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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성 목사, “교회만 들어가면 바보가 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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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3월 08일 (일) 15:03:02
최종편집 : 2009년 03월 08일 (일) 15:49:48 [조회수 : 6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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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여행 2009/02/26 08:00 꺄르르

뉴스앤조이 발행인 방인성 목사님

중세 시대,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지동설을 말할 때 그는 불경스러운 인물일 뿐이었지요. 뒤이어 나타난 갈릴레오(1564-1642) 역시 종교재판에 처해지죠. 그렇지만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밝혀지지요. 이렇게 인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엉터리 신학에서 벗어나 열린 세계관을 갖고 진리를 추구하였지요. 그렇기에 신앙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성장해왔지요.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이것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지금도 있다면 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한국에는 아직도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던 시절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요. ‘기독교 수출국’들은 이미 상식처럼 열린 신앙으로 나아가는데 개신교를 수입한 여기 교인들은 자신들만 진리라고 맹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경쟁력을 부르짖으면서 세계 변화를 못 따라가고 한국 개신교는 왜 거꾸로만 가는지 안타깝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는 말했지만 교회에서 자유를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2월 24일, 방인성 목사님(함께 여는 교회)을 만났습니다. 그는 인터넷 신문 뉴스앤조이 발행인이기도 하지요. 방인성 목사님을 만나 한국교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예수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한국사회 개신교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교회는 물량주의에 사로잡혀 있어요, 큰 건물, 많은 헌금, 신도수로 그 교회의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하는 폐단이 한국교회에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구약과 신약에서 분명히 지적합니다. 구약에서는 바알 신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신약에서 예수는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합니다.

 

 

바알은 다산의 신, 풍요의 신이죠. 바알은 하나의 종교인데, 그것을 무시하는 게 아니에요. 한국 교회가 바알의 나쁜 것만 빼서 추구하고 있는 게 문제지요. 바알에게 배울 수 있는 좋은 윤리관이 있음에도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는 면만 영향을 받았고 그것을 하나님으로 바꿔서 섬기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가다가 모세가 없을 때,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섬긴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역사와 기적을 맛봤음에도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이게 하나님이다, 그랬죠. 부자 되고 성공하고 많이 갖고 크게 되고. 이게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축복하셨다, 라고 한국교회가 하듯이. 돈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는 것이 아주 심각한 한국교회의 문제입니다.“

 

 

-돈을 바라는 건 사람들의 평범한 마음 아닌지요?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여 발버둥을 치고 경제성장을 하려고 했을 때, 정말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 교회 와서 복달라고 했을 때는 차라리 순수했어요. 그때는, 먹는 문제가 생존의 문제였거든요. 지금 한국사회가 바라는 부와 추구하는 경제성장은 어려웠던 시절과 너무 다릅니다. 가치관이 다르고 지향하는 게 달라요.

 

 

그리스도인들이 복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더 이상 생존의 문제가 아닌 거죠. 이제 우상이에요. 그걸 하나님으로 삼아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 하고 있어요. 군사독재시절에 민주화를 외칠 때보다 지금 이 시대, 교회가 싸워야할 것은 더 위험해요, 더 처절하게 싸워야 해요, 그때는 실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실체가 없어요. 무너뜨려야할 실체가 없기에 꿰뚫고 나아가는 게 쉽지 않고 운동하는 사람들의 동력이 허물어지기 쉽죠. 훨씬 더 심각한 위기이고 교회에도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모습이죠.

 

 

-교회 안에 민주주의나 인권 존중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모습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사회라고 얘기합니다. 민주주의라면 인권이 존중되어야 하고 소통이 원활해야 합니다. 인권이 존중되려면 폭력이 근절이 되어야 하는데, 한국 사회는 폭력이 준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폭력이 강하게 남아 있지요. 힘을 가진 자들의 폭력, 돈을 가진 자들의 폭력, 심각합니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당하는 소외감과 박탈감, 도저히 가난에서 헤어날 수 없는 구조적 폭력이 사회에 있죠. 경제만 따지는 사고가 흐르는 한 폭력성은 있을 수밖에 없지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형교회들이 정말 순박하고 정직하고 순결하려고 하는 교회들을 폭력적으로 입을 닫게 하고 그들의 메시지를 누르죠. 교회 안에도 더 이상 가난하고 어렵고 장애 있는 분들이 제대로 사람대접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형제요, 자매라고 하는데 기본 권리를 누릴 수 없죠.

 

 

오히려 교회에서 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많죠, 여성들의 문제, 교회 안 인권의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교회의 구성원들 가운데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배려하기보다 성공주의, 물량주의, 모든 게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교회는 폭력에 닿아있는 것이죠.

 

 

전재숙씨 @뉴스앤조이 정효임

용산 참사 희생자 아내 “너무 억울합니다. 기도해주세요”

 

 

비민주성도 심각합니다. 소통이 안 돼요. 이 사회에 어려운 사람의 소리는 파묻히고 가진 자들끼리만 소통하려합니다. 불타죽은 사람은 죄인 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용산참사에서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손길이 있습니다. 순천향병원에 분향소가 마련되자마자 기독교 운동하는 대표들이 여러 명 갔어요.

 

 

참배를 하고 기도를 해주고 유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데, 그중 한 희생자의 아내 되시는 분이 제 손을 꼭 잡고, 너무 억울합니다. 너무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기도해주세요, 라면서 제 손을 얼마나 간절히 잡는지…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이 사람들의 외침, 아우성을 내가 왜 미리 몰랐을까. 우리는 왜 같이 하지 못했을까, 이런 사태가 나기 전에 함께하지 못 했고, 뒷북치듯이 할까, 이 사람들의 외침이 도저히 세상으로 전달되지 않는구나, 그러면서 무슨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냐, 무슨 선진사회냐, 인권 폭력, 소통 부재, 정말 뭐라고 형언할 수 없었고 가슴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종교단체는 폐쇄적이기 쉬워요.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서 소통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모든 게 가능해요. 수십억, 수백억을 들여서 교회건물을 짓든, 선교라는 이름으로 이웃종교에 마구 예의 없이, 버릇없이 굴 수 있지요. 종교의 아름다움을 서로 잘 드러내고 자극과 감화를 주고받고 조화를 이루려는 자세가 없이 그냥 폭력으로 나아가고 있죠. 사회나 교회가 크기로 봐서는 조금 성장했을지는 몰라도 오히려 폭력성과 비민주성은 더 짙어졌다, 이렇게 봅니다.“

 

 

-교회 안의 문제를 자정하려면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요?

“교회 내 구조 문제, 심각해요. 일단 교회개혁이 되려면 교회가 민주성과 투명성을 가져야 해요. 개신교는 목사와 성도들이 동등해요. 목사가 성직이라거나 계급구조가 아닙니다. 이런 개신교 초기 정신을 회복해야 된다고 보고요. 목사와 교인들이 동등하게 공동체로 엮이면서 진리와 사랑, 구원을 드러내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목사나 특정인에 의해서 독단으로, 페쇄적으로 운영되는 교회들이 민주성을 회복해야 해요.

 

 

투명성이 필요해요.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도저히 몰라요. 회계를 어떻게 했는지 회의하는 과정이라든지 도대체 밖에서 보면 뭐하는지 보이지 않아요. 교회 안에서도 교인들이 헌금낸 게 어떻게 쓰여 지고 있는가, 무슨 활동하고 있는가, 알기 힘듭니다.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논의과정 자체가 제대로 안 이루어져요. 어느 날 강단에서 이거합시다. 하면 다 따라하고, 건물 지읍시다. 하면 건축헌금 내야 되고, 이런 불투명성이 회복되어야 해요. 진리를 함께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고 물질과 우리의 재능, 우리의 의견들이 투명하게 소통되는 교회여야 이 사회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좀 가난해질 필요, 주님을 따라 소박하게 살아야”

 

 

목회자들은 좀 가난해질 필요가 있어요. 시대가 너무 물량주의로 가고 교인들이 너무 기복적 신앙을 갖고 있어요. 목회자들의 잘못된 가르침도 있겠지만 시대의 흐름이죠. 이러한 흐름에 제동을 걸려면,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들이 청렴하고 모범적이고 가난한 삶을 살아줘야 해요. 이왕 목회자의 길을 택해서 가니까 주님을 따라가는 소박한 사람으로 살아야지 않나 싶네요.“

 

 

-한국 교회는 배척하려는 모습이 상당히 강합니다.

“미국 선교사님들의 영향인가, 또는 민족성인가, 제가 대강을 분석했는데, 둘 다 있어요. 민족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외세에 억눌림 당했다가 어떻게든지 극복하려고 하다 보니 다른 것을 배척하게 되었지요.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기존에 있던 나쁜 전통을 답습한 거지요.

 

 

또, 기독교의 나쁜 영향이라 할 수 있는데, 신학이 잘못되었거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기독교는 패권주의가 되기 쉽습니다. 모든 것을 승리해야 되고 상대방을 배려하기 보다는 꺾어서 이겨야 하고,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려고만 하니 전쟁을 일으키거나 패권주의 모습을 보이게 되지요.

 

 

한국교회가 이 모습을 상당히 닮았어요. 굉장히 배타적이에요. 악착같고 뭔가를 이겨야 되고 승리주의에 사로잡혀 있는데, 예수의 진짜 모습과는 다른 거죠. 예수는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 여성들을 수용하고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서 지냈죠. 예수님 별명이 죄인들과 술 먹는 사람, 술친구일 정도로 포용력과 관용이 있으셨는데, 한국 교회는 배타적이고 굉장히 포용력이 협소해요.

십자가를 진 예수의 고난를 한국 교회는 알고 있을까요. 영화<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Icon Productions

 

 

예수는 부활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고 어떤 면에서 진리를 위해 살다가 그 시대 앞에 진겁니다. 그냥 현실에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희생당한 거죠. 기독교가 그런 예수 정신을 회복해야 해요. 승리하는 게 아니라 지는 걸 좀 배워야 하고 겸손을 배워야 해요. 지는 것은 수긍하는 게 아니라 항거이고 희생이죠. 패권주의는 희생을 하지 않아요. 고난과 고통에 동참하지 않아요.

 

 

한국교회가 고난에도 동참하고 예수의 십자가를 진짜 경험 좀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고난을 너무 싫어해요. 고통자체를 좋아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는 데서부터 희망이 움트는 거예요. 고통을 거부하고 멀리하게 되면 이중적이 되고 오류에 빠지게 되죠.

 

 

진정한 고난과 고통은 모르고 실질적으로 그런 것을 죄악시하게 되는 문제가 생겨요. 가난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줘야겠지만 가난이, 죄는 아니거든요. 가난을 죄라고 취급하고 패권주의, 승리주의만을 강조하는 배타적 모습이 한국 교회에 너무 짙어요.“

 

 

“교회만 들어가면 바보가 되는 사람들”

 

 

-교인들도 한국교회 문제에 큰 책임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교회만 들어가면 바보가 돼요. 교회구성원들 보면 목회자보다 훨씬 똑똑하고 유능하고 이성적이고 훌륭한 사람들, 많이 있어요.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목사를 맹종하고 바보역할, 거수기 역할을 해요. 이것이 종교가 갖고 있는 특별한 폐단이에요. 하나님, 신의 힘을 두려워하고 목사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기 때문에 다른 말을 못 내는 거지요.

 

 

원래 신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에요. 기독교에서는 자유와 해방, 행복을 주고 모든 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신이고 다른 종교도 비슷한데, 한국에는 샤머니즘 종교개념이 있어가지고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목회자들도 그렇게 가르쳐요. 헌금을 안 내면 벌 받는다는 둥 두려운 하나님을 심어줘서 두려움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게 만들어요.

 

 

지성인들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 두려운 하나님이 심어져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자기 생각을 표출하거나 목사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일은 굉장히 힘든 거예요. 하나님에게 벌 받지 않을을까, 뭔가 손해나는 일이 나지 않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죠. 그리스도인들이 깨어나야 할 때에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고 자유를 주시는 분이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뜻이 이뤄지기를 바라시는 놀라운 하나님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교인들이 주체가 되어 교회 공동체 안에서 건강한 교회를 만들고 이사회에 빛과 소금 역할을 해야 하는 교회사명을 실천해야죠. 한 두 사람에게 맡기지 말고 스스로 나서서 바꿔가야 해요.

 

 

교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 뜻을 실현하기 위한 멋진 삶을 사는 과정이 신앙생활이에요.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기복주의 신앙을 갖고 어떻게든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뭐가 좀 잘되려고 교회를 나와요. 교회에 맹종할 수밖에 없는 거죠. 교회하라는 대로 해야 복 받는 줄 알게 되죠.

 

 


물론,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에요 신앙생활목적이 그런 하나님을 내가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드러내는 멋진 삶,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거지, 하나님께 뭘 받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게 아니거든요. 가진 것을 나눠줄 수 있는 멋진 생활을 하기 위해서 신앙생활하는 거죠.

 

 

두 가지 원론이에요. 하나님은 두려워해야 하는 분이 아니다, 기복신앙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어요. 저는 목사와 교인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건강한 교회를 일구어 가야한다고 봐요. 그런 의지를 갖고 용감하게 자신의 의견도 내야하고 질문도 활발하게 하고 교회가 논의하는 구조도 바꿔갈 수 있게 목소리 냈으면 좋겠어요.“

 

 

조용기 목사와 엄신형 한기총회장 @권우성

“한국교회를 살려내는 건 평신도들에게 달렸다”

 

 

-앞으로 교회개혁에 목회자들이 나설까요?

“목사들에게 별로 희망이 없어요. 목회자들은 일단은 목사의 권위를 갖고, 교회라고 하는 단체를 유지하려는데 관심이 더 많습니다. 불행한 일이에요. 그러면 안 되는데, 목사가 스스로 개혁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된 거예요. 목사가 가장 큰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 반성하고 회개하고 개혁했으면 좋겠는데 과연 가능할 것인가, 확신할 수가 없겠어요.

 

 

평신도들이 일어나야 된다고 봐요. 개신교를 살려내는 건 평신도들에게 달렸어요. 목사에게 맡겨놓고, 목사님이 알아서 하십쇼. 이렇게 하면 안 돼요. 그리고 목사를 너무 대접해서도 안 돼요. 저도 목사지만, 그렇게 되면 목사도 망가지고, 교인들에게도 유익하지 못합니다, 서로 존경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건 필요하지만 필요이상으로 하는 건 서로 조심해야 해요. 물론, 목사 대접 받지 않고 훌륭한 일 하시는 목사님들 많이 계시지만 대접 너무 많이 받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교회가 너무 목사위주로 운영돼요.“

 

 

-뉴스앤조이는 복음주의 계열 언론사라고 알고 있는데요. 복음주의는 보수신앙 아닌지요.

“사실, 한국복음주의 정체성은 뭔가 신학 논쟁을 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보수주의라고 하는 게 싫어서 복음주의라고 쓰고, 근본주의가 싫어서 복음주의라고 많이 씁니다. 진보교회가 있긴 있지만 한국교회 풍토는 보수적이죠. 저희 뉴스앤조이도 보수적 성향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할 수 있지요. 제 정체성을 얘기한다면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고, 집이 3대째 목사집안이기도 하여 보수적 복음주의에 뿌리가 있고요.

 

 

한국교회에 제대로 된 복음주의,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려면 진보든 복음주의든 무슨 주의를 떠나서 성경에 근거하여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들, 이런 어둠을 밝히지 않을 수 없어요. 이웃의 신음을 안 들을 수 없어요. 교회 안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 안 할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셨잖아요. 세상을 위해 자기아들을 내놓으신 거예요. 그러면 교회는 세상을 향해 가야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무슨 보수, 진보를 떠나서 귀를 열고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야 하고 세상 속에서 그들의 구체적인 외침을 듣고 거기에 해답을 줄 수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교회는 보수, 진보를 떠나서 귀를 열고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야”

 

 

전통적으로 가졌던 정교분리 원칙이 있지요. 이것은 정치와 교회는 분리되어야한다는 것으로 교회가 정치권력에 야합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교회가 사회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도 권력에 탄압받지 아니하고 그들이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이지 사회에 입다무는 게 아니거든요.

 

 

뉴스앤조이는 어떤 주의를 떠나서 당연히 기독교의 정체성, 그리스도의 진리를 드러내야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보수성향의 한국교회에게는 이런 것들이 과격하게 느껴지죠. 세상일과 교회일은 구분되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교회가 해야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하고 합니다만 저는 마땅히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심 바라기는 조금 더 날카롭게, 조금 더 뜨거운 사랑을 갖고 나갔으면 좋겠는데 여건상 그렇게 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잇고요.

 

 

이것보다 훨씬 더 세상을 지탄하고 개혁하고 이웃종교와 조화를 이루고, 어렵고 힘든 사람 아우르는 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어려움도 겪지요, 오해도 많이 받고요. 보이지 않는 탄압도 있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도 그러셨지요, 우리가 실수를 한다면 그렇지 않도록 조심해야할 뿐이지, 할 일하다가 어려움 당하는 건 오히려 행복한 거죠.“

 

 

-한국 교회에 바라는 점, 같이 나눴으면 하는 말씀이 있다면?

“많이 있어요. 작게는 한국교회가 조금 더 겸손해졌으면 좋겠어요. 대통령도 기독교인이고 많은 국회의원들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잖아요. 기독교인이 당당한 시대가 되었지만 그만큼 교회의 힘이 너무 강해요. 교회는 힘을 휘두르면 안 된다고 봐요. 교회는 섬김과 나눔이죠. 힘을 휘두르는 단체가 아니거든요. 교회가 좀 더 겸손해지고 낮아졌으면 좋겠다. 한국교회에 바람이고요.

 

 

크게 보면 한국교회가 화해의 역할을 잘했으면 좋겠어요. 기독교는 화해와 화목, 평화를 위해서 제물이 되는 거라고 믿고 있거든요. 예수가 화목의 제물이 되셨다고 얘기합니다. 교회가 평화의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회 양극화사이에 껴서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더 가지고 벌어진 틈을 줄이려는 것도 화해의 역할이죠.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진보냐 보수냐, 아주 극단적인 대립이 있어요. 무슨 운동만 하면 진보고 좌파에요. 무슨 주장만 하면 친북이고요. 그걸 뛰어넘어서 정말 정의, 평화, 생명존중,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런 가치관이 이뤄지도록 헌신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구체적으로 환경문제와 사회갈등에 대해서 화해역할을 해야 해요. 어느 쪽 정파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정권과는 거리를 둬야 하는 거예요. 권력에 편승해서는 안 돼요.

 

 

남북의 문제가 있어요. 제가 볼 때는 인류의 시험무대입니다. 전혀 다른 경제정치 체제의 남북이 어떻게 아우러져서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내는가, 이것은 한반도 땅에 주신 하늘의 뜻이라고 봐요. 화해를 이뤄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감당해야할 일 같아요. 무분별한 자본주의, 북쪽의 페쇄적이고 극단적인 체제도 아닌, 정말 인류가 더불어 행복, 평화를 누리고 생명이 존중되는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모델이 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 역할을 한국교회가 해야, 된다고 봐요.

 

 

그러기 위해서 교회도 필요하고 그리스도인이 필요하고 목사도 필요한 것이죠. 그리스도인들만 성공하고 잘되라고 하는 교회는 원래 기독교가 추구하는 모습이 아니라고 봐요. 겸손해져서 이웃을 내려다보고 섬김과 나눔을 하고 힘을 휘두르지 않는 교회가 되어야 해요.“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용산참사와 관련해 '한국교회에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뉴스앤조이 정효임

 

 

아직도 교회에 다니십니까? 예수는 좋지만 교회가 싫은 사람들

 

 

예수정신을 따르려 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묵묵히 사회 어두운 곳을 자기 몸으로 밝히고 있는 분들이죠. 그런 사람들이 모여 2월 26일 7시 30분, 명동향린교회에서 촛불교회를 연다고 하네요. 촛불교회는 모든 교파, 단체, 연령, 성별, 지역을 초월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는 예배지요.

 

 

방인성 목사는 촛불교회 공동집행위원장으로서,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 삶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약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함께 하는가를 고민하는 현장교회라고 촛불교회를 설명하였습니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려는 교인들과 세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자신의 이득만을 탐하는 교인들을 보면서 무엇이 교회인지 아리송해집니다.

 

 

그동안 교회의 모습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도덕기준에 한참 모자랐지요. 그렇게 ‘반공설교’를 하시는 목사님들이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정권을 세습하듯 교회를 자식에게 당당히 대물림하는 걸 보면 할 말을 잃습니다. 어떤 내부비판이나 문제제기도 용납되지 않는 것도 북쪽 모습과 너무 닮았습니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목회자들의 성폭행사건과 돈 문제는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다며 미련 없이 떠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교회에 실망한 것이죠. 아직도 교회에 다니십니까? 이런 물음이 유행할 정도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교회 이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 문제가 있으며 앞날이 밝지 않다는 방증이지요.

 

 

종교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평화의 도구이기는커녕 오히려 분쟁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전국의 스님들이 더 이상 못 참고 서울로 상경하였습니다. 공존을 하려 하지 않고 배타주의를 붙든 개신교인들은 ‘오직 교회’를 외칩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한국 교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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