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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기체 후 일양 만강하십니까? 어느덧 20년입니다!19일(목) 한국기독교연구소 창립 20주년 기념잔치, 연세대 알렌관에서 지인들 120여명 모여
이필완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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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2월 21일 (토) 00:55:00
최종편집 : 2009년 02월 21일 (토) 16:29:20 [조회수 : 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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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연구소(이하 한기연/ 창립자 홍정수 목사, 이사장 김종순 목사, 소장 김준우 목사, 후원회장 한인철 목사, 기획위원장 김기석 목사, 기획실장 방현섭 목사)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2009년 2월19일 오후 6시부터 120여명의 한기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따뜻하고 뜻깊은 기념잔치를 가졌다.

   
 

 
  ▲ 한성수 목사 "하나님, 기체 후 일양 만강하십니까? "  

홍정수 교수가 20년전 감신대 P교수와 세계신학연구원으로 시작한 한기연은 홍정수 목사에 이어 현재까지 김준우 목사가 14년째 소장으로 있는 가운데 번역 및 출판사업과 한몸, 세계와 신학, 설교자노트 등을 정기 간행하였으며 단행본 출판만 70여권이고 연 1회 예수목회세미나와 월1회 월례 예수포럼, 청년예수학당, 독서모임 예수학당 등을 열어왔다.

   
 

 
  ▲ 창립20주년 맞은 한기연 김준우 소장의 인사말  

60여명 참석을 예정했으나 120여명이 모여들어 넉넉히 준비한 80인분의 식사로도 모자라 급히 도시락을 주문하는 해프닝을 빚은 이 날 모임에는 역시 홍정수교수가 창립한 동녘교회와 김준우목사가 소속한 청파교회 장로들, 그리고 선후배들과 한기연을 사랑하고 후원하는 여러 동지들이 함께하여 20주년을 축하했다.

   
 

 
  ▲ 한국기독교연구소 20주년 축하잔치 영상 스케치  

1부는 양재성 목사의 사회로 한성수 목사가  "하나님, 기체 후 일양 만강하십니까? " 기도했으며 함인숙 목사가 성경 읽고 김기석 목사가 "그 것에 샘이 있다"는 제목으로 설교했으며 김종순 목사가 축도했고, 식사를 마치고 한인철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축하잔치는 김준우 목사의 인사와 한기연의 역사회고 동영상 관람(방현섭 목사 제작), 홍정수 목사의 "신학하기와 자존심" 김경호 목사의 "역사적 예수 연구와 예수살기" 강연이 이어졌으며 신동수 목사가 축가를 연주하고 한완상 박사와 김경재 박사가 축사를 하고 "쿰바야, 여기 오소서 내주여!"를 합창하며 마쳤다.

   
 

 
  ▲ 한국기독교연구소 20주년 역사 회고(방현섭 제작)  

그동안 수많은 출판 사업을 해 온 한기연은 최근 역사적 예수 관련 서적들을 앞장서 한국에 소개해 온데 이어 최근에는 미주 신학계의 최근작인 맥페이그의 "기후변화와 신학의 재구성"을 김준우 목사가 번역 출간하야 생태적 구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이 날에도 홍정수 목사의 설교집 "사도신경 살아내기"를 출간히여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었는바, 어두워져가는 한국 교계에 진실한 빛과 소금으로 더욱 힘차게 나아갈 것을 함께 다짐했다. 

한국기독교연구소 창립 20주년 기념 강연
“역사적 예수, 역사적 그리스도, 예수살기”
                                                             김경호(예수살기 총무, 들꽃향린교회)

   
강연하는 김경호 목사
1. 학자들의 잔치가 되기 쉬운 학술단체에 목회현장에 있는 사람에게 기념강연의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단지 학문에만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현장의 실천, 교회의 갱신을 중시하는 한국기독교연구소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진지한 신앙의 자리에서 시대의 문제에 답해가고자 하는 학문적 자세는 역사적으로 가장 혼탁한 시대를 맞고 있는 한국 기독교에 큰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한국기독교연구소가 기울여온 ‘역사적 예수’를 찾고자하는 노력은 교회와 기독교 신앙이 찾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역사적 예수의 연구는 교회가 제멋대로 자기 욕심을 덧 씌워서 만들어 놓은 허구적 예수상을 식별하는데 매우 유용한 도구들을 제공하였고, 참다운 신앙운동이 거짓 예수들과 싸울 수 있는 방법들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한국기독교연구소가 그동안 기울여 온 성과와 노력들은 한국교회와 신앙운동에 내려준 아주 훌륭한 선물이었습니다.

3.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해 비판적인 분들이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는 학자들이 그려낸 예수상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아주 냉소적인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은 복음서 자체가 픽션에 불과하다고 실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분들이 그려내는 예수상이 저마다 다른 점이 바로 예수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상은 지금까지도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다양한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언제나 유용한 해답이 되어야 하며 그들을 구원할 그리스도가 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탁월한 석학이 나와서 “예수의 역사적 모습이 이러하다”는 굽힐 수 없는 결론을 논증해 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논증자가 속한 시대의 문제에 대한 답변일 뿐입니다. 그 순간 예수는 박제화되고 우상화됩니다.

4. 역사적 예수의 연구자들이 그리는 예수의 상이 각 다르다고 해서 완전히 서로 다른 방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그리는 예수상 속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초대교회가 교권화, 제도화, 교리화, 직제화한 모습을 덧씌우려했던 예수는 예수가 아니라는 점과 그것이 교회에 의해 변질되는 과정까지도 규명해 주었습니다. 즉, 민중의 현장, 역사의 현장에서 생동감 있던 예수를 종교안의 인물, 교회안의 인물, 특정한 의식 안의 인물로 축소하는 왜곡의 과정들을 분명하게 밝혀주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초대교회가 예수운동에 대해 가한 변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가장 빛나는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5. 그러나 저는 교회의 운동이 전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하여 투쟁도 불사하며, 현장을 중시하는 예수의 운동방식은 그 방법의 변화가 요구되었습니다. 유대가 로마와의 일전을 거치면서 맛보았던 처절한 패배는 로마라는 엄청난 제국의 폭력에 정면으로 맞설 수만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의욕만 앞서서 맹목적인 죽음으로 사람들을 내모는 책임없는 운동이어서는 아니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항구적인 미래를 도모하는 조직운동이 되어야 하며, 자신들의 일상을 개선하는 생활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할 필요를 감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급격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인 예수운동을 교회를 조직하고 이방지역으로 선교하는 운동으로, 또한 종과 자유인, 이방인과 유대인, 남자와 여자의 일체의 차별을 철폐하는 인류공동체운동으로 전개해 나갔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모든 구성원이 형제, 자매의 관계로 들어가는 우주적인 가족운동은 새로운 대안적 교회의 운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교회는 현장중심의 예수운동이 교회운동으로 바뀌면서 가져온 부작용들은 재빠르게 익히고 자신의 체질로 삼았지만 정작 그 운동이 가지는 생명력, 장점들은 헌신짝처럼 저버림으로 교회가 서야할 근본 이유를 상실했습니다.)

6. 다행한 것은 교회의 운동이 예수의 운동과 차별성을 강조하고 별개의 운동으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역사의 예수를 살아내는 “예수살기” 로 이해하였으며 한 세대를 살았던 역사적 예수는 모든 시대의 모순에 답하는 그리스도로서 연장되었습니다.

7. ‘역사적 예수’와 ‘해석된 예수’, ‘고백된 예수’를 구분하는 것과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까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역사적 예수는 30년 어간의 예수의 지상생활의 모습이고 신앙의 그리스도는 역사의 예수가 교회를 통해서 해석되고 고백된 모습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역사의 예수는 팩트이고, 해석된 역사는 허구(fiction)라는 구분법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타당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미 행동으로 드러난 사건은 그 현장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 각자의 해석을 통해서만 존재하게 됩니다. 당장 눈앞에 전개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그 다음날 아침에 한겨레신문의 보도와 조선일보의 보도는 천지 차이로 다릅니다. 어느 것이 팩트인지는 미궁입니다. 드러나는 것은 단지 해석의 싸움일 뿐입니다. 역사는 사건화되는 순간 해석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한 사건에서 팩트는 그 일을 결행하는 사람의 내부에서 갈등하다가 결심하고 그 행위를 사건화하는 그 순간, 그 사람의 내면에만 존재합니다. 이미 현상으로 나타난 사건은 각 해석자의 철학적 성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주관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팩트는 감추어지고 신비화됩니다. 그것은 찰라적이고 순간적으로 사라집니다. 그러니 당연히 팩트로서의 예수의 모습은 영원한 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이미 다양한 해석에 의해서 녹아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석된 팩트는 픽션이라는 이분법을 전제해서는 안 될 것이며, 교회가 가한 해석을 제거하면 역사적 예수가 나오리라는 단순한 계산법도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해석 안에는 이미 팩트가 녹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8. 역사적 예수의 삶은 그의 30년 남짓한 역사 내적인 삶 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자신이 이해한 역사적 예수의 삶을 현재화하는 삶입니다. 예수의 살과 피는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그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크리스천들의 살과 피를 통해 다시 역사화됩니다. 크로산은 이를 예수의 부활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예수의 삶은 부활의 삶을 살고있는 크리스천의 삶을 통해서 연장되어집니다.
이천년 전 그분은 완성형이 아닙니다. 그분의 삶과 인격은 겨자씨 같이 누룩과 같이 자라고 있고 발전합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인격과 삶은 열려있고 지금도 자라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인격들에 의해 예수살기가 진행되는 한 그분은 늘 새로운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분은 그 시대에 고정된 분이 아니십니다. 오늘 우리들의 손발이 움직이고 우리들의 그분을 향한 꿈틀거림이 있는 한, 그분은 우리들 안에서 숨쉬고 연장되며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들의 몸짓을 통해 예수의 역사는 새롭게 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9. 저는 이러한 예수를 “역사적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것 같아 주제넘고 조심스럽습니다마는 “역사적 예수”하고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그리스도의 몸’의 개념과 통할 수 있지만 그것은 너무 교회론적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교회와 상관없이 기독운동을 하는 주체들, 나아가서는 기독교 정체성을 갖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사회를 구원하기 위한 운동들 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용어가 필요합니다. 아무튼 우리들의 실천의 현장에서 각자의 역사를 통해서 연장되어지고 확장된 예수를 일컫는 말이 요청됩니다.
누가 역사적 예수를 그려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여러 가지 관점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우선 ‘역사적 예수’의 실천은 예수가 살던 그 시대가 가진 문제에 대한 답입니다. 그러기에 누가 그려낸 역사적 예수의 실천을 그대로 오늘로 옮긴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시대의 문제에 대해서는 동떨어진 답이 될 수 있습니다. 하물며 그때의 ‘역사적 예수’를 그려낸 각 문서(복음서들, Q, 도마복음서등)마다 자기들의 정황에 맞추어 다른 예수의 상을 그리고 있으며, 오늘 우리시대의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분들이 그려내는 예수상도 연구자 저마다의 문제의식의 차이에 따라서, 그들이 속한 사회의 문제에 따라서 서로 다른 예수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서로다른 해석학적 전제가 여러차례 중첩되어 ‘예수상’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여야 하고 통일되어야 한다는 전제는 매우 위험합니다. 서로 다른 예수의 모습이야 말로 예수의 생명력입니다. 각자가 가진 시대의 문제이건, 저자 자신이 처한 문제이건 간에 그런 문제의식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예수상은 무의미하고 건조하며 아무런 답이 되지 못하는 무용한 예수입니다. 역사적 예수는 우리가 가진 잘못된 예수상에 대해서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따라야할 예수는 다양한 시대, 다양한 정황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답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미 ‘그 때의 역사’를 벗어납니다. 그분은 오늘 우리시대에도 구원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저마다 그려낸 예수상이 다르다고 하는 것은 이미 서로 다른 문제에 대한 답으로 그렸다는 것이고 그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메시아성을 모든 시대에 ‘역사적 예수’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내십니다. 그러기에 ‘역사적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모든 시대에 답을 주는 분이시며, 역사적 예수가 가지는 경험과 공간, 시간적인 한계를 뛰어 넘습니다. ‘역사적 그리스도’는 역사적 예수를 따르면서 그의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시대의 몸뚱어리들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일컫습니다. 역사적 그리스도는 모든 시대에 생명을 부여하고 모든 시대에 그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삶을 역사화하며 사건으로 만들어 갑니다. 역사화되지 않는 그리스도, 현재적 실천으로 나타나지 않는 그리스도는 우상일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여전히 교회 안에서, 예배 안에서만 찾는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우상화입니다. 교회의 선교와 기독인의 신앙운동은 바로 이 “역사적 그리스도”를 현재화하는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10. 신앙의 그리스도가 역사적 예수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그 예수는 허구적이고 우상화되기 쉽습니다. 반면 역사적 예수가 신앙의 그리스도의 초월성을 갖지 못한 채, 예수도 우리와 똑 같이 단지 좌절과 실패 속의 인물이라면 그는 우리의 희망이 되지 못합니다. 역사적 예수가 우리에게 삶의 한 모델을 보여주고 방향을 제시한다면 그리스도는 역사적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들 안에서 일어나는 머뭇거림과 망설임 속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감싸며 동력화하는 힘이시며, 그들이 자신의 힘의 한계에 절망하여 주저앉을 때, 그들 안에서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초월과 능력이십니다. 그 과제를 삼위일체론적으로 성령의 역사로 넘긴다고 하더라도 그 중심은 역사적 예수를 살아가는 예수살기에 있습니다. 예수살기는 기독운동, 교회의 운동(선교)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적 그리스도’가 되어가는 운동이고 ‘역사적 그리스도’를 이루어 가는 운동입니다.

    *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심자득 목사가 촬영하고, 동영상 촬영과 편집은 이필완 목사가 하였다.

   

   

   

   

   

   

   

   

   

   

   

   

   

   

   

   

   

   

   

   

   

   

   

   

   

   

   

   

   

   

 

설립자 : 홍정수 박사

소장 : 김준우 박사

한국기독교연구소는
신학의 당파성이 아니라 보편성/구체성, 절대성이나 상대성이 아니라 다원성,
탈세속성이 아니라 세속성을 추구하며 홍정수 박사가 1988년 11월 29일 개원한
세계신학연구원을 1995년 5월 15일에 확대개편한 신학과 목회 연구소입니다.

  ■ 설립목적

1. 성서와 기독교 전통에 충실한 복음적 신학을 발전시킨다.
2. 신학과 목회 현장을 창조적으로 연결시켜 한국교회의 건전한 자기갱신을 도모한다.
3. 21세기의 목회에 도움이 될 자료들을 개발하여 보급한다.

  ■ 사명

   한국기독교연구소는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서 벗어난 한국기독교를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 기초하여 재확립함으로써,

한국교회와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사명으로 합니다.

■ 비전

   1. 한국기독교연구소는 예수에 대한 최근의 학문적 성과들을 연구하고 소개함으로써 예수를 바로 알기 위해 노력합니다.

2. 한국기독교연구소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계승하고 재현함으로써

예수를 바로 살도록 돕기 위해 노력합니다.

3. 한국기독교연구소는 한국교회가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 기초하여 신학과 목회를 재확립함으로써

교회다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4. 한국기독교연구소는 한국사회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힘입어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세상이 되도록 노력합니다.

  ■ 사업

   1. 출판사업

(1) 격월간 설교자 노트
(2) 단행본, 영성생활시리즈, 21세기 기독교총서, 21세기 교회교육시리즈, 영성시집시리즈,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 발간.

   2. 교육사업 : 월례 예수포럼, 예수학당, 예수목회세미나, 목회자 원서 강독 및 세미나

   3. 21세기의 목회를 위한 연구 및 심포지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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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121.169.61.196)
2009-02-25 23:51:25
허 참...
제 컴퓨터가 문제인지 다른 동영상 역시 재생이 안되는군요 ㅠㅠ
미디어플레이어 창이 뜨기는 하나 '준비'상태에서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플레이를 클릭하면 '미디어연결중'이라는 글씨가 잠시 나타나다가 다시 '준비'상태로 돌아갑니다.... 물론 윈도우미디어플레이어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요.
리플달기
19 30
운영자 (121.160.11.226)
2009-02-23 14:23:35
동영상은 별 문제 없이 작동되고 있습니다.
이 기사의 동영상은 별 문제 없이 작동되고 있습니다. 귀하의 컴의 코덱 문제인지... 안되는 내용을 좀 더 자세하 알려 주시면 문제 해결 방법을 알려드리지요!
리플달기
20 31
알바 (121.169.61.92)
2009-02-23 14:13:52
동영상 재생이 안 되는군요 ㅠㅠ
...
리플달기
14 30
목사 (86.213.155.151)
2009-02-22 08:20:22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한국교회를 위한 .. 한국사회를 위한 귀한 연구소로 더욱 부흥하기를 기도합니다.
리플달기
19 32
김준우 (59.7.18.163)
2009-02-21 10:15:20
감사합니다
조촐한 자축파티를 계획했는데 예상 외로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시고 후원금도 보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더군다나 잔치집에 음식이 부족해서 도시락으로 식사대접을 해드려 송구한 마음 그지 없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라는 격려의 말씀들과 연구소에 대한 많은 기대를 확인하고 동지들의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리플달기
2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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