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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겨에 대한 다른 생각까짓 나같은 것이야!
김영동  |  deom-past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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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12월 24일 (수) 15:30:54
최종편집 : 2008년 12월 26일 (금) 08:34:55 [조회수 : 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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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겨

 

나 같은 것이야.

사랑방 군불로 지펴져도 좋아요.

미끄러운 골목길에 뿌려져

밟히고 밟히다가

그나마 흙 속에 파묻혀도 좋아요.

 

쇠죽 속 펄펄 끓는 물 속에서

콩깍지에 구박을 받아도 좋아요.

 

내 속에서 빠진

한 톨의 쌀.

 

그 이름에 욕되지 않는다면

까짓 나 같은 것이야.

하다못해 이제는 소나 돼지에게마저

멸시받아도 좋아요.


                                                                    ㅡ소천하신 화가 정영상 씨의 책에서 -


 

 

    < 나 같은 것이야 >, < 까짓 나 같은 것이야 >, < 구박받아도, 멸시 받아도 좋아요 >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달라요. 시대가 바뀌었나 봅니다. 우리 어머니 생각도, 옛날 분인 우리 할머니 생각도 이건 아니였어요. 그래서 뒤집어 다른 생각이 납니다.


          *@.@*  왕겨에 대한 다른 생각 -

                                           쓰임새(사명)에 대한 묵상 *^-^*

 

 


 

    ◆ 자기 비하는 자기의 정체성을 알지 못해 일어나는 무지의 현상일 뿐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자기 정체성을 모른다기 보다는 자기의 쓰임새와 정체성을 혼동해 일어나는 일입니다.


    왕겨와 쌀알을 합쳐서 벼라 말합니다. 왕겨는 쌀알을 싸고 있었던 껍질입니다. 쓰임새라는 말이죠. 더 정확히 말하면 쓰임새가 끝나고 쓰임새를 찾지 못했을 바로 그 때의 이름이 왕겨입니다. 쌀알을 품고 있을 때 우리는 그 껍질을 결코 왕겨라 부르지 않습니다. 혹 정체성은 벼의 단계에서 논할 수 있을런지요. 벼가 쌀알과 껍질인 왕겨로 분리된 단계는 정체성보다는 쓰임새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쌀알은 밥을 지어먹을 쓰임새로 유용하고 껍질인 왕겨는 어디다 쓸까? 버릴 곳도 마땅치 않고---? 그래서 버려질 쓰임새를 찾았을 뿐이니 <나 같은 것이야>라고 노래합니다.


    버려질 쓰임새로 쓰여지는 것 말고 긍지가 생길 만큼 자랑스러운 쓰임새를 찾아 알게 된다면 <나 같은 것이야>가 <나 같은 것도>로 바뀌겠죠. 그러니 왕겨에 대한 다른 생각은 긍지가 생길 만큼 자랑스러운 왕겨의 쓰임새에 대한 것입니다.


    유기농업의 성패는 유기질 거름 생산에 달려 있습니다. 유기질 거름생산에 왕겨는 태워 재가 되기 전 단계인 숯으로 만들어 유기질 거름에 사용합니다. 쓰임새는 미생물의 집입니다. 왕겨 숯은 유기질 거름의 생명의 집입니다. 왕겨가 멸시받아도 좋은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귀한 쓰임새를 찾아 알아보고 귀중히 여기지 못하는 그 무지가 멸시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남이든 자기든 무시하고 멸시하는 마음은 쓰임새를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인 것입니다. 하늘 복은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소유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쓰임새를 알아보고 알아주며 행복한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동참하는 쓰임새로 행복한 사람됨을 알아보게 하는 은총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멸시는 점점 더 낯선 말이 될 것입니다.       


    한 톨의 쌀알이 왕겨에게 중요한 추억이 아니라 왕겨에게는 왕겨가 된 뒤에 마침내 찾아가야할 자신의 새 쓰임새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인들 다르겠습니까? 인간이라는 쓰잘대 없는 정체성 논란에 너무 머물러 맴돌지 마십시요. 정체성은 순간이고 쓰임새는 변화무쌍하고 영원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쓰임새가 긍지를 가질 생명을 살리는 귀한 쓰임새가 되도록 연단하십시요.  그렇게 한 세상을 살다가는 것입니다. 하늘 복을 받고 그 복으로 잘 살아 쓰임새에 이르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른은 쓰임새로 알려집니다. 진짜 어른은 쓰임새로 알아보는 생명의 눈이 밝은 사람입니다.


   우리 할머니도, 우리 어머니도 늘 그러셨습니다.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단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저마다 재주를 가졌고 저마다 쓰임새가 있는 법이란다. 그러니 자신이든 남이든 절대 무시하거나 멸시해서는 안된다. 자가 자신이든 남이든 무시하고 멸시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무지몽매한 사람이란다."

                                                       어느 봄날 할머니 묘소에 가서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추신 - 자유로운 영혼은 자유로운 바른 생각에서…… 마침내 그 생각에서도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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