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촛불 정국 이후 다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미사가 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신부들과 시민 등 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 대자보

 

▲ 유족들과 신부, 시민들은 미사를 마친 뒤, 명동성당 까지 가두행진을 펼쳤으나, 이과정에서 양측 간 크고 작은 마찰이 발생했다.    © 대자보

"국민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때 이명박 대통령을) 용서해줬는데, 이제는 칼을 갖고 등 뒤에서 국민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말해주는 총체적 사건이 바로 '용산 철거민 참사'입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인국 신부)

'용산 참사'에 따른 경찰의 과잉진압과 철거민들을 '폭도'로 규정한 정부의 사후대책이 결국 지난해 7월 촛불 정국 이후 반 년 만에 사제단 신부들을 거리로 나오게했다.

유족들은 이전 추모제에서와 마찬가지로 공권력에 의해 가족을 잃은 절규를 눈물로 표현했으며, 사제단 신부들은 "우리가 기꺼이 여러분들의 '외부세력'이 돼드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경 버스로 가로막힌 청계광장에는 '헌법 제1조'와 '아침이슬'이 울려퍼졌고, 신부들과 시민들은 "이명박 퇴진"을 외쳤다.

'용산 참사'로 숨진 철거민들을 추모하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미사가 2일 오후 100여명의 신부들과 시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인사 등 주최측 추산 2천 여명이 모인 가운데 서울 청계광장에서 진행됐다.

이들은 2시간 동안 진행된 미사를 마친 뒤, 을지로 입구를 거쳐 명동성당에 이르는 가두행진을 펼쳤다. 이과정에서 경찰과의 크고 작은 충돌이 발생했으며, 특히 경찰 채증요원이 한때 시민들에게 억류되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 시민사회-종교계에 영향 미칠 듯…"99% 죽음으로 내몬 더럽고 추한 정권"

이날 시국미사는 특히 '용산 참사'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 이외에도, 지난 1년 간 이명박 정부가 국민에게 보였던 일련의 정책들을 성토하는 자리가 됐다. 이른바 '민주주의 후퇴'를 규탄하는 사제단 신부들의 목소리가 정점에 달했던 것.

향후 불교계와 기독교 단체에서도 각각 시국 법회와 기도회 등을 진행할 예정이어서, 사제단의 시국미사가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적지않을 전망이다.

▲ 이날 시국미사는 용산 참사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1년을 성토하는 규탄의 장이 됐다.    © 대자보

▲ 특히 신부들은 검찰과 경찰을 강도높게 비판하며 이명박 정권을 '살인정권'으로 규정했다.     © 대자보

김영식(안동교구) 신부는 강론을 통해 "1년 전 남대문의 화마와 함께 등장했던 이명박 정부는 죽음을 가져오고 역사를 말살했다. 결국 무지막지한 정권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며 "1%는 살리고 99%를 죽음의 사지로 떠밀고 있다"고 절규했다.

김 신부는 "대통령과 경찰청장은 (철거민들이) '법질서'를 무너뜨린다고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권력을 누리려는 세력들이야 말로 법치를 무시하고 있다"며 "현 정부는 만인을 죽음으로 내몬 살인정권이자, 더럽고 추한 정권"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아울러 "이런 대통령이라면, 우리 마음속에서 지우겠다"며 "소외되고 고통받지 않는 나라, 모든이가 평등한 세상에서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할 것이다. 남은 4년이 지금과 같다면 권력의 허수아비들을 우리 마음에서 지워버리겠다"고 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송인국 신부도 "대통령이 국민을 '국민'으로 보지 않는다. 공권력이 국민을 적으로 대하고 있다"며 "정부가 철거민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한다면, 신부들이 기꺼이 유족들의 '배후세력'이 될 것"이라고 검경의 수사과정을 강도높게 규탄했다.

▲ 이날 시국미사에는 사제단 소속 신부들 100여명이 참석했다.     © 대자보

▲ 이들은 촛불을 들며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는 동시, 이명박 정부를 성토하며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했다.    © 대자보

이밖에도 사제단은 시국 선언문을 발표, "국가가 국민의 행복은 물론 생명마저 서슴없이 빼앗고 이에 항의하는 연대를 외부세력과 좌파로 규정하는 현실을 우리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며 "도대체 대한민국을 어디로 이끌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사제단은 "한국사회는 길을 잃고 말았다. 교만과 탐욕의 노예가 된 어리석은 통치자에게 더 이상 사람의 길, 생명의 길, 사람의 길을 찾아달라고 부탁할 수 없다"며 "이젠 국민의 힘으로 되찾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 유족-대책위, 검찰 맹비난…"더 이상 국민을 바보로 보지 말라"

한편 유족 대표로 나선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 씨는 사제단 신부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에 대해 현장의 시민들과 신부들은 "힘내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족을 잃은 슬픔을 유족들과 함께했다.

권 씨는 미리 준비해온 추모문을 낭독, "한이 맺혀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치가 떨릴 정도"라고 운을 뗀 뒤, "아직 장례가 치러지지 않은 상황에서 하루하루가 지옥이며 유족들의 속도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다"고 현재의 힘든 상황을 표출했다.

"입대영장을 받은 아들이 (아버지 사망 전) '밥을 사준다'고 해서 온 가족이 밖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식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는 너무 막막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픕니다"

▲ 유족들은 이날 시국미사 도중 애통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 대자보

권 씨는 "철거민들을 살인자로 규정한 누명을 쓰고 남편이 어떻게 눈을 감을 수 있겠느냐"며 "검찰의 잘못된 수사를 바로잡아 달라"고 언론을 향해 호소 섞인 '쓴소리'를 가하기도 했다.

한편 박래군 '용산 대책위' 공동 집행위원장(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은 "27명의 검사를 투입한 검찰이 이제껏 밝혀낸 것이 뭐냐"며 "결국 참사의 원인을 철거민들에게 돌려 비난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고 강도높은 비판을 가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더 이상 국민을 바보로 보지 말라. 김석기 청장을 끌어안고 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것"이라며 "신앙의 핵심은 정의고, 정의는 연대를 뜻한다. 연대의 정신으로 유족들에게 힘을 넣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을지로 입구 4거리서 1시간 대치, 곳곳 몸싸움…경찰 "종교인들이 이러면.."

한편 '헌법 제1조'와 '아침이슬' 등을 제창하며 저녁 8시 50분 경 미사를 마친 신부들과 시민들은 청계광장을 출발해 명동성당에 이르는 가두행진을 벌였다.

사제단 신부들이 대오 앞에서 '네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고 있다'(창세기 구절)는 대형 펼침막을 들었으며, 시민들은 '독재타도, 명박 퇴진, (김)석기 구속' 등의 구호를 외쳤다.

▲ 을지로 입구 4거리에서 대치국면이 이어지는 동안, 현장 곳곳에선 경찰과 시민들 간에 크고 작은 충돌이 발생했다.     © 대자보

이날 46개 중대, 4천여 명의 병력을 청계광장 곳곳에 배치한 경찰은 '종교집회'라는 성격상 직접적 대응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양측은 을지로 입구역 4거리에서 약 55분 가량 격렬한 대치국면을 이어갔다.

전종훈 대표신부 등의 사제단 신부들이 "1~2명 밖에 지나갈 수 있는 인도로 어떻게 행진을 하느냐. 이 인원이 골목길로 갈 인원이냐. 명동성당 까지 길을 열어달라"고 재차 요구하자, 이에 경찰은 "신부님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일축했다.

경찰은 특히 남대문 경찰서장 등의 경고방송을 수차례 실시, "경찰은 약속대로 (을지로 입구 4거리)를 열어줬다. 이러면서 신부님들이 종교활동을 어떻게 하느냐"며 "이같은 ㅅ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뒤에서 부터 차단하겠다"고 경고했다.

결국 저녁 10시 25분이 돼서야, 사제단 신부들과 시민들이 인도를 이용해 명동성당 까지 이동하면서 양측 간 밀고 당기는 마찰은 큰 불상사 없이 '종료'됐다.

▲ 을지로 입구 4거리에서의 대치국면이 끝난 뒤, 사복차림의 경찰 채증요원 1명이 시민들에 의해 억류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 대자보

■ 사복경찰, 채증하다 시민들에 억류되기도…소속 묻는 질문엔 "..."

하지만 이과정에서 경찰과 시민들 간 산발적으로 몸싸움 등이 벌어졌으며, 특히 참가자들이 을지로 입구를 빠져 나간 이후에는 자신을 '사복 경찰'이라고 밝힌 경찰 채증 요원이 시민들에게 약 10분 여 간 억류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사복경찰을 향해 "경찰인데도 신분증이 없다고 한다. 아까부터 카메라를 갖고 우리를 찍어댔다"며 "누구 지시를 받고 나왔느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사복 경찰'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으며, '소속이 어디냐. 이름을 말해달라'는 기자 질문에도 함구로 일관했다.

결국 10분 여간의 격렬한 몸싸움 이후 다른 사복 경찰들이 몰려와 '동료 경찰'을 애워쌌지만, 그 이후에도 시민들과 사복경찰 들 간에는 욕설 섞인 '공방'이 오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