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알비 R.V. 캠프

땅만큼이나 여유 있는 캐나다 사람들

“뉴욕발, 토론토행 버스입니다.”

버스 운전사가 제복을 입고 검표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오면서 가지고 나와 가방보관소 Storage Room 에 맡겼던 짐을 찾아서, 여유있게 승차 게이트를 찾아 갔습니다. 승객을 태우고 짐을 챙기고 나니 9시가 되어서야 출발했습니다. 버팔로를 거쳐, 국경에서 입국 심사를 하고, 토론토에는 이튿날 아침 7시에 도착 예정입니다. 아주 하룻밤을 버스에서 보내고, 아침을 토론토에서 시작하는 일정입니다. 운전사도 출발하면서,

“씨 유 투모루 모닝, 굳 나잇. See you tomorrow morning. Good night."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출발했습니다.

▲ 오웬사운드 가는 길

버스는 한 사람이 의자 하나씩 차지할 만큼, 그래서 혼자 두 칸을 차지하고 잠을 편히 잘 만큼 적당했습니다. 두꺼운 바지를 아래에 하나 덧입고, 등산잡바를 꺼내 위에도 더 입고, 담요를 꺼내 다리에서부터 목까지 덮으니, 따뜻하니 잠도 잘 왔습니다. 똑바로 앉아서 자다가, 두 의자에 누워 자다가,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자다가, 자세가 불편하면 아무렇게나 바꿔 가면서, 바꾸다가 다른 사람을 보아도 역시 각양 가지 좋은 대로 의자 하나에서 구겨져 잤습니다.

국경에서는 선잠이 깨어 트렁크에 넣었던 자기 짐을 끌고 검색대 앞에서 기다리니, 시간이 새벽 한시가 지나 있었습니다. 국경에서 운전사도 바뀌었습니다. 버스는 같지만 미국에는 미국 운전사가, 캐나다는 캐나다 운전사가 운전을 하나봅니다.

“토론토에서 북쪽으로 3시간 30분을 더 와야 해요. 내가 시간 맞춰 오웬사운드 터미널에 가 있을께요.”

아침 7시에 토론토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내가 찾아가는 이종희 선생님이 사는 오웬 사운드 Owen Sound 가는 버스는 1시간 15분 후에 있습니다. 버스표를 사고, 아침을 먹었습니다. 뉴욕에서 출발할 때, 코리아 타운 Korea Way ‘우리집’식당에서 떡을 두 덩이 사서 끼니를 준비했었는데, 그 중 한 덩이를 꺼냈습니다. 커피를 한 컵 사서 의자에 앉아서 아침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제 버스를 탈 때야 잠만 자는 버스였으니 중간에 앉았지만, 아침에 출발하는 버스는 앞에 앉았습니다. 구경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찻길은 똑바로 뻗었습니다. 미국의 길이 바르기만 하다면, 카나다의 길은 바른 길에 구릉을 가끔 탄다는 것이 다릅니다.

▲ 오웬 사운드 가는 길 2

‘와, 굉장하구만. 다 노는 땅이네, 놀아.’

길 똑바로 앞에 서너 개의 구릉이 보이면 나중 구릉은 언제나 하늘과 닿아 있습니다. 인구는 남한 인구보다 적으면서 면적은 100배 큰데다가, 언덕만한 구릉만 있고 온 데가 평평한 땅에 사람이 흩어져 사니, 복잡할 것 하나 없고 땅 때문에 싸울 문제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닦아 놓은 부동산 억제정책을, 땅 많이 가진 ‘강부자’들의 의견을 듣고 8.21경기 활성화 정책으로 되돌려, 부동산 값을 들먹이게 하는 이명박정권의 실정같은 것은 있을 이유도 없습니다. 오웬 사운드는 카나다의 남쪽인데도 경작하지 않고 놀리는 땅도 많았습니다.

땅이 그렇게 여유가 있어서인지, 사람들도 바쁜 일이 없었습니다. 12시 30분에 도착 예정에 이미 한 시간이 늦어졌는데도 운전사는 서두르는 기색이 없습니다. 이종희 선생님이 터미널에서 많이 기다리게 생겼습니다. 같이 버스를 탄 사람들도 터미널에 차가 없다면 누군가 기다렸다가 픽업 Pick Up을 할텐데, 왜 이리 늦느냐고 하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운전사는 운전하고, 표 받고, 타는 사람 짐을 트렁크에 싣고, 내리는 사람 짐을 내려주고, 안내방송까지 하면서, 실수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고, 안전한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시내를 벗어나도 인공위성에서 속도를 측정하고 있다는 표지판이 있어서인지 규정속도를 어기지 않았습니다. 똑 바르기만 한 길, 냅다 한번 달릴법도 한데, 그래서 시간을 맞출 기회를 잡을만한데도 여유는 여전했습니다. 덕분에 이종희 선생님은 1시간 반을 터미널에서 기다렸습니다.

▲ 버스에 오르기 전

대 저택에 사는 이민자들

이종희 선생님은 도시락을 싸오셨습니다.

“차에서 도시락 드시고, 빨리 가야할 곳이 있어요. 사람들이 기다려요.”

“예?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또 있어요? 어디를 가는데요?”

“형제들이 캠프를 가는데, 목사님 자리도 마련해 두었어요.”

“캠프요? 좋지요. 색다른 경험이 되겠어요.”

어제 아침에 집을 나올 때 먹고는, 처음 먹는 밥을 달리는 차 안에서 먹었습니다. 캠프를 떠나려고 모이는 동생네 집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드믄드믄 있는 집은 미국보다 마당이 더 넓었고, 어떤 집은 호수도 있었고, 잔디동산에 우뚝 집 한 채 있기도 했습니다. 어허, 여기 다 왔다고, 내리라는 집이 바로 그런 집이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하늘을 뒤덮고 사열해 있고, 사열대 끝 동산 가운데 우뚝 대 저택이 자리하고 있고, 앞으로는 넓은 잔디밭 운동장이 펼쳐져 있고, 뒤로는 호수를 가운데 두고 작은 동산이 둘러 있습니다. 그야말로 저택이었습니다.

“집 구경 좀 시켜 주세요.”

▲ 저택 가운데 있는 연못

이종희 선생님 동생인 안주인이 앞장을 서서 지하실부터 내려갔습니다. 지하실도 생활공간으로 꾸몄습니다. 탁구대와 컴퓨터실, 미니 영화관, 키보드와 컴퓨터실도 있었습니다. 1층은 거실과 부부 침실과 주방이 있고, 2층은 아이들 셋의 방으로 알맞게 꾸몄습니다.

집을 둘러보고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식구들과 차를 한잔 마셨습니다. 여행을 어떻게 했는지, 앞으로 일정은 어떤지, 이종희 선생님과 어떻게 만나서 사귀었는지, 한국에서의 삶은 어떤지 등을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지금까지 여행은, 시애틀에 비행기로 내려서 기차로 사흘을 걸려 뉴욕에 간 이야기와, 영어가 안 들려 화가 나서 맨하탄의 영어학원에 한 달을 다닌 이야기와, 한 달을 등하교하면서 오후에는 맨하탄 곳곳을 둘러 본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앞으로는, 퀘백을 들렀다가, 캘거리에서 기차로 록키산맥을 넘을 거라는 이야기에, 자기들은 카나다에 살면서도 해 보지 못한 여행이라고 부러워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목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종희 선생님이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처음으로 맛본 신앙생활의 자유를 목회에 실행해 보라해서, 나름대로 그렇게 목회를 하려고 애를 썼노라고, 그래서 더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 언덕 위에 저택

우리는 일곱 식구

목회이야기를 하던 중에 데리고 사는 세 아이들 이야기는 작은 충격이었던 모양입니다. 세 아이들 이야기는 박흥규 목사 고희 기념문집인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에서 이렇게 썼던 글이 있습니다.

5. 우리는 일곱 식구

지난겨울이 가고 산에서도 살만하게 되었을 때, 다시 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돌과 흙의 온도 차이로 벌어진 틈새에 겨우내 찬바람이 쓸고 지나가 움막 벽에 흙이 떨어져 나간 것이 보지 않아도 훤했습니다. 집도 사람이 살아야 헐어지지 않는 것은, 참 신기하게도, 산 사람이 함께 살아야 집도 사는가 봅니다. 나는 가 보지도 못하고 걱정만하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내게 물으시는 제일 처음 안부는 우리 집 아이들입니다. 언제나 이 아이들을 먼저 물으십니다. 잘 있지요. 잘 있어요.

벌써 8년 전입니다. IMF가 터졌을 때 교회로 얻으러 오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나는 교회를 짓건 말건, 경제 불황 전이라도, 교회에 오는 사람은 누구든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 주어야 한다고, 찾아와 원하는 것은 가능하면 모두 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밥 달라면 밥 주고, 돈 달라면 돈 주고, 재워 달라면 재워 주고, 물건 팔아 달라면 바가지 씌우는 줄 알면서도 그까짓 것 하고 다 팔아 주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어느 해 추운 겨울에 한 가족 네 식구가 찾아와 좀 재워 달라는데, 받아들이고 보니까 돼지 똥 냄새가 얼마나 나는지, 지난밤은 돼지 집에서 보냈는가봅니다. 밥 주고, 빨래 해 주고, 재워 주고, 사흘을 교육관에 불을 넣고 지내게 했습니다. 사정을 들어 보니 처가가 대전에 있다고 해, 보따리를 챙겨 보냈습니다.

간지 석 달 만에 이번에는 정신지체 2급인 엄마만 보따리를 끼고 왔습니다. 목사님하고 살려고 왔답니다. 다른 가족은 다 팽개치고 혼자 살겠다고 온 걸 구슬러 다시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또 서너 달이 지났을 때는 신관동 길을 네 식구가 휩쓸면서, 검은 비닐에 각자 자기 살림을 챙겨들고 떠돌면서, 장난하다가 싸우고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쉬고, 잠은 터미널에서 잔다나 남의 창고에서 잔다나, 거지 떼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해 가을 새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초등학교 선생님이 이들 세 식구를 데리고 교회를 찾아 왔습니다. 큰 아이가 4학년인데 학교를 반도 못나오고 떠돌아다니는데, 정착을 하면 학교를 빠지지 않고 나올 수 있겠다고, 교회에서 좀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 사정은 이랬습니다.


재용이네 식구

재용이네 식구가

또 교회를 찾아왔다.


쉰여덟 아버지는

벌써 몸 떨리고 눈 어두워

정신까지 산만해

벧엘영생원에 수용되고

이번에는 세 식구만 왔다.


스물아홉 어머니는

정신지체 2급으로

틀이도 어디다 빼 놓고

가방하나 가로 매고

거리를 살다 왔다.


여덟 살 동생 은희는

학교 입학도 안하고

교통사고로 석고한 다리를 끌며

따라 다니다 다니다 지쳐

목발에 널렸다.


열 살 재용이만

안 간 지 보름 된 학교

담임선생님 따라와

브레이드 타고 돌다가

핸드폰 두 개를 꺼내 뵐 때는

천하를 얻은 개선장군이었다.


이번엔 정착할 수 있으려나

교회 아래 방을 얻었다.


교회 아래 방을 얻어서, 밥은 교회 와서 먹고 지내다가, 잠만 얻은 방에서 자는데, 자라고 내려 보내면 밤새도록 떠들다가 싸우다가 들락날락 하다가 웃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어, 다음 날은 또 한나절은 되어야 일어나는 것입니다. 방을 준 집은 학생들 자취방을 10개를 주고 세를 받아 사는데, 이 방 때문에 다른 방 사람들이 생활을 못하겠다고 항의가 들어왔답니다. 수돗물을 시도 때도 없이 틀지요, 화장실은 벽에다가 오물을 다 발라 놓지요, 쓰레기는 아무데나 버리지요, 생활교육이 전혀 되지 않아서 돈 도로 돌려 줄테니 당장 데려가라고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교회에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이렇게 살았지요.


하나님의 은혜


잠시라도 혼자 두면

떨떨 뒤져 챙겨가고

자기 것에는 숭악한 것이

함께 가자면 산발머리에

치마속 내복을 다 보이며

동네를 다 인사하는 재용엄마에게

한없이 다정한 친구


이때껏 산 게 거리 삶이라

만나는 사람마다 계도하는

훌륭한 사람되어야지

어른 말 잘 들어야지

생기기는 잘 생겼구만

무슨 소리도 고깝게 듣는

심사 틀린 재용이에게는

썩은 나무에 톱날 먹듯 하고


그 틈에서 사람되겠냐고

씻겨 품고 자다가

새로 꿰맨 솜이불에 철푸덕

사흘 내리 오줌을 싸도

얼굴 한 번 안 붉히고

산수유 달여 먹일 궁리하는

은희 큰 엄마는 분명

하나님의 은혜이리라.


나는 데려다 놓으면 저절로 살아지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나라에 어릴 때 집을 나가 늑대 젖을 먹고 20년을 산 사람을 집에 데리고 왔다더니, 셋이 모두 사람으로 살줄을 몰랐습니다. 밤이면 자고 낮이면 일어나는 것부터, 말을 하면 대답을 하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부터, 오줌 마려우면 누고 먹을 때 숟가락질 하는 것부터, 새롭게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먹은 대로 안 됩니다. 말로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한두 번 본을 보인다고 순순히 따라하지 않습니다. 일러 준다고 다 알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라는 것이 이렇게 소중하구나 그 때 깨달았습니다. 나는 속 터지고 열통 터져 데려다 놓기는 했는데 뒷감당을 못하겠는 겁니다.

임자가 있었습니다. 제 아내가 임자였습니다. 정신지체2급도 꼼짝없이 숙어 들고, 학교에 가면 담임선생님이고 교장선생님이고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발길질을 하던 큰 아이도 ‘예’ 하고는 따라하고, 똥오줌을 못 가리던 작은 아이도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이듬해 작은 아이가 늦은 나이에 입학을 했고, 큰 아이도 빠지지 않고 제대로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재용 엄마

손이 붓도록 설거지하고

허리가 곱도록 빨래하고

혼자서 냉장고를 옮겨도

수고했단 한마디에 마냥 행복한

당신은 왕이로소이다.


배부르면 누가 뭐래도 마다하고

배고프면 언제고 배 채우고

떠돌고 싶으면 밤낮없다가

졸리면 아무 데나 드러눕는

당신은 왕이로소이다.


아들이 학교에서 뭘 필요로 하는지

오줌싸는 딸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끼니는 언제 먹어야 하는지

계절이 바뀌면 왜 입어야 하는지

사사건건 챙겨줘야 하는

당신은 왕이로소이다.


세상이치를 아들에게 배우느라

남자는 형 여자는 누나

누구든 어린아이처럼 섬기다가

싫은 소리 들어도 웃고 마는

당신은 왕이로소이다.


미움도 없고 사랑도 없고

절망도 없고 희망도 없고

오직 현재만 행복한

천국에서 큰 자

당신은 왕이로소이다.


재용 아부지

작년 가을에 떠나 소식도 없던

재용 아부지가 뜬금없이 나타나

마지막으로 여기서 살다가

아들이 있는 여기서 죽고 싶단다.


그 동안 안 나타난 것은

혹시라도 교회에 누가 되어

아들과 식구들조차 쫓겨날까 봐

보고 싶은 마음 삼키며

발길을 돌린 것이란다.


글자도 숫자도 모른 채

눈이 어둡도록 한 세상 사느라

맺힌 마음이 이젠 상처가 되어

전처 아들에게도 쫓겨난 거다.


이웃에서는 방도 안 빌려 준대고

교회는 4차 계고장 받아 나가야 하고

재용이 아부지 상처도 언제 덧날지 모르지만

하루 단위로 함께 살기로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식구 하나가 또 늘었습니다. 동네 주변을 떠돌면서, 잠은 담장 밑에서 자고, 학교도 안 가고,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삐쩍 마른 것이, 눈만 반질반질 거짓말만 해 대는 아이에게, 동네 사람이 ‘저 교회 가면 너 같은 아이들 있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다 늦은 저녁에 찾아 온 것입니다. 엄마는 어릴 때 집 나가고,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해 누워 있다가 죽고, 누나는 작은 어머니의 친정 엄마 되는 혼자된 사돈 할머니와 함께 살고, 큰 집에 얹혀살면서 가출을 밥 먹듯 하다가, 굴러 굴러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은 재용이 엄마와 아부지는 따로 살아가고, 우리는 아이 다섯에 어른 둘, 이렇게 일곱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먼저 물으시는 안부는 이 세 아이들입니다. 지금은 아들 둘이 중학교 3학년, 딸이 하나 초등학교 6학년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시면 ‘그래, 잘 커라 이?’ 하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십니다.

▲ R.V. 캠프

알비 R.V.에서 엮는 이민의 꿈


“빨리 출발 합시다. 날 저물겠어요.”

이종희 선생님의 형제들이 세 가족이 모여 캠핑을 가는데, 함께 어울려 출발을 했습니다. 알비 R.V.(Reisure Vehicle). 도로에서 지나다니는 것 구경만 했는데, 여행을 좋아하는 명산에게도 그런 여행은 비용이 많이 드는 고급여행이라고 들었는데, 하룻밤을 R.V.에서 보냈습니다.

보기보다는 넓었습니다. R.V. 내부에 2인용 침대가 둘, 1인용 침대가 하나, 식탁을 변형시켜 만들 수 있는 2인용 침대가 하나, 모두 7명은 넉넉히 잘 수 있었습니다. 12시가 넘도록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야기꽃도 피웠습니다. 이민생활 이야기에서 한국에서 살던 어릴적 이야기로 거쳐 현재 한국의 촛불집회이야기와 통일한국의 이야기까지 두루두루 돌았습니다.

조국 통일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나에게 초미의 관심거리였습니다. 한국식품점을 한다는 이종희 선생님의 사촌은 나름대로 통일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을 둘러싼 열강들은 어느 나라도 우리의 통일을 원치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끼리 어떻게 되었든 나라를 합쳐 보자구요. 지금 21세기를 넘어서는 시대가 변해서 냉전시대처럼 공산혁명을 할래야 할 수도 없을 테니까, 김정일이 원하는대로 남북한을 합해서, 한나라로 만들어 살아 보자는 겁니다. 살다가 시행착오를 겪으면 선진국가를 체험했던, 인구도 배나 많은, 남한 국민의 주도로 통일된 나라를 정상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그도 그럴 법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나름대로 조국의 통일을 원하며, 분단된 현실과 새 정부 들어 경직되어만 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캐나다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늦은 밤에는 노래가 조용히 한가락씩 나왔습니다.

“종희 언니, 노래 한 번 해봐.”

언니 먼저, 아우 먼저 하다가, 나중에는 합창으로 형제의 우애를 확인했습니다. ...사랑의 미로여....

딸 열 형제 중에서 둘째가 우연히 캐나다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 가셔서, 어머니 혼자 동생들 줄줄이 학생인 것을 뒷바라지 하느라 힘들어하시자, 어머니와 형제들을 모두 초청했습니다. 초청이민이었습니다. 처음엔 정착하느라, 공부하느라, 결혼하느라, 어렵고 정신없었나 봅니다.

“처음에 무척 힘들었지요. 20여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형제들이 모두 결혼하고, 자리 잡고, 아들 딸 낳고, 알콩달콩 살고 있어요. 이렇게 사촌도 더러 들어와 이민 생활에 어울리잖아요.”

한 가족이, 살기 좋은 캐나다에서, 우애 있게 살아가는 모습 어디에서도, 이민생활의 고달픔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 보트 타기

지구 반대편에서 뱃놀이

“우리 호수에 보트 타러 갑시다.”

“보트, 좋지요. 갑시다.”

이튿날 아침, 된장국을 끓여 먹고 호수에 배를 타러 갔습니다. 캐나다는 흔한 것이 호수였습니다. 넓은 땅이 저지대인데다가 바다가 멀어 흘러가지 못한 물이 곳곳에 모여 캠핑을 좋아하는 캐나다 국민들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고여 있어서 그런지, 물은 탁했습니다. 탁해도 생활하수나 가축 폐수가 흘러들지는 않아서 상하지는 않았는지 냄새는 나지 않았습니다. 알비 R.V. 에서 전기는 물론, 쓰는 물도 캠핑장소에 상수도와 함께 묻혀 있는 하수관에 버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수관이 없는 곳은 알비 R.V. 에 모았다가 정한 곳에 버리도록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10마력 엔진을 단 보트 둘을 빌렸습니다. 셋씩 나눠 타고 호수를 지그재그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달렸습니다. 같이 경주를 하다가, 반대 방향으로 뺑뺑 돌다가, 마주 달리기도 하고, 엔진을 놓고 달리다가, 운전사를 바꾸기도 하고, 아이들이 타면 재미있어 하겠다고 하고, 나도 하나 사야겠다고 아내에게 동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운전 한 번 해 보실래요?”

“아니예요. 내가 운전하면 재미없을 거예요.”

호의는 고마웠지만, 사양했습니다.

두지도에서 하는 배 운전은 빨리 달리기나 지그재그 운전이나 마주 달리기 같은 운전은 무모한 장난입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운전은 안전이 제일입니다.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이는 파도도 이기기 쉽지 않습니다. 고기잡이 배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거기서 생기는 파도에 사정없이 흔들려 뒤집힐 위협을 느낄 정도입니다. 지나가는 배는 가까이 오면 속력을 늦춰줍니다. 고맙다는 손인사를 빠트리지 않습니다. 만일 한번 빠지기라도 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고, 바다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바위에 부딫히기라도 하면 배가 침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장난을 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 두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