                             허태수

나이 쉰 둘은


한 사람이 건너온 시간의 강이 되기에

한 사람이 넘어온 공간의 산이 되기에

이윽고 도달한 초원이 되기에 이르지도 늦지도 않다.


어린애들이 목청껏 부르는 셈본 시간의

그 무심한 숫자도 아니다.


허공을 스치는 바람이며

별똥이 떨어지는 그 짤막한 휘광이며,

찟겨진 깃발이며,

무너진 성벽과 다 타버린 모닥불의 재다.


그 속에는

새소리도 있고 꽃의 냄새도 있다.


어둠속에 어쩌다 햇빛이 새어 들어오면

빛의 다발을 확연하게 만질 수 있듯이,

쉰 둘은

일광이 충만한 정오의 광장과 같다.


빛 다발 가득한 광장에 나서면

가득하면서도 떵 빈 공허밖에 볼 수 없는 데,

그걸 볼 수 있는 나이다.


침을 발라서 지폐를 헤는

전당포의 탐스러운 숫자와,

숱한 서류와 증명서의 기호에서

벗어 날 나이다.


이 모든 것을 이루기에 이르지 않은

쉰 둘에

마치 처음의 그 날처럼

첫발을 내딛는 생수형아!


안녕!



 

   
새벽

                                 전생수


맑은 날 새벽

뜰에서면

아,

코끝으로 스미는

서늘한 공기


달빛, 별빛도 맑아

내 눈에 곱게

쏟아져 내리고


건너 마을

닭우는 소리 조차

귓가에 날아와 앉아

맑은 날 새벽

 

뜰에 서면

영혼도 맑아지는

 

   

故 전생수목사의 유언

이 땅에 아무개라는 이름을 달고 산 지 쉰 한 해 되는 봄. 예수의 도에 입문한지 스물여덟 번째 되는 해에 유서를 쓰노라. 나는 스물 셋 되던 해에 예수의 도에 입문하여 늦은 나이에 학문을 접하며 좋은 스승들을 만났고 좋은 길벗들을 만나 여기까지 살게 된 것에 감사하노라.

나는 오늘까지 주변인으로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모아 놓은 재산 하나 없는 것을 감사하고 목회를 하면서 호의호식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게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 땅에서 무슨 배경 하나 없이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얻을 것도 없고 더 누릴 것도 없다는 것에 또한 감사하노라.

사람들의 탐욕은 하늘 높은 줄 모르며 치솟고 사람들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르고 내달리며, 세상의 마음은 흉흉하기 그지없는 때에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하노라.

이에 남은 이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노니, 첫째, 나는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지 않을 것인즉, 병원에 입원하기를 권하지 말라.

둘째, 나는 병에 걸려 회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어떤 음식이든 먹지 않을 것인즉 억지로 권하지 말라. 또한 내가 의식이 있는 동안에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나누기를 꺼려하지 말라.

셋째, 내가 죽으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알려 장례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

넷째, 내가 죽으면 내 몸의 쓸모 있는 것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내가 예배를 집례 할 때 입던 옷을 입혀 화장을 하고,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고향 마을에 뿌려 주기를 바란다.

다섯째, 내가 죽은 뒤에는 나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땅 위에 남기지 말라.(푯말이나 비석 따위조차도) 와서 산만큼 신세를 졌는데 더 무슨 폐를 끼칠 까닭이 없도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나는 목회자로 살면서 목회를 위한 목회, 교회를 위한 목회를 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목회를 하였으니 여러분들이 앞으로도 계속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가 영원한 생명 안에서 어우러질 수 있으리라 확신하노라.

예수의 도에 입문한지 스물여덟 번째 되는 해 봄 2004년 2월 25일 사순절 첫 날에

虛耳(만득이) 전생수 씀.

  *포토뉴스에도 사진이, 동영상갤러리에 장례식 동영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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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배 (210.103.56.65)
2005-10-24 16:43:21
전생수 님을 애도함
전생수
全生水
모두 생수
온전히 생수

살아선
몰랐지만
죽어서
그 이름 뜻 깊네.

목마른 자들에게
반가운 물이었을 듯
살아 있는
물이었을 듯

그 나이 52세
나랑 동갑인데
수정 같은 강
그 물에 먼저 합류했겠네.

그는 가 수고를 쉬고
메마른 땅에 남은 우린
눈물 몇 잔, 땀 몇 바가지
더 흘려야 할 듯

어느 땅에서
그 생수
다시
기를 것인가?

하늘에서
비가 되어
적실 것 같은
사람

[뒷글]

전생수 목사란 사람은 모른다.
같은 세상을 같은 믿음으로
같은 날만큼 살아 오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이 살았으니까.

그의 죽음을 알리는 보도를 읽고
나이 52세에 죽었단 말에
갑자기 슬프고 가슴 뭉클해서
즉흥 애도시를 읊은 것.
누군 죽을 나이인데
나는 살아 죄만 더 짓는구나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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