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성탄절 | 일기장 2008.12.25 21:39
즐거운 성탄절이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면서 더욱 추워지는 25일 밤
나는 몇 통의 축하 메시지와 카드를 받았다.
"푸른 성탄의 밤에 선생님의 복을 기도...."
이름도 없이 메시지만 들어있는 핸드폰
"메리 크리스마스, 행복한 성탄과 좋은 일만 있는 기축년 되세요"
조영주씨의 문자메시지를 읽으며 고마워했다.
나는 사랑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 아무에게도
성탄 메시지(덕담)를 보내지 않아 미안하게 여기던 터였는데....
그중에도 기쁜 소식 하나-
그건 내 편지함에 들어있는 책과 카드였는데
책은 재일교포 작가 柳美里의 소설 <비(雨)와 꿈의 다음에>이었고
카드엔 "세해에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즐겁게 지내시기 바랍니다"란
글씨가 육필로 씌어 있다.
고마웠다.
말없이
편지함에 책을 놓고 가기 일쑤인 그 사람은
1년에 한번도 만나기 어려운 사람
대학교 선배이자, 진실한 의미의 오빠이기도 했던 사람인데
부산 피난시절에는 내집 문설기에 쪽지를 끼어놓고 가면서
"그리 쏴다니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충고했던 사람이다.
과묵하고 신실한 기독교인
그는 사회 요직에 앉았었고 지금도 어디서 무언가 하고 있을 사람이다.
나는 문고판(일본어) 소설을 펴보았다.
유미리는 1997년 소설<가족시네마>로 아꾸다가와상(芥川賞)을 수상한
재일교포로 언젠가 우리나라에 와서 인터뷰를 했었다.
그녀의 <목숨>이란 책은 아직도 내 책꽂이에 꽂혀있다.
작가는 개성이 있듯이 상식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 있어
내 안목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다. 더구나 젊은이의 감각에
특유한 일본의 풍토가 그러하고 유미리의 소설이 특이하니 그럴 수밖에.
이번 소설은
12세 주인공(딸) 비(雨)의 독백으로 전개되는데
소녀의 감각치고는 너무 어른스런 표현이 나의 동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특히 젊은 감각의 문장에서 그렇고.....
다만 주인공과 홀아버지의 생활을 엿보면서
옛날, 나의 여학교시절 아버지와 단 둘이 살던 혜화동 시절을 떠올렷다.
아직 5분의 1밖에 읽지 않아 무어라 말할 순 없지만
별천지의 시튜에이션이 나의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만은 사실.
어쨌든 당분간 나는 소설 읽기에 온 신경을 기울 것이고
틈틈이 만두도 빚어서 사랑의 배달도 해야 한다.
바쁘다.
이 해도 열마 남지 않아 마음만 바쁘고 몸은 따르지 못하니
내년엘랑 계획을 잘 세워 짬지게 살아야할 텐데....
아! 벌써 한해도 저무려드는구나.
크리스마스를 기리기 위해
김숙려 시인과 함께 호프잔을 부딪치고 돌아왔지만
어찌나 바람이 찬 지 술 마신 흔적 하나 없이 맹순맹순하게 걸었다.
며칠 전에 그녀가 받은 국제문화예술상의 후속파티인 셈이었지만
아직도 그녀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홍조를 띠우고 있었다.
.....고요한 밤, 거륵한 밤, 어둠에 묻힌 밤의 일이었다.
무소의 뿔처럼 | 일기장 2008.12.26 22:30
영하의 날씨가 제법 겨울답다.
바람이 차서 감기에 걸리기 쉽고
체온 조절을 못하는 노인들께는 외출을 삼가라는
방송이 연이어 들려온다.
나는 추운 건 상관치 않는다.
오히려 눈이 오거나 길이 빙판이면 몰라도
길이 말짱하면 문제 될 게 없다.
다리가 좀 나앗다고, 허리가 덜 아프다고
연일 외출이다.
엊그제는 언니를 만나러 유성에 다녀왔고
오늘은 만두를 전하러 암사동에 다녀오고
또 병원에도 다녀왔다.
덤벙대는 바람에 항생제 두 알을 8시간마다 먹으라는 걸
잘못 알고 한 알씩 먹었었던 걸 보고하고
아무 일도 없어 다행이라는 의사에 말에 움칠했다.
동분서주
몸이 멀쩡하니 일없이 쏴다녀도 행복하다.
그러나 조심할 일이다.
오늘도 혼자 말 없이 걸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르시기를
"가까이 사귄 사람끼리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게 마련,
그러니 연정에서 근심이 생기는 것임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우리는 참된 벗 얻기를 바란다.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동등한 친구와는 가까이 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친구를 만나지 못할 때에는 허물을 짓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비록 군중 속의 고독을 맛볼 지언정
나는 때론 고독을 즐기면서 걷는다.
아니, 즐길 수밖에 없는 형편에
오늘도 혼자 걸으면서
사랑을 품고, 외로움을 날리며 생존을 감사했다.
사랑하는 일은 더많은 사랑을 받는 일
오늘도 만두사랑을 전하면서 더많은 사랑을 받았다.
"널리 배워 진리를 알고
고결하고 총명한 이를 벗으로 사귀라.
그리하여 온갖 이로운 일을 배우고 의혹을 떠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모든 생존에는 걱정 근심이 따르는 것임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한국크로키 | 일기장 2008.12.27 19:59
오늘은 전길자 시인과 만나기로 하여 인사동에 갔다.
여간해서는 만나기 어려운 처지에
밀고 당기고하면서 겨우 약속을 했다.
나는 주겠다커니, 저는 그만 두라커니
이렇게 옥신각신 했지만 결국 내가 이겼다.
늦은 오후에 시낭송이 있는 전 시인에게
짐(사랑)을 안겼으니 얼마나 귀찮을까?
사랑의 덫은 만두였다. ㅎ
안에 철로가 깔린 다실은 처음 가보았다.
따끈한 대추차를 마시며 우린 떨뜨름한 인생사를 논하니
속 터놓고 얘기하면 더 친숙해지고
더러 재미없는 얘기지만 서로 마음 쓰며 애태우니
가장 인간적인 대화의 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인사동에 나온 김에 '환'갤러리로 갔다.
그곳엔 <한국크로키> 소품전시전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사전을 펴보았다.
Croquis란 프랑스어로 스케치, 약도, 밑그림이란 뜻
꼭 누드의 스키치만이 크로키는 아닌 모양인데
난, 잘 모르겠다.
어쨌든 최선영씨를 통해 그림을 접해와서였던지
그의 그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과연 그의 그림은 내 마음에 든다.
맨날 공짜로 얻어온 그의 그림이 이처럼 값지다는 걸
오늘에사 알고 그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떨구고....
이 그림 앞에 서니 한 분이 다가와서
"마음에 드십니까?" 하고 묻는다.
바로 이 그림의 작가 신작로씨여서
그의 친절한 안내에 인사로 사진 한 컷을 찰칵!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하루였는데
피로가 밀려와 집에 오자마자 길게 누웠다.
아니, 아무 것도 못하고 누워있어야 할 것 같다.
내일은 인천 류제희씨와 만나기로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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