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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을 배우신 예수님[북산편지] 최완택 목사가 육필로 쓰는 민들레이야기 제652호 2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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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4월 07일 (화) 16:15:00
최종편집 : 2009년 04월 07일 (화) 17:20:34 [조회수 : 4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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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山편지
복종을 배우신 예수님

   
사랑하는 민들레 형제, 자매 여러분.
사순절 다섯째 주일에 우리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하나는 히브리서 5장 5-10절입니다. 그 가운데 8-9절을 여러 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후에 당신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공동번역)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개역)

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새번역)

예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가톨릭번역)

나는 이 말씀의 제목을 처음에는 공동번역의 말씀에 따라 ‘복종하는 것을 배우신 예수님’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번역으로 읽고 나서는 ‘순종을 배우신 예수님’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자꾸자꾸 들여다보다가 주일 새벽에 “복종을 배우신 예수님”으로 바꾸었습니다. 당신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순종은 말 그대로 “순순히 따르는 것”입니다. 예문을 들자면 “부모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자식의 도리다,” 그런데 그것이 자식의 도리이지, 세상에, 부모님말씀을 순종하는 자식이 어디 있습니까? 묻습니다. 그대는 부모님 말씀을 늘 순종하는 자식입니까?
복종도 말 그대로“남의 명령이나 의사를 그대로 따라서 쫒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이유불문이 따릅니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아야 합니다. 당신은 어느쪽 입니까?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당신의 인생은 순종입니까? 복종입니까? 아니면 끝없는 불복이고 반항입니까?
그러나 대답을 잠시 미루십시오
나는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복종(순종)을 배우셨습니다”라는 말씀에 나의 얼이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성서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예수가 배우는 사람으로 표현된 것은 신약성경 전체에서 이 곳 뿐 이라고 합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히브리서 저자도 분명히 예수를 따르는 제자이겠는데 감히 스승을 보고 ‘배우는 사람’ 이라니?
그러나 나는 이 표현이 참 좋습니다. 배우지 않고서야 어찌 길을 알겠습니까? 그리고 길을 알지 못하면 어찌 행할 수 있겠습니까?

게쎄마니 동산의 주님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게쎄마니라는 곳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동안 여기 앉아 있어라” 하시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을 따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공포와 번민에 쌓여 “내 마음이 괴로와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깨어있어라” 하시고는 조금 앞으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할 수만 있으면 수난의 시간을 겪지 않게 해달라고 하시며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하고 말씀하셨다. (마가 14:32-36, 공동번역)

아아, 게쎄마니 동산의 주님!
사순절 둘째 주일에, 주님이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 당신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을 때 당신의 제자 베드로가 당신을 붙들고 펄쩍 뛰면서 “주님, 안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하고 말렸죠 그 때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 보시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아아, 게쎄마니 동산의 주님! 그랬던 주님이, 저만큼에서 그 베드로가 자고 있는데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가 뭡니까? 당신은 그래도 되고 베드로는 그러면 안 되는 겁니까? 당신의 예루살렘길을 말린 베드로가 사탄이라면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당신은 뭐가 되는 겁니까?
순종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당신의 이 기도는 잠시 물이 거슬러 흐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앙, 게쎄마니 동산의 주님!
고맙게도 당신은 이내 기도의 말씀을 바꾸셨습니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주님께서는 세 번 씩이나 같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게쎄마니 동산의 당신의 위대한 기도학습을 완성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니까, 게쎄마니 동산의 이 기도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 예수는 당신의 제자 베드로 앞에서 우스운 꼴이 되어 버렸을 것이고, B.C에서 A.D 로 새 세계가 열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12)하고 저희를 초대하는 부르심에 귀의합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복종(순종)을 배우셨습니다. (히브리 5:8)하고 일깨워준 히브리서 저자에게 깊이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당신이 고난을 겪으심으로 복종을 배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학습을 배웁시다. 사순절 순례는 이 길을 배우는 길입니다. 아, 그런데 사순절 순례의 길은 끝 간데 없이 우리 앞에 열려 있습니다.
학습의 學은 ‘배운다’라는 말인데 ‘아이가 지붕 위에 덮는 이엉을 두 손으로 엮는 방법을 배우는 모습을 표현한 것’ 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이엉을 두 손으로 엮는 것을 잘 보고 배워야 아들이 나중에 홀로 되었을 때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습의 習은 ‘태양보다 높이 올라갈 정도로 익숙해진 새의 날개짓을 표현한 것’ 이라고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날개 짓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하얗게 보이더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는 ‘제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기 위하여 게쎄마니 동산에서 기도학습을 하셔서 본이 되셨습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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