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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매끄러운 버스여행
무지개같은 이야기 소리
생각지도 못한 버스여행을 했습니다. 세인트 폴 미네아폴리스 St. Paul Minneapolis 에서 기차를 내려 안내하는 버스에 탔습니다. 기차에서는 침대차와 일반구분이 있어서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한 버스 안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버스 앞좌석에서는 전형적인 미국인이 서로들 뭐라는지 정신없이 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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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말이 덜 끝났는데도 반대쪽에서 벌써 대답을 시작해 쏟아내는 것을 보면, 어쩌면 무지개를 보는듯합니다. 어느 원주민은 무지개색을 빨강 노랑 파랑 세 가지라고 여긴답니다. 빨강과 노랑 사이에 섞인 색깔이 주황일 뿐이지 주황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두 가지 색이 서로 섞여 아름다운 색깔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노랑과 파랑이 만나 초록을 만들듯이, 두 사람 말이 서로 섞이는 말은 내듯이 더 유용한 말이 될른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계속 지껄여 대는 것이 또 어찌보면, 건축할 때 시애틀에 흔히 널린 가는 소나무를 수입해 지지대를 쓸 때 서로 잇는 부분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까지 건축공사장에서 지지대는 나무였습니다. 5,6층 건물까지 서너 개를 이으면 거뜬히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지재대는 엮으면 엮을수록 좋지 않습니다. 먼저 이어서 엮을수록 힘은 더 들고, 엮은 곳에 합판을 놓아 발판을 깔 때도 울퉁불퉁하니 안전하지 않고, 또 가장 약한 부분이 잇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렇게 다른 사람을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자기 말을 지껄여 무슨 진지한 대화가 될까 싶기도 합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다면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요. 무지개일지 지지대일지.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국말 하는 사람들이 여럿이 만나서 이야기 하는 소리를 모르는 말이라고 치고 들어 보았습니다. 서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어지고, 둘이 동시에 떠들기도하고,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단지 다른 것은 버스에서 떠든 사람들은 영어로 해서 알아듣지 못했고, 한국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소리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어서 자연스러웠습니다. 못 알아들으니 소음이고, 알아들으니 재미있었습니다.
‘저 엉덩이가 의자보다 크고, 앉으면 무릎이 앞 의자에 꽉 끼이는 사람은 상당히 불편하겠다. 가다가 불평 안할까 몰라.’
기차의 의자는 덩치 큰 사람도 편히 앉을 수 있도록 넓고 앞뒤 간격도 넉넉했는데, 버스는 우리나라에서 타던 그대로였습니다. 나야 좀 좁다싶어도 늘 타고 다니던 버스였습니다. 버스 안을 나닐 때도 똑바로 못 걷고 엉덩이를 요리조로 돌려야 앉은 사람에게 걸리지 않게 생겼습니다. 그런데도 불평하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즐겁게 웃고 떠들망정 얼굴을 찡그리거나 불평으로 늘어놓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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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에 들렀습니다.
“잠깐 쉬어 가겠습니다. 버스번호를 알아 두었다가 잘 타시기 바랍니다.”
몇 분까지 오라는 말이 없었는지 모두 곧바로 버스를 탔습니다. 운전사는 그제서야 화장실을 갔다 오는데도, 뭐라는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하기야 기다리는 것이 익숙해져야 이틀이고 사흘이고 이 큰 대륙을 횡단해서 다닐 수가 있지, 우리처럼 한 두 시간이면 다 가는 곳에 사는 사람하고는 미음의 자세가 다르겠구나 싶었습니다. 하기야 여행을 하면서 '퀵클리 Quickly'를 한 번도 들어 보지 못 한 것 같습니다. 불편한 중에도 서로들 웃으면서 가는 걸 보면 이어서 떠드는 소리가 무지개일 것 같습니다.
한글자랑
‘사진 많이 찍어 오세요.’
한국에서 아들이 문자로 보내왔습니다. 풍경만 바뀌면 카메라에 담느라고 바빴습니다. 그런데 기차길 옆에는 대평원 빼고는 어디나 나무가 많습니다. 기차가 다니면 시끄러우니까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도 나무를 심었든지 혹은 나무를 있는 그대로 방치해 두어서 그런지,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무를 피해서 셔터를 누른다는 것이 번번히 나무에 걸리기 일수였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타니까 시야는 탁 트여 좋습니다. 기차와는 달리 언제나 차를 멈춰 들르기 좋게 해놓느라고 지나가며 보기에도 잘 꾸며 놓았습니다.
나와 한 의자를 탄 할머니는 내가 카메라를 창문에 대기만하면 몸을 의자에 붙여 사진을 잘 찍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찍을 만한 곳이 훨씬 많았습니다. 사진기에 담긴 사진을 컴퓨터에 넣다가 컴퓨터 속에 저장된 가족사진을 보여 주었더니 자기도 지갑에서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 주는데, 증손자손녀 사진이었습니다. 얼굴을 볼 때는 그렇게 나이가 많은 줄을 몰랐는데, 손등을 보니까 파파할머니였습니다. 내친김에 우리 한글이나 자랑해야겠다고 컴퓨터에 한글을 띄웠습니다.
“ㄱ ㄴ ㄷ ㄹ ......, ㅏ ㅓ ㅗ ㅜ ....
“가, 나, 다, ....
“우리는 묵음이 하나도 없고, 쓸데없이 중복되는 것도 없고, 글자와 발음이 일치하고, 모든 소리를 다 글자에 담을 수 있어요.”
한글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할머니 이름이 뭐예요?”
“크리스탈 Crystal"
영어로 화면에 띄우고는 한글로 써 보이면 신기해했습니다.
여기서 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더니, 시카고 역에서 뉴욕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대합실에서 기다리다가 또 컴퓨터를 펴 들었을 때였습니다. 밧데리가 다 떨어져 어디 전기 코드가 있는지 살피는데 옆에 있던 부인이 활짝 웃으면서,
“코드가 없어서 안됐어요.”
“네, 감사합니다. 여기는 전기 코드가 없네요.”
“아까 버스에서 할머니와 글씨 쓰는 것을 보았는데, 그 할머니가 아주 신기해하던데요?”
“아, 그래요? 제가 다시 이야기해 드릴께요.”
작심하고 한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한글은 자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550년 전에 세종대왕이 작심하고 만들어 창제했기 때문에 상당히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고, 자음 13개와 모음 10개로 조합해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표현할 수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난 지금 뉴악 Newark 으로 가요.”
“어디요? 뉴악 Newark? 뉴악 Newark 이 어디예요?”
써서 보여 주었더니,
“니웍!”
“아니, New York이 뉴욕이면 New Ark 은 뉴악이지, 어째서 니웍이라고 해요?”
“New Ark 이 아니라 Ne Wark 이라서, 뉴악이 아니라 니웍이에요”
“Ne Wark 이라면 니왁이어야지, 왜 니웍이라고 해요?”
“아이 돈 노 I don't know"
내 말이 바닥에 떨어져 고물도 묻기 전에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지, 우리말은, 보라고, 적는 글자와 내를 소리가 일치해서 왜 그런지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자랑을 한참을 더 늘어놓았습니다. 그제서야 엄지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습니다.
"굳 랭귀쥐 Good Language!"
버스를 내려서도 생각나는 도너츠
“여기 도너츠와 물을 원하는 대로 드세요”
버스는 9시간을 탔습니다. 아침 7시에 타서 오후 3시에 내렸으니 끼니 두 때를 버스 안에서 보냈습니다. 아침 식사를 위해 버스 기사가 도너츠와 물을 준비했습니다. 앞에 탄 승객에게 도너츠 상자를 건네주고 먹을 만큼 집게 했고, 물병도 뒤로 돌려 먹을 만큼 집게 했습니다. 덩치 큰 인디언 계통인 듯한 아저씨는 도너츠 둘과 물을 한 병 집고, 통로 건너편 할아버지는 도너츠 하나에 물을 하나 집고, 내 옆의 할머니는 아무 것도 집지 않았습니다. 난 도너츠 둘과 물을 한 병 집었다가 도너츠가 뒤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둘을 더 집어 먹었습니다. 눈치 볼 것 없이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도너츠와 물을 더 드시고 싶으신 분은 더 드세요. 점심입니다.”
휴게소를 한번 지나고 볼일을 본 다음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아까 돈 도너츠 상자와 물병상자가 다시 버스안을 손에 손을 거쳐 돌았습니다. 아까 안 먹은 할머니는 그 때 도너츠를 하나 먹었습니다. 나는 도너츠 하나만 집어 아까든 물병의 물로 마저 먹었습니다. 각자 먹을 만큼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나머지는 차에다 두고 내렸습니다.
아마 우리나가 같으면 버스 기사가 뒤로 지나가면서 도너츠면 도너츠, 물이면 물을 똑같이 나누어 주었을 것입니다. 모자라는 사람은 더 달라고 했을지 모르지만, 남는 사람은 아마 자기 정량이라고 못 먹어도 받아 놓고 보았을 것입니다.
정량이라는 말은 전체주의의 산물인지도 모릅니다. 군대에서 정량이라는 말은 더 달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가질 수도 없는 양이었습니다. 간식으로 나오는 건빵은 한 사람당 가질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더 이상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야간 불침번은 한 시간이 정량인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양이었습니다. 이것이 군대를 마치고 제대를 하는 사람과 함께 사회로 나와 모든 사회에서 일반화 되었습니다. 아직도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군대가 중요시 여겨지는 만큼 사회에 영향력 있게 퍼졌습니다.
마을에서 계꾼들이 관광을 가면 먹는 간식도 같은 종류를 같은 양으로 싸서 버스를 탈 때 하나씩 나누어줍니다.
두지도에서 바지락 작업이 열리면 한 사람이 캐야하는 양은 정해져 있습니다. 내가 캔 양을 적고 이것을 연말에 합산해서 그 양에 비례하도록 배당금액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같은 양을 캐서 연말이면 똑같이 나눕니다. 그러니 힘이 남는 사람이라도 굳이 더 캘 필요가 없고, 힘이 부족한 사람은 무리해서라도 자기 양을 채워야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종당에는 조개 작업을 잃고 맙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관절염이 걸려서 조개작업 사흘하고, 병원에 나흘 다니기를 반복합니다.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사고가 올 봄에 마무리가 되어서, 조개작업이 다시 시작되자 같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왜 우리는 자유하지 못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더니 전체주의가 우리의 개인주의를 빼앗아가서, ‘나는 나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조개작업에 힘이 남는 사람은 더 캐고, 모자라는 사람은 덜 캐도 되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가 캐는 만큼 년말에 가서 배당금을 나누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자유를 주지 못했답니다. 각자 캐는 만큼 배당금을 주니까, 힘이 남는 사람이나 모자라는 사람이나 서로 많이 캐려고, 더 몸을 돌보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정량을 정해 놓았답니다.
“시카고 기차역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세요.”
짐을 찾아 내리기는 했지만, 어디를 보아도 기차는 볼 수 없고, 기차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빌딩숲 도시 한복판입니다.
“기차역이라니, 기차가 어디 있어요”
“따라 오세요”
내 표를 보고는 한층 내려가서, 똑바로 가다가, 오른 쪽으로 돌면 역이 잇다고 한참 설명을 하다가, 안되겠던지 앞장을 섰습니다. 기차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겠습니다.
시카고에는 모든 기차역이 한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미국에는 철도가 민영화되어 여러 회사가 각 지역으로 가는 노선을 운영하는데, 장소는 한 곳으로 모았습니다. 기차는 모두 지하로 들어가 간판을 보지 않고는 역이라고 알기 어렵겠습니다.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내가 탈 기차 시간과 타는 곳을 확인해 두었습니다.
아, 이런, 그러고 났더니 갑자기 배가 고파졌습니다. 아까 버스에서 내릴 때 운전사 옆에 몇 개 남은 도너츠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함께 탔던 미국인 어느 누구도 이 생각을 했을까요? 내가 지금, 두고 내린 도너츠를 아까워 하니까, 우리나라 운전사는 정량을 나누어 주어야 했을 것입니다. 한국 같으면 남은 도나츠는 내리는 사람이 벌써 가지고 내렸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못살아서 그럴까, 알뜰해서 그럴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