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자욱한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요즘 여기저기서 국화전시가 한창이라고 들었으니

아는 길의 한택식물원으로나 갈까?

여러 번 오갔던 관계로 무슨 꽃이 어디에 피어있는지도 알만큼

익숙한 길이어서 쉽게 마음을 정했다.

분당에서 820번 버스를 타고 용인터미널에서 내려

다시 10-4번 버스를 타면 바로 식물원 앞까지 간다.

소요시간 두 시간 남짓.

학습프로그램이 있어 학생들이 많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메모하는 모습이 예쁘기만 하고

나는 가끔 그들 곁에 가서 슬쩍 귀동냥도 했다.

많은 꽃을 기대한 내가 잘못이다.

꽃은 오히려 봄에 많다. 낙엽을 비집고 고개를 내미는 노란 복수초를 위시해서

노란 심지를 초록잎이 감싼 귀여운 애기괭이눈은

추운 봄날 눈 속에서 피니 얼마나 앙증맞고 귀여운지 모른다.

사람보다 야생초를 더 사랑한 때가 있었다.

꽃을 보러 산에 가고 식물원을 찾아가고

화초를 기르고, 사진을 찍고...

그러나 사랑도 기운이 있어야 하는지

무릎이 아프고 걷기가 힘들자 사랑도 식어만 가니.

아!

저 빨간 열매는 천남성의 열매라 했던가?

확인하고 싶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다.

차라리 나무가지에 걸린 큼직한 거미줄이나 찍으려 했으나

내 카메라로는 안된다.

이슬에 반짝이는 거미줄이며, 곤충이며, 가운데 버티고 있는 주인공이

그럴 듯 한데.....사진이 나왔으면 근사했을 것인데....

꽃을 보면서 이름이 궁금했다.

실은 꽃은 꽃일뿐, 이름 따위는 상관이 없을 것이지만

방편으로 이름이 있어야 드러나고 다른 꽃과도 비교할 수 있으니....

그러는 나는 선친이 지어준 항렬 외에도

보견심, jinny, 韶泉 등, 이름이 많은 걸 보니

나도 꽤 허영심이 많은 사람인 모양이다.

붉게 물든 나뭇잎이 나를 사로잡는다.

한여름의 사랑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내는 정열.

타는 가슴 보이며 제 갈 곳으로 가는 현명한 단풍은

제 갈 길로 가는 賢人 같다. 

 연못도 禪定中!

연못가에 있는 落羽松이라는 이 나무는

질퍽한 땅을 좋아해서 뿌리는 숨을 쉬느라

이렇게 뿌리를 내밀고 있다 해서 사진을 찍었다.

奇異하지 않은가?

서너시간을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기도 하고, 꽃과 대화하기도 하고

명상하듯이 걸었다.

걷다가 다리 아프면 쉬고

배고프면 김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과일도 먹으며

한가하게 가을 속을 걸었다.

잠들기 전에 해야할 일이 하나 남았다.

그건 감사해야할 일.

그리고 기도하듯 내일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