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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버스 타기, 맨하탄을 걸어서[미국여행기 6]다양한 피부의 사람들이 뒤섞여 거리를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김충권  |  ckkim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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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11월 07일 (금) 20:24:54
최종편집 : 2008년 11월 19일 (수) 18:16:02 [조회수 : 5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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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뉴욕에 첫발을 

뉴욕에서 버스 타기  

“어, 이제 오네. 여기야.”

“나와 줘서 고마워.”

에스컬레이터에서 바닥으로 첫발을 내 딛고 고개를 드는데 바로 앞에서 이목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직원이 에스컬레이터를 멈추고 잠그려고 하는데 ‘왜 이리 안 나오나’하고, 나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더랍니다. 간단하게 안부 인사만 하고 집에 가서 저녁 먹자고 발길을 막 돌리는데, 갑자기 복잡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밤이 늦어서 그런가봅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한 30분은 가방을 메고 걸어서 버스터미널까지 왔습니다.

‘오소리티 포트 Authority Port’

터미널에 붙인 이름입니다. 터미널에 ‘Authority 권위’라고 붙인걸 보니까 뭔가 굉장한 게 있는 모양입니다.

한 블록을 차지한 한 건물로 지어 사방 어디서고 드나들 수 있었고, 4층까지 버스가 올라가 승객을 실어 날랐습니다. 우리는 윌로우 부룩 Willow Brook 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233번 승강장으로 갔습니다. 승강장에는 196번 197번 198번 버스가 앞뒤로 팻말을 각각 걸고 함께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정류장에서 뉴욕 전역으로 방사선처럼 출발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모든 버스의 종점이 또 이 터미널이지.”

한번타면 요금이 똑같은 우리 시내버스와는 달리, 거리마다 요금이 달랐습니다. 요금이 거리에 따라 다르다면 내릴 때 온 거리를 계산해서 받아야 하는데, 버스를 탈 때 어디까지 가겠노라고 요금을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금까지만 가면 모두 내리나봅니다. 가까이 간다고 요금을 내고는 그 요금보다 더 먼 거리를 가는 사람이 없는가봅니다.

 

단양 산골짜기에 살 던 1970년대 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서울에 돈 벌러 갔다가 내려온 친구의 서울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버스를 한번 탈 때 25원을 내는데, 30분을 가든 2시간을 타든 요금이 똑 같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정에서 미노리까지 가나 40분을 더 타고 단양 시내까지 가나 요금이 같다면, 가까운 미노리에 가는 사람은 억울할테고 멀리 단양까지 가는 사람은 훨씬 덕본 것일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참 이상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겨울 방학 때 학원에서 공부 좀 해 보겠다고 외삼촌네 집으로 올라갔을 때입니다. 정말로 58번 버스를 타고 서울대공원 근처에서 종로2가 YMCA 학원에 가나, 버스를 잘못 타서 두 정거장만에 내리거나 안내양에게 주고 내리는 요금은 같았습니다. 지금도 한번 탈 때마다 가방 속 지갑 안에 든 교통카드를 가방 채로 인식기에 대면 한번 요금이 계산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탄만큼 내는 경제정의는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뉴욕의 교통요금은 시민의 정직과 버스회사의 신뢰 속에 정당한 요금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맨하탄을 걸어서

 

‘센트럴 파크 Central Park'

첫 방문지였습니다. 몇 개월 동안 맨하탄학을 전공했다는 사돈처녀의 도움으로 버스를 타고, 전철로 갈아타고, 센트럴파크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들어 간 곳은 양떼목장이었습니다. 넓은 잔디밭에서 눕고, 공차기하고, 앉아서 이야기하고, 남들 눈 의식하지 않고 쉬었습니다.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니까 관광객이 많이 띄었습니다. 베데스다 분수 부근에서는 영화촬영을 하는지 사람들이 구경하는 속에는 평상복을 입은 배우들이 연기에 열중이었습니다.

스트로베리 필드 Strawberry Field 북쪽으로는 배를 타고 호수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남쪽으로 내려오자 소프트볼 경기를 하는 가족이 많았습니다. 남자 여자 어른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한 팀이 되어 치고 달렸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린아이들과 하는 놀이는 재미가 없을 듯한데, 어른들도 힘껏 던지고 세게 치고 빨리 달리면서도 잘 어울려 놀았습니다.

‘여기서부터 버스 터미널까지 걸어가 보자’

걸어 다니는 것이 길을 가장 잘 익힐 수 있고, 구경도 알차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래도 걷는 것이 가장 좋아 보였습니다. 바로 브로드웨이 Broadway 길이었습니다.

이미 어떤 사람이고 말을 좀 붙여가면서 영어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접은 지 오래 됐습니다. 아무도 행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하기야 모두 행인인데 자기의 놀 것을 이미 다 갖추고 나온 상태입니다. 센트럴파크 남쪽 출입구인 콜럼버스 써클 Columbus Circle 부터는 시끌벅적했습니다. 뉴욕은 미국의 다른 도시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마지막 열차를 타기 전 도시인 시카고의 거리는 한산하기까지 했습니다. 네모반듯한 건물들 사이에 뽀족첨탑이 보이기에, 기차시간이 아직 좀 남았으니 조기까지만 가보자고 배낭을 짊어지고 한 블럭을 걸으려 해도, 거리를 지나는 사람은 한둘에 불과해 불안한 마음에 곧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낯선 방랑객이 불안할 정도로 한산한 곳이 시카고 거리였씁니다.

비행기를 내렸던 시애틀의 거리는 사람이 적당히 많았습니다. 불안을 느낄만큼 눈길을 모으도록 한산하지도 않았고, 피해 다니기에 피곤할만큼 복잡하지도 않았습니다. 시애틀 재래시장에서 소방수가 불끄는 조형물이 있는 코베공원 Kobe Park 까지 보도를 걸어내려 오는데, 횡단보도를 건너는 신호등이 우리 발걸음에 꼭 맞춤으로 열렸습니다. 우리 걸음에 신호체계가 맞을 만큼 거리에 사람이 적당히 많았습니다.

뉴욕의 거리는 달랐습니다. 시카고와 시애틀의 공기와는 또 달랐습니다. 차리라 한국의 여름같이 후덥지근했습니다.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달랐습니다. 그야말로 칼라풀입니다. 흑인이 이렇게 당당히 걷는 거리는 처음입니다. 서울이나 안산의 거리에서 어쩌다 만난 흑인은 그렇게 얌전하두만, 뉴욕의 흑인은 제집 마당처럼 큰소리로 거리를 떠들었습니다.

백인과 흑인 사이에 황인이 눌리는 느낌입니다. 동양인의 얼굴을 보면 기차 식당차 Dinning Car의 티벳인 종업원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무리 옷차림을 뉴욕거리답게 하느라고 치마를 짧게 입어도, 콧수염을 서양인처럼 길러도, 얼굴에 허드슨 강의 안개가 살짝 끼여 있습니다. 그래서 흑백만 보고 걷다가 황인을 만나면 왠지 얼굴한번 더 보고 지나갑니다.

‘어딜까? 어디서 왔을까? 중국? 필리핀? 아니면 한국?’

동료와 대화에 혹시 한국말이 섞여있지 않은가 귀가 쫑긋했습니다. 히잡을 쓴 여자들도 보였습니다. 피부색은 동양인이었습니다.

 

김목사가 시애틀에 오자마자 말을 배운다고 어느 학교의 외국인을 위한 영어교실에 몇 달을 다녔답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모였습니다. 인종도 아주 검은 사람에서 영어를 못하는 코큰 사람까지, 따따부따 하는 베트남 발음에서 콩콩거리는 아프리카 소리까지 미국 땅에서 소통할 수 있는 영어로 교정하는 무료학교였답니다.

“영어를 잘하는 선생님이 한사람씩 상대하면서 들려주고 들어주면 해야 영어가 늘지, 세계 각처에서 온 영어를 못하는 사람끼리 서로 대화를 해 보라고 하니 영어가 늘겠어요?”

이튿날로 그만 두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모두 사람이더라구요. 콩고는 그냥 콩고가 아니라 콩고 사람이 살고 있는 콩고고, 한국은 그냥 한국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 살고 있으니 한국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람이 살고지 않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고, 그런 나라는 있지도 않아요. 사람이 없으면 나라도 없어요. 이라크는 폭탄을 퍼 부어도 되는 이라크가 아니라, 이라크 사람이 살고 있으니 이라크임에 틀림없어요, 그런데 거기다 폭탄을 퍼부어 댔으니....”

꽃에게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꽃이 아니었다가, 이름을 부르고서야 비로소 내게 꽃이 되었다고 윤동주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어느 나라건 나라가 이름으로 불리고서야 어찌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을 빼놓고 나라라고 하겠습니까? 자기 나라 이름을 소개하며 인사하는 세계 각처에 살던 사람을 만나 보았더니, 세계 어디라도 전쟁이 일어나서, 어느 누구라도 누가를 죽여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답니다.

“난 지금도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에 와서야 반전운동가가 됐어요.”

 

미국의 태생은 정복입니다. 콜럼버스가 지구 반대편을 돌고도 인도에 도착한 줄 알고 미대륙의 토착민들을 인디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대 사람들은 이 대륙의 토착민을 정복하고 나라를 세운 것이 지금의 미국입니다. 정복한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먹잇감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이 전에는 베트남이었고 아프가니스탄이고, 지금은 이라크입니다. 지금 나라를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에너지 공급원을 확보하느라고 이라크를 침공해 굴복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경제불황이 계속되자 미국 일각에서 자국내 유전을 개발하자는 목소리가 심심챦게 나오고 있습니다. 중동에서 들여오는 기름으로는 부족해서 기름값이 올라 서민이 살기 힘들어지니까 자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유전에서 이제는 기름을 뽑아 올려 쓰자는 것입니다. 알고 봤더니, 내 것을 다 쓰고 없어서 남의 것을 빼앗느라고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은 다음에 쓰려고 남겨 두고 남이 쓰는 것을 빼앗아 오느라 벌이는 전쟁이 이라크전입니다. 옛 어른들 하시는 말씀 중에 아끼다가 똥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깝다고 안 쓰고 귀히 보관하다가 나중에 쓰려고 열어보니 못쓰게 상해버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두지도에서는 우물물을 먹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데, 지금은 다섯 집이 살던 집자리에 우물이 하나씩 남아 있습니다. 두레박으로 길어 쓰던 우물입니다. 지금은 모터를 사용해 전기만 넣으면 쉽게 뽑아 쓸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우리 집만 식용수로 쓰고, 다른 집은 다 이사 가서 안 쓰니까, 아저씨네가 밭농사를 짓는데 사용합니다. 끝에집이 쓰던 우물은 멀리 있어서 끌어 오기 힘드니까 그냥 묵혀 두고 나머지 세 개를 모두 가물 때 밭고랑에 주는 물로 씁니다. 끝에집 우물을 뺀 네 개의 우물은 모두 직경 30미터 안에 있습니다.

여름 피서철이면 섬에 있는 우리집은 사람으로 붐빕니다. 우리집에 식구가 많아서 어쩌다가 물을 많이 쓰면 우물의 바닥이 드러나 물을 쓸 수가 없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못 쓰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고입니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 짜지지는 않으니까요. 다른 우물의 물이 우리 우물로 흘러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땅 속의 우물은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닥이 드러나도록 쓴다고 해도 아주 마르는 것이 아니고, 안 쓰고 아낀다고 보관이 되거나 철철 넘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위가 떨어지면 저쪽 우물에서 오고, 가득 차면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큰 지구 땅덩어리 속에 든 석유도 이 우물물처럼 결국 하나로 연결된 것이 아닐까요? 남의 것 빼앗아 뽑아 쓰고 내 것은 아껴서, 남들은 자원이 고갈되어서 헉헉될 때 나는 여유작작 즐기려고 했다가, 나중에 내 것도 열어보면 바닥이 드러나고 마는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아끼다가 똥 되는 것이지요. 남의 자원을 더 차지하려고 싸울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온 지구가 협력해서 절약을 하거나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 지구가 공동으로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맨하탄 브로드웨이 가운데 타임 스퀘어 광장을 복잡하게 거니는 각양각색의 지구촌 시민들이 지금이 바로 그 때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입니다. 다양한 피부의 사람들이 뒤섞여 거리를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내가 걷는 거리의 끝은 버스 터미널입니다. 거기서 링컨터널을 지나 허드슨 강을 건널 것입니다. 맨하탄을 거니는 사람들도 이제는 지구공동운명의 버스를 타고, 자국 중심적 인식의 강을 넘어 우주적 인식의 세계를 향해 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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