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엮은 민중신학(18) - 신학

                                             정연복(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첫째 마당: 신학과 현실

1. 신학과 현실/로버트 펑크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폴 틸리히는
     신학자들이 흔히 사람들이 묻지 않는 질문들에 
     대답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말하곤 했다....
     예전의 신학적 주제들이
     이제는 발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명력도 없는 것들이 되었다....
     신학자들이 현실적인 것은 하나도 문제 삼지 않는
     교회와 신학교의 수도원적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로버트 펑크, 김준우 역, 『예수에게 솔직히』, 한국기독교연구소, 17, 23쪽.)

2. 현대 사회 속의 신학/니니안 스마트

     기독교 신학자는
     광활한 우주와 지구의 유구한 역사를 파헤친
     현대 과학의 시각에서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교리를 새롭게 설명해야만 한다.
     기독교 신학자는 창세기와 거기에 나오는 창조신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그리고 신학자는 급변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기독교의 사랑이 갖는 의미를 설명해야만 한다.
     그는 이혼이나 행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신학자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성경에 나와 있는 계시의 의미가
     현대 사회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석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기독교 신학은
     급변하는 현대 세계의 새로운 상황에 의해 야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기독교 전통의 반응이다.
     (니니안 스마트, 강돈구 역, 『현대종교학』, 청년사, 48-49쪽.)

3. 신학과 정치/도로테 죌레

     내가 신학적 사고에 초대하고 싶은 것은
     신학한다는 것이 즐겁고
     사람을 사로잡는 환희를 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며,
     동시에 인간을 왜소하게 하고 신을 폭군으로 만드는
     서투르고 거친 신학에 대해 분노하기 때문이다....

     신학(theology)이란 말은
     신(theos)과 가르침(logos)이라는 말에서 왔다.
     하지만 신에 대한 체계적이고 합리적 명료성이 있는
     가르침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만일 신학이 단순히 “신에 대한 이론”이라면,
     그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신학의 대상은 오로지 신과 인간의 관계다.
     다른 말로 하면, 신학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인간의 경험을 성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서와 전통을 되풀이하기만 하는 신학은
     성서와 전통을 화석화하는 것이고,
     오늘의 상황에 대해 성서가 무엇을 말하는지 무관심할 때
     그 신학은 하나님의 민중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된다.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대화는
     신앙의 주체로서의 하나님의 민중과 연결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텍스트”가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의 실천을 이해하지 못하면,
     즉 만일 우리가 그 경험의 실천을
     우리 콘텍스트 안에서의
     우리 자신의 경험과 연결짓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실제로 고백할 필요가 없다.   
          
     신학은 신앙공동체를 위해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성경과 전통을 해석하는 작업을 한다.
     이것은 형식 논리적 정의이고
     그 내용은 다양한 결과를 낳는다.
     단 하나의 신학이란 존재할 수 없다.
     아주 색다른 신학들이
     동일하고 유사한 역사적 상황 속에 존재한다.
     가령 월남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미국에서
     스펠맨 추기경은 군인들과 전쟁 무기들을 축복하고 있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 퀘이커 교도들과 메노나이트 신자들은
     전쟁 물자를 운송하는 기찻길에 누워
     전쟁을 반대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른 입장들이 가지고 있는
     신론, 기독론, 죄론, 인간론은 어떤 것일까?

     오늘날에 이르러 정통주의 혹은 보수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
     그리고 급진주의 신학 혹은 해방신학 등
     세 가지 확연한 신학적 동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 부류에서
     ‘신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연관을
     염두에 두는 게 중요하다.
     이 세 가지 신학은 기본적인 신학적 정치적 모델이며
     각각 신학과 정치 모두에 연결된다.
     그러므로 정치적 적용을 발견할 수 없거나
     또 그것이 불필요한 신학적 기본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신학적 명확성은 정치적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며 행동하는지가 분명하면
     그가 어떤 하나님을 믿는지도 분명해지는 법이다....
     
     입장의 차이는 신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이다.
     어떤 심각한 신학적 명제라 할지라도
     세상의 모습과 연관된 정치적 초점을 피할 수 없다.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도
     아무리 신학적·영적 방법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본디오 빌라도와 결탁한 국가 권력이 존재했음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고 있는 그대로다.
     이러한 초점이 없는 명제들이 “정확한” 것일지는 몰라도
     그것들은 무의미하며,
     바늘 끝에 몇 마리의 천사가 앉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정도에 불과하다.
     “땅은 주님의 것”(시편 24:1)이라는 명제는
     다국적 기업의 독점과 지배에 대한 도전이다.
     (도로테 죌레, 서광선 역, 『현대신학의 패러다임』, 한국신학연구소, 9-20쪽.)

4. 민중의 질문에 응답하는 신학/로버트 브라운

     변두리 인생,
     가난한 사람들은 인류의 대다수를 구성한다.
     그들은 하찮은 대중이라고 할 수 없다.
     신학의 마땅한 출발점은 바로 그들이다....
     신학은 “고통이 있는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해방신학은 하나님이 발견되고 그분이 일하시는 곳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상황 속에서라고 주장한다.
     구약의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눌린 자의 하나님,
     그들을 편들고 그들에게 참여하시며
     그들과 하나 되시는 하나님이다.
     신약의 하나님도 같은 분이다.
     그분은 부와 영향력과
     명예로운 이름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가 아니라
     “땅의 가난한 백성”(암 하레츠), 낮은 계급,
     노동 계급의 유대인으로서,
     부자와 힘 있는 자들이
     그를 없앨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만큼 철저하게     
     가난한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한 자 속에
     몸을 입고 오셨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 때문에
     정치적 추방을 당한 브라질의 신학자 아스만은
     가난한 자가 세계를 보는 방법이 부자가 보는 것보다
     세계의 현실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가난한 자의 인식론적 특권”이라는
     놀라운 표현을 사용했다.
     그들의 인식론, 즉 그들의 인식 방법은
     세계를 오직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특권의
     유리한 위치에서만 보려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할 정도로 정확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는 우연한 기부나
     약간의 조직적인 “자선”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려고 조직화하지 않는 한,
     언제나 가난한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사회가 구조화되어 있기에
     가난하다고 구티에레즈는 결론짓는다..
     이것은 매우 근본적인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우루과이의 예수회 신학자 세군도는 그것을 “신학 이전의 것”,
     즉 신학적 훈련을 받았거나 받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출발점으로 삼을 때,
     우리는 세계가 지금 상태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좋은 신학은 단순히 어떤 공백 속에
     “위치”를 설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민중의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오늘날 질문을 던지는 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응답해야만 하는 사람은
     “무인격자”로서의 가난한 사람,
     사회 속에서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사람,
     더 나쁘게는 범주들로서만 파악되는 사람이다....
     우리 시대의 참된 질문들은 무인격자들에 의해 제기된다.
     “과학의 시대에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
     따위의 질문이 아니다.
     “우리를 조직적으로 깔아뭉개고 파멸시키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
     이 세계의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사람됨을 부정하려고 획책하는데
     어떻게 인격으로서의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
     따위의 질문이야말로 참된 신학적 물음이다.
     (로버트 브라운, 이동준 역, 『새로운 기조의 신학』, 한국신학연구소, 61-64쪽.)
                              
5. “영원한 신학”은 없다/로버트 브라운

     우리는 모든 신학이 
     상황에 의해 조건지어져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알렉산드리아나 콘스탄티노플에서 제기된
     질문들과 관련해서 신학 작업을 했으며,
     그들의 신앙고백은
     그들이 누구의 질문에 대답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선언되었다.
     그들 대부분이 노동 계층이라기보다
     보통의 지식인 남성이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반응을 더욱 더 조건지었다.
     신학의 중심지가 유럽으로 옮겨지면서
     색다른 상황은 색다른 신학을 산출했다.
     즉 라틴어의 추상적 구조가 역동적인 히브리 형식들을 대체했고,
     아리스토텔레스적 출발점은 완성된 신학적 노작을 조건지었다.
     오늘의 신학자들도 특수한 상황,
     예컨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 아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게 아니다.
     언제나 그래왔다.

     더욱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거기서 나온 신학이 상황에 따라 조건지어질 것을
     지시하고 있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구현된 역사적 신앙은
     그 속에서 자체가 발전한 문화적 상황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달리 표현될 길이 없다.
     달리는 신앙이 전달될 수도 없으며,
     사실상 “역사적”일 수 없게 된다.
     예수는 “인류”의 추상적 실례도 아니었고
     영원한 원리도 아니었다.
     그는 조그마한 마을에 살았고
     그곳을 떠나 아주 먼 곳으로 여행해 본 적도 없는
     기원후 1세기 유대인이었다.
     예수는 자기의 동시대인들과 함께
     다윗이 시편 모두를 기록했다고 생각했으며,
     세상의 임박한 종말을 기대했고,
     아람어를 사용했으며 굶주렸다.
     그는 자기가 살던 상황의 일부였고,
     달리는 이해될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배경,
     즉 다른 상황에 말을 걸고 응답을 요청하는 배경을 요구한다.
     이 사실을 부인하여 “영원한 신학”을 형성하려는 시도는
     성 토마스의 것이든, 일치의 책의 것이든,
     혹은 웨스트민스터 표준의 것이든
     출발점에서부터 벽에 부딪힌다.
     (로버트 브라운, 이동준 역, 『새로운 기조의 신학』, 한국신학연구소, 128-129쪽.)

6. 신앙 경험과 신학/구티에레즈 

     신앙의 경험 안에 위치하지 않은 신학은
     일종의 종교적 형이상학 또는
     전진하지 못하고 헛도는 바퀴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신학적 성찰은 교회 안에서만
     그리고 교회의 삶과 세상 안에서의 교회의 행동을 위해
     봉사할 때에만 충분한 의미를 갖게 된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물음에 대해
     우리는 단순히 이론적·신학적 대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결국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되는 것은 우리의 삶이며,
     우리의 개인적 역사이고, 우리가 복음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신앙고백이나 어떤 신학적 체계화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삶과 전체 교회의 삶을 향한 물음이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검증하며,
     그 신앙의 궁극적인 결말들로 인도한다....

     신앙에 대한 논의는
     신앙의 삶 자체에 비하면 이차적이다.
     이러한 방법론적 언급은 해방신학에서 핵심적이다....
     진정한 신학적 성찰의 기초는 명상과 실천이다....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theo-logia)는
     기도의 침묵과 참여적 행동 뒤에 온다.
     신학은 침묵에 의해 계속 풍성해지는 이야기다.
     신학은 교회의 친교 안에서 신앙을 생활화함으로써,
     그리하여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전달과 수용의 역사 속에 자리한
     신앙 안에 뿌리 내리는 이야기다. 
     (구티에레즈, 김문호 역,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 한국신학연구소, 64, 80, 181쪽.)

7. 신학 언어/안병무

     신학이란 언제나 그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신학과 그리스도인은
     민족적 자각에 도달하고 있는 집단과 연대를 맺는
     일차적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질문은 언제나 대답을 결정한다.
     오늘 우리는 우리 민족의 문제 상황 속에서
     우리다운 언어와 개념으로 질문하면서 성서에 도전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서구신학이 성서를 잘못 해석해왔음을 자각하면서
     그들의 해석권에서 탈출하여 자유롭게
     우리의 물음을 가지고 성서에 묻고,
     우리의 눈으로 성서를 읽고 대답을 찾고자 한다.
     이것이 한국적 신학 형성의 토대다.

     민중은 오늘의 민중신학과 같은
     신학 작업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하나님 나라가 오기 전까지는
     민중신학이 존재할 것이고 필요할 것이다.
     민중문학이 민중의 소리와 감정을 지식인의 언어로 바꿔
     그것을 잘 모르는 사람(지식인)에게 전달하듯이
     민중신학도 민중사실을 신학적 언어로 바꿔 전달한다.
     곧 번역 작업이다.
     지식인에게 민중의 말과 희망과 의지를 전달하는 통로,
     그것이 민중신학이다....
     민중이 우리 역사의 실질적인 주인이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든 부르지 않든
     민중이 이 민족사의 과제를 위해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고 증언하는 것이다.
     바로 그 민중의 역사적 실천 속에서
     그리스도가 그들과 함께 노동하고 고난 받고
     고문당하고 죽임당하고 있음을 증언하는 것,
     아니, 오늘도 그들과 함께 그들 속에 부활하고 있음을
     증언하는 것이 민중신학의 할 일이다.
     함석헌은 분단 시대의 민중(씨알)의 고난을
     단순한 비극으로 보지 않고
     세계의 죄악과 고난이 압축된 현장으로 증언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든 사회과학적 분석과 인식을 넘어서는
     신학적 통찰이다.
     (안병무,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한길사, 15-16, 33쪽.)

둘째 마당: 예수와 신학

1. 신신학인지 구신학인지/이현주

     신신학인지 구신학인지
     정통신학인지 밥통신학인지 
     정치신학인지 순복음신학인지
     민중신학인지 귀족신학인지
     신정통신학인지 또는 무슨 무슨 신학인지
     에헤라, 나는 그런 거 모릅니다
     그저 당신이 신나게 살아가신 것처럼 
     못난 놈들 편에서 온갖 깡패들과 맞서신 것처럼
     그렇게 살고 싶을 따름이올시다
     사람의 아들, 예수여!
     (이현주 시집, 『뿌리가 나무에게』, 종로서적, 31쪽.)

2. 예수의 유아신학/프란츠 알트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곧 나를 보내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가 9:37).
     나는 이 말씀이 신약성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처럼 되어라!”
     이 말씀에서 예수가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산상수훈에서는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말하고 있다.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문을 두드려라.”
      
     예수는 결코 낭만적인 어린아이의 형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현실주의자로서 예수는 본래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쉽게 생각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아이들은 자기 부모가 
     빵을 주지 돌을 주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으로 생활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이와 같은 근원적인 믿음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예수는 말한다.
     아이들은 보다 쉽게 자기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들은 ‘끝났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을 열어 놓고 있다.
     예수가 비유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호기심과 개방성, 환상과 실험정신, 자발성과 유동성 같은
     진보적이고 어린아이 같은 특징들이다.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에 대해
     아무런 개념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자세히 알고 있듯이,
     예수도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개념도 없으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체험했다.
     (프란츠 알트, 구승희 역, 『인류 최초의 멋진 남자! 예수』, 한얼, 132, 136, 155-156쪽.) 

3. 예수운동과 바울의 신학/박경미

     바울은 그리스도교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죄나 구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 중 많은 부분이
     바울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신학은
     예수운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상황에서 형성되었다.
     민중과 함께 일으킨 하나님 나라 운동인 예수운동은
     갈릴리 농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민중해방의 역사적·사회적 역동성을 지녔다.
     이에 반해 바울은
     헬레니즘적 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한 초대 선교사로서
     여러 교회를 창립했으며,
     그의 신학적 관심은
     교회 내부의 문제들과 교회의 존립 자체에 집중되었다.
     예수의 급진적인 선포 내용과는 달라진 바울의 권면들은
     기본적으로 달라진 상황에
     예수의 복음 내용을 적용시키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예수는 어느 지역에 정착해서
     교회나 공동체를 세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예수는 정처없이 떠돌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했던
     떠돌이 설교가요, 마귀 축출자, 치병자였다.
     그러나 바울은 이제 막 태어난 교회를
     키우고 가꾸어야 할 책임을 지닌 사람이었다.

     바울 당시는 이미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제국을 통일하고 막강한 군사력에 의해
     강력한 국가체계를 확립했으나,
     당시 그리스도교 집단은
     사회적으로 한줌밖에 안 되는 세력이었고
     갓 태어난 어린 아기와 같은 미미한 존재였다.
     만일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규합해서
     로마제국의 강력한 체제에 직접 항거했다면,
     그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패배, 좌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민중적이며 해방적인 복음은
     바울에게 와서 변조된 모습을 띠게 된다.

     바울은 예수의 급진적인 윤리적 선포들을
     자신의 교회에서 신도들에게
     공동체의 구체적인 문제들과 관련하여 가르쳐야 했다.
     바울의 교회는
     가진 것을 다 팔아 나눠주고
     빈털터리로 예수를 따라 떠돌아다닐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생업에 그대로 종사하면서
     구체적으로 자기 삶을 변화시킬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공동체는
     다양한 사회 계층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남녀가 함께 공존했으므로
     이로 인해 야기되는 온갖 문제들까지 해결해야 했다.
     바울은 예수의 해방선언인 복음의 기본정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완전히 달라진 상황에서 그 의미를 재해석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급진적인 해방의 소식은
     바울의 선포 곳곳에서 그 모습이 드러난다.
     (최만자·박경미 공저, 『새 하늘 새 땅 새 여성』, 생활성서사, 207-208쪽.)

4. 말씀의 신학과 사건의 신학/안병무  

     신약에서 가장 초기의 글들이 바울의 편지들이다....
     그는 그리스 철학 일반에 능통한 지식인으로서
     헬레니즘의 세계관, 따라서 그 언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선교의 사도로서
     바울은 이러한 문화적 상황을 의식했기 때문에
     그 언어(세계관)를 사용했다.
     그는 기존의 세계관과 대결하면서
     그리스도교를 변호 또는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의 글은 논리적이며 전개적이다.
     그래서 비히브리적이 되었으며 비민중적이 되었다.
     논(論)이나 관(觀)은 히브리적이 아니며 또한 민중적이 아니다...
     마가복음도 예수를 구원자로 증거하려 한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론’이나 구원‘론’을 전개하지 않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너무도 민담적이다.
     선인(仙人)같이 나타나 외치는
     세례 요한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예수가 그에게 세례받은 이야기,
     제자들을 부르는 이야기,
     여러 병자들을 만나 치료하는 이야기,
     귀신을 추방하는 이야기,
     그를 둘러싼 민중에 대한 그의 이야기,
     그의 적대자들이 파놓은 함정을 멋지게 물리치는 이야기,
     그리고 맨 나중에는
     그의 수난의 이야기와 빈 무덤 이야기 등
     이렇게 이야기로 엮어진다....
     그것은 어떤 개념이나 어떤 ‘관’을 전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논리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
     ‘본 대로 들은 대로’의 식으로 이야기할 뿐이다.
     그 이야기 중에는
     전능한 초인 같은 면과 ‘할 수 없었다’는 말,
     ‘전능한 이’와 수난에서 보는 그 무능 사이의 모순 등을
     극복하려는 노력 따위가 없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만 하지 않고 몸으로 했다....
     삶과 유리되지 않은 말을 하면
     거기에 필연적으로 고난이 따른다....
     그런데 교회에는 말과 행위, 말과 삶을 갈라놓고
     행동과 유리된 말만 해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풍조가 범람한다.
     그것은 영과 육을 갈라서 생각하는
     도피 장치를 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보수 계열일수록 말과 삶은 상반된다.
     서구 신학의 영향도 이에 큰 몫을 한다.
     서구 신학은 최근까지 ‘말씀의 신학’으로 성격화되었다.
     ‘말씀의 신학’은 결국 하나님의 현존은
     설교하고 들을 때에만 구현된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른바 케리그마 신학이 바로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케리그마가 아니라 예수의 사건이 먼저다.
     사건과 유리된 말은 허상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시정하려고 나는 ‘사건의 신학’을 내세웠다.
     (안병무,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한길사, 97, 110-111쪽.)

5. ‘당연한 이야기하기’로서의 신학/문익환

     “하나님이 뭐야? 하나님은 양심이야.
     양심은 뭐야? 양심은 상식이야”(이철용).
     그러기에 우리는 대단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그저 당연한 이야기를 하면 된다.
     예수가 참사람이라는 것도 그런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어야 할 마음을 지니고
     해야 할 생각, 말,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신 분이라는 뜻이다.
     그의 사랑도 뭐 유별난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지니고 행동해야 할
     마땅한 사랑이었다는 말이다.
     그는 독신으로 살다가 가셨으니까
     한 지아비로서 지어미를 사랑하는
     당연한 사랑의 길을 살아 보이지 못했지만,
     아들로서 형제로서 벗으로서 민중의 하나로서
     사회인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사람이면 당연히 살아가야 마땅한
     그런 삶을 살아 보이신 거다.
     당연, 그것이 바로 인간의 근원이다.

셋째 마당: 신학과 해방실천

1. 신학보다 구체적인 행동 하나/구티에레즈

     신학이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하여금
     사랑의 과업에 더욱 철저하고 완전히 투신케 함으로써,
     세계 안의 교회공동체 활동에 활력을 부여하지 못하면
     별로 가치가 없는 신학이다....
     또한 우리가 지적인 자기 만족감을 갖거나,
     그리스도교의 해박하고 진보된 새 사상을 지녔다는
     승리주의에 도취되어서도 안 된다.
     진실로 새로운 게 있다면
     날마다 성령의 은혜를 다시 받는 바로 그것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사랑할 힘을 주신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차원에서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한 그 온전한 사랑으로
     참다운 인간적 박애를 건설하는 것이요,
     역사적 차원에서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한 그 온전한 사랑으로
     불의한 질서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파스칼의 유명한 구절을 상기할 때
     우리가 전개하는 모든 정치신학, 희망신학, 혁명신학, 해방신학도
     결국 착취당하는 계급과 진지하게 유대를 갖는
     구체적인 행동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이 모든 신학도
     신앙과 희망과 사랑의 행위,
     즉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모든 것에서,
     인간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길을 저해하는
     모든 것에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자 적극 참여하는
     행동 하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즈, 성염 역, 『해방신학』, 분도출판사, 387-388쪽.)
       
2. 세계를 변혁하는 신학/미구에즈 보니노

     신학은 하나님의 속성이나 행동에 관한
     정확한 이해를 주려는 노력이 아니라,
     신앙의 행동과 순종 안에서 표현되고 실현된
     프락시스의 형태를 명확히 말하려는 노력이다.
     마르크스의 유명한 격언에 빗대어 말한다면,
     신학은 이 세계를 설명하는 일을 중지하고
     이 세계를 변혁하기 시작해야 한다.
     오늘날 정통이론보다는 정통실천(orthopraxis)이
     올바른 신학의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해방신학은 우리에게 사고(思考)를 위한
     새로운 주제를 제공한다기보다는
     신학함(doing theology)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역사적 실천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신학은
     해방시키는 신학,
     즉 인류의 역사를 해방시키는 변혁의 신학이다....
     그것은 세계를 고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세계를 변혁시키는 과정의
     일익을 담당하겠다고 나서는 신학이다.
     즉 짓밟히는 인간 존엄성에 항의하고,
     대다수 인간이 당하고 있는 착취적 행위에 맞서고,
     해방시키는 사랑을 하며,
     하나님 나라의 선물인 정의와 우애의 새 사회를
     건설하는 데 참여하는 신학이다.”(구티에레즈).
     (미구에즈 보니노, 주재용 역, 『오늘의 행동신학』,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21-122 쪽.)    

3.  신학의 역할/S. 갈릴래아

     교회의 진정한 사명과 복음화는 오직 ‘해방’에 있다....
     복음화는 인간의 전인적 발전과 밀접히 연관되는
     여러 문화를 반드시 포괄해야 하며
     사회·경제 구조들과 정치적 억압 문제까지 다 포함해야 한다.

     “신학이 모름지기 수행해야 할 기능이란
     오늘날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맥락과
     전개 과정과 현실을 앞에 두고
     해방의 참된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다.
     불의와 인간과 국가에 의한 인간 착취와
     강대국에 의한 약소국 착취와
     구조적이고 기계적인 불의한 경제제도에 의한
     온갖 착취 현상을 발가벗기고 폭로하는 일도
     진실을 밝히는 신학이 담당해야 할 부분이다”(요한 바오로 2세).
     (S. 갈릴레아, 김수복 역, 『해방신학의 개관』, 성바오로출판사, 7, 12-13쪽.)

4. 사마리아인의 비유/알란 부삭

     마땅히 신학은
     해방되지 못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진정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들의 신학은
     현재 시급하고 본질적인 문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긴급함과 진실함의 기준에서 보면,
     이웃을 사랑한다고 야단법석을 떨며 돌아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은
     참 우스운 꼴밖에 안 된다.
     이와 관련하여 카르도넬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평범한 보통사람인 사마리아인과,
     힘과 권위를 가진 제사장, 경제학자, 심리학자, 전문가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사마리아인에게는
     사랑하며 공감하며 타인과 연대감을 갖는 데
     종교도 필요 없고,
     하는 일의 분야를 정확히 규정하는 이론도 불필요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이 이 비유에서 등장하는 때는
     사람이 싸우다 다치고 모든 일이 끝난 후다.
     여기서 카르도넬은 신학이 마땅히 제기해야 할
     현실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싸움이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라면,
     사랑이 어떻게 실행되어야 하는가?”
     (알란 부삭, 김인주 역, 『아프리카의 교회와 해방』, 형상사, 36쪽.)     

5. 두 가지 신학/알란 부삭

     수백 년 동안 흑인교회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투쟁해왔다.
     이 투쟁 과정에서 두 가지 신학이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고 싸워왔다.
     하나는 서구 기독교에서 물려받은 신학이다.
     이는 적응과 순응의 신학이다.
     이 신학은 개인주의적이고 타계주의적 영성을 야기하며,
     현재의 세상 구조를
     하나님이 주신 질서로 선포하는 것 외에는
     세상 현실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 신학은 흑인들이 노예제도를,
     현대의 용어로는 이류 혹은 삼류 시민이라는
     열등한 신분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환경의 힘을 견디지 못해 좌절하는 가운데
     흑인들은 이 무기력한 천국 지향적 신학을 받아들였고,
     현재의 흑인교회에도 이 신학은 만연되어 있다.

     다른 한편에는 거부하는 신학이 있다.
     하나님을 현상유지를 위한 논리의 도구로
     이용하기를 거부하는 신학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억압받는 자들을 편드시고
     세상에서 해방과 정의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도록
     부르시는 분이라고 이해하는 신학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비천한 자들을 향한다고 생각하며,
     이들을 억압하고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자들에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신학이다....
     
     더글라스는 이 신학을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하고 있다:
     “우리 복된 구세주의 종교를 나는 사랑한다.
     순결하고 평화롭고 온화한 하나님의 지혜로
     위로부터 오는 종교를 나는 사랑한다.
     치우치거나 위선적이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게 만드는
     영화로운 원리에 기초한 종교를 나는 사랑한다.
     노예제도를 고수하고,
     여자들에게 채찍질을 가하고,
     영혼을 파괴하는 어두운 마음의 미국 종교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하나를 사랑하면 다른 하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하나를 붙잡으면 다른 하나를 놓아야만 한다.”

     우리는 이 신앙이 “새롭거나 정치적인” 신앙이 아니고
     오래된 복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의 선포 내용이다.
     이것은 개인적 삶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정치· 경제 구조에서의
     인간의 죄를 지적하는 메시지다.
     이것은 심판을 예고하지만
     동시에 희망과 회개와 구원을 전하고 있다.
     통전적 삶의 메시지다.
     현재의 상황에서 이것을 우리 민중이
     잘 알아듣게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알란 부삭, 김인주 역, 『아프리카의 교회와 해방』, 형상사, 46-47쪽.) 

6. 해방신학자의 자세/보프

     해방신학자는
     저술 활동을 일삼는 지식인에 머물지 않는다.
     그에 앞서 해방신학자는
     하나님의 민중이 걸어가는 길에 들어서 있고
     사목 책임자들과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 지성인’이요
     ‘투쟁하는 신학자’인 것이다.
     해방신학자는 한쪽 다리는 성찰·반성하는 기관 안에,
     그리고 다른 한쪽 다리는 공동체 생활 속에
     확고하게 딛고 서 있는 사람이다....

     해방신학자는 바닥들을 통과해야 한다.
     그는 구체적인 공동체와 결부되어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공동체 안에 생생하게 들어가 있어야 한다....
     해방신학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짓는
     수준 높은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해방신학자는 사회, 억압받는 사람들,
     민중적·상징적·성사적 의미를 지닌 세계의 논의를
     신앙 및 위대한 전통의 논의와 연결짓는
     수준 높은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해방이라는 영역에서 오직 신학만을 알려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짓이며,
     신학 자체를 모르는 소치다.
     따라서 해방신학자는 동시에 사목가, 분석가, 해석가,
     연결자, 신앙의 형제, 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L. 보프·C. 보프, 김수복 역, 『해방신학 입문』, 한마당, 35쪽.)

   
넷째 마당: 새로운 신학 방법론

1. 인간적 신학/송천성

     경외할 만한 교부의 신학이든
     인상 깊은 독일신학이든 어떤 신학이든
     신학은 역사·문화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신학 역시 역사·문화적 평가와 비판을 받아야 한다.
     유아독존식으로 세계적 권위를 내세울 수는 없다.
     다른 역사·문화 상황으로 옮겨질 때엔
     반드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교리적 혹은 신학적 명제는
     기계적인 암기에 지나지 않는다....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학이 다룬 본질적인 내용이란
     삼위일체적 하나님, 교회, 성례전, 목회 등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윤리란 것은
     (그리스도교 윤리로 불리든 또는 사회윤리로 불리든)
     별개 문제로 취급되거나
     교의신학의 부록 정도로밖에 취급받지 못했다....
     삶은 “신학적” 부분과 “세속적” 부분으로 나뉘었다.
     물론 세속적 부분이 월등히 많지만
     그런 것은 문제삼지 않았다.
     신학에서, 나아가 신앙에서도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나님만을 생각했다.
     하나님의 사랑, 구원, 심판에만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런 것들이 힘겨운 삶의 구체적 문제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닭고기 값을 조금이라도 깎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붐비는 슈퍼마켓 같은 데서
     그리스도교인들은 어떤 “신학적” 의미도 구하려 하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쫓겨난 후 어떻게든 해안에 접근해
     마른 땅을 밟으려고 투쟁하는 “보트 피플”에게서
     “신학적” 암시를 얻으려는 자도 없다....

     우리는 구체적인 신학적 물음을 던져야만 한다.
     예를 들어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서
     십자포화에 갇혀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수많은 어린이들을 보자.
     저들은 인간해방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물인가?
     아니면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인가?
     중국의 오랜 역사 속에
     수많은 왕조들이 생겨났다 사라진 사실들에서
     우리는 무슨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을까?
     그것은 역사적으로 불가피한 운명이었나?
     아니면 전체주의를 파괴하려는
     인간의 투쟁에 관여한 하나님의 손길이었나?
     핵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미래 계획은 어떤 것일까?
     옛 세상의 완전한 파괴인가?
     아니면 새 세상의 창조인가?
     신학의 개척자들은
     교회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벗어나
     피조물 전체로 발걸음을 옮겨왔다.
     이러한 신학 개척자들의 변화에 힘입어
     우리의 신학적 질문들도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것들이 되고 있다....

     중복되는 말이지만
     우리 신학은 인간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바로 이 인간성 속에
     신학적으로 관여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성과 신학 사이의 관계는
     물과 고기의 관계와 같다.
     물을 떠난 고기는 죽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과 역사를 떠난 신학도 죽고 만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신학은
     인간의 고뇌에서 하나님의 고뇌를 증거하고
     인간의 희망에서 하나님의 희망을 표현하고,
     인간의 번뇌에서 하나님의 번뇌를 전하고
     인간의 분노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외쳐야 한다.
     또한 우리의 신학은
     인간의 웃음에서 하나님의 웃음이 울려퍼져야 한다....
     제3세계 신학은
     분노한 신학으로 세계 신학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불의와 압제에 대한 분노다.
     또한 우리 신학은 통곡의 신학이어야만 했다.
     우리 주변은 너무도 엄청난 비극들로 둘러싸여 있다.
     끊임없는 전쟁들, 밑을 알 수 없는 빈곤,
     잔악하기만 한 인권탄압 등이 그것들이다.
     울고 한숨짓고 한탄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웃으실 적도 있다.
     아이를 낳은 어미가 기뻐 웃을 때,
     앙숙들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을 때,
     약간의 관심과 사랑을 통해
     곤경에 처했던 사람이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되었을 때가 바로 그때다....
     따라서 우리 신학은
     마땅히 웃는 신학도 되어야 한다.
     우리에겐 웃으시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웃으시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웃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필요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악의 요소들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 속에서 우러나는 웃음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 신학은
     마땅히 인간적 신학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신학을 한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는
     우리 인간들을 위한 신학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낙태 문제를 안고 씨름하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우리의 문제이고 하나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핵무기 문제를 신중히 다룰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대세계 속에 나타나는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탄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지나치게 내버려두시지는 않는다....
     인간의 삶과 관계된 모든 것이
     바로 우리의 신학적 관심의 주제가 될 수 있으며
     마땅히 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보면 신학에는
     어떤 규정된 한계가 없는 것 같다.
     그렇다.
     신학은 무한한 영역을 소유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심”의 신학은
     아주 감격적인 신학이다. 
     우리 가슴이 기대에 부풀어 요동치게 한다.
     우리의 신학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광경에 눈뜨게 만든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배의식에서는 듣지 못했던
     음악 소리에 귀를 열게 한다.
     그리고 이방 민족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낯선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보게 한다.
     위험한 신학자들이 되자!
     감격하는 신학자들이 되자!
     아시아라는 붓과 먹을 가지고
     신학이라는 풍경화를 자신 있게 그려 나가자!
     이러한 붓과 먹으로 “일필휘지”하여
     우리의 신학이란 종이 위에
     하나님의 구속적인 사랑과 능력의 계시를
     날카롭게 묘사해 보자.
     바로 우리가 몸담아 있으며 떨어질 수 없는
     삶과 역사 전체로 이루어지는 우리 자신의 상황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서
     이와 같은 날카로운 묘사를 추출해 낼 수 있겠는가?
     (송천성, 이덕주 역, 『아시아 이야기 신학』, 분도출판사, 18, 20-21, 26-27, 83-84쪽.)    

2. 새로운 기조의 신학/로버트 브라운

     새로운 기조의 신학을 부르짖는 사람들을 서술하려고
     많은 용어가 동원되었다.
     예컨대 “땅의 비참한 사람, 가난한 자, 눌린 자, 변두리 인생,
     소리 없는 자, 착취당하는 자, 희생자” 등이다....
     그들의 신학은 학술적 강의보다는 대화체로 표현되며,
     10달러 95센트에 세금이 붙은 책으로 출판되기보다는
     신문용지에 복사된다.
     (되돌아올 주소도 없이 비밀리에 배부된다.)
     이 신학은 예배실에서 들려지는 것만큼이나
     감옥에서 들려지고 있으며,
     휴게실보다는 부엌에서 빵을 나눔으로 지속된다.
     바하의 성가곡보다도
     흑인 영가와 블루스 조의 노래로 불려지며,
     성례식 때의 의상보다도
     아무렇게나 빌려온 옷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
     예배 드려진다.
     이 신학은 다른 주변의 방법이라기보다
     점점 신학적 명상의 자료가 되어가는 경험들로부터
     솟아나서 자라고 있다.
     
     우리의 최초의 신학적 과제는
     이 소리들을 진지하게 다루는 일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관점에서 세계를 보는 사람들이
     왜 이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지,
     왜 그들은 과격한 변화를 선택해야만 하는지,
     왜 그들이 필요하다면
     변화를 위해 투쟁까지도 불사해야 하는지,
     “기득권자”가 계속 만족을 느끼는 현상을
     왜 그들이 용납할 수 없는지를
     올바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일치하고 있음은
     별로 놀라운 게 아니다....

     이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난 받고 있으며 상처를 입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 문제다.
     그들이 상처를 입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야말로 그들에게 상처 입히는 자들이라고
     사람들이 말할 때,
     그것은 단지 하나의 신학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신학적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조의 신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강조하고
     과거와의 결별을 주장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들이 보기엔, 이전의 신학은
     주로 특권층의 유리한 입장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현상을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지지해 마지않는,
     그리고 기껏해야 현상 자체가 불의의 요새가 되었을 때,
     거의 아무도 위협하지 않고
     온전한 “개혁주의적” 암시들을 제공하는
     억누르는 자의 신학이 되어왔다.
     (로버트 브라운, 이동준 역, 『새로운 기조의 신학』, 한국신학연구소, 21-23쪽.) 

 3. 평신도들 역시 이미 신학자들이다/존 캅

     좋은 신학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다....
     당신은 많은 전문 신학자들 이상으로
     좋은 신학자가 될 수 있다.
     전문 신학자는 그들 자신의 믿음보다는
     타인들의 믿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당신은 전문 신학자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아마도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전문 신학자들이
     당신을 대신해서 생각해 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진정한 기독교 신학은
     전문 신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기독교인들 모두를 위한 것이다.
     전문 신학자들 또한 진정한 신학을 할 수 있지만,
     전문 신학자들은 전문 지식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전문 신학자가 된 게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전문 신학자가 된 것이다....
     때때로 전문 신학자들은 평신도들이 학문적 분야를
     전문적으로 배울 때에만 신학자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너무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학자의 직책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평신도들은 이런 방식으로는
     그들의 시간을 낼 수 없을 뿐더러
     마음도 쏠리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평신도들은 신학을 전문가에게 내맡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과 교회에 재앙이 되어왔다.
     만일 우리가 교회 갱신을 원한다면,
     우리는 교회에서 생각하기를 새롭게 해야 한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자기 믿음을 책임질 때가 되었다.
     전문가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믿는 것은 기독교인들 각자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교회 일치나 교회의 조화를 원하지,
     교회에서 논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대다수 평신도들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죽음에 대한 논쟁이나
     <예수 세미나>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교회 지도자의 역할은 평신도들을 안심시켜
     그런 논쟁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교회 지도자들은 활발한 토론을 통해
     교회가 사는 길을 택하지 않고,
     표면적인 조화로 인해 죽는 길을 택한 것 같다....
     교회가 쇠퇴하는 진짜 이유는
     교인들이 신학적 성찰에 폭넓게 참여하도록
     독려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과제들은 기독교인들 개인이나 집단,
     즉 자신들의 신앙이 세상에서 어떻게 중요하며
     상관성을 갖는지를 이해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맡겨져 있다.
     특히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평신도들이다.
     이들은 모든 연구 분야와 중요한 사회 기관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평신도들이 이런 연구 분야들이나 기관들에 대해
     기독교인으로서 생각하도록 도전을 받게 된다면,
     그리고 평신도들이 그 도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면,
     기독교인의 지혜는 이 병든 사회를 치유하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이 바로 이런 일들을 해야 할 평신도들 중 하나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의 울타리를
     더 이상 계속 좁혀 나갈 수 없다.
     세계 역시 기독교적 비전과 지혜의 혜택을
     더 이상 잃어버릴 수 없다.
     우리는 교회와 세계 모두를 위해
     더 좋은 신학자들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존 캅, 이경호 역,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 한국기독교연구소, 15-19, 24-27, 219-221쪽.)