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미 북부 기차 여행 광활한 대지를 달리다.

“기차 여행을 하신다구요?”

김목사님 사모님이 아이를 돌보고 계셨습니다. 아빠는 미국인이고 엄마는 한국인인데, 둘 다 일을 하느라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돌보아 주신답니다. 딸이 둘인데 큰 아이는 보육원에 갈 나이가 됐지만, 작은 아이는 그것도 안 돼서 집에서 돌보는 거랍니다. 그 아이가 지야입니다. 지야 엄마는 한국에서 간호원이었는데, 미국에 와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었답니다.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때 아이를 찾으러 오면서 순대 모듬을 한판 사와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기차여행을 한다니까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사실 나도 내심 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공항에 마중나와 주었고, 시애틀 투어를 안내해 주었고, 기차역도 찾아 주어서 다녔지, 나 혼자 다녀보지는 않았습니다. 이젠 아무도 없이 나 혼자 가야 합니다. 12년 전 이스라엘이나 6년전 터키나 4년전 LA를 갔을 때는 언제나 아내가 함께했습니다. 아내와 동행해서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나 싶어도, 나까지 불안해하면 아내에게 체면이 말이 아니어서 무조건 내방식대로 말하곤 했습니다.

‘나는 너희 발음을 잘 모르니까 내 말을 듣고 너희들이 이해해 봐’

라는 배짱이었습니다. 그 때는 그게 의외로 먹혀들었습니다.

교역자 회의에 외국인이 참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웃교회에서 사역을 돕는 필리핀인이 가끔 옵니다. 식사를 하면서 통성명을 하고 어디서 왔는지 뭘 하러 왔는지 등을 이야기 하다보면 대화는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빨리 말하면이야 들을 수 없지만 또박또박 말을 하면 곧 잘 들렸고, 내 의사도 그쪽에서 이해하면서 수정까지 해 주었습니다. 그러냐고 한바탕 웃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정말 혼자 헤쳐가야 할 시간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 다닐 수 있어요. 뉴욕 가서 전화할께요”

큰 소리 치기는 했지만 여기서 또 벌벌떨고 괜히 시도했다고 하면 지금 와서 어쩌겠습니까?

'하나님'

하고 한번 부르고는 플렛홈으로 들어섰습니다.

또 불안을 가중시키는 것이 좌석이었습니다. 좌판을 이리 두드리고 고개를 저리 갸웃하면서 끊어준 표에 좌석번호가 '1 of 1' 혹은 '2 of 2', '1 of 2'입니다. 보아하니 좌석을 예배하고 남은 가장 불편한 자리가 하나씩 남은 것을 억지로 꿰어 맞추어, 타코마에서 시애틀, 시애틀에서 시카고, 시카고에서 뉴욕을 준 것이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사흘을 가는 동안 차 내에서 가장 불편한 자리, 아마도 출입문 바로 앞에 사람이 연신 들락이는 자리에서 비좁게 앉아가야 한다는 불안감이 겹쳐서 걱정이 더 되었습니다. 그러쟎아도 사흘을 어떻게 꼬부려 자냐고 하는데, 좌석까지 그러니 고생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말이나 쉽게 통해야지, 큰 걱정입니다.

타코마에서 기차를 올라타 좌석번호를 찾아 갔더니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있고, 내 자리는 그의 아내인 듯한 부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표를 보여 주며,

“미안하지만, 이게 내 자리입니다”

“백, 백 Back back, 뭐라고 뭐라고....”

내가 보여주는 표는 볼 생각도 않고 엄지로 연신 등 뒤를 가리키며 인상을 썼습니다. 내가 잘못 찾았나 하면서 뒤로 돌아가다가 안내원을 찾아 '여기 내자리가 어디냐'고 하면서 표를 보여주니까 번호를 보면서 앞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갔습니다. 장애인에게 또 다시 물을 용기가 없어서, 보통 객석의 의자는 4줄인데 3줄로 된 고급칸을 지나쳐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승무원을 만나서 '내 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고 하니까, 따라 오랍니다. 씩씩하게 걸어 가더니 빈 자리에 발을 붙이고 서서 한 손을 쫙 펴고 의자를 가리키면서,

“씻 다운, 히어 Sit down, here.”

하는 것입니다. 화가 난 듯 했습니다. 그러나 틀림없이 내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좌석도 못 찾으면서 무슨 여행을 하느냐고 반성하면서 시애틀에서 갈아탈 때는 정확히 찾아야 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타코마에서 시애틀역은 금방이었습니다. 타코마가 시애틀의 다운타운이기 때문입니다. 시애틀에서 30분을 기다려 뉴욕가는 열차를 탔습니다. 열차 번호도 확인하고, 만나는 승무원마다 다 물어보고, 핸드폰 단어검색으로 'Coach'가 뭔지도 찾아보고,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코치' Coach 가 투수코치, 타자코치, 축구 감독 밑에서 한 분야를 지도하는 사람인 줄만 알았지 기차의 'Economic Class'인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1 of 2', ‘2호차 1번 좌석’

이번에는 승무원의 가방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찾아 앉을 거라고, 어디 승무원이 손님의 자리를 차지하느냐고, 더욱이 여기가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 주는 미국이 아니더냐고, 작심하고 기다렸습니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자 승무원이 가방이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생각해 두었던 영어를 냅다 밷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게 내자린데, 여기 가방이 놓였습니다. 좀 치워 주시겠습니까?”

점쟎을 떨었습니다. '시애틀, 시카고'를 확인하더니 몇 좌석 앞에 나가더니 여기 앉으라는 것입니다. 또 실패했습니다. 다음 정거장에서 타는 사람이 자기 자리라고 일어나라고 하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미리 생각해 두어야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기차로 집에 다녔습니다. 제천역에서 기차를 약 40분을 타고 단양역인 단천에서 내리면, 장정에 가는 버스를 또 한 시간을 가야하는데, 이 버스를 타려면 10리는 걸어가야 탈 수 있습니다. 장정에서 버스를 내리면 오르막으로 5리를 또 올라가야 보고 싶던 부모님과 동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와 봐야 좋은 것도 없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걷고, 버스타고, 또 걷고, 기차타고, 제천역에서 기차를 내려 또 30분은 걸어야 자취방에 도착하는데, 먹을 것을 가지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한 달 먹을 쌀만 지고 다녀야하지만, 다른 짐은 가지고 다닐 엄두를 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김치도 못 갖다 먹고 내가 열무 사다가 담가 먹었습니다. 아내의 밥을 20년을 넘게 얻어먹은 지금도 감자요리 양파요리를 좋아하는 것은 그때 감자와 양파를 많이 볶아 먹어 입에 배서 그런가봅니다. 입맛은 30년이 흘러도 변하지를 않습니다. 그것 참 질기지요? 세상을 사는데 입맛만큼 질긴 게 있나 싶습니다.

3년을 오가면서 기차를 탔어도 좌석이 매진되고 입석만 남았으면 반가웠습니다. 좌석이 남았으면 입석표는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입석표가 싸기 때문입니다. 입석표로도 빈자리가 있으면 그냥 앉으면 되고, 서서 간다고 해도 기차를 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고, 정 다리가 아프면 앉은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팔받침에 걸터앉으면 됐습니다. 앉아서 가는 사람은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값을 주고 가면서도 서서 가야하는 사람에게 미안해서 대부분은 앉으라고 합니다.

그나마 기차여비가 없으면 제천역에서 한정거장만큼만 표를 사고, 나머지 단양까지 갈 때는 차장 눈을 피해 가야 했습니다. 화장실 옆에 섰다가 양쪽을 살펴서 차장이 검표를 하러 나타나면 얼른 화장실로 들어갔다가 지나가면 나오면 됩니다. 내릴 때는 플랫홈 반대편으로 내려서 석탄차 드나드는 곳으로 나갑니다. 1970년대 중반에는 집집마다 연탄을 땠습니다. 석유곤로는 있었지만, 석유보일러는 아직 나오지 않았을 때입니다. 함백이나 삼척에서 캔 석탄을 구공탄으로 만드는 공장으로 실어 나르는 화차가 단양역에도 한쪽 구석을 시커멓게 물들였습니다. 트럭이 드나드는 곳으로 태연하게 걸어 나가면 됐습니다.

역에서 안 내리면 또 절대 걸리지 않게 내릴 곳이 있습니다. 단양역 다음이 죽령역인데, 죽령역은 똬리굴을 지나 산 꼭데기에 있습니다. 단양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오르막을 오르려고 마지막으로 준비를 하느라고 잠깐 멈추는 자리가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 때 철로변으로 뛰어 내리면 됩니다. 아무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거기서 내리면 장정 가는 버스를 타는 곳도 더 가까워집니다. 좌석표는 기차를 타는데 큰 특권이었습니다.

기차를 오래 타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였습니다. 통일호가 청량리역에서 단양까지 가는데 4시간정도는 걸렸습니다. 좌석은 시간 있고 돈 있는 사람의 것이고, 가난한 고학생은 내 한 몸 기차에 실은 것만도 감지덕지였습니다. 입석도 매진되어서 내려가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한 좌석에 좌석표가 있는 두 사람만 앉아 가다가, 얼마 지나면 서서가던 사람이 병을 호소하거나 하면 가운데 엉덩이만 걸치고 앉습니다. 염치없는 사람은 엉덩이를 조금씩조금씩 들여 밀어 나중에는 주객이 전도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입석표 가진 사람이 가운데 넓은 자리에 앉고, 좌석표 가진 두 사람은 양쪽 옆으로 밀려나는 것입니다. 그래도 너무 한다고 불평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좌석표의 특권을 가졌다고 해도 행세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 같이 고생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적극적인 아줌마는 나중에는 모두 셋이 앉게 된다는 것을 알고 엉덩이가 작은 학생을 미리 불러서 앉히기도 합니다.

“학생, 다리 아프지? 이리 와서 앉아”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끝까지 편하게 가는 방법일 것입니다. 나중에 엉덩이 큰 아주머니가 와서 앉자고 하기 전에 선수치는 것입니다. 선택권은 좌석표 임자에게 있었습니다.

최근에 기차를 탄 것은 2년 전 중고등부 학생들을 데리고 겨울 기차여행을 한 것입니다. 조치원에서 충북선을 타고 단양까지, 단양에서 중앙선을 타고 포항까지, 포항에서 경부선을 타고 대전까지였습니다. 이때는 아이들이 가기 때문에 미리 좌석을 사 놓아야 했습니다. 세월이 변해서 전화 한통으로 카드로 결재해서 집에 앉아서도 좌석표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좌석번호를 보여주면서 비켜 달라면 어느 누구도 항변 못하고 일어나야 했습니다.

‘와! 이런 좌석표를 어렵게 어렵게 구해서 기차에 올랐는데 남의 자리에 앉았으니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쟎아! 좀 더 똑똑해야 몸이 고생을 안 하는데....’

좋은 시절도 있었습니다. 막내가 원주에 있는 고모내 집에 묵었다가 집으로 데려올 때였습니다. 고모네는 부자여서 차비를 넉넉하게 받았습니다. 어린 막내도 있고 해서 좌석을 끊었습니다. 나 혼자라면 기차간에서 사이다 하나 사먹는다는 것도 생각지 못하는 일이지만, 처음으로 오빠와 먼 여행을 하는데 굶겨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도시락을 하나 샀습니다. 도시락하나면 둘이 먹기는 턱없이 부족하고 한사람 앞에 하나씩은 되어야 하지만, 기차를 내려서도 걷고 버스 타고 또 걸어야 하는데 허기나 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막내야, 도시락 먹자. 이거 굉장히 맛있는 거야.”

“안 먹어, 오빠나 먹어.”

막내가 먹는다면 다라도 주고, 난 먹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반만 먹어라, 내가 반을 먹을게.”

“안 먹을래, 오빠가 다 먹어.”

‘고모네 집에서 잘 먹고 살았구나, 그럼 내가 먼저 반만 먹자.’

라고 생각하고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맛있던지 반을 남길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단숨에 도시락 하나를 다 먹었습니다. 좌석에 앉았지, 도시락까지 사먹었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기차여행 중에는 때마다 사먹을 생각은 했습니다. 안 먹고야 여행을 못할뿐더러 호텔에서 자는 값이면 잔뜩씩 먹고 다녀도 손해는 아니다 싶었습니다. 먹는 거야 그렇다 쳐도 자리가 불안해서는 편한 여행이 못 되겠다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올라와 보니 의자가 넓었고, 생각보다 편하게 누울 수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승무원이 표를 떼러 왔습니다. 시애틀이라고 적어 내가 앉은 좌석 번호판 밑에 끼우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 앉은 자리 위에 가는 장소와 인원수 표시가 일일이 붙어 있습니다. 내 머리 위에도

'CHI 1'

이라고 끼워 놓았습니다. 시카고에 한사람이 간다는 말입니다. 이 자리가 내 자리가 된 것입니다. 그제서야 머리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아, 그렇구나. 입석이 없고, 모두 좌석이구나. 좌석은 정해지지 않았고, 먼저 앉는 것이 임자구나!’

어느 자리에 앉든지 다 앉을 수는 있기 때문에, 좌석 번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승무원이 써 붙인 것이 중요했습니다. 어쩐지 김목사와 기차표를 한참이나 살펴서야 구석에 조그맣게 쓴 좌석번호를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기차표에는 가운데 가장 큰 글씨로 쓴 것이 좌석번호였습니다. 우리가 본 것은 좌석번호가 아니라, 표 한 장 중에 한 장, 두 장 중에 첫 장, 두 장 중에 둘째 장이었습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가, 아랫입술에 힘을 주었다가, 머리를 끄덕거렸다가, 소화하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한번 좌석이 결정되면 목적지까지 변하지 않는데, 여기서는 빈자리가 있으면 얼마든지 옮겨 다닙니다. 먼저 온 사람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나중 온 사람이 다음에 선택하게 하는 것이 미국의 문화인가 봅니다.

내가 원한다고 끝까지 이 자리가 내 자리가 되는 것은 또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일행이 없으면 한 사람이 두 자리씩 차지하고 짐을 옆에 두고 앉았다가도, 가족 일행이 들어와 흩어져 앉아야 한다면 승무원이 소리를 칩니다.

“혼자 앉은 사람은 가족일행이 함께 앉을 수 있도록 둘씩둘씩 앉아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Please'를 붙이지만 어투로 봐서는 명령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알아서들 짐을 들고 모여 앉습니다. 야, 이게 미국이구나 싶었습니다.

그제야 안심하고 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내 옆에는 'Dug'라는 분이 가족 네 명을 더 데리고 가다가 홀로 떨어져 나와 함께 갔습니다. 혼자 앉다가 둘이 앉아도, 드럼통만한 덩치에 지붕에 닿을락말락하게 다니던 사람이 앉는 의자에, 조그만 동양 사람이 앉아서 쉬거나 눕기에도 충분했습니다. 혼자 떨어지면 영어를 못해서 어쩌나하는 두려움은 어디로 갔는지 감각도 없었습니다.


다이닝 카에서 맛있는 식사


“저녁식사를 예약하세요”

“여기요, 한 사람요.”

여직원 하나가 종이와 볼펜을 들고 소리를 치고 지나다녔습니다. 우선 먹고 보자고 6시 것으로 예약을 했습니다. 한국의 기차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은 입석승객의 틈을 비집고 다니느라고 미안해하며 어쩔줄을 모르는데, 여기서 음식을 파는 사람은 승무원만큼이나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습니다. 승무원은 숫자도 많고 경찰관만큼이나 권위가 있어 보였습니다. 제복도 승무원이나 식당차 Dinning Car 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똑같이 입었습니다. 물건을 팔려고 다니지도 않고 가게를 벌려놓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팔고 있습니다.

“문 밖에서 기다리세요.”

시간이 되어서 무조건 식당차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문 앞에서 기다리랍니다. 그러고 보니 창문에 기다리라고 쓰여 있습니다. 조금 기다렸더니, 세 사람이 앉은 탁자에 나를 안내해 네 사람으로 채워 앉게 했습니다. 야채를 먼저 주는가봅니다. 앞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는 소스를 두 가지 뜯어 넣고 섞어서 포크로 찍어 먹었습니다.

다른 세 사람은 한 가족인데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8살 난 아이가 함께 왔습니다. 나야 어디를 가나 음식은 남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식당에 가서도 반찬을 더 시키지는 않습니다. 먹고 싶은 반찬을 더 시키면 가져다주기는 하지만 남은 반찬을 모두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반찬도 다 먹어서 모자란다면이야 더 달라고 하지만, 아직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이 세 식구는 하나같이 모두 남기도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교사로 은퇴했다는데 소고기를 반쯤 익힌 것을 먹다가 1/3은 남겼고, 아들은 고기는 다 먹었지만 먹기 전에 감자를 네 조각으로 쪼개 놓고 소스를 발라 놓은 것은 입도 안 대고 접시를 밀쳐놓았고, 어린아이는 피자를 한 쪽만 먹고 3쪽을 남겼습니다. 그러고도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한 컵씩 또 먹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왔는데, 북한에 있는 어린이는 먹을 게 없어서 굶고 있답니다. 그들도 역시 우리 동포인데, 굶어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랍니다.”

“그래요? 요새 굶어 죽다니 참 불쌍하군요.”

그 뿐이었습니다. 사실은,

‘왜 남기느냐. 시킨 것은 남겨 두고, 아이스크림을 더 달래서 먹느냐’

는 소리를 한 건데 전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음식을 남기는 것에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았습니다. 식당 직원은 또 아무 일 없는 듯 자연스럽게 들어다가 쓰레기통 속으로 쓸어 넣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은 예약을 받지 않아서 직접 식당으로 찾아갔습니다. 빵 네 조각을 살짝 구워서 설탕을 끼얹은 것을 먹었습니다. 아침에 만난 사람들은 아버지가 두 아들과 함께 여행중이었습니다. 아들 둘은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뚱해 있었습니다. 내 말이 어눌하고 발음이 틀려도 아이들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조금만 틀려도 '홧, 홧' What, What 을 반복하는데, 아들은 내 말을 이해하고 아버지에게 잘 설명해 주면 아버지는 그제야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역시 맛있다고 이야기하고 북한 어린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디저트로 나온 요구르트를 아들이 나중에 먹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북한 어린이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단다. 지금 먹어.”

하고는, 나를 바라보면 좋은 말 해 주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아들은 마땅찮아하면서도 나를 보고 웃어 주었습니다. 말은 늦게 알아들어도 뜻은 빨리 알아챘습니다. 그래도 식당 직원들은 허리까지 오는 검은 비닐봉지에 남은 음식을 접시채로 여전히 쓸어 넣고 있었습니다.

점심은 상점에서 샌드위치와 쵸코렛을 사다가 콜라와 함께 때웠습니다. 계산을 해 보니까 식당에서 먹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점심이 시원치 않아서 저녁은 단단히 먹으려고 예약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던 예약은 제일 마지막 시간인 8시 30분에 밖에 없답니다.

어제 저녁에 탁자에서 함께 앉은 사람이 먹은 스테이크를 주문했습니다. 바싹 구운 것으로 후추만 쳐서 먹어도 맛있었습니다. 제일 마지막 시간이라서 그런지 둘이서만 마주보며 먹었습니다. 나는 물론 깨끗하게 빈접시를 만들었습니다. 놀랍게도 앞 사람도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습니다. 식당차 Dinning Car 에서 이렇게 먹는 사람을 나 말고 처음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북한 이야기를 안 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한국 이야기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난 한국에서 육군으로 15개월을 복무했어요.”

1960년도 초 박정희 소장이 대통령이 될 때 주한미군으로 인천과 서울 중간에서 근무했답니다.

“지금은 도시가 발전해서 인천과 서울이 한 도시로 붙었어요”

“그래요? 그 허허벌판이 도시가 다 되었어요?”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음식만 알뜰하게 먹는 줄 알았는데 친절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방송을 듣는 데는 상당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무리 귀를 기울이려해도 뢀뢀뢀뢀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디져트를 먹는 중에, 나야 디저트는 식사 전에 가져다 준 커피를 식사 끝까지 먹는 것입니다만, 방송이 나왔는데 시끄러운 중에는 들을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 아저씨가 묻는 겁니다.

“알아듣겠어요?”

“아니요, 아무리 노력해도 듣지 못 하겠어요”

“내일 아침이면 세인트 폴 미네아폴리스 St. Paul Minneapolis 에 도착하는데, 거기서는 버스로 시카고까지 가야한데요.”

“왜요?”

“비가 많이 와서, 길이 젖어 기차가 빨리 달릴 수 없데요.”

이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가 승객이 모두 이유 없이 내리는 것을 보았으면 상당히 당황했을 것입니다. 내 입장이 되어서 자세하게 일러 준 것에 지금도 감사합니다.

다음날 아침에 정말 사람들이 모두 내리는 것입니다. 나도 준비는 해 두었다가 따라 내렸습니다. 기차역을 나오다가 그를 또 보았습니다. 짐을 엄청 많이 가지고 가는 겁니다. 양 쪽 어깨에 메고, 맨 것보다 두 배는 되는 것을 끌고, 작은 가방을 두 개나 또 들고 힘들게 사람들 틈에 끼여 가고 있었습니다.

“도와줘요?”

“그냥 둬요. 빨리 가서 첫 번째 버스를 타요. 그게 시카고 암트랙역으로 바로 가는 거예요.”

턱을 치켜들며 가리켜 주었습니다. 시애틀까지 가는 중간에도 역이 9개는 있어서, 역으로 직접 가는 사람은 어느 버스를 타라고 일러 주었는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시카고역까지 안전하게 단번에 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고마운지, 그런데 이름도 모르고, 그와 사진도 한번 찍은 게 없습니다.


‘곡식은 주인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다?’


그와 저녁을 먹다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한국을 다녀가서 그랬는지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가봅니다.

“왠 땅이 저렇게 넓어요. 나는 저렇게 넓으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어요”

“주로 밀을 심는데, 2년 1모작을 합니다.”

우리 같으면 1년 2모작을 할텐데 2년 1모작이라니, 그러니 땅에 힘이 생겨 농사는 더 잘될 것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1975년, 긴긴 농촌의 겨울동안 집에 있으면서 펜팔을 했습니다. 만화책 뒤에 난 광고를 보고 신청해서 소개를 받았습니다. 아이오와에 사는 여자 친구였습니다. 그녀가 내 소개를 받고 먼저 편지를 써 보냈는데, 장장 5장을 앞뒤로 빽빽하게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집이 어디며, 아버지는 무엇을 하며, 가족소개에, 사진까지 보내고, 크리스마스카드와, 사랑한다고 빨간 하트를 크게 오려 접어 넣기도 했습니다.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해석을 하는데 일주일을 매달려도 다 못 읽었습니다. 생각이 얼마나 모자랐던지 영어를 아는 사람이라도 찾아가서 읽어 달라고도 못하고, 내가 이렇게 쓰고 싶다고 영어로 좀 옮겨 달라고는 더더욱 못하고, 펜팔 책을 한권 사다가 하고싶은 내용의 문장을 찾아서 옮겨서 보내고 말았습니다.

미국 국기를 보내 길래 나도 태극기를 주문해다가 보내고, 아버지께 작은 짚신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서 박스에 넣어 보내는데, 값이 얼만 비싼지 편지는 항공으로 보내고 선물은 석 달이 걸린다는 배로 보내기도하고, 그러기를 1년을 하다보니 내가 지어서 보내지 않는 한 더 이상 베낄 책이 없었습니다. 펜팔 작문 안내 책자의 내용도 다 거기가 거기니까요.

이제는 내가 짓기로 했습니다. 돼나 개나 작문을 해 보는 겁니다. 아마, 이 일만 없었으면 계속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아주 산골인데, 네가 사는 곳은 어떠냐?”

고 물었더니, 다음 편지에,

“내가 처음에 다 이야기 했는데, 몰랐니?”

처음 편지를 다 읽지 못한 것이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러고야 다시 편지를 쓸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아마 아니 지긋한 중늙은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때 첫 편지 중에 자기 아버지가 농사를 짓는데 땅이 300에이커 Acre 나 된다는 겁니다. 에이커가 얼마나 되는지 계산을 해 보았더니, 우리 동네 농사짓는 땅을 다 합해도 100에이커가 되지 않는 겁니다. 우리 동네만한 땅의 세배가 넘는 땅을 혼자서 가지고 농사를 짓는다니 놀라웠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논 한마지기와 밭 한 다랑이뿐이고, 그보다 세배는 되는 땅을 더 소작료를 주고 부치고 있었습니다. 내 고향 마을은 지금도 경운기로 땅을 갈지 않습니다. 다랑이 논에다가 초승달같이 좁아서 경운기 들어 돌릴만한 넓이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리어카도 없습니다. 비탈이라서 리어카로 무엇을 실어 나를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지개가 고작입니다. 그러니 그 옛날 농사는 오죽 했겠습니까?

시애틀에서 기차를 탔을 때는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온통 쭉쭉 뻗은 나무뿐이더니, 밤이 되어 잠을 한잠 자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록키산맥을 넘었는지, 동그란 나무가 철로 주변과 울타리인 듯이 반듯이 농토를 가르고 있더니, 중부로 올수록 나무 한 그루 없이 밭들만 한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밀을 거둔 그루터기만 남은 곳도 있고, 지금 막 자라는 곳도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줄이 몇 개나 되는지 모를 듯한 씨뿌리는 기계로 끝도 보이지 않는 밭에다가 뿌려놓고, 김을 매는 사람도 못 봤고, 비료 주는 사람도 못 봤고, 농약 주는 사람도 못 봤고, 밭두렁 깎아주는 사람도 못 봤고, 들판에 사람 있는 것을 못 봤습니다.

‘곡식은 주인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다.’

는 말은 우리나라에나 있는 말인 듯합니다. 여기서는 주인의 발자국을 들을래야 들을 수도 없게 생겼습니다. 이렇게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우리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경쟁이 되겠습니까? 한미 FTA를 맺는다니 말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수입해다 먹는 것이 한해 농사짓고 온 삼동 병원에 다니는 것보다 싸게 먹힐 것입니다. 사람만 골병들지요.

소는 또 넓은 초장을 얼마나 여유있게 서 있는지, 파리 쫓느라고 꼬리 한번 흔들 이유가 없습니다.

“밤에도 우리에 넣지 않아요. 젖 짜는 소는 하루 두 번씩 짜야하기 때문에 우리가 있지만, 고깃소는 실어 팔 때까지 들에 두었다가 팔 때 잡아 실어가면 그만이지요.”

우리 소는 한 마리가 가보였습니다. 날마다 학교를 마치면 소꼴을 베야지요, 뜬물 받아다가 소죽 쒀야지요, 외양간에서는 여름 내내 파리가 끊이지 않지요, 낮이면 풀 뜯어 먹이느라고 내다 매야하고 밤이 되면 몰아 와야지요, 갑자기 소나기라도 온다면 급히 끌어 와야지요. 이런 이야기도 하며 밤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소꼴을 베러 소를 몰고 가서 베는 동안에 배불리 뜯어 먹게 매 두었지. 한 짐을 잔뜩 베고 지게를 지고 일어서는데 소나기가 쏟아지는 거야. 번개가 치니까 소가 놀라 뛰지, 발이 젖어 고무신은 벗겨지지, 꼴짐은 점점 더 무거워지지, 허리빵이 풀어져 바지는 내려가지, 눈에 빗물이 들어가 앞은 안 보이지, 뛰던 소는 점점 더 빨리 뛰지, 지게 작대기는 놓쳐서 쉴 수도 없지, 환장할 노릇이야.”

그렇게 애지중지 기른 소를 싼값에 팔 수 있습니까? 가보 정리하듯 받아야지요. 소 값이 비쌀수록 소고기 값은 오르는데, 저렇게 한가하게 자란 소를 수입한다면 누가 우리나라 소고기를 사 먹겠습니까? 아마 우리나라 소는 씨가 마르고 말겁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미국 소를 기르게 되고, 처음에는 그냥 기르게 하다가 개런티 Guarantee 를 주고 씨를 들여와야 할 것입니다. 지금 꽃을 길러 파는데 종자값을 비싸게 주듯이 말입니다. 한우 보호정책을 먼저 만들고 소고기를 수입해야 합니다. 최소한 식량주권을 지킬 방책을 세우고 한미 FTA를 체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