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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과 전쟁하는 사람들[미주여행기 9] 미국에서 운동하기, 운동은 사치이자 부모에 대한 죄악, 미국에나 어울리법한 운동
김충권  |  ckkim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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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12월 02일 (화) 20:29:30
최종편집 : 2008년 12월 12일 (금) 15:05:20 [조회수 : 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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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여행기9] 미국에서 운동하기

살과 전쟁을 하는 사람들

“엉덩이가 책상만 하더라구!”

어떤 사람이 뉴욕 거리를 걸어 보고는 한 말입니다. 그런 소리를 할만도 했습니다. 기차를 탈 때도 사람들이 대체로 뚱뚱하다 했는데, 뉴욕 거리를 걷거나 버스를 타려고 터미널에 들어서면, 정말 그런 사람이 보였습니다. 엄청나게들 뚱뚱합니다. 대통령이 살과의 전쟁을 벌인다더니, 그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사촌 이목사도 자기 관리를 하느라고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테니스 라켓을 4년 전에 사 놓았다 그러고, 라켓볼을 치려고 가방 가득 차로 싣고 다닙니다. 내가 도착하니까 반갑다는 듯이 라켓볼장으로 먼저 갔습니다.

“라켓볼 쳐 봤어?”

“아니. TV로 보기는 했지.”

   
뉴욕거리


맨하탄거리 빼고는 헬스클럽에 사람이 제일 많았습니다. 버스를 타도 서서 가는 사람은 없었고, 전철을 타도 부대낄 만큼은 아니었고, 기차에는 아주 입석이란 게 없습니다. 헬스클럽에는 언제 가도 붐빕니다. 런닝머신 뛰는 사람, 근육운동 하는 사람, 요가하는 사람, 라켓볼 치는 사람,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며 활기가 넘쳤습니다. 여기는 또 살찐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정작 살찐 사람들이 이런 운동을 해서 살을 빼야 하는데, 뺄 살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살이 찐 사람은 운동을 할 수 없으니까 안 오고, 운동을 할 수 있을 만큼 살이 없어 몸이 가벼우니까 운동하러 오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살찐 사람들은 정작 해야 할 운동도 하지 못하니 국가적 차원에서 전쟁을 벌여서라도 국민의 건강을 지켜주려고 하나봅니다. 손잡이 끝에 고무줄이 달려 있어서 손에서 놓쳐도 튕겨 나가지 않도록 손목에 걸고, 테니스공보다 작은 물렁물렁한 고무공을, 사방이 벽으로 둘러쳐진 직육면체공간에서 번갈아 칩니다. 벽이나 지붕에 맞는 것은 바운드로 치지 않고, 바닥에 한번 바운드 되거나 노바운드로 공을 쳐서 전면벽을 꼭 맞추어야 하는 경기입니다. 뒷벽으로 쳐서 전면벽까지 노바운드로 날아가게 해도 유효합니다. 상대방이 실수하면 내 점수가 올라가서 15점을 먼저 얻으면 이기는 경기였습니다.

“나야 처음이라 그렇다 쳐도, 왜 그렇게 못 치는 거야?”

“맨날 혼잔데 늘겠어?”

우리야 둘이 다 탁구로 치면 똑딱볼 수준입니다. 상대방이 칠 수 없게 해서 내 점수를 올리게 하기는커녕, 상대방이 잘 쳐서 경기가 계속되도록 잘 줄려고 해도, 내 차례의 공을 맞추기도 버거웠습니다.

신기하게도 친 공은 바로 오든지 벽을 맞고 오든지, 어쨌든지 쳤던 장소로 비슷하게 되돌아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상대가 없어서 혼자 벽만 치다가 갔다는 이목사는 나와 1시간씩 사흘을 치고는 팔 근육이 놀라서 숟가락질이 어려울 만큼 팔이 떨었습니다.

옆방에서 덩치 큰 미국인들이 치는 것을 보니까 재미있었습니다. 순 바닥으로만 깔아서 주든지, 구석으로 주든지, 아니면 뒷면을 칠 수 밖에 없이 주든지 상대가 치기 어렵게 주는 것이 기술이었습니다. 그 덩치들이 복식으로 칠 때는 네 명이서 꽉 차게 돌아가면서 서로 부딪히지 않고 자기 차례를 찾아 치는 것이 용했습니다.

“오늘은 테니스 칠까?”

아파트 단지 내에는 수영장이 하나 있었고, 테니스장도 있었습니다. 수영장에 들어가서 몸을 담글만큼 한가하지는 않았습니다. 배가 불러 좀 움직여야 했을 때 테니스장에 갔습니다. 테니스장 코트 입구에는,

‘애완동물을 데리고 들어가지 마세요.

자전거, 보드, 스케이트를 타지 마세요.‘

라고 써 붙였습니다.

테니스도 처음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군대서 고참들의 강요에 의해서 맨땅에서 배구네트를 낮춰놓은 족구장에서 채를 휘둘러보고는 처음입니다. 언제 시간을 내서 골프장에도 가보잡니다. 연습으로 골프 연습장에서 몇 시간 폼을 익힌 다음에 필드를 한번 돌아보잡니다. 너무 고급스러워 나와는 상관이 없지싶던 운동을 미국에 와서 해보게 생겼습니다.
   
브롱스동물원에서


운동은 사치이자 부모에 대한 죄악

나는 운동에는 늘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니 그럴만큼 친밀히 접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야 학교 끝나면 5리되는 산길을 걸어서 집에 가기 바빴습니다. 집이 학교 근처인 아이들도 운동장 가까이 산다고 해도 공을 가지고 놀지는 못 했습니다. 공이란 체육시간에나 만져볼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중학교에 들어가지 못 했습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서는 중학교를 보낼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는 못 보내도 재건 중학교는 보냅시다.”

1969년 새마을 운동이 막 시작되기 직전 이었습니다. 7결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낙향한 이재국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중학교를 못 가는 고향의 후배들을 보기가 안타까웠나 봅니다. 학교근처 성당을 빌려 재건중학교을 열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졸라, 3년째 되는 해, 나도 정규중학교 대신 재건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52명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16명만 정규중학교를 가고 15명 정도가 재건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여자는 한 명이 중학교를 갔습니다. 분교에서는 14명 중에 정규 중학교에는 한명도 못 가고, 개건중학교만 7명이 왔습니다. 나머지는 농사를 짓거나 공장으로 돈 벌러 갔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었습니다.

재건중학교에는 축구부가 있었습니다. 이웃 재건중학교와 정기전이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에 학교 운동장에서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정식 축구경기를 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봄이 되자 우리도 오후시간에는 축구 연습을 했습니다.

“호르륵, 뛰어.

“앞으로 패스해 줘.”

포삭포삭 흙먼지 이는 학교 운동장에서, 호루라기 불며 손짓하는 대로 따라 뛰기에는, 점심을 굶은 배에, 늦봄 햇볕이 너무 강열했습니다. 호루라기 소리조차 귀전에서 멀어지고, 노란 하늘에 공은 보이지도 않고, 다리는 휘영청휘영청 제 마음대로 노니, 축구고 뭐고 사람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배가 고파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점심을 못 먹었거든요.”

용기를 내서 선생님에게 다가가 개미 기어가는 소리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몇 번 더 호루라기를 불더니 오늘은 연습을 그만하자고 했습니다. 오늘만 그만 한 것이 아니라, 그날 이후로 축구는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를 다 해야 한 팀을 꾸릴 수 있는데, 보리고개를 넘는 아이들을 데리고 축구를 한다는 것은, 더 높은 고개였습니다.

재건중학교는 우리가 1년만에 졸업을 하고 학교도 문을 닫았습니다. 다행히 나는 정규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몸이 약해서 농사를 짓고 살 수는 없고, 둘째가 일을 잘하니 논밭떼기 둘째에게 물려주기로 하고, 첫째는 중학교나 보냅시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무던히도 조르셨나 봅니다. 1년 동안 재건중학교나마 내가 공부하는 싹수를 보기도 하셨던가봅니다. 중학교 원서접수 기간 마지막 날, 하필이면 눈이 많이 와서 버스도 끊어졌는데, 아버지는 40리를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중학교를 찾아가 나를 입학시키셨습니다.

그렇게 간 중학교에 가서 어떻게 공이나 차고 시간을 낭비하겠습니까? 사치이자 부모에 대한 죄악이지요. 아침밥을 해 먹고 도시락을 하나 싸서 자취방 문을 나서면, 단양 놋재 넘어 어떤 초등학생은 자기 축구공을 들고 등교를 했습니다. 개인도 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배구나 농구나 다른 경기는 해 볼 기회도 없었고 경기를 한다면 축구가 가장 손쉬웠습니다. 몸은 날렵하게 생겨서 축구를 잘해 보이는지, 공을 몇 번 주어보고는, 늘 수비를 하라고 골키퍼 앞에다 세웠습니다. 공격수는 열 번 실수하다가 한번만 성공하면 스타가 되지만, 수비는 열 번을 잘 하다가 한번만 실수하면 역적이 되는 게 축구입니다. 1994년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자살골을 먹어 예선에서 탈락한 수비수가, 자국에 돌아가 팬들에게 권총을 맞고 피살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나도 수비를 하다보면 왜 그렇게 자살골을 잘 먹는지, 몸 맞고 들어가고, 헤이딩을 했는데 스쳐서 들어가고, 걷어 낸다는 것이 들어가고, 그럴 때마다,

‘아, 난, 왜 이렇게 축구도 못하지!’

자괴감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그 때 뿐이었습니다.

대학을 1년 고학하고는 고향에 내려와 겨울을 보낼 때였습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눈이 쌓였는데, 동네 친구들이 축구를 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마루 밑에서 낡은 운동화를 꺼내 신고는 단단히 마음먹고 갔어도, 역시 수비였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웃통을 훌러덩 벗고는 김을 무럭무럭 내며 뛰었는데도, 그 때도 역시 자살골을 먹었습니다.

‘아, 또야?’

그것도 내 자살골 때문에 우리편이 져버렸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몸살이 나서 사흘을 꼼짝없이 누워 있었습니다. 한번 밖에 나가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이빨도 안 닦고, 세수도 물론 안 하고, 이불 푹 덮고 뜨끈뜨끈한 구들을 지고 지지기만했습니다. 축구를 못한 충격이 아니었습니다. 한 해를 서울바닥에서 공부하겠다고 맨땅에서 굴러먹은 피로가 한꺼번에 쏟아진 것입니다. 자살골이야, 너무 열심히 하다보니까, 남이 못 닿는 것이 닿았을 뿐입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자살골도 먹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엠파이스테이트빌딩


미국에나 어울릴법한 운동


탁구도 왜 이리 못 치는지, 손으로 하는 것인데도 도통 마음대로 되는 게 없었습니다. 하기야 언제 마음 놓고 몰두해서 쳐보기를 했어야 늘든지 하지요. 생존하기 위한 투쟁에 치열하게 살다보니 다른 곳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건강하던 아내가 난소를 하나 잘라내는 수술을 했습니다.

“나 운동해서 회복하게 탁구대 하나 들여 놓자.”

“그래? 좋지.”

건강만 하다면이야 탁구대가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그 후부터는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둘이서 탁구대를 살 때 따라온 쉐이크홀더 탁구채를 들고 처음부터 연습을 했습니다.

“우리 규칙을 하나 정하고 치자.”

“무슨 규칙?”

“잠 자리는 거절해도, 탁구는 거절하기 없기.”

그래서, 새벽예배 끝나고 치고, 아침 먹고 소화 시킨다고 치고, 점심 먹기 전에 운동하고 먹자고 치고, 먹었으니 소화 시키자고 치고, 저녁 먹고 치고, 잠 안 온다고 치고, 자다가 깼다고 또 치고, 아내와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쳤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탁구’ 소리가 나오면 숟가락을 놓고 치고 와야 했습니다.

아내는 밥주걱 타법이라고, 밥주걱 들고 밥 푸듯이 탁구대 가운데 서서 받아 넘기다가, 공이 높이 온다 싶으면 왼쪽이고 오른쪽이고 밀어 올려 공격을 곧 잘 합니다. 처음에는 못 치는 걸, 내가 어떻게 공이 오든지 다 받아서 아내가 치기 쉽게 주었더니, 이제는 맞쳐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주변에서 여자와는 상대가 없고 남자들과 당당히 맞붙는 실력이 되었습니다.


*탁 구*

수술 한 후 운동을 한다고

탁구대를 산 지 8개월 만에

부부가 함께하는 것이 좋다고 해

10점 잡아주고 치다가 5점 잡다가

이제는 맞쳐도 질 때가 많다.



양지식물이 성장에 한계가 오면

결국에는 음지식물이 극상을 맞듯이

공격하느라 아무리 힘껏 휘둘러도

놀부밥주걱타법으로 받아 넘겨서

때리다가 지쳐 네 번 이상 못 넘겼다.



부부복식을 이기려고 상대가

자기 부인에게 은밀히 일러주는 말,

‘내가 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한 후

넘어오면 언제든지 받을 준비하면서

상대방이 치는 것을 기다릴 뿐이야.

그렇다고 결정타를 안 치는 것은 아니고

기회가 오면 점수를 걸어.’



꼭 이기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는 겸손과

흐름을 파악하는 안목에

랠리가 더 오래 가서 재미있고,

세상은 더욱 여유로워 진다.


미국에는 탁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디 있긴 하겠지만,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좁은 땅 한반도에서, 그것도 70%가 산인 나라에서, 뛰어 놀 마당이 부족해서, 작은 탁구대에서 조그만 공으로 아기자기하게 놀다 보니까, 우리나라 탁구가 강해졌나 봅니다. 중국이 또 탁구의 강국이라면, 장개석을 쫓던 모택동의 홍위병들이 숨어다니면서 군인들 체력을 강화하느라고 권장한 운동이 탁구랍니다.

넓은 잔디밭에서 작은 공을 막대기로 후려치고 한참을 걸어가는 골프나, 방망이로 날아오는 공을 처 담장을 넘기는 야구나, 마구 뛰는 럭비공을 끌어안고 냅다 달리는 미식축구가, 같은 나라에서 시차가 5시간이나 나는 미국에 어울릴법한 운동입니다.
   
랄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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