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년 04월 12일 (일) 15:08:10 최종편집 : 2009년 05월 04일 (월) 19:20:51 [조회수 : 5249]
* 故 장기천 목사의 2주기를 앞두고 그를 기억하는 몇몇 글들을 3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지인, 유족들은 기일인 5월7일 감신에서 2주기 추모식을 준비합니다. 감리교 사태의 와중에 그 분의 빈자리가 너무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 분이 매우 근엄하였다지만...
날마다 새 사람 [요한복음서 1:43∼5, 누가복음서 7:1∼9] * 이 장기천 목사의 말씀증거는 2003년 8월 10일 새길교회 주일예배에서 행해졌습니다.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는 오직 늙어갈 뿐이다. 어찌 사람뿐이겠는가? 사람이 몸담고 있는 사회도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회도 붕괴되고 말것이다. 오늘 말씀증거의 주제도 이 문제에 관계된 것이다.
예수의 관심은 지벌이나 학벌에 있지 않았다. 오직 그 사람의 정직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는가?"하고 반문하였다. 그에게 주신 주 예수의 응답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지역감정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책망하지 않으셨다.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은 정직성의 문제였다. "이 사람이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요한 1:47)
나다나엘은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것은 백해무익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와 같은 반사회적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나다나엘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에게 있는 최고 최선의 장점을 통찰하시고 칭찬해 주신 것이다. 그것이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오신 예수에게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감지케 한다. 정직, 그것은 예수에게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요건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이것은 예수에게만 값진 것은 아니었다. 오래 전 유대 나라의 왕이었던 다윗에게서도 우리는 듣고 배우고 있다. 여러 갈래와 종족으로 갈라졌던 이스라엘을 하나의 민족, 통일된 나라로 건설했던 다윗은 백성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다스리는 데 무엇보다 골몰하였다. 그런 역경 속에서 그가 터득한 진리는, 인류사회의 기본은 "진실"에 있다는 것이었다. "누가 주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그 거룩한 곳에 들어갈 수 있느냐? 죄 없는 손,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 헛된 것에 뜻을 두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주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그를 구원하신 하느님께로부터 의로움을 인정받을 것이다."(시24:3-5)
하늘과 통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하느님께서 의롭다 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다. 약속을 지키고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는 사람이다.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이요, 다윗의 경험이다. 1960년대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책이 있었다. 존 로빈슨(John Robinson)의 『하나님께 정직하게』였다. 이 사람은 성공회 주교로서의 경험을 근간으로 이 글을 남긴 것이다. "정직은 하나님께 가는 길이다."
성(聖)과 속(俗)은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이 둘은 실제에 있어서는 일치해야 한다. 성은 속을 통하여 스스로를 계시하게 되고, 속은 성을 통해 거룩하게 변화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양심이 죽어버린 시대요, 웃음거리가 된 시대이다. 양심이 죽은 시대에는 도적이 판을 치게 된다. 진실이 빛을 잃은 세상에서는 잔꾀가 판을 친다. 그것은 자신을 붕괴의 나락으로 몰아가는 꼴이 된다. "거짓에 맹종하는 것은 비인간화요, 영혼 포기다."(1974.2.12, 솔제니친의 일기) 거짓을 일삼는다는 것은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영혼을 포기한다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불러들이는 일이다. 거짓은 단순한 윤리규범의 위반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지킬 수 없는 망종이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이라는 마을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로마의 백부장이 예수께 청탁하였다. 자기의 머슴이 병들어 죽게 되었으니 제발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계급사회였으므로 머슴 하나쯤 죽는다 하여 로마의 장교에게 책임이 추궁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인도주의적인 정신이 그로 하여금 앉아서 머슴 죽는 모습을 지켜 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로마의 고급 장교, 그러므로 피지배민족인 이스라엘 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감히 예수께, 이스라엘 사람 예수에게 긍휼의 은덕을 탄원한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매우 감동 받은 것 같았다. "내가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본 일이 없다."(누가 7:9)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장기수로 갇혀있던 간첩 이인모씨가 북한에 송환되었다. 그것 때문에 당시의 통일부 장관이 인책되기도 했다. 그가 북에 돌아가 작은 수상집을 발간했다. 그는 그 책에 이런 글을 남겨 놓았다. 인간이 바라는 사회는 이데올로기보다 한층 고귀한 인도적인 사랑의 실천을 요청하는 것이라 했다. 그 구체적 사례를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오랜 세월 옥에 갇혀 있는데, 면회가 정해진 날이면 반드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서울 궁정감리교회 조영민 목사의 아내와 또 다른 여성 집사님이었다. 그들이야말로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인도적 사랑의 실천가들이 아닐까? 아무리 사상적 변화를 강권해도 불복하던 사람이었고, 미결수의 신분으로 북쪽으로 돌아갔었는데, 그의 마음 속 깊은데서 예수의 사랑으로 인도주의를 받아들이고, 이것을 글로서 공개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무신론자의 입에서 무엇이 진실인가를 증언한 것이며, 무엇이 사람을 살리는 힘인가를 증언한 것이라 여겨진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있는 것이요, 나누며 사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함께 사는 것보다 따로 사는 것을 선호한다. 그것이 자신의 행복을 지켜 주고 자신의 소득을 넉넉하게 쓰며 즐기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와 의사의 도움으로 태어난다. 성장도 부모와 스승의 도움을 힘입어 교육받으면서 자라나는 것이다. 결혼, 심지어 죽음도 형제 자매들, 친구들의 보살핌이 없다면 그야말로 쓰레기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다. 사람은 결코 자기만을 위해 살 수 없다. 사람은 가정이라는 사랑공동체 사회라는 연대 공동체 속에서 살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 다. 서로가 주고받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위하여"라는 말은 이런 뜻을 지니고 있음을 마음에 깊이 담고 살아가야 한다.
마포의 양화진에는 외인 묘지가 있다. 그곳에 특별한 묘비를 찾아보게 된다. 그것은 우리에게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준엄한 경고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멋대로 살아가던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게도 한다. 과연 이 땅에 이렇듯 존귀한 죽음도 있었는가를 되새겨 보게 된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습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로마서 14:8) 청나라와 일본이 한국 땅 평양을 무대로 전쟁을 벌였다. 그 후유증으로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했다. 이때 전염병 퇴치를 위해 투신한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 홀. 이 땅에 처음 여류 의학전문학교를 세운 그의 아내 로제타 홀, 그리고 그들 부부의 아들로 이 땅에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어 보급한 셔우드 홀의 무덤이요 비문이다. 지금 고려대 의과대학의 전신이 바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였으며 이 땅에 가장 무서운 결핵퇴치를 위한 기관이었던 해주결핵요양원도 바로 그들의 유산이었다.
사랑에는 거짓이 통하지 않는다. 진실한 사람만이 큰 일을 일구어내며, 마침내 내 몸을 던져 자기희생을 감행케 한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사랑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고 역설하였다. 사랑은 너무 크고 너무 은혜로운 것이다. 그래서 에릭 프롬은 "사랑은 살리는 것, 미움은 죽이는 것"이라고 갈파했으리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은 독일의 나치(국가 사회주의)에 의해 박해와 살생을 당했다. 한 유대인부자도 이 무서운 고난을 견디다 못해 모든 재산과 가족을 버리고 프랑스 파리로 피해갔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이 거리 저 거리를 서성거리며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한 거리의 빵집 앞에서 구수한 냄새만 맡고 있었다. 다른 유대인 청년도 부러운 눈으로 맛있어보이는 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골목에서 누더기 옷을 입은 거지 한 사람이 나오더니 빵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겨우 한 개를사서 들고 나오더니 그것을 그 청년에게 주고 사라지는 것을 이 유대인 부자가 목격했다. 그는 후일 사람들을 만나 그때 일을 들려주면서 “그거지의 빵은 자기 생명을 주는 빵이요, 그 청년의 육체와 정신을 살린 하늘의 빵이었다”고 말하였다.
거지가 돈을 주고 산 빵이라면 그것은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름도 알지 못하는 거리의 굶주린 청년에게 말 없이 그것을 주었다는 것이야말로 생명의 빵, 하늘의 빵이 아닐 수없다. 베르자에프(N. Berjaev)는 “내가 먹는 빵은 하나의 물질이지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빵은 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 목자이시다(요 10:15). 양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를 버리시고 사람이 되신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죄의 뿌리를 뽑아 버리시고 죄의 세력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고자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시다.
- 좁은 길 넓은 길 / 장기천 (2002/04/13)
장기천 감독님 영전에 드립니다
진실한 목자, 깊은 사색가, 훌륭한 저술가, 존귀한 스승, 그리고 멋있던 한 사람 장기천 감독님, 감독님의 소천 소식을 접하고 섭섭하고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감독님은 이 시대의 그리 많지 않은 걸출한 목사이셨고 항상 따르고 싶었던 목사이셨습니다. 특히 제가 가까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경할만한 분들 중 한 분이셨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운명, 누구나 가야 할 길이지만 더욱 서글픈 이유는 감독님은 북에 고향을 둔 분으로 꿈에도 소원인 우리 민족의 통일을 보시지 못하신 채 영원한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감독님을 처음 가까이 대한 것은 인천 성산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신 때였습니다. 목사님의 첫 저서 "황혼에 쓴 낙서"를 읽고 이 분은 내가 존경하고 따를 만한 분이구나 생각하고 흠모했습니다. 비록 저의 담임 목사님은 아니셨으나 감독님은 언제나 제 마음의 목사이셨고 큰 형님이셨으며 저의 멘토였고 두목이셨습니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 청진을 떠나 홀홀 단신 남으로 오셔서 21세에 세례를 받으시고 뜻하지 않게 신학의 길을 가시게 되었고, 함석헌 선생의 말을 빌리면 "하느님의 발길에 채여" 목사의 길을 걷게 되셨지만 이는 한국교계의 큰 축복이었습니다.
홀홀 단신 월남하셨기에 모처럼 이룬 가정, 가족과 떨어질 수 없으셔서 유학을 포기하셨지요. 그렇지만 많은 독서와 사색과 끊임없는 공부로 박사를 능가하는 실력을 가진 목사이셨으며, 저술가였고, 설교가 이셨습니다. 생각의 깊은 샘으로 목사님의 책을 읽는 이들과 설교와 말씀을 듣는 이들의 영혼을 살찌게 하시는 분이셨고 젊은이들과 올곧은 길을 가고자 하는 자들의 모범이셨습니다.
목사님에겐 신앙과 삶이 하나였습니다. 하여 신앙과 역사는 분리 될 수 없는 하나였습니다. 인간화와 복음화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복음과 참여, 구원과 해방은 밀접히 연계되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예수님 따라, 그 믿음 따라 사랑과 정의, 구원과 해방을 이 땅에서 선포하셨고, 웨슬리를 따라 성화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목사님의 집은 예수의 삶을 따라 믿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물론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들의 집이요 피난처이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고향을 떠나 남으로 피해 온 목사님이셨지만 북한 동포를 사랑하며 통일 운동에도 한 몫을 담당하셨습니다.
감독님은 큰 바다였습니다. 하여 사람들을 사랑으로 모두 감싸 안으셨으나 결코 정의감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교회 갱신에도 관심이 많으셨고 불의와 타협함이 없으셨습니다. 목사는 사제와 예언자, 종인 동시에 지도자이기에 확고한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설파하셨고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러기에 봉건시대의 잔재인 목사의 세습을 비판, 책망하시었습니다.
감독님은 제가 보기에 이 시대에 한국이 낳은 몇 분 안 되는 거인이셨습니다. 30여 년 전 송정률 목사님을 처음 뵈었을 때 저는 첫 눈에 반했었습니다. 그 분은 거인이었고 제가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목사님으로 제 눈에 비쳤습니다. 이 분이 감리교신학교의 스승으로 남으셨다면 한국감리교역사는 물론 한국기독교 나아가 한국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장감독님은 학창시절 그 분을 좋아하고 따르던 분이더군요. 장감독님 또한 거인이셨고 민족의 큰 별이셨습니다.
작년 북녘을 방문하고 남녘에 가서 편치 않으신 감독님을 찾아 뵌 것이 이생에서의 마지막이 될 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장감독님, 우리의 목사님, 부디 하느님의 품에서 남아 있는 우리를 위해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교회가 교회로 바로 설 수 있도록. 목사가 목사로 바로 살 수 있도록... 이 세상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이제 또 한 분의 멋있던 목사님을 이제 뵐 수 없구나 생각하니 슬프
지만 우리도 언젠가 가야할 길, 남아 있는 우리들 멋있게, 뜻 있게 살도록 격려하여 주십시오.
6월 8일 화요일 아침, 여느 때와 같이 큐티를 마치고, 직원들과 차 한잔 마시는 시간에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교목으로 계시는 조환기 목사님의 전화였다. “장기천 감독님이 어제 5월 7일 오후 4시 10분에 소천하셨다”는 내용이었다. 투병 중에 계신 것은 알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직도 할 일이 너무 많이 있는데....
들고 있는 찻잔을 내려 놓고 한동안 무엇에 맞은 것처럼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창가를 바라보면서 잠시 긴 묵상의 여행을 시작했다.
장기천 감독님을 처음 뵌 것은 2000년 6월 20일 반포에 있는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실로 기억이 된다. 그곳에서 공직자 생활과 개인 사업을 정리하고 이 단체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장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 본 인상은 인자하신 老목사님 같은데, 감독님이라고 해서 무슨 영화감독을 하셨나 했다. 그 때만 해도 감리교 체계를 모를 때였기에 그럴만 했다. 그 자리에는 전제현 장로님(군단장 출신의 장군, 오산고등학교 前교장)과 김형석 사무총장이 함께 배석했다. 여러 가지를 묻더니,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고 하신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장기천 감독님은 사역을 하는 7년 동안 부족한 저의 영적인 멘토와 삶의 스승이 되어 주셨다.
목사님은 첫 출근 예배 때, “NGO에서 일하는 사람은 성도들의 귀한 헌금으로 봉급을 받기 때문에 구약의 레위족과 같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를 경외하는 코람데오의 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항상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배려하는 겸손함, 물질의 할례를 받아야 하는 정직, 또 사람이 보든 안보든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청지기의 자세, 즉 성실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는 그릇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저는 그 때 많이 감격했고, 그 말씀이 NGO 사역을 시작하는 저에게 하나님이 주신 귀한 말씀이기에 가슴팍에 새기고 오늘을 살아가는 ‘레마’가 되었습니다.
▲ 북한 방문 빵공장에서
그 뒤 감독님의 행적에 대해 제가 직접 듣고, 또 다른 분들에게 전해들은 예화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서도 마태복음 7장 3절과 4절의 말씀인“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인용하시면서 모든 잘못된 것은 본인의 잘못으로 돌리시고 남을 원망하지 않은 온유하신 분이셨습니다.
해방 후, 육군본부교회 군목 재직시 이승만 대통령과 각료들이 참석한 예배시간에 자유당 3.15 부정선거 획책에 대해 설교로 질책했다. 그러자 경호원들이 권총을 들고 입건하려 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나서서“대한민국에 이 같은 용기 있는 목사가 있어서 대한민국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목사님! 말씀 감사하다”며 쑥스러워 했고 주위에 배석한 여러 장관들이 당황해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목사님은 그 상대가 대통령이건 권력자건 두려워하거나, 구애받지 않고 정당하게 자신의 소견을 피력했던 대쪽같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서, 집시법 위반으로 조사받을 때 뇌를 다치셨는데 그것이 뇌수술로 이어졌고, 결국 이것이 육신의 가시가 되어 천국에 가실 때까지 고생을 많이 하셨다.
또 노무현 대통령이 잇단 선거에 실패하여 실의에 빠져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동대문교회를 방문했을 때, 교인들에게 “앞으로 대통령이 될 분”이라며 소개하셔서 모두에게 깜짝 놀랄 정도의 예지력을 보여 주셨고, 안수 기도를 해주어서 격려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감독님이 남겨 주신 일화도 있습니다. 목사님은 민족의 뿌리에 관심을 두셨고, 특히 “중국 조선족이나 사할린에서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은 사실상 독립 운동가의 자손들이다. 그들이 지금은 어렵고 돈이 없어서 학교 교육을 못 받는다면 어떻게 하느냐, 이것은 누군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하시면서 본인의 호를 따서 ‘한길장학회’를 만드셨다.
한길장학회에서 모은 장학금을 가지고, 2004년 5월 우즈베키스탄 타시겐트와 안그렌에 있는 고려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해 주고 격려하시기 위해서 목사님을 모시고 동행해 간 적이 있다. 그 항공기 안에서 목사님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신문을 몇 개나 구독하느냐? 그리고 주로 보는 면이 어디냐? 마지막으로 날마다 일기쓰고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머뭇거리자 호되게 야단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앞으로 어느 단체에서 리더로 일하기 위해서는 섬기는 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필요한 것은 실력이다. 즉 역사를 아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문을 많이 읽고, 날마다 하루 하루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겨라. 그러면 후에 내 말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때부터 신문 매니아가 되어서 많은 신문들을 정독하게 되었고, 또 좋은 기사나 기억할 만한 기사는 스크랩을 해서 모아 두었고, 더 나가서 날마다는 아니지만 중요한 날을 묵상하면서 정리하는 귀중한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건강이 호전되면 카자흐스탄에 있는 고려인촌도 방문하여 어려운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주셔서 미래의 영적 거목들을 키우는데 앞장서자고 하셨는데, 그 일이 또 우리에게 던져주신 유훈 사업이 되어 버렸습니다.
또 해외에 선교와 구호에도 관심을 보이셔서 제가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스리랑카 등에 긴급구호 봉사활동을 간다고 말씀드리면 기도해 주시면서 어디서 준비하셨는지 “필요할 때 써라”고 사모님을 통해 선교 봉투를 주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귀국하면서 전화드리면 “얼마나 고생했느냐”고 정말 아버지같이 따뜻하게 반가워하시던 음성을 이제는 들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민족 분열의 아픔과 상처의 치유와 통일에 대한 염원이 누구보다도 깊으셨다. 특히 90년도에 북한 국경 근접에 있는 장백에 탈북자들을 돌보아 주었고, 또 쌀을 지원하여 굶고 있는 민족의 아픔을 안타가워 하셨다. 그래서 그곳에 장백교회를 설립했고, 백두산 천지에 오르셔서 ‘할렐루야’라고 외치며 우시던 모습이 영안실 영정 사진이 걸려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조중국경에 인접한 도문시 두만강근처에 ‘두만강조선족학교’를 세워 조선족들에게 한민족의 정통성을 알리고 올바른 역사 인식 고취에도 힘을 쏟으셨다.
‘98년도부터 본격적으로 대북 인도주의 지원사업을 시작하셨고, 북한 함경북도 라진, 선봉에 제약공장과 진료소를 겸한‘라선보건센타’설립에 관여하시면서 3차례 걸쳐 평양과 라진, 선봉지역을 방북하셨다. 2000년 평양에 방북하셨을 때, 만수대에 서 있는 김일성 동상 앞에 절대로 크리스찬으로서 절을 할 수 없다고 해서 북측의 관계자들을 모두 놀라게 하셨다고 한다. 또 2002년 평양에 빵공장을 세워 “어린 생명에게 빵이라도 주어서 굶주린 배를 채우게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북한의 굶주리고 있는 어린이를 위해 점심 식사 하루 금식하게, 그 점심 식사값 5000원이면 한 달 동안 어린이 1명에게 빵을 먹일 수 있다네”하시면서 직접 모금에 앞장서셨다.
아름다운 일화도 있는데, 목사님이 전에 시무하시던 교회 집사님 한분이 100만원을 어려운 곳에 사용하도록 기부하려고 기도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꿈을 꾸었는데, 꿈에 목사님이 걸인이 되어서 구걸을 하고 있는 꿈을 꾸었단다. 그 꿈을 꾸고 나서, 장기천 목사님이 진정한 나눔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북한의 어린 생명을 먹이는데 힘이 되어 달라는 메시지를 듣고, 본인이 기부하려고 했던 100만원 전부를 북한 어린이를 돕는 헌금으로 기부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가끔 고향 청진 얘기를 들러주셨다. 목사님은 21세 단신으로 내려온 실향민이라고 했다. 고향에 동생과 누나를 두고 왔고, 어떻게 변했는지 목사님은 그 청진 땅을 밟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이루어 드리지 못해 우리의 가슴은 찢어드는 듯이 아픕니다.
그러나 그 분이 이루지 못하고 우리에게 남기고 가신 유훈 사업이 아직도 있습니다. 2006년 그동안 목사님이 근 10년 동안 섬겨왔던 단체에서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2006년 4월, 정직하고 또 올바르게 통일선교사업을 하자고 하시면서 대북 인도지원단체 법인 이름을 ‘새누리’라고 지어 주셨고, 현재 단체 대표로 계시는 이성희 목사님이 ‘좋은사람들’을 붙여서 ‘새누리좋은사람들’이 탄생된 것입니다.
그 사업이 1년도 안되었는데, 활발하게 본 궤도에 이르자 많이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셨다. 꼭 건강이 회복되시면 북한의 새누리좋은사람들 사역장을 방문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자꾸 나와 억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6월 2일부터 7일 까지 제 6차 북한 방문이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일정에 장기천 감독님이 보시지 못하고 먼저 가셨지만, 그 일을 대신해서 부인이신 김영혜 사모님을 모시고 새누리좋은사람들의 사역지인 ‘종양전문병원과 평의대안과병원 등을 방문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다시금 목사님이 이루지 못하고 간 유훈 사업을 실천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지난 어느 잡지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주후 8세기쯤 서유럽 기독교 국가를 전부 묶어 통일국가를 이루었던 위대한 황제였습니다. 약 200년 전에 그의 묘가 발굴돼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는데, 그 작업에 참여했던 일꾼들은 황제의 시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황제의 무릎에 성경이 펼쳐져 있는데 그의 손가락 하나가 마가복음 8장 36절(“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가리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천하를 통일하여 황제로 모든 영화를 누린 영웅이었지만 그러나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나간 영화가 아니라 내 앞에 있는 내일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장기천 감독님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그 분이 남긴 아름다운 유훈과 소중한 선물은 우리 앞에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그분이 남기신 청백, 정직, 대쪽, 그리고 온유와 긍휼은 아름다운 유훈이며 내일의 삶에 소중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분이 걸으셨던 길을 닮고자, 오늘도 한걸음 작은 발자국을 내딛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