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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목회세미나 주제강연] 탐욕(貪慾) & 공포(恐怖) 시대, 우리 희망(希望) 예수제7회 예수목회세미나 한아름교회 공동목사, 갈릴리신학대학원 홍정수 박사
이필완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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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2월 09일 (월) 16:41:32
최종편집 : 2009년 02월 16일 (월) 18:59:50 [조회수 : 4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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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강연] 탐욕(貪慾) & 공포(恐怖) 시대, 우리 희망(希望) 예수.

* 동영상 스케치는 인코딩 편집하여 나중에 올린다.

   
▲ 홍정수 박사의 강연

[주제강의] 탐욕과 공포의 시대에서 우리의 희망 예수 [요약 정리]

① J. C. ------- 탐욕/공포
우리가 가진 것은 예수 J. 예수 안에서 내가 얻는 것
오늘 우리의 상황 탐욕의 시대 C
탐욕과 공포의 시대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차별의 시대이다. 기독교신학은 종류가 많아도 그 내용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이런 시대에 예수가 우리에게 왜,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② M P 3 ------- 경쟁 vs 전쟁
예수님은 경쟁을 한 분이 아니라 전쟁을 하신 분이다.
내가 예수 안에서 발견한 것은 MP3이다.
Mission(할 일, 일꺼리, 숙제)

이제 돌아보니 유명하고 유력한 이들, 소위 성공한 이들이 별로 부러워할만하지 않다. 돈 많이 벌고 권력을 차지할 수 있으면 해보라. 이기면 기분이 좋다. 그러나 나는 그들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이기는 사람만 승리하는 세상의 체제에 대해 예수님은 ‘나다(출애굽기 3:14)’를 주장하셨다. 돈 없이도 권력 없이도 할 만한 일은 널렸다는 것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나는 예수 때문에 불편하다. 그러나 거짓과 위선에 물든 삶을 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으므로 감사한다.

사람들은 예수를 싫어한다. 예수의 삶이 바꿀 수 없는 가난하고 쫓겨나고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의 인생이다. 그럼에도 나는 예수를 좋아한다. 이 일에 세 명만 함께 한다면 족하고 감사하다.
나는 일꺼리를 찾았고 그 일꺼리가 좋으며 보람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의 결과가 어떻든지 관계 없이 옳은 것이고 인생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③ de tour - 그 다음 것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니 인생이 편안하지 않다. 돈 많이 벌고 권력을 갖게 되면 그 다음에는 무얼 할 것인가? 계속 ‘그 다음 것’에 집착한다. 이것이 우회(detour)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 다음 것을 하셨다. 그것은 사랑이다.

나는 예수님으로 인해 기쁘고 행복하다.

문 :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은 이유로 교권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 : 미국에서 들은 강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어떻게 믿고 고백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해방전쟁에서 죽어가는 남미인들이 외우는 것이 사도신경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 사도신경은 삶의 고백이다. 남이 볼 때는 고생일 수 있지만 스스로에게는 낙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신경을 다시 해석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 : MP3를 누릴 자격은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는가?
답 : 예수를 믿는 것은 이 세상의 룰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룰을 따라 살자는 결단이다...(방현섭 정리)

   
▲ 그의 강연은 신랄했지만 지나치게 느껴질 정도로 솔직했다

   
▲ 사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불편하다, 실제로는 교인들이 예수를 싫어하는 것 아닐까?

................

주제강연 전문

탐욕(貪慾) & 공포(恐怖) 시대,

우리 희망(希望) 예수

홍 정 수 박사

한아름교회 공동목사, 갈릴리신학대학원

*개념 정의:

1) 탐욕 : 필요 혹은 평균 이상의 유한한 재원, 자리를 희망함

배타성 <-- 유한성, 파괴성 <-- 사물 도구화

2) 공포 : 겁에 질려, 평상심을 잃는 상황

3) 희망 : 특정 대상이나 조건에 대한 기대. 내용이 나의 것일 수도 타자의 것일 수도 있다. 비배타적/타자-초청적 희망도 가능하다. 인간 편에서는 전혀 “근거 없는 희망,” 종말론적 희망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4) 구원: 낙(樂)(성취, 보람, 독특한 자리, 호의적 관계, 감각적 만족 등등)의 하나이나, 거룩한 낙.

 

[상식 확인]: 기독교 구원론 공식의 상수(구조, J.C.)와 변수(주부, 술부)

J is Christ. J.C.

J=내가 기독교 안에서 얻는 것(체험하는 것, 희망하는 것)

C=나의 처지, 나의 세상에서 나를 구출/완성하는 힘

구원론의 변수.

J. 제도, 이념, 숨겨진 이득, 공허한 이름, 역사, 책, 이야기, 실제 인물, 무시간적 체험

C. 자신이 겪고 있는 희망과 공포+현실적인 탈출/완성 혹은 지연된-희 망 속의 탈출/완성

 

[논제: My Version of J.C.]

#1)(원천) 나는 예수 안에서 얻은 것(낙(樂: 가치-비전, 참여의 즐거움) 덕에,

#2)(문제점) 빈곤, 계급-소속 박탈,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도/불구하고

혹은 풍요(의 유혹), 계급장(의 유혹) 앞에서도 탐욕에 빠지 않고/유혹에 넘어 지지 않고

#3)(결실) “나는 나이다” (출3:14)라고, 온 세상 향해, 선언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체험한다(nada-ism).

[전제/단서]

출발(出發): 철저히 나 자신의 개인적 경험(책, 남들 이야기, 일반적 이야기 아님)

대화 상대(相對): 중년 가장, 갑작스런 실업의 위기, 자녀 교육의 위기, 수도권

질문(質問): 이 특정인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 줄 것인가? 무엇을 나눌 것인가?

 

** 전제/단서를 둠의 의미: 다른 전제/질문에서 출발하면, 나의 이야기를 거기에 맞춰 변용할 수 있음(versatility)을 의미함(유신론적 이야기, 사랑의 이야길 바꿀 수 있음).

 

1. 나는 “운좋은, UFO”? (혹은 이미 IFO?)

“돈 시장”에서, 지금, 돈을 움직이고 있는 힘의 양면은 기업과 개인들의 탐욕과 공포라 한다. 탐욕 때문에 돈을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또 공포 때문에 그리한다는 것이다.

종교, 교회, 목회, 사회운동도 비슷하지 않을까? 왜 참여하거나 도망치는가?

 

<답> <나는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진리/진실을 알기 위하여” 기독교에 발들여 놓았고, 그 후 신학교에 갔었고, 유학을 갔었으며, 내가 발견한 것들을 나눠주기 위하여, 신학교육에 참여하였다. 지금 하고 있는 목회/신학교육도 역시 나눔 & 공동적 발굴과 연습의 기회를 얻고자 함이다.

 

2. 나는 왜 아직 기독교에 몸담고 있는가?

<전제> 여기서 말하는 “왜, 아직”의 내용은 이렇다: 성공한 목회자들, 중생을 체험한 기독교인들, 정치인들, 그들은 여타의 사람들과 삶의 방식, 질에 있어 나을 게 없는 상황

<답>(지금의 대중) 기독교가 나쁜 종교 혹은 시효 마감된 약품이 아니라,

“실천성”이 결여된(사건화될 수 없는 이야기),& “진수 상실”(독특한 가치관 간과)

전자(언어적 사망)의 극복 위하여는 새로운 이해/해석/신학이 필요하며

후자(가치 중복)의 극복 위하여는 신약성서의 고유한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증인공동체가 필요하기에, 목회/신학연구소/신학교를 하고 있다.

 

3. “나는 구원받았다”라는 말을 해명한다면, 무엇이 될 것인가? 이것(나는 구원받았다는 체험, 작가) 없이도 목회 가능하다면, 그 목회는 순수한 속임수이거나 전적인 기적이다!

<답> 나는 예수의 삶(신약성경, 특히 마가복음서에 그려진 바)에서 나를 구원하는 충분한 힘(내 안에 있는 ‘세상’을 이기는 힘, 樂)을 발견하였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에 대하여 동조/주목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데서 오는 小人輩的 고독은 남아 있다.)

 

4. 나는 어떻게 탐욕과 공포를 이길 수 있는가? 예수는, 나에게, 무슨 도움을 주는가?

<답>

1) DNA. 가진 자 & 높은 자: 나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하였기에, 유혹도 받지 않았다(최영 장군!?)

2) 나는 보았다. 가진 자 & 높은 자: 그들은 내면에 있어, 역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으며(안하무인인 이유), 외형적으로 배타적이고, 결과적-사회적으로 반생명-반평화적(폭력적)이고

3) 예수 앞에서. 가진 자 & 높은 자: 사람의 길(품위, 존엄성)이 아니다.

 

5. 내가 받은 “그 구원”은, 풍요-가능성-탐욕의 시대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희망을 주겠는가?

<답> 1) (소극적) “우리” 시대의 “성공자(누림, 가짐, 올라감)들”은

역시 쫓기고 좇는 자(유유자적 없음)이며,

세인들의 부러움을 받기는 하지만, 존경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2) (적극적) “그것(성공) 없이도, 그 다음 것(자유 & 인정)”을 누릴 수 있다.

** 나의 인간학: The criterion of the saved life: 樂/尊嚴(in/through the Greater Mission participation, 삶의 이유/명분) + 결과적 sacredness(결과적 돋보임)

*존엄성=나는 나이다. 그래서 세상-죽음이 나를 꺽을 수 없음.

**낙=단지 희망함이 아니라 이미 누리는 즐거움(성취 아니라도 보람)

I am that I am. My life/being is worth! 선언, 인정받음(누구의 ????).

via Divine Mission & healing the World (participation & making change)

 

6. 구체적인 사례를 들라. 문제의 40대 가장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답> 가능한 대답들

1) 지구를 떠나라? 생사여일2) 맘 가짐에 달려 있다. 선? 단?

3) 기도하라. 하늘 도움을 구하라. 하늘 문 열리면, 만사형통!

4) 나의 예수: <가치의 틀>을 바꾸라: 금과 은은 나에게 없다. 영생의 말씀을 받으라!

(1) 도시(고강도 경쟁, 고물가-소비중심, 몰인정)를 버리라.

(2) 학교 교육을 버리라.

(3)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라.

(4) 안식일을 잘-철저히 지켜라.

(전통 연구, 묵상, 기도-자기 연마, 세계 수리에 참여)

(5) 다시 기회가 오면, 돈과 권세를 취하라.

그 건 섬김과 양생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천명). 목표물이 아니다.

(6) 부와 세, 없으면 --존엄사(尊嚴死)하라.

있으면(생기면) 존엄생. (공부, 기도-예배, 참여-자애)

부언: 차세대: after the Great Depression(우울증) 이후, 더 힘들 것이다.

평준화 / 질적 사유가 필요(가치의 틀 인식)

 

7. “그 구원”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답>

1) 지금, 돈의 가치는? 교환 가치보다는,

소유(계획 적중, 경쟁 승리)에서 오는 [자기 존재 가치 확인]

2) 지금, 권세의 가치는? 섬김(養生) 기회라기보다는

세(暴力) 부림(경쟁-전쟁 승리)에서 오는 [자기 존재 가치 확인]

3) 그렇다면, 우리 자신의 자기존재 확인(“나는 나다”주의)은 예수 방식으로 가 능하다.

예수는 유구한 가치의 재현(유신)이고,

‘세상’ 속에 있으되, 세상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다른 질서(가치-비전), 곧 양생적 삶의 방식은

충분히 가치가 있으며(양적 사유 --> 질적 사유 & 기성 가치의 감옥에 서 해방시켜 주면,

절실히 필요하다(개인의 평안, 지구의 평화, 아름다운 융화를 위하여)

여전히, 비로소 예수의 비전은 “복음(착한 소식)”이다: 나는 나다!

 

[부언(附言)]

“역사”=신들과 신들의 전쟁 (가치-비전 전쟁) 혹은 틀 안에서의 경쟁(게임)이다.

이민 가다. 개종하다. vs 참회(죄 고백)한다. 열성을 기울인다.

 

8. 왜 이런 기독교를 따르는 자들이 없는가?

1) 가치 없어 보인다(무가치성). 2) 불가능해 보인다(불가능성).

3) 그런 가치의 삶을 본 적이 없다(비현실성).

9. 그 구원의 견지에서 볼 때, 지금의 기독교, 무엇이 희망의 핵심인가?

“사회적 부적응자들”(people of social disorder) 아직도 많다!

이들을 통하여, <틀에 갇힌 자들의 구원(작은-비본질적 구원)>이 아니라,

<틀을 넘나드는/밖에 있는 자유인들의 구원(큰-본질적 구원)> 도래한다!

*소극적 대안: 부질없는 싸움, 중지 (내면에서 세계를 발견, 그 안에 안정)

고도의 가능성, 수용해야. (탈정치적, 탈세상적 구원, 신비주의자의 길)

*적극적 대안

탐욕의 길, 달성의 비법(대중종교)

가치-비전의 전쟁,

 

주의: 동일 가치+다른 길? 다른 가치/다른 틀(게임 법칙, 승부 결정 규칙)

혹은 궁극적 동일가치?

 

8. 남은 문제:

친구가 있으면 좋다(자기 확인에). & 없으면? 신비주의의 길이 있기에, 견딜 수 있다.

공동체가 있으면 좋다(유한성 돌파에) & 없으면, 부활을 믿기에,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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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121.160.11.226)
2009-02-12 13:56:45
인터넷무선 T로그인 용량관계로 동영상과 음성파일은 ....
현장에서 올릴 수 없었고 동영상 인코딩 편집되는 대로, 다행이 모든 일정을 녹음하신 분이 계셔서 입수되는 대로 계정에 연결하여 천천히 올리겠습니다. 기대하셔도 됩니다. 단 시간은 좀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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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4
애독자 (216.109.25.121)
2009-02-11 02:06:16
음성파일
이제 접속자도 많고 알려진 사이트인데 이런 강의는 음성파일이 올라왔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동영상은 힘들더라도 음성은 가능하리라 봅니다. 지난 번 정희수 목사님 설교 같이. 강의록 초안만 보아서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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