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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목사 "예수정신, 더 가지려고 하지 않고 나눠주기"오마이뉴스 불로거 까르르의 인터뷰 종교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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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3월 08일 (일) 14:40:14
최종편집 : 2009년 03월 08일 (일) 15:51:39 [조회수 : 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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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여행 2009/02/27 08:00 꺄르르

이현주 목사님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봄에서 여름 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 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 거여


 

 

밥 앞에서 숙연해지고 고마운 마음으로 꼭꼭 씹어 먹게 되는 시지요. 이현주 목사님이 쓰신 <밥 먹는 자식에게>라는 시에요. 그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인기 작가이기도 하지요. 2월 15일, 이현주 목사님을 찾아 뵙고 한국개신교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았습니다.

 

 

-사람들이 한국 교회에 불만을 넘어 냉소와 무관심에 이르는 지경입니다.

“한국개신교도 결국은 하나의 종교죠. 종교단체 뿐 아니라 국회든 엉뚱한 일하면 싫어할 수밖에 없지요.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냉소하고 무관심하게 본다면 크게 잘못하고 있는 거지요. 제 길을 제대로 걸어가면 누가 그렇게 하겠어요. 제 눈에도 도덕성, 공명심이 별로 안 보여요. 동의해요.

 

 

목회자들이 이상한 설교를 했다는 얘기는 나도 많이 들어요. 어떤 목사지 모르지만 부시 정권 때, 미국을 적극지지하고 그랬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그런 인간도 있는가보다 그랬지, 동남아에 쓰나미가 왔을 때, 기독교국가가 아니라서 그런 게 닥쳤다, 이런 설교를 누가 했대요. 별 미친놈 다 있구나, 그랬어요.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도 있을 수 있지요. 교회 뿐 아니라 사람들 사는 데 어디서든 있을 수 있어요.“

 

 

-세상살이에 힘든 사람이 많은데, 종교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제 짧은 식견으로 자본주의가 완전히 와르르 무너지는 중이에요. 경제위기라는데, 제가 볼 때는 못 일어나요. 돈이나 경제논리 때문에 무너지는 게 아니에요. 경제학자들이 아무리 별 짓을 다해도 무너지는 자본주의를 일으켜 세울 힘은 없다고 봐요. 그러면, 다른 걸로 바꾸면 돼요. 다른 이데올로기와 경제논리가 나오겠죠. 그때까지는 혼돈의 시기고 어려움이 따르겠죠.

 

 

종교도 그렇게 혼돈의 길로 가고 있어요. 교회가 자본주의와 손잡고 왔잖아요. 자본주의 무너지니까 교회도 무너지죠. 돈 벌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서 도덕이고 인성이고 다 내팽개치고 있잖아요. 이런 게 계속 되면 비극이죠, 빨리 끝나는 게 낫지요. 우리 대통령도 잘하고 있어요. 빨리빨리 끝내야 돼요. 아주 적시에 나타난 인물이에요.

 

 

“경제를 살린다는 구호가 얼마나 헛것이고 엉터린지 알게 될 것”

 

 

사람들이 경제를 살린다는 구호가 얼마나 헛것이고 엉터린지 알게 될 거예요. 구호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거, 돈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는 거, 일자리 만든다고 해결이 안 된다는 거,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제 소견이에요. 힘들면 힘들어야죠. 대중들이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는 조금 더 혼돈의 기간을 거쳐야할 거 같아요. 그래도 그때는 올 거예요.“

 

 

-교회가 정화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전 있다고 봐요. 지금 교단이나 교회를 다시 갱신하자, 개혁하자, 그런 발상에서는 희망이 없어요. 무너져가는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건데, 그건 안 돼요. 쓸데없는 짓이에요. 썩은 나무는 잘라버리는 거예요. 공자님도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어요. 이런 거에는 희망이 없다고 봐요.

 

 

자고로 역사를 보면, 무너질 때는 와르르 무너지고 새로운 것이 일어날 때는 뭐가 일어났는지 안 보이게 서서히 일어나고 그래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개혁을 한다고 할지 몰라도 본인들은 진정 새로운 개혁이라는 이런 말을 안 해요. 자기들이 개혁이란 얘기하고 떠드는 사람은 믿을 수 없지요.

 

 

예수를 진정으로 따르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은, 하여튼 난 예수님이 좋아, 내가 볼 때는 그 분 가르침이 진리야. 예수님 가르침대로 살겠어, 이런 마음가짐을 겸손하게 갖지요. 마르틴 루터 개혁도 바로 이 정신이죠. 그는 가톨릭을 개혁하겠다는 게 아니었고 예수가 가르친 진리대로 살아보겠다는 거였거든요.

 

 

역대 내려왔던 기독교가 어떻게 가르쳤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썩은 교회가 가르친 게 뭐가 중요해요. 여기에 동의하는 동지들이 모이게 되겠죠. 밖에서 보면 개혁이다, 이런 딱지를 붙일지 몰라요. 본인들은 그냥 하는 거예요. 간디의 표현으로, 진리를 실천해보는 거야, 자기 몸으로, 삶으로. 그런 사람들은 많다고 봐요.

간디는 비록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지만 역사상 가장 그리스도 같은 사람 중 한 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제 눈에는 많이 보여요. 예수의 정신을 따르려고 하고 좁은 길을 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도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고 새로운 종교운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당분간 소수의 무리일 거예요. 떼를 지어서 운동이 새롭게 일어날 거 같지는 않아요.“

 

 

-예수정신을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모르겠어요. 이것이 예수정신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요. 다만, 남이 뭐라고 보든 모르겠고 저 나름대로 예수를 스승으로 모신다고 생각해요. 예수 본인이 너 같은 제자 안 뒀다 하시면 할 수 없지만 전 그분 가르침이 좋아요, 그 분 가르침대로 살면 저만 건강하게 사는 게 아니라 제 주변도 건강해질 거라고 봐요. 그 분이 가르쳐주신 대로 제가 이해한대로 그렇게 하루 이틀 살아보는 거예요. 그 뿐이죠.

 

 

“예수정신, 더 가지려고 하지 않기, 오히려 나눠주기”

 

 

예수정신을 사람들은 사랑, 또는 뭐라고 하는데 전 잘 모르겠어요. 지금 현재로서 정리하고 있는 건, ‘더 가지려고 하지 않기’에요. 지금 있는 걸로 충분해요. 하나도 모자라지 않아요. 오히려 가지고 있는 걸 충분히 나눌 수 있어요. 나보다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눠줄 수 있어요. 보통 사람에게, 쉬운 일이 아니죠. 너무 잡는 버릇에 길들여졌고 남을 꺾는데 익숙하니까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요.

 

 

이건 그분이 나에게 하라고 하신 거 같아요. 지식도 일도, 돈도 뭐든지 더 가지려고 하지 말아라, 지금 충분히 있으니까 더 보태서 가지려 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걸 어떻게 하면 잘 쓸까, 그걸 더 고민해봐라, 이게 지금 그분이 집중적으로 가르쳐주는 거라고 봐요. 저는 그걸 실천해보려고 하는 거지요.

 

 

생각보다 쉬워요. 있는 거하고 없으면 안하면 되요, 뭐 돈이 필요한 일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 그러면 안 하면 되요, 뭘 하고 싶은데 돈이 생겼다, 그럼 해요, 하다가 돈이 떨어졌다, 그럼 안 해요, 그런 거예요.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 아버지께 들은 말씀이 있어요. 어릴 때 돌아가셔서 다른 건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 말씀은 기억나요. 아버지가 버는 거만큼만 써라, 집에서 돈 버는 건 아버지뿐이니 아버지가 번거만큼 먹고 써라,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걸 보니 이 말씀을 여러 번 들었나 봐요.

 

 

있는 거 가지고 쓰면 되요. 없는 걸 만들려고 하니까 괴롭고 힘든 거예요, 그럴 거 없어요. 버는 만큼만 쓰면 되잖아요. 먹고 싶은 만큼 벌려고 하니까 힘든 거예요. 쓰고 싶은 만큼 쓰려면 밤낮 벌어도 모자랄 수밖에 없어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요. 어차피 잠깐 살다가 가는 건데요. 있는 거만큼만 먹고 살다가 갈 때 되면 가는 거지요, 그 정신으로 살면 국가도 빚질 이유가 없어요. 물론, 저는 부채가 없지만 요새 한 가구에 빚이 4000만원이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전 국민이 그렇게 빌렸다는 얘기에 깜짝 놀랐어요.“

 

 

-세상과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아예 달라져야겠네요.

“생각의 인식 자체가 전환되어야 해요. 그리고 그 분의 가르침이 새로운 문명으로 나온다면 경제 원리는 그렇게 될 거 같아요, 지금 현재도 지구에 있는 자원을 골고루 나눠 먹기만 하면 하나도 굶어 죽지 않아요. 어떤 놈이 독점하니까 기아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생각이 안 바뀌면 현상이 달라지지 않아요. 생각이 바뀌는 게 대변혁이죠. 종교로 보면 후천개벽이에요. 하늘이 뒤집히는 거지요.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희망사항인지 모르지만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봐요.

 

 

정글에 인간들. 영화<웰컴 투 더 정글> @WWE Films

지금 큰 일이 일어났다고 보지 않아요. 올 것이 왔고 당연히 그런 어려움이 따르게 되요. 오히려 크게 보면, 한 나라가 망한다는 얘기는 다른 나라가 이미 서고 있다는 애기에요. 다른 나라가 준비되어있지 않은데, 갑자기 어느 나라가 망하는 법은 없어요. 지금을 비극적인 상황으로 볼 수도 있지만 희망일 수 있는 거지요. 뭔가가 준비되고 있어요.

 

 

구석기, 신석기, 엄청난 세월을 인간들이 살아왔는데, 전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새 천년이라고 이름을 불렀던 새천년은 이번 2000년, 21세기가 처음이에요. 그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어요. 전 인류가 동시에 뉴밀레니엄, 새천년이 왔다고 떠들어 된 거죠. 이런 말과 생각에는 힘이 있어요. 그렇게 이뤄져요.

 

 

“동물법칙에서 벗어나 생각이 바뀌는 대변혁”

 

 

다 뒤집혀서 지금까지 발상법하고는 달라요. 너와 나와 함께 살면 좋은데, 배가 가라앉는데 구명정이 하나밖에 없어, 하나가 죽어야해.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원리는 미안하지만 너가 죽어라, 이랬습니다. 동물법칙이죠. 그러나 사람은 안 그럴 수 있어요. 너 살아라, 내가 갈게. 사람은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 인간들이 이 원리로 안 살기에 전쟁이 나고 별짓을 다하는 거지요.

 

 

이게 뒤집어지는 거예요. 이게 상식이 되고 삶의 자연스러운 원리가 되는 거예요. 엄청난 개벽이죠. 이게 2000년대에 이뤄지는 거요. 정말 말 그대로 뉴밀레니엄이죠. 저는 몇 살 더 살지 모르지만 우리 아이들, 아이들의 아이들은 참 좋겠다, 좋은 세상 구경하겠구나, 그때 까지는 힘들 것이다, 그때까지는 참아라,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네요.“

 

 

-새로운 세상의 조짐이나 시도들이 있을까요?

“봄이 된다고 꽃이 왕창 피는 거 아닙니다. 어떤 놈이 먼저 펴요, 그러다 얼어 죽기도 하고 그러죠. 그러다 어느 날 보면, 확 핀단 말이에요. 새로운 문명, 후천개벽도 안 일어나는지 국지적으로 일어나기에 아무도 몰라요. 그러다 때가 되면 확하고 뒤집히는 거죠.

 

 

이렇게 보면 돼요. 코페르니쿠스 전에는 해가 지구를 돈다고 믿었잖아요. 요즘 누가 그런 말을 해요. 처음에는 그런 얘기하는 사람은 극소수라고요. 미친놈이라고 교회에서 쫓겨나고 탄압받죠. 그런데 그게 진리거든요, 그럼 하나둘, 이게 맞네, 하면서 동참하는 인간들이 늘어나요. 늘어나는 수가 어느 때가 되면 확 늘어나는 거죠. 그렇게 변혁이 되는 거죠.

 

 

언제 올지 모르지만 반드시 와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거, 지구가 안고 있는 자원으로 충분해요, 더 필요 없어요, 우리가 쓸 수 있는 물건 다 있고 잘 나누면 모두 행복할 수 있어요. 나만 잘 사는 게 아니라 모두 잘 살 수 있어요. 남이 죽든 말든 나부터 먹고 보자, 이건 동물이지요. 정글의 법칙이고,

 

 

하지만 인간은 동물이 아니잖아요. 인간성을 찾을 때가 왔고 몇몇 사람들은 이미 하고 있어요. 아직도 그들은 소수지요. 지동설이 점점 퍼져서 임계점을 넘어가면 패러다임이 전환되듯이 의식의 임계점으로 가고 있어요. 그게 오면, 저절로 벌어지게 됩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온다는 말씀인데, 사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그거를 대답할 능력은 안 되고요. 넌 누구고, 왜 사냐고 묻는다면, 거기에는 생각이 있어요. 저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에요. 전 그렇게 얘기해요. 아직 사람이 못 된 사람이고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고 그 사람이 접니다, 거기서 말하는 사람이란 뭐냐, 말 그대로 사람이에요, 인간이라고 생긴 것들하고는 어떤 장벽도 있을 수 없어요. 모두 나에요. 당신도 사람이잖아. 나도 사람이야. 그러면 당신은 나에요. 이걸 꿈꾸면서 사는 거예요.

 

 

그러려면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는 장벽들을 넘어서야 돼요. 먼저, 감리교로부터 벗어나면 개신교인 돼요. 또, 개신교에서 벗어나, 그럼 기독교인이 되죠, 기독교인에서 벗어나면 종교인이 되는 거예요, 불교든 이슬람이든 종교인이면 다 내가 되는 거예요, 여기서 종교까지 떨어져 나가면 사람이 되는 거예요. 거기에 우리 스승 예수가 서있다는 거지요. 예수께서, 난 사람의 아들이다, 고 그랬거든요. 전 그거를 목표로 삼고 되든 안되든 그러고 싶은 마음으로 사는 거예요. 어떻게 될는지는 모르죠.“

 

 

이현주 목사님의 스승 무위당 장일순 @전희식

“목사가 암만 설명을 잘해도 예수를 잘 알 수 없어”

 

 

 

-예수의 삶을 따르려고 애쓰셨는데, 그런 계기가 있었나요?

“계기가 있었겠지만 기억이 안나요. 다만 짧은 삶 동안 저를 가르쳐준 스승님들을 끝없이 만났어요. 돌이켜보면 배울 만큼 배우면 다른 스승이 나타나서 저를 이끌어줬고 그 분들에게 배웠다고 할 수 있지요. 그 분들은 너 안 가르쳤어. 이러실 수 있는데 전 당신에게 배웠어, 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살게 된 계기는 없어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신자였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던 거 같아요. 예수에 대해서 교회가 하는 설명, 신학자의 설명, 다른 사람들이 하는 예수에 대한 설명, 이거에는 만족할 수 없었어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중간에서 누가 암만 설명을 잘해도 그 사람을 잘 알 수는 없잖아요.

 

 

어떤 존재인지 모르지만 직접 예수라는 존재와 만나고 싶었어요, 구체적인 예수는 2000년전에 돌아가셨으니까 만날 수 없죠. 하지만 성경에서 얘기하는 거를 보면,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네 안에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럼 여기 있는 거예요. 현존하는 예수, 자신이 있는 여기에서 현존하는 예수, 그 예수와 만나지 않고서는 만족할 수 없다, 이 생각은 꽤 오랫동안 한 거 같아요.

 

 

사실 목회자들도 예수를 설명하려고만 하지 말고, 나 예수 잘 모르니까 너가 직접 만나봐라. 너도 할 수 있다. 지도할 수 있어야 해요. 물론, 그런 지도자가 있었으면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렇게 안 되었겠지요.“

 

 

-예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과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예수님에게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어느 책에서 읽은 얘기에요. 데이비드 호킨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서 이런 상태로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대요, 그러다 어느 날, 크리스챤이 아닌데도 기도를 했대요. 하나님, 당신이 있는지 없는지 저는 모릅니다. 다들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만약 계시다면, 정말 제가 힘드니까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했대요. 그 뒤로 그 사람 인생은 바뀌었지요. 지금은 영성 스승으로서 책도 많이 쓰고 일하고 있다고 그래요.

 

 

저는 이 기도가 정말 절묘하고 정직한 기도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하나님, 아무도 모르잖아요. 어떻다고 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내 상상이죠. 하나님이 그렇다고 증명할 방법은 없어요. 당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있다면 나 좀 도와주쇼. 이런 정직과 겸손이 사람들이 지녀야 할 요점이라고 봐요.

 

 

자신이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예요. 마음에 갈증 같은 거를 채워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만약 기독교인이라면, 길을 잘 들어섰으니까 의심하지 말고 예수를 직접 만나고 싶다,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고 싶다는 마음 키웠으면 좋겠어요. 누가 하는 설명은 그림 속 떡 같은 거라 아무리 얘기 들어도 영혼의 허기를 채울 수 없어요. 그거에 만족할 수 없지요. 예수인격을 실존으로 만나고 그 만남을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을 오지게 품어봤으면 좋겠어요. 그건 각자해야 되요. 정말 그런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는 그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줄 스승이 나타난다고 봐요. 그렇게 그 길을 갈 거라고 봐요.“

친절하게 영어로도 지옥에 가지 말라고 써 있네요. 외국인들이 볼까봐 걱정됩니다.

 

 

밋슙니다를 외치는 그들의 믿음이 불편하다

 

 

이현주 목사님의 말씀처럼 예수는 자신이 직접 체험해야 합니다. 누가 강요한다고 된다거나 해줄 수 있는 몫이 아니라는 거죠. 사람은 동물이 아니기에 누구에게나 삶의 신비함을 느끼는 영성이 있습니다. 무엇이라고 똑 부러지게 말은 못하더라도 생명이라는 거룩함과 광대한 자연 앞에서 고개가 숙여집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말이 닿지 않는 신성함에 낮은 자세로 경외합니다.

 

 

그러나 개신교인들은 세상의 진리를 자신들만 다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서 바란 적도 없는데 전도를 하려고 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을 알리는 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위 구절은 사실, 예수님의 말일 수가 없지요. 히브리 대학교 파인즈 교수가 증명했듯이 기원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이전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신약성서 사본들 속에는 저 구절이 없어요. 저명한 신학자 한스 큉은 “예수님은 스스로나 그의 제자가 이방 족속들에게 가서 전도하는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여러 자료를 분석하여 연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더더욱 교회 같은 것을 세워 전도본부나 전투사령부 같은 것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결코 있을 수 없지요.

 

 

오랜 시간 사람들 손에 거쳐서 만들어진 기독교 경전을 글자 그대로 믿는 것은 쑥과 마늘을 먹고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 걸 믿는 거와 비슷합니다. 기독교 경전이 전해주는 예수정신, 삶을 달궈주는 깨우침이 중요한 것이지 책을 달달 외우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란 거죠. 세계 기독교 국가들은 열린 신앙으로 나아가는데 불과 200년 전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한국만 기독교 경전 글자 그대로를 붙잡고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뇌 회전도 교회에만 들어가면 멈춰버립니다.

 

 

어쩌면 교인들 영성의 자람을 교회가 막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좋은 교회라면 목회자의 말씀을 길잡이 삼아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해야지요. 끝내, 더 이상 목사의 도움 없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교회에서는 ‘밋슙니다’를 외치고 세상에서는 동물법칙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걸어갔으나 십자가를 타고 정글로 가는 교회들이 너무 많습니다. 밋슙니다, 그들의 믿음이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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