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의 현실과 예수의 목회
[예수세미나 특강]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연구실장 김진호 목사

특강 Ⅰ

갈릴리의 현실과 예수의 목회

김 진 호 목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1. 예수 시대의 지배체제, 두 유형 

세례자 요한은 외쳤다.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1) 그리고는 그에게로 온 이들에게 ‘죄를 사면하기 위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마르｣ 1,4). 죄를 사면받기 위해선 성전에서 속죄제물을 드리며 제사를 드려야 한다. 이것은 유대의 율법이다. 그런데 요한은 대신 세례를 받으러 자신에게로 오라 한다.

유대인의 신앙에 의하면 성전은 ‘하느님의 집’이다. 이곳을 기초로 하느님의 통치가 실현된다. 그래서 왕들은 자신의 도읍에 성전을 짓곤 한다. 그러면 이제 왕의 통치는 곧 신정통치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왕의 나라는 곧 하느님의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현존하는 ‘그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도래를 부른다. 현존하는 그 나라에서 행해지는 ‘죄 사면의 제사’를 거부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불의한’ 성전 체제와 그 체제의 지배기구이자 일종의 유대의 원로원인 산헤드린, 그리고 그 배후의 로마 제국을 향한 정면도전이다.

성전체제에 대한 이 같은 비판은 주전 8세기의 반체제 예언자 미가에게서도 나타난다(｢미가｣ 3,9이하). 또 그 얼마 후에 활동한 우리야와 예레미야 예언자도 마찬가지다(｢예레｣ 26,20이하; 26,1이하). 반성전주의적 선포는 오래 전부터 권력 비판 전통에 속하는 구호의 한 전형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때 권력은 성전 체제와 그 배후의 정치권력을 뜻한다.

그러기에 갈릴래아와 베레아의 통치자 안티파스가 요한을 체포한 것(｢마르｣ 1,14)

은 당연한 일이다. 군대를 동원해서 진압작전을 폈고, 주모자를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고, 또 많은 이들이 흩어졌으리라. 훗날을 도모하며. 요한 운동의 일원인 예수, 그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바로 이 때다. 집압군의 칼날과 몽둥이를 피해 갈릴래아로 되돌아 왔지만, 아마도 적지 않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다시 조심스럽게 활동 재개를 모색한다. ｢마르코복음｣의 틀에 따르면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동조자를 규합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들 가운데 여럿은 세례자 요한의 명시적인 추종자였다고 진술한다(｢요한｣ 1,35~42).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점에서 ｢요한복음｣의 진술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설사 명시적인 요한의 추종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아마 대다수 예수의 제자가 된 이들은 요한의 하느님 나라를 신뢰했을 것이며, 요한이 그 나라의 예언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안티파스 당국은 예수를 ‘요한과 연계된 자’로 파악하고 있다(｢마르｣ 6,16). 예수를 처형한 로마 식민지 당국이나 성전 체제도 그를 ‘왕을 참칭하는 자’로 이해하였다(｢마르｣ 15,2). 예수 자신도 세례자 요한과 동일한 선포를 한다. “회개하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

하지만 이런 이해만으로 예수 운동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정치적 권력에 대한 비판이라는 차원에서 세례자 요한의 전통을 승계했다고 할 수 있지만, ‘권력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비판’의 새로운 차원을 창조했던 것이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바로 이것을 읽어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계속해서 ｢마르코복음｣의 틀을 따르면, 예수의 다음 행보는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촌락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약자를 그 나라의 수혜자로 초대하는 이른바 복음의 선포로 요약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의 하나는 예수는 요한처럼 한 곳에 붙박혀서 활동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옮겨다닌다는 점이다. 요한이 당국에 의해 체포된 터에 그의 추종자로 이해되는 이의 활동이 자유로웠을 리 없으니, 예수는 처음부터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가면서 하느님 나라 운동을 펴나가야 했을 것이다. 예수 운동에 관한 복음서의 기록 도처에 나타나는 ‘비밀의 모티브’는 그것을 반영한다. 자신이 메시아임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 은밀한 거처에서 기거하는 것, 산으로 광야로, 심지어는 공권력의 치안 영역을 벗어나는 이방 지역으로 도피한 것 등. 한데 이것은 예수 운동이 보다 적극적인 하느님 나라 운동의 양상이 되게 하는 셈이 되었다.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운동이 삶의 일상과 마주하면서 펼쳐지도록 이끄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는 점차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각인된 메시아로서 기억되게 된 것이다. 

▲ [지도] 예수 시대 팔레스틴

그런데 특정 가치가 규범적 가치로 자리잡는 데는 반드시 ‘제도적 장치’가 수반하기 마련이다. 제도적 장치란 그 규범적 가치에 의거해서 응징(벌)과 보상(축복) 메커니즘을 작동하는 사회적 기구를 가리킨다. 예수 시대 이 역할을 맡은 기구가 바로 ‘회당’, 특히 촌락에 세워진 회당이었다.(우리는 이러한 촌락에 세워진 회당 제도를 ‘촌락회당’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런데 제도적 장치는 두 가지 차원의 ‘담장’을 필요로 한다. 첫째로, 제도적 장치는 그것의 보상/응징 메커니즘을 작동하는 ‘관념상의 담장’를 필요로 한다. 우선 여기서 ‘안’과 ‘밖’이 나뉜다. 실재의 삶에서 안과 밖의 경계가 명확한 것이 아니더라도, 이 제도적 장치는 그 경계선을 나누는 관념체계를 사람들의 가슴 속에 심어 놓는 것이다. 그 사이를 넘나드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이 눈 부라리고 있기 때문이다. 깨끗함과 부정함의 이분법이 날선 칼을 벼리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조금은 선하고 또 조금은 악하기 마련이지만, 어떤 이는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경계선 저편으로 추방당한다. 가령 현대 한국의 반공주의가 만들어 놓은 신화적 경계처럼. 한편 이 제도적 장치의 경계짓기는 내부에 또 다시 담장을 만든다. 이때 이것은 안팎을 가르는 담장보다는 월장하기가 훨씬 용이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미치는 효과는 그리 과소평가할 것만은 아니다. 아무튼 경계 내부에 형성된 중심-주변의 구획 짓기가 마치 피라미드 모양으로 형성되는데, 이것은 경계 내의 사회적 신분상의 위계와 상응한다.

둘째로, 제도적 장치는 그것의 보상/응징 메커니즘을 작동하는 ‘물리적 담장’을 필요로 한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일상적 규범 단위는 촌락사회다. 마찬가지로 예수 시대 회당의 사회적 작동 무대 또한 주로 촌락이었다.(물론 당시에 도시의 회당도 존재했으나, 그 의미는 위의 설명과는 다소 다르다.) 즉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규범적 가치의 단위가 촌락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적 경험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주로 촌락 내부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율법-회당’의 결합체는 예수 시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규범적 근거를 제공해 주는 준거이자, 이 근거에 의해 사람들의 존재 가치를 구별짓는 기준이기도 했다. 한편 회당의 중심에는 촌락사회의 담장 쌓기에 의해 주로 소자산가 층으로 이루어진 바리사이가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농민 계층에서 상향분화한 소자산가층과 관련된다.

주전 4세기경 헬레니즘에 의해 통합된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주로 도시간을 연결하는 국제적 교역량이 급증하는데, 이 와중에서 상인, 무역업자 등이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할 기회를 맞이하게 되며, 또한 농업생산자 가운데도 자산 축적에 성공한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들은 도시와 농촌에서 새로운 사회정치적 세력으로 부상하여 한때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진보적 운동의 핵을 이루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독자적인 이념 체계를 형성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부의 축적으로 해서 노동의 고역에서 다소 벗어남으로 말미암은 여가를 지식 축적으로 활용한 결과였다. 현대의 전자통신 매체 같은 사회적 소통망이 결여된 사회에서 그 과정이나 내용은 매우 다중적이었을 테지만, 커다란 흐름에서는 수렴하는 경향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팔레스틴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찾아 볼 수 있는 데, 그것이 바로 ‘바리사이즘’인 것이다.

요약하면 바리사이즘은 예수 시대 소자산가층의 세계관을 포괄적으로 대변하여 그 세계관에 따른 사회적 재구성을 추구했고, 이는 구체적으로 사회적 규범화 전략으로 실현된다. 촌락에서 이것은 회당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구현된다. 즉 율법이라는 일상의 규범적 체계와 회당이라는 일상을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연결되면서 예수 시대 팔레스틴에는 촌락 단위의 규범적 공동체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한편 바리사이들의 규범화 운동은 히브리성서(=구약성서)의 율법을 생활화한 것인데, 이때 히브리성서의 율법은 주로 사제들의 법이다. 히브리성서의 율법 중 사제법은 구체적으로 내용이 적시되어 있는 반면, 일반법은 대체로 모호하다. 그러니 율법의 생활화를 위한 규범이 주로 사제규율에 근거한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었으리라. 그 결과 사제적 규율에 기초한 바리사이적 규범은 성전을 중심으로 하게 된다. 단 지역 생활이 주 무대인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의 성전 중심성이란 현실적으로 구현되기 어려운 일. 따라서 성전은 바리사이즘에서 ‘상징적’ 중심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촌락단위에서 실행되는 규범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다양한 바리사이적 규범화 운동 간에는 연결망이 구축된다.

이상과 같이 ‘율법-회당-바리사이-성전’이 하나의 의미의 코드를 미루며 예수 시대 팔레스틴 농민의 일상을 지배했다. 마치 섹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신부-줄리엣-잠자는 약’이 코드화되어 형성된 ‘행복한 사랑의 성취’를 지향하는 의미가, 이 코드에서 신부가 빠지고 로미오가 끼어들자 ‘잠자는 약’이 ‘독약’으로 되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듯이, ‘율법-성전’ 계열에서, 주로 성전 귀족들로 이루어진 사두가이와 그들의 제도적 장치인 산헤드린 대신 ‘바리사이-회당’이 끼어듦으로써, ‘율법-회당-바리사이-성전’의 코드화는 산헤드린 중심의 성전체제와 로마 식민지 당국과는 다른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 지배체제를 형성했던 것이다.

성전체제와 로마 식민지 당국이 팔레스틴 전역에 대한 지배체제를 구축했으나, 이 체제가 농민 삶의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규제하지는 못한, 체제의 ‘외면적’ 구속을 이뤄냈다면, 촌락회당 체제는 촌락 단위의 농민의 삶의 일상을 규제하는 ‘내면적’ 구속을 이루어냈다. 전자가 주로 강제라는 규제 수단을 통해 지배를 실현했다면, 후자는 ‘동화/내면화’라는 수단을 통해 지배를 실현했다. 전자가 주로 물리적 폭력을 기반으로 해서 지배체제로 군림할 수 있었던 반면, 후자는 주로 전통이라는 인격적 양식의 지배체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양자 간에는 무시할 수 없는 동질성이 있다. 그것은 양자가 모두 엘리트 중심적이며, 사회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선을 긋고 여기서 배제된 ‘저주받은 사람들’을 그 밖으로 내몰았으며, 또 사회 내부에도 중심-주변으로 나누어 계층화된 불평등한 특권사회를 지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하면 선과 악, 우리와 저들을 가르고 그것 각각에 축복과 저주를 부여하는 배제주의적 가치가 이들에 의해 대변되고, 또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를 ‘권력사회’라고 한다.

앞서 말했듯이 예수는 세례자 요한과는 달리 갈릴래아의 촌락 회당을 전전하면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수는 요한이 미처 보지 못했던 권력의 또 다른 양상, 보다 일상 속에 깊이 개입해들어 간 권력의 양상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에서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율법-회당-성전’이든 ‘율법-산헤드린-성전’이든 간에 이 두 권력 계열 모두를 해체하려는 경향을 나타내게 됐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의 실천은 후자의 권력 체제를 주로 표적 삼았던 요한이나, 히브리성서의 반체제적 전통을 넘어서는, 철저한 권력비판의 새로운 전통을 창출하게 된다. 바로 우리가 앞으로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예수의 권력비판의 양상이 바로 이러한 모습이다.

2. 율법과 예수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예수의 입을 빌어 표현되고 있는 이 말씀을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 자신의 것이 아니고, 그 후의 (아마도 팔레스틴에서 형성된) 어떤 예수 집단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이것은 역사의 예수가 반율법주의자라는 이해와 연결되며, 나아가 그리스도교 신앙, 아니 서양인의 반유대주의적 심성과 맞물려 있다. 요컨대 이러한 해석은 서구 신학자들의 자기 중심주의적 이해를 반영할 뿐이다.

우리는 예수가 이런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예수가 반율법주의자라는 해석에 반대되는 이해를 ｢마태오복음｣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아니 실은 ｢마태오복음｣의 율법 친화적 이해를 서양 신학자들의 그것과 반대되는 것으로 보는 입장 자체도 서구 중심주의를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바울 서신들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반율법주의를, 서구 중심주의적 맥락이 아니라, 바울 자신의 예수 운동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마태오의 율법 친화적 예수론도 그의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들의 인식론적 맥락의 저류에는 공히 예수가 있다. 둘 사이의 상이한 역사사회적 맥락이 비록 양자간의 표면상의 차이를 야기했다고 할지라도, 양자는 자신의 율법관을 예수와 관련해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표면상의 차이만을 가지고 양자의 율법에 대한 태도를 해석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모든 초기 예수 운동의 공통된 지반인 예수를 살펴야 하고, 그로부터 의미가 다양하게 발전하게 되는 과정을 보아야 한다. 여기서 오늘 우리의 관심은 예수의 율법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의 문제다. 그것은 예수에게서, 아니 예수와 동시대인들에게서 율법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묻는 것이며, 예수는 그것을 어떤 코드로 읽어냈느냐를 살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미리 전제해야 하는 사실은, ‘율법’이라는 것이 일종의 그 시대의 의미 체계의 문법이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그것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행위에 정결함과 부정함, 옳음과 그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의식적･무의식적 인식틀의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즉 사람들의 일상은 율법에 의해 규범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세기의 유대인이라면 누구도 이러한 인식틀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그가 의지하기 이전의 존재의 근원이며, 삶의 무의식적 뿌리였다.

예수는 바로 이러한 세계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이러한 인식틀을 문제시했다는 것이다. 그 세계 내부인이면서 동시에 그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론적 구조 외부로 탈주하려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사고와 실천의 모순이 드러난다.

만약 어떤 위대한 사상가가 있다고 하자. 그는 자기가 속한 사회의 규범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 인생을 걸고 그 규범 체계와 투쟁하며 살았다. 그렇다고 그가 그 규범 체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일 수 있겠는가? 그는 그 속에서 태어났고 성장했다. 그래서 그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그 규범은 자연스럽게 그의 몸에 밴 사고와 행동의 체계였다. 혹 이 사상가가 이 규범 세계의 외부인이었다면, 가령 그가 외국인이라면, 필시 그의 주장은 내부인들에게 여간해선 설득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는 말한다.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을 더럽힐 수 없다 ... ’ 이로써 (예수께서는) 모든 음식이 깨끗한 것임을 선언하셨다.”(｢마르｣ 7,18~19) 이것은 ｢레위기｣ 11장에 묘사된 바, 정결하게 하는 음식과 부정하게 하는 음식을 가르는 토라의 규범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주장이다. 음식 규범은 율법의 가장 핵심 중의 하나다. 그러나 예수가 돼지나 뱀 등 금기음식을 먹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오히려 뱀이나 돼지 등을 혐오하는 동시대인들의 사고를 예수 또한 공유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마태｣ 7,10; ｢마르｣ 5,13) 바로 이렇게 모순적인 듯이 보이는 부정과 긍정의 태도의 공존, 이것은 예수가 비판하고자 했던 율법이 예수를 포함한 동시대 유대인들의 규범적 뿌리였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율법이 예수를 포함한 동시대 유대인들의 삶의 규범적 뿌리였다는 전제 위에서, 예수가 율법을 비판한 동기가 무엇인지를 묻고자 한다. 왜 자신의 존재의 근원에서부터 탈주하고자 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해명하기 위해서 규범적 뿌리로서의 율법의 사회적 기능에 대하여 보다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규범체계라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무수한 반복을 통해 구조화된 ‘행동 원리’이자 ‘세계관’이며 사회의 ‘조직 원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매일 매일의 삶에서 무엇을 해야 마땅한지를 판단하기 위해 그것들 하나하나를 가리켜 주는 교사들을 따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로부터 직간접으로 터득해 온 규범을 통해 판단 기준을 갖게 된다. 물론 그것은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내면화된다. 또 사람들은 천하 만물의 법칙, 즉 순리라는 것을 규범을 통해 터득한다. 나아가 사람들은 가족 친족 마을 부족 민족 등의 사회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해야 마땅한 도리(역할 기대)가 무엇인지를 바로 규범으로부터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규범은 그 사회의 ‘지혜로움’의 체계다. 이러한 규범에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을 유대교 사회에서는 ‘현자’(賢者) 또는 ‘라삐’(=선생님)라고 부른다. 규범은 그 사회의 전통(과거성)의 근거이자 미래적 전망의 원리며, 바로 그런 전통과 전망에 근거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힘으로서의 지식체계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의의를 갖는 모든 지식체계가 곧 규범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규범은 사람들의 ‘일상적 삶 내부’에서 삶을 규제하는, 마치 무의식과 같은 의미의 지식체계인 것이다. 이로써 그 규범체계 안에 포섭된 대중은 그 규범 가치의 공동체의 적극적인 수호자(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도 없이 무의식적으로)가 된다.

그런데, 앞 장에서 보았듯이, 규범적 가치가 사회에 안착하는 데는 반드시 제도적 장치를 필요로 한다. 또한 우리는 ‘율법-회당-성전’ 체제와 ‘율법-산헤드린-성전(-로마)’ 체제라는 두 차원의 제도의 계열화가 예수 시대 팔레스틴 사회를 구성하고 있음을 보았다. 이 두 체제는 규범적 가치를 권력화한 제도적 실체다. 다시 말하면, 규범적 가치가 (회당 또는 산헤드린과 연계된 가치체계인) ‘율법’이 되는 것은 곧 지혜로움의 체계가 권력적 지식, 즉 권력을 위해 봉사하며 권력에 의해 그 품위가 한층 격상되는 지식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예수 시대 규범적 가치의 현존방식인 율법은 권력적 지식으로, 팔레스틴의 대중을 권력에 길들게 한다. 대중은 소수의 특권층에게 많은 것을 박탈당하면서도, 그들이 공유하는 규범체계로 말미암아 그 심각한 이질적 현실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특권층과의 동료의식에 사로잡힌다.(피학성, Masochism) 반면 대중의 억눌림은 ‘이방인’을 향해 투사된다.(가학성, Sadism) 억눌림이 심할수록 그 투사의 정도는 점점 폭발적으로 증폭된다. 그 폭력성은 집단적 광기의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이방인’은 실제로 억눌림에서 비롯된 증오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은 너무 강하거나, 보복의 손길에서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방인과 동일시되는 또 다른 대상이 필요하다. 물론 만만한 대상으로 말이다. 르네 지라르는 이들을 ‘희생양’이라 불렀던가...

예수 시대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 같은 종족이나, 세리･창녀･목동 등과 같은 직업집단, 혹은 이단적 소종파(가령 유대교의 박해받던 초기의 예수 집단) 등으로 규정하고는, 그들에게 분노를 쏟아부었다. 이리하여 권력적 지식(율법)이 된 규범체계는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자들뿐 아니라 사회의 거의 모든 대중을 권력의 공법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권력의 희생양에 대한 가학적이고 배제주의적인 방식은 구체적으로 어떠했을까? 우리는 여기서 규범적 가치의 체계가 ‘정결-부정의 체계’를 이룬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선과 악의 추상적인 이분법적 가치를 현실 생활에 적용한 것이다. 이때 현실의 경험은 결코 궁극적인 선-악의 단순 이원화된 가치와 대응할 수 없다. 그래서 선-악 가치의 중간에 무수한 과도적 단계들이 설정되고, 이 단계들 하나하나에 구체적인 경험 하나하나가 일대일 대응하게 된다. 가령, 음식 가운데 매우 정결한 것, 약간 정결한 것, 아주 조금 정결한 것, 아주 조금 부정한 것, 약간 부정한 것, 매우 부정한 것 등이 구체적으로 정-부정의 형태로 규정된다든가, 혹은 우리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물건을 옮기는 것 하나하나도 ‘손’ 있는 날, ‘손’ 없는 날, ‘길’한 날 등, 정결례적으로 규정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또 음식과 장소 혹은 시기가 결합되어, 어떤 때/곳에서 허용되는 것과 불허되는 것 등이 규정되기도 한다. 이렇게 구체적인 실천이 추상적인 가치와 정교하게 조합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경험/실천의 선악 가치화는 사실 친족집단 혹은 동족집단의 생태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가령 팔레스틴처럼 무더운 초지에서 반유목 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돼지 사육은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며 유익하지도 않다는 환경적 요인은 점차 돼지를 부정한 음식의 반열에 오르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정의 체계가 권력담론이 되면서, 생태 환경에서 비롯된 가치의 우열적 차등화가 인간의 우열을 가늠하는 척도로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율법은 배제된/될 희생양에 대한 사회적 보복의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근거가 된다. 결국 율법은 복수의 대상인 희생양을 찾아 헤매는 사냥꾼이 되어버렸다.

예수는 유대 사회의 이러한 규범적 가치를 내면화하면서 자랐다. 그는 또 한 사람의 유대인이었던 것이다. 30년 정도의 기간이 그 사회의 선악 가치를 무의식화시키기에 결코 부족한 햇수는 아니었다. 예수는 알게 모르게 그런 규범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동시에 성장하면서 그런 가치를 해체하는 열렬한 투사가 된다.

‘안식일’이라는 인간의 정결성을 가늠하는 유대교적 규준은 예수에 의해 인간의 정결성을 회복시키는 규준으로 돌변한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마르｣ 2,27)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과 더불어 식사를 하며, 창녀와 거렁뱅이와 세리를 제자로 삼는다. 율법학자들이 희생양으로 배제한 자들을 예수는 이웃으로 동료로 회복시킨다. 또한 이웃 족속이자 동족이기도 한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유대인의 율법적 적대감을 조롱한다. 진정한 이웃이기를 거절한 사제와 율법학자에 비해서, 이윤에만 몰두한다는 세상의 선입관을 한 몸에 짊어진 직업을 가진, 더구나 ‘더러운’ 사마리아 출신인 장사꾼이 도리어 강도당해 패대기쳐진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었다면서.(｢루가｣ 10,25~37)

우리는 예수가 율법과 투쟁을 벌이는 현장에서 언제나 배제된 희생양을 복권시키는 장면을 발견한다. 예수는 심판을 외친다. 약자들을 향한 사회의 빗나간 분노, 그것을 비난하면서 말이다. 바로 예수의 율법 해체는 막연한 규범의 해체가 아니라, 권력적 지식이 되어버린 규범의 해체였다. 그것은 ‘율법-회당-성전’이라는 권력화된 의미의 코드화를 향한 비판이었다. 반면 예수는 정복당한 자들의 이야기를 복권시킨다. 질병/악령들린 자, 억압받는 자, 갇힌 자에게, 그들이 그 질곡에서 해방되었음을 선포한다. 그 순간 그들은 병에서, 악령에서, 온갖 질곡에서 해방을 체험한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는 자신의 존재로부터 반항한다. 비록 그의 언어는, 그의 일상은, 그의 삶 전체는 자신의 존재로부터 충분히 탈주하지 못했음에도, 끊임없이 그를 인습의 끈 속에 구속하려는 전능자와 같은 악마의 마수에서 헐떡거려야 함에도, 그의 밖을 향한 탈주의 여정은 점차 격렬해지고, 근원적인 곳에로 접근해 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 질곡에서 해탈을 체험한다. “다 이루었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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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 ‘예수의 권력 비판’에 대한 중간 요약

우리는 지난 두 차례에 걸쳐 예수 시대 모든 유대인들(예수도 물론 이런 유대인의 한 사람이었다)의 일상을 둘러싼 권력의 면모를 개략적으로 보았다. 거칠게 말하면, 그것은 아래 도표와 같은 두 부류의 계열화를 통해 범주화된다.

여기서 ‘제2계열’이 유대인을 유대 사회에 외적으로 포섭시키는 ‘체제적(정치적) 통합’의 메커니즘과 관련된다면, ‘제1계열’은 유대인을 ‘유대인 다운(Jewishnesslike) 사람’이라는 내적이고 무의식적인 귀속을 야기시키는 ‘사회적(인격적) 통합’의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제2계열에서 로마 제국은 담론상 은폐되어 있다. 즉 유대의 식민지 종주국인 로마 제국의 지배는 유대 사회의 담론적 포섭 메커니즘에서 분명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가 은폐되어 있는 영역이다. 한편 위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두 권력의 계열화는 각각 율법과 성전에서 서로 연결 지점을 갖는다. 첫 번째 연결 지점인 ‘율법’은 사람들의 ‘일상적 실행(pratice)’에서 두 권력이 접합되는 지점이다. 가령 일상생활에서 어떤 삶이 적절한지에 관한 규범적 가치를 의미하는 율법이라는 담론적 실체는 ‘유대인 다움’의 근거이기도 하지만,(제1계열) 동시에 유대 사회의 법적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예, 공식적 직위의 자격 등)을 보장받게 해 준다. 또 성전은 각 통합 메커니즘의 종교적 정당성을 보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권력의 접합 지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두 유형의 권력 작동의 제도적 메커니즘이 유대 사회의 규범적 가치를 구성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그것은 구체적으로 정-부정의 체계를 통해 구현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정의 규범적 체계는 모든 사람/것이 정결하게 하는 것을 지향하는 규범적 장치라기보다는, 기성의 사회적 질서를 재생산하는, 즉 정결과 부정으로 규정된 이들/것들에 관한 통념을 고착화하는 지배의 장치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았다. 요컨대 이러한 규범적 장치는 이미 포용된 자는 계속 관용의 원칙이라는 우산 속에 모여들 수 있게 하는 반면, 이미 배제된 자에게는 이 우산이 얼마나 작은지를 체감케 한다. 또 우산 속에 모여든 사람 가운데서도, 전혀 저주의 빗줄기로부터 면제된 자에게는 더욱 안전하고, 경계선에 있는 자에겐 끊임없이 ‘밖의 가혹함’을 두려워하도록 하는 ‘예리한 분리의 논리’의 역할을 한다. 한편 배제된 자에게는 여간해서 우산 속으로 들어올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비록 이상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지만 말이다. 예수의 권력 비판의 초점은 바로 이러한 권력의 배제주의적 속성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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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베엘제불의 권력, 대중의 편견의 폭력

무심코 길을 가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다짜고짜 머리통을 후려 갈리면서 “이 나쁜 놈아” 하고 소리친다. 만일 당신이 이런 경우를 당했다면 당신의 반응은? 성격이 괄괄한 사람이라면, 당장 자신이 당한 것 이상으로 되갚아 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일 나를 후려친 사람이 백두급 씨름 선수처럼 거한에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다면, 그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카텐자｣(이현화 작)라는 연극이 있다. 1978년 초연된 이후, 여러 차례 재공연됐던 문제작이다. 이른바 ‘잔혹극’이라는 혐오스런 이름의 장르에 포함된다는 이 연극은 무대가 열리면서부터 찢어지는 듯한 고문 소리로 공연장을 진동시킨다. 세조가 성삼문을 잡아다 심문하는 장면이다. “네가 죄를 알렸다!” 눈을 부라리며 호통치는 왕 앞에서도 초라한 몰골의 선비는 굽히질 않는다. 고문은 계속 이어지고, 살점에서 튀어나온 피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단근질로 살이 익는 역겨운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선비는 쓰러진다.

그런데 느닷없이 왕의 부하 몇이 관객 속으로 내려간다. 그들은 위압적 자세로 괴음을 내지르기도 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을 향해 눈을 부라린다. 관객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피한다. 순간 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그들이 관람석에 앉은 여자를 번쩍 들어서 우악스럽게 무대 위로 끌고 가는 것이다. 왜 이러느냐고 소리치고, 이 사람들 좀 말려달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심문대에 묶인 그녀를 향해 세조는 다짜고짜 호령한다. “네 죄를 알렸다!” 모든 사람의 침묵 가운데서 영문을 모른 채 끌려나온 여자는 강하게 반발하면서 ‘내 죄가 도대체 뭐냐’고 항변한다. 강한 폭력만큼이나 여자의 저항은 당당하고 격렬했다.

이윽고 고문이 시작된다. 옷이 갈기갈기 찢기고, 주리가 틀린다. 단금질에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관객의 코를 찌른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에 소름이 돋는다. 왕의 “네 죄를 알렸다!” 라는 계속된 고함 앞에 여자의 항변은 점점 하소연으로 변하다가, 마침내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횡설수설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죄를 시인한다. 순간 그녀는 이미 미치광이가 되어버렸다.

이유 없이 온갖 잔혹 행위를 당하면서도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아니 죄인임을 시인하는 것 외에는 모든 항변을 금지당한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구속한 사회에 대해, 권력에 대해 이야기할 권리를 상실한 그녀는, 스스로를 죄인으로 자백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말로 금지당한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항변의 몸짓을 한다. 자살이다. 그리고 연극은 막을 내린다.

이 모든 장면 내내 관객은 시종일관 관람만 할 뿐이다. 연극이란 관객과 연기자의 구분 위에서 이루어지는 가상현실이 아닌가? 그러나 여느 연극과는 달리, 관객 속에서 끌려 나간 여자의 비참한 최후를 지켜보아야 하는 관객은 이미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권력의 잠재적 피해자인 동시에, 권력의 폭력에 공모하는 자들인 셈이다.

이 연극 속에는 권력의 속성이 암시되어 있다. 권력이라는 것은 ‘폭력’을 그 필연적 속성으로 내재하고 있다. 통치자들은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권력이 얼마나 자애로우며 정당성을 갖춘 것인지를 보여주고자 온갖 노력을 한다. 다른 권력에 비해 자신의 권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들에게 훨씬 유리한 것임을 입증하고 싶어 한다. 애써 웃음 짓고, 부드럽고 상냥한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한다. 그렇지만 혹 이에 동의하지 않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극중 성삼문 같은 이가 그 예다. 이에 대해 권력은 결코 인내하지 않는다. 그네들을 향해 혹독하게 폭행을 가한다. 그런데 권력의 폭력적 속성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항하는 이에게만 대응하는 수동적인 폭력의 소유자가 아님을 보이고 싶어 한다. 아니 사람들을 향해 인자한 모습을 가장해 온 것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문뜩문뜩 자신의 야수성을 폭로한다. 그 대상을 찾아 물색한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익명의 누구를, 어떤 집단을 향해 그동안 참느라 애썼던 폭력성을 마음껏 발휘한다. 그래도 될 만한 대상을 골라서 말이다. 무대 위로 느닷없이 끌려나온 ‘여자’처럼.

사람들은 권력의 폭력에 대해 전혀 무지한 것은 아니다. 어느 만큼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권력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들어 있다. 권력을 가지면 좋은 일이 많다는 것을 본능처럼 알고 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언어를 습득하면서부터 이미 그것을 배우기 시작한다. 모두가 권력의 최정상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질주하며 어느 만큼은 그것을 얻는다.

이처럼 권력을 지향하는 사회는 폭력이 난무한다. 하지만 그 폭력은 상냥한 얼굴로 포장되어 있다. 이른바 ‘자애로운 권력’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세상 만물의 질서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러니 폭력은 억제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억제된 폭력이 발산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이 ‘희생양’이다. 자애로운 권력의 하수인인 동시에 그러한 주체의 하나로 남기 위해, 사람들은 마치 희생양을 찾아 헤매는 굶주린 이리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만만한 대상이 선택되기만 하면 그네들에겐 감쳐뒀던 폭력성이 발휘된다. 감히 그 희생양이 말하려 하면, 어디다 함부로 떠벌리느냐고 눈을 부라린다. 뜨거운 맛이 어떤지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배제된 사람들, 그네들은 이제 더 이상 자비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폭력성의 노리게 거리일 뿐이다. 물론 대개는 우리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표출되는 그런 폭력성으로 말이다. 또 때로는 그런 것을 눈치 채게 하는 소리에 일부러 귀기울이려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거친 설명이지만 권력, 희생양, 폭력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권력 메커니즘에 관한 이상의 논의는 예수 시대에도 대체로 마찬가지였다. 다음 인용된 성서 텍스트는 이러한 권력의 작동 방식에 대한 예수의 태도를 읽는 데 유용하다.

예수께서 벙어리마귀 하나를 쫓아 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벙어리는 곧 말을 하게 되었다. 군중은 이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더러는 “그는 마귀의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하였으며 또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하늘에서 오는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갈라져서 싸우면 쓰러지게 마련이고 한 집안도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하는 법이다.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는데 만일 사탄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가 어떻게 유지되겠느냐?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면 너희 사람들은 누구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냐? 바로 그 사람들이 너희의 말이 그르다는 것을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힘센 사람이 빈틈없이 무장하고 자기 집을 지키는 한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센 사람이 달려들어 그를 무찌르면 그가 의지했던 무기는 모조리 빼앗기고 재산은 약탈당하여 남의 것이 될 것이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며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

―｢루가복음｣ 11장 14~23절

여기서 예수는 실어증 걸리게 하는 마귀를 내쫓았다. 하여 그 악령 들렸던 이는 다시 말하게 됐다. 사람들은 놀랐다. 무엇보다도 벙어리가 다시 말하게 되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문맥을 보면, 사람들에게 시기심이 작동하여, “저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귀신을 내쫓는다”고 비아냥거린다. ‘베엘제불’(Bεελζεβουλ)이란 ‘베엘’과 ‘제불’의 합성어다. ‘베엘’은 히브리성서에서 대표적인 이방신으로 나오는 ‘바알’의 변형체다. ‘바알’이라는 신의 이름은 ‘소유자, 주인’ 등을 뜻하는 일반명사에서 유래하였다. 즉 이 신은 소유자의 신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 ‘소유자’란 궁극적으로 왕을 말한다. 왜냐하면 모든 토지, 모든 재산의 소유자는 신이자 인간인 왕의 것이라고 공공연히 선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유자는 실질적으로 토지나 그밖의 재산을 영유하는 주체인 대지주 등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예수 시대에 가까이 이르면 소유자의 개념은 보다 확대되어 소자산가 등을 함의하기도 한다. 한편 ‘제불’은 ‘집’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베엘제불을 직역하면 ‘집의 소유자’, ‘집주인’ 등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실어증의 그 악령은 ‘집을 소유하는 자’와 연관이 있음이 암시되어 있다. 어쨌거나 베엘제불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의 신이다. 그네들을 과대대표하고, 그네들을 보호하며 그네들을 지켜주는 신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본문 속에 함축된 계층적 갈등을 읽어낼 수 있다. 이스라엘은 바알 신앙에 대항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에, 베엘제불을 악령과 동일시하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사실상 하느님을 베엘제불의 모습을 한 신으로 이해하곤 했다. 그래서 베엘제불 운운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선 저주의 욕지거리임에도, 실상은 그들은 베엘제불적 가치관에 매여 있으면서도 그런 가치에 저항하는 사람을 향해 ‘베엘제불 같은 놈’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이 가치란, 위에서 시사했듯이, 무산자가 아니라 소유자의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다.

이 기적 이야기는 공관복음서 모두에서 볼 수 있다. 한데 세세히 보면 각각은 서로 조금씩 다르다. 특히 여기서 예수와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이에 대한 묘사가 서로 상이하다. ｢마르코복음｣은 이런 비난을 퍼부은 사람을 ‘예루살렘에서 온 율사들’이라고 말한다. 이 텍스트에서 ‘율사’는 대체로 ‘예루살렘에서 온’ 상류층 율법학자를 가리킨다. 한편 ｢마태오복음｣에서는 ‘바리사이들’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 복음서에서 이들은 (중앙출신이든 지역출신이든 간에) 종교엘리트를 가리킨다. 이들은 대체로 대지주이거나 소자산가다. 어쨌든 ｢마르코복음｣과 ｢마태오복음｣은 모두 누가 봐도 예수의 적대자임이 분명한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비난이 나온 것으로 진술한다. 그런데 우리가 선택한 ｢루가복음｣은 이들을 ‘군중’으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에는 적대자뿐 아니라 ‘예수의 일반 청중’이 포함되어 있다. 즉 일반 대중이 예수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왕궁이나 대저택의 소유자, 노예를 거느린 그런 부류의 사람들뿐 아니라, 자그마한 집을 소유한 보통 사람도 예수의 이 행동에 비난을 퍼붓고 있다. 통념의 노예가 돼서 말이다.

그렇다면 ｢루가복음｣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 ‘실어증 걸린 사람’에 대한 이해는 그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그는 말을 못하는 자다. 그로 하여금 그렇게 되게 한 자는 ‘베엘제불’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소유자적 가치를 상징하는 기성의 세계관, 기성의 통념으로부터 배제된 사람임이 본문 속에 암시되어 있는 셈이다. 그는 중앙의 귀족이 특별히 배제하고 희생양으로 삼고자 했던 부류의 사람이다(｢마르코복음｣). 또 그들은 지역의 소자산가들로부터도 증오와 배제의 대상이었다(｢마태오복음｣). 심지어 그들은 일반 평민들로부터도 멸시와 천대와 배제의 대상이었고, 이들의 한풀이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루가복음｣).

이 사람이 배제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직 그것은 그가 벙어리라는 사실 때문일 뿐이다. 그를 향해 체제는 “네 죄를 알렸다!”고 다구친다. 그리고 사회의 온갖 멸시와 냉대를, 심지어는 신적인 저주를 퍼붓는다. 그는 항변해서는 안 된다. 그는 침묵해야 한다. 희생양은 가장 만만한 대상으로 선정됐다. 자기 표현을 제약당하고 있는 대상을 향해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다. 하여 그는 이중의 ‘실어증 걸린 자’로서 살아가야 한다. 오직 이 냉대를 천덕꾸러기처럼 더러운 웃음과 비굴한 표정으로 맞이해야 하는 일만이 그에게 남은 일이다.

이 이야기에는 폭력적 분위기가 가득하다. 악령에 의해 구속되어 말 못 하도록 강제된 사람이 있고, 악령을 내쫓는 이가 있다. 또 이것에 극언을 서슴치 않으며 힐난하는 사람이 있다. 이에 대응하는 예수의 비유적인 말은 사뭇 전투적이다. ‘악령끼리 싸운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나는 하느님의 권능에 의해 그들을 내쫓는다.’ 마지막으로 예수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힘센 사람이 무장하고 자기 궁전을 지키는 동안 그의 소유는 안전하다. 그러나 보다 힘센 사람이 덮쳐 와서 그를 무찌르면, 그가 의지했던 무기를 모조리 빼앗고 전리품을 나누어준다. 나와 함께 있지 않은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것이며,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흩어버리는 것이다.’ 본문은 온통 폭력으로 가득한 사회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언사들로 되어 있다. 요컨대 벙어리는 이런 폭력적 사회가 가하는 고문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예수는 이런 분위기에 저항한다. 그 분위기의 희생양이던 이를 고쳐준다. 사회의 통념에 따라 저주의 대상이었던 이를 해방시켜 준다.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한다. 그들은 예수를 비난한다. 악령의 권능을 힘입어 그 일을 한다고 말이다. 이에 예수의 응답은 격렬하기 그지없다. ‘나의 일은 악령에 힘입어 하는 일이 아니다. 악령이 악령을 무찌른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이 말에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악령의 논리로, 악령의 세계를 정의로운 사회로 바꾸려 하는 너희들의 기대는 틀렸다. 권력과 폭력을 추구하는 것은 베엘제불의 논리일 뿐이다. 나는 그것으로 베엘제불과 싸우지 않는다. 내가 싸우는 것은 베엘제불의 반대편에 있는 것, 모든 희생양들의 고통과 함께 하는 그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는 사람들에게 도전한다. 선택을 하라고. 베엘제불을 따를 것인가 하느님을 따를 것인가.

4. 은폐의 신학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는 게으름 피우는 사람을 경계하는 한 편의 비유다. 그래서 이야기의 초점은 베짱이에 맞추어져 있다. 이렇게 어떤 것을 그것과 대조되는 다른 대상과 비교하여 이야기하면, 말하고자 하는 취지가 한결 분명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대조법을 이용하는 방식은 종종, 단지 초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도입된 비교의 대상을 또 다른 주인공으로 삼는 해석으로 이어지곤 한다. 이때 개미는 우리 편, 베짱이는 저쪽 편의 사람을 가리키게 된다. 어떤 독자는 베짱이가 아니라 개미에 주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엔 도입부로, 개미 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우리 편)을 격려하기 위해 어떤 현자(賢者)가 이야기한다는 언급이 첨가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자는 이렇게 부지런히 일하는 형제들을 격려하였다”, 라고. 또 내용 가운데, 개미를 두 부류로 나누어, 한 편은 부지런한 개미, 다른 한편은 게으른 개미로 분류하는 내용이 가미될 수도 있다. 원래는 게으른 자와 부지런한 자를 대조시킴으로써 게으른 자를 경계하려던 것이, 이젠 ‘게으른 개미’라는 우리 편의 게으른 사람과 ‘베짱이’라는 저쪽 편의 게으른 사람이 나오는 등, 보다 복잡한 구조를 이룸으로써, 그 의미가 더 이상 선명해지지 않게 된다.

최근 손춘익이라는 동화작가가 이 우화를 개작해서 󰡔여치와 개미󰡕라는 동화를 썼다. 여기서 여치는 예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을, 개미는 황금만능시대의 소시민을 상징한다. 개미는 여치를 놀고먹는 무위도식자 쯤으로 걱정스레 본다. 결국 한겨울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던 여치는 개미에게 구걸하러 갔다가, “내 영혼을 돈에 팔 수 없다”며, 따스하고 안락한 개미의 집에서 쓸쓸히 되돌아 나온다.

이쯤 되면 이야기는 상당히 복잡해져서, 누군가가 우화 󰡔개미와 베짱이󰡕‘들’을, 그 여러 판본들을 수집해서 그 의미를 읽어내고자 한다면, 그는 여기에서 더 이상 단순 명료한 의미를 찾아내기가 어렵게 된다. 오히려 󰡔개미와 베짱이󰡕는 비유라기보다는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수수께끼에 나오는 모든 대상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붙여 그 수수께끼의 ‘숨은 뜻’을 찾아내고자 하게 되는 것이다.

성서의 ‘비유’가 바로 그렇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비유로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는데, 물론 이 이야기들은 대개의 경우엔 매우 선명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을 게다. 그런데 그것이 전해지면서 이야기가 복잡하게 확장되었고 때로 뒤틀리기도 하면서, 결국 한 편의 수수께끼로 우리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아래에 인용된 ‘달란트의 비유’라고 알려진 이야기는 바로 이런 수수께끼화된 이야기의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늘 나라는 또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었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을 활용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가서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었다. 얼마 뒤에 주인이 와서 그 종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주인님, 주인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도 말하였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하고 말하였다. 그 다음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와서 ‘주인님, 두 달란트를 저에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주인은 그에게도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하고 말하였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와서 ‘주인님, 저는 주인께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우시는 무서운 분이신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저는 주인님의 돈을 가지고 가서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그 돈이 그대로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은 그에게 호통을 쳤다. ‘너야말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우는 줄로 알고 있었다면 내 돈을 쓸 사람에게 꾸어주었다가 내가 돌아올 때에 그 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 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 여봐라, 저자에게서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쫓아라. 거기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 ｢마태오복음｣ 25장 14~30절

｢마태오복음｣에서 달란트의 비유는 아래 ‘표3’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네 개의 비유 묶음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다. 그리고 이 비유 묶음 앞뒤에 “‘인자’가 올 때까지 준비하고 있으라”는 ‘경계의 말’(24,44)과, 인자가 곧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당하여 떠나게 될 것이라는 ‘예고의 말’(26,1~2)이 덧붙어 있다. 이런 상황 설정 속에서 이 묶음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한 말로 나온다.

요컨대, 경계의 말과 예고의 말로 엮어진 이 네 비유들은 모두 예수가 재림할 때까지 신앙을 굳게 지키라는 권고에 초점이 있다. 여기서 이 비유들에는 모두 대조되는 두 부류가 등장하고 있으며, 이 두 부류의 주재자가 일시적으로 그들을 떠나게 되었다가 훗날 귀환하게 된다는 상황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비유1: 주인/ 비유2: 신랑/ 비유3: 주인/ 비유4: 인자). 그리고 주재자의 부재중에 어떻게 대처하였느냐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갈리게 됐다는 결론으로 맺음하고 있다는 것도 일치한다. 이것은 유사한 네 개의 비유들을 복음서 저자가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신앙을 지키는 신자들을 위한 권고의 비유로 묶어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원래 예수의 비유를 저자는 이런 목적으로 개작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개작 과정에서 이야기의 수수께끼화가 불가피하게 초래되었다.

아마도 원래의 비유는 권고와 예고의 말이 없었을 것이다. 즉 각기 다른 상황에서 발설되었던 것인데, 그때의 도입부는 사라지고, ｢마태오복음｣ 저자가 이러한 형태로 대체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는 어떤 상황에서 발설된 비유였을까? 사라진 원래의 도입부를 알아낼 방도는 없을까? 비유 내용 속에서 그것을 추론해보자.

｢마태오복음｣의 구성 속에 들어 있는 이 네 비유묶음은 모두 원형의 모습을 어느 정도 담고 있다고 보이는데, 많은 학자들은 공히 특히 대조되는 두 부류 가운데 축복의 대상을 앞에, 저주의 대상을 뒤에 위치시키고 있다는 것이 그런 예라고 본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할 때 통상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뒤에 위치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 비유를 그렇게 본다면, 축복의 대상보다는 저주의 대상에 초점이 놓여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주재자의 뜻을 잘 헤아리지 못한 자들은 저주받게 된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어떤 완충장치도 없다. 오직 단호함만이 깃들어 있을 뿐이다. 즉 예수는 이 비유를 통해 누군가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마태오복음｣은 그것을 제자들, 즉 신자들에 대한 권고로 바꾸는 과정에서, 두 부류가 아닌 세 부류의 종을 설정하였고, 그 종들이 받은 ‘달란트’, 즉 위임받은 사명의 크기를 다르게 묘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서로 잘 알고 있는 공동체 내에서, 어떤 이는 보다 신실하고, 또 어떤 이는 그만그만하고, 다른 이는 좀 더 불충스러운 생활이 다 드러난 터에, 구성원간의 다른 위상을 어떻게든 반영하지 않고서는, 그냥 단순하게 대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던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상 세 명의 종은 교회 내의 각기 세 부류를 대표하기보다는 사실 두 부류로 구분될 뿐이다: 받은 재화를 활용하여 배가시킨 종과 그것을 신주 모시듯 숨겨두었다가 그대로 반납한 종. 달란트를 배가시킨 두 명의 종에 관한 묘사 방식이 서로 일치한다는 점은 이러한 이원 분류가 삼원 분류보다 이야기 전개상 더 자연스럽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컨대 우리는 복음서의 개작 이전에는 두 부류의 종이 이야기의 골격을 이루는 등장인물이었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한편, 주인과 종의 대화에 관한 묘사 방식에 있어서 마지막 세 번째 종은 앞의 두 종과는 다를 뿐 아니라, 그 분량에 있어서도 좀 더 길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그것은 이 비유의 강조점이 마지막 종에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아래 도표는 이 비유의 원형의 기본 뼈대를 도표화한 것이다.

이 비유에서 우리의 우선적인 관심은 ‘저주받은 종’이 실제로 누구를 가리켰을까이다. 필경 ｢마태오복음｣은 공동체의 내부 구성원 사이의 최소한 삼분화된 집단을 나타내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원래 예수의 말에서도 그렇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위의 분석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의 논쟁 이야기들에서 실제 비난의 대상은, 거의 예외 없이, 대중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들이었다. 문제는 이 비유에서도 그러한 가정이 통하느냐에 있다.

‘표4’에서 보듯 ‘그룹1’과 ‘그룹2’ 사이에는 맡겨진 재화에 대한 태도가 갈린다. 하나는 그것을 ‘활용’하는 반면, 다른 하나는 땅에 묻어둔다. 도대체 활용하는 것과 묻어두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표5’에서 보듯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비유가 하느님 나라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면서, 두 그룹의 재산에 대한 태도를 유념하자. 그것은 단순히 상행위처럼 이윤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비유의 묘사에서 주인의 축복과 저주는 행위의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활용 태도에 따른 것이다. 행위의 결과는 단지 축복이 배가되었다는 것을 묘사해줄 뿐이다.

요컨대 ‘활용’과 ‘묻어둠’이라는, 주인이 위탁한 재산에 대한 종들의 두 가지 태도만이 우리의 주목거리인 셈이다. 자 이제 하늘 나라의 재산을 활용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상해보자. 예수의 하느님 나라는 가난한 사람, 병자, 갇힌 자 등을 향해 설파된 구원의 메시지를 축약한 것이다. 바로 이 메시지, 그리고 그러한 실천을 하는 것, 바로 이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반대로 땅에 묻어둔다는 것은 그것은 ‘은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숨기는 것 말이다. 한데 도대체 누가 그런 행위를 한단 말인가?

중세교회의 권력자들은 주의 영광이 ‘속된’ 사람들의 입에 의해 훼손될까봐 성서 번역을 금하고 예전(禮典)을 대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로 거행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교회는 높은 단을 만들고 성직자 외에는 올라설 수 없도록 했다. 또 세상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라는 단순 분류된 두 집단의 상호투쟁이라는 속류 영화의, 만화 같은 세상을 홍보하는 이 세계의 온갖 지배적 담론들은 악한 사람에게 선사할 구원의 말 한마디도 남겨두고 있지 않다.

여기에서 우리는 권력이 악으로 상징되는 대상을 응징하고 선을 수호하는 진리 체계의 담지자인 양 자신은 포장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서 진리는 항상 ‘속된 사람들’에게는 ‘은폐된 그 무엇’이다. 동시에 그것은 이른바 ‘거룩한 사람들’, 거룩하다고 규정된 사람들에게만 베일이 벗겨져 있다. 이 은폐의 담론 영역이 무엇이든, 그것이 세속적이든 아니든, 진리 공개-비공개의 담론이 신비화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그것은 ‘은폐의 신학’인 셈이다.

세례자 요한은 죄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것은 죄를 사면한다는 표징이다. 죄를 사면하는 기구인 성전 제사가 요한 시대에 갑자기 없어져서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너무나 웅장한 성전과 함께 연일 드려지고 있고, 또 명절 때는 거대한 국가적 행사로 치러졌다. 월드컵이 4년마다 열리는 축구를 통한 세계 평화의 상징이라면, 성전 제사는 매년 드려지는 죄인을 향한 하느님의 사면 복권의 상징이었다. 한데 ‘2002 한-일 월드컵’을 위해 한국에서 일부 사람들이 삶터에서 쫓겨나고 일터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처럼, 성전 제사도 일부 사람들을 보다 깊은 죄의 수렁 속으로 내동댕이쳤다. 이때 월드컵이 평화의 상징이 아닌 것처럼, 성전의 제사는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구원을 은폐하는 기구인 것이다.

세레자 요한이 성전에서 은폐의 신학을 보았다면, 예수는 성전뿐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구석구석에서 그러한 은폐의 신앙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예수의 삶을 지배했다.

예수는 성전 제의 용어인 거룩한 히브리어를 쓰기보다는 대중의 일상어인, ‘속된’ 아람어를 쓰면서 하느님과 그 나라를 이야기했다. 그는 거룩한 성전이나 회당보다는 저자 거리에서, 마을 공터에서 하느님과 그 나라를 선포했다. 또 경건한 사람처럼 행동하기보다는 마시고 먹기를 탐하는 사람처럼 자유롭게 처신했고, 더러운 자들로 분류된 사람들, 세리, 창녀 같은 사람들의 친구로 알려졌다. 예수는 이런 사람들이 야훼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막는 온갖 ‘은폐의 신학’에 대항했던 것이다.

비유에서 저주받은 종은 항변한다. “주인님, 저는 주인께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우는 분이신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인으로 상징되는 하느님이 거룩을 독점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거룩의 본질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만 발원될 뿐이고, 그렇기에 누군가의 노동도 필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다른 이가 그것을 더욱 빛나게 하겠다고 덤벼드는 섣부른 행동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거룩/진리를 독점하는 사람들의 온갖 명분처럼 말이다. 반면 축복받은 종들은 그것을 수중에 장악하여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공개했다. 마치 돈을 늘리려면 시장에 내놓아야 하듯이, 그래야만 그것이 배가될 수 있듯이, 거룩 또한 폭로해야만 그것이 더욱 거룩해진다는 뜻이다. 예수는 바로 이런 시장의 논리를 빗대어 거룩/진리를 장악하고는 모든 이들과의 접촉을 막는 은폐의 신학, 그런 신학의 주역들을 비판하고 있다.

위임받은 달란트를 활용하는 것은, 거룩한 것의 공개를 의미한다. 은폐가 아니라 폭로가 필요한 것이다. ‘거룩함/진리’는 누구의 수중에 장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폭로되어 공유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진리는 그것을 가진 자가 바로 자신을 비워야만 비로소 그 빛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